지난해까지 동남아 경제의 희망이라고 불렸던 인도네시아의 2/4분기 성장률은 5.8%로서 2010년 3/4분기 이후 가장 낮아졌다. 무역 수지와 경상 수지도 적자로 전환되었고 루피아화 가치도 6% 이상 떨어졌다.
태국(타이)의 2/4분기 성장률은 1/4분기의 5.3%에 비해 대폭 낮아진 4%에 그쳤는데 태국 중앙은행은 올해 성장률 전망을 당초 5.1%에서 4.2%로 내려잡았고 수출 증가율도 7.5%에서 4%로 대폭 인하했다.
2/4분기 성적이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말레이시아는 1/4분기에 성장률은 4.1%로서 2012년 4/4분기의 성장률 6.5%에 비해 대폭 낮아졌고 2/4분기에도 신통한 모습을 보지는 않을 것 같다. 발전 단계가 더 낮은 베트남조차도 상반기 전체의 성장률이 4.9%에 불과했다.
아세안의 경제 성적이 악화되는 이유를 하나로 찍어 말하기는 어렵다. 세계 경기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외 의존도가 매우 높은 아세안 국가들의 소비나 투자가 빨리 증가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요인은 있다. 수출이 특히 부진하다는 것이다. 상반기에 인도네시아의 수출은 6.1%나 감소했고, 말레이시아의 수출도 3.8%가 감소했다. 비록 감소를 하지는 않았지만 태국과 필리핀의 수출은 각각 1.2% 및 6.0% 증가하는데 그쳤다.
이에 비해 수입은 수출 감소폭보다 적게 감소하거나 오히려 증가했다. 인도네시아의 수입은 수출 감소폭 보다 낮은 2.2% 감소했고,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의 수입은 모두 증가했다. 수출은 부진한데 수입은 감소하지 않아 무역 수지가 악화되고 있고 이것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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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주목할 사실은 아세안의 대중국 교역 상황이다. 중국 통계를 기준으로 보면 올해 상반기에 중국에 수출이 증가한 국가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이었고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수출은 감소했다. 대신 중국은 아세안에 수출을 대폭 늘렸는데 말레이시아에 36.4%, 베트남에 45.2%, 싱가포르에 20.1% 인도네시아에 13.2%, 그리고 필리핀에 16.0% 늘렸다.
중국의 상반기 총수출 증가율이 10.2%이었으니 아세안은 중국의 수출 회복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중국의 대아세안 수출은 한국과 일본의 대아세안 수출을 합한 것보다 더 많아졌다.
중국의 대아세안 무역 수지도 증가했다. 상반기 중국의 아세안 10국에 대한 수출은 1146억 달러, 수입은 958억 달러로 188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는데 이는 지난해 전체의 흑자 82억 달러의 2배 이상이다. 중국이 대아세안에 2010년에 151억 달러, 2011년에 226억 달러의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아세안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중국의 시장으로 전환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일시적인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데 아세안의 고민이 있다. 실제로 아세안의 대중국 수출은 소수 품목에 집중되어 있다. 1차 자원이나 반도체 칩이 그것이다. 예를 들자면 말레이시아의 대중국 수출의 절반 이상이 반도체 칩이고 필리핀, 싱가포르, 베트남 또한 최대 수출 품목이 반도체 칩이다. 중국이 세계 전자 산업의 생산 기지가 되면서 칩을 수입한 것이다.
또 다른 주요 수출품은 석유, 가스, 팜 오일, 석탄, 구리 등 1차 자원이다. 그런데 반도체 칩의 경우 중국이 생산을 늘려갈 것이고, 중국의 고도성장의 시대가 끝나면서 자원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도 진정될 것이다. 실제로 아세안 주요국의 수출품 중 팜 오일 등의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했고 대중국 수출의 부진은 모도 자원 수출의 부진 때문이었다.
반대로 중국의 대아세안 수출 품목은 다각화되어 있다. 중국은 부품, 소재뿐만 아니라 노동력이 풍부한 아세안에 의류 제품까지 수출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특정 제품의 수출이 부진하다해서 전체적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아세안의 소비자가 값싼 중국 상품을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고, 앞으로 중국과 아세안의 교역은 중국에 유리한 구조로 정착될 것이다.
지금까지 아세안과 중국은 모두 외국인 직접 투자를 통한 수출 주도형 공업화라는 동일한 성장 전략을 채택했다. 이 과정에서 아세안과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였고, 중국은 점진적으로 아세안의 노동 집약적 제품의 시장을 잠식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상황이 양측의 관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물론 일부에서 양측의 관계가 비대칭적 구조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기도 했지만 현실에서 양측은 아세안-중국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등 적절한 타협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세안이 중국의 고도성장에 혜택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세안 대부분은 중국에 자원 수출을 확대했고,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은 중국의 전자 산업에 필요한 중급 반도체 제품을 공급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아세안이 대중국 교역에서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하는 등 적어도 양측의 직접적인 교역은 아세안에 유리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세안이 중국의 주요 시장으로 전환되는 한 아세안과 동아시아 모두는 중대한 과제를 안게 된다. 먼저 아세안은 취약해질 제조업 대신 새로운 성장 원천을 찾아야 한다. 중국의 공산품이 아세안 시장을 휩쓸고 세계시장에서 아세안 제품이 밀려나게 되면 아세안의 수출 주도형 제조업은 설자리가 없어진다.
아세안이 2015년에 인구 6억의 단일 경제권을 형성하겠다고 하지만 글로벌화가 진행될수록 이것이 아세안 제조업의 보호막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관광 등 서비스 산업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지만 지금도 생산성이 낮은 서비스 산업이 비대한 아세안 국가는 제조업에서 일자리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제조업의 경쟁력 향상 없이는 중진국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또 하나의 과제는 동아시아의 경제 통합과 관계있다. 아세안은 동아시아가 제도적인 통합 프로그램을 추진하는데 아세안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소위 '아세안 중심성'의 조건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제도적 통합이 무역 자유화로 이어진다면 아세안은 더욱 소극적으로 변하지 않을 수 없다.
아세안은 자체의 경제 통합을 서두르고 있고, 일부 국가들은 동아시아의 경제 통합뿐만 아니라 미국이 주도하는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에도 발을 걸치고 있는 셈이다. 이런 노력들이 취약한 제조업을 강화시켜 아세안 경제를 다시 성장의 길로 나아가게 할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는데 아세안의 고민이 있고, 이런 상황은 역내의 무역 창출을 위해서도 경제 통합이 필요한 동아시아에게도 고민거리이다.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두 차례 동시 게재합니다. 박번순 홍익대학교 초빙교수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94호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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