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나와서 놀라셨나요? 오늘 도킨스 선생님이 직접 오셔서 강의하는지 알고 많이들 오신 것 같은데요. 기다리셔도 소용없습니다. 그 분 안 오십니다. 태풍 때문에 비행기가 회항을 했거든요. 하하하."
폭소가 터졌다. 강의가 끝나고 나서는 사인을 받으려는 이들도 줄을 섰다. 그들은 <만들어진 신>에 저자 도킨스 대신 열강을 한 그의 서명을 받았다. 마치 도킨스가 그에게 빙의라도 된 듯했다. 그는 2005년 생물학자 최재천과 함께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사이언스북스 펴냄)을 번역해 이름을 떨친 장대익이었다.
장면 둘. 2012년 5월 11일. 광화문의 한 강연장에는 제레미 리프킨의 강연을 기다리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3차 산업 혁명>(안진환 옮김, 민음사 펴냄)의 한국어 판 출간을 계기로 방한한 리프킨은 대통령과의 만남을 비롯한 바쁜 일정을 한창 소화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청중 앞에 리프킨 대신 의외의 인물이 섰다.
강행군 탓에 몸을 상한 리프킨이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가자, 주최 측이 애초 토론을 하기로 예정돼 있었던 장대익에게 손을 내민 것이다. 그는 "세계 최초로" 리프킨의 '빙의 강연'을 시작했다. 그의 빙의 강연이 얼마나 그럴듯했는지, 나중에는 아예 청중 사이에서 이런 질문까지 나왔다. "리프킨이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장대익 서울대학교 교수(자유전공학부)의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바다출판사 펴냄)을 읽으면서 이 두 일화가 계속해서 생각났다. 5년의 시간차를 두고 도킨스 또 리프킨을 대신해 빙의 강연을 한 그의 이런 행보야말로 이 책에 나온 여러 내용을 아우르는 상징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저자에게 직접 묻고 싶은 몇 가지 질문이 생각나던 참에 미국 보스턴의 터프츠 대학에서 안식년을 보내던 그가 잠시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8월 23일 마포구 서교동 바다출판사에서 그를 만났다.
▲ 진화학자 장대익 서울대학교 교수(자유전공학부). ⓒ프레시안(최형락) |
모방하는 인간
- 1년 일정으로 보스턴에서 안식년을 시작했습니다. 2006~2007년 박사 후 과정 때 인연을 맺은 대니얼 데닛 교수와 또 함께 있는 건가요?
"그렇죠. 데닛 교수는 '인간의 문화는 어떻게 진화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을 찾고 있는데, 앞으로 자세히 얘기하겠지만 최근 제 관심사와 겹칩니다. 데닛 교수와의 공동 연구 외에도 한국에서 바쁜 일정 때문에 미뤄뒀던 숙제도 차근차근 해치울 생각이에요. 최근에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번역을 드디어 마무리하고, 다시 읽으면서 수정하는 중입니다."
장대익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진화학자'로 내세운다.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의 부제도 "진화학자 장대익의 인간 탐구"다. 사실 에드워드 윌슨, 도킨스 또 최재천, 전중환 등 진화학자의 인간 탐구는 낯설지 않다. 하지만 이 책은 그간 나온 국내외 진화학자의 책과 닮으면서 다르다. 물론 관심이 가는 대목은 다른 부분이다.
가장 눈에 띄는 다른 부분은 도킨스가 <이기적인 유전자>(홍영남·이상임 옮김, 을유문화사 펴냄) 11장에서 처음 고안한 '밈(meme)' 개념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 그 동안 선생님은 윌슨, 도킨스 등과 비슷한 목소리를 내는 국내 학자로 인식돼 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또렷하진 않지만 변화가 보여요. 도킨스는 정작 자신이 제안한 밈 이론을 밀어붙이는데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데닛을 따라서 이 책에서 밈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죠.
"윌슨, 도킨스를 비롯한 기존의 진화학자는 진화의 역사 속에서 인간에게 각인된 유전자의 힘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죠. 물론 유전자의 힘이 곳곳에 남긴 흔적에 주의를 환기하는 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것만이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거기에는 동의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런 유전자의 구속력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심지어 유전자의 이해에 반하는 흐름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가 문화로 지칭하는 것이죠. 문화가 어떻게 전파되고, 그것이 개체와 집단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를 살피기 위해서는 진화학도 진화할 필요가 있어요. 도킨스가 선구적으로 제안한 밈은 그 돌파구가 될 겁니다."
- 도대체 밈이 뭔가요?
"밈은 생식이 아닌 모방을 통해서 개체의 기억이 저장되고 또 다른 개체의 기억으로 복제될 수 있는 문화 요소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내가 누군가를 모방할 때 그로부터 나에게 전달되는 무엇이 바로 밈이죠. 마치 조상의 유전자가 후손에게 전달되는 것처럼. 그런 점에서 도킨스가 유전자에 빗대 밈을 고안한 것은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유전자와 비교해서 살펴보죠. 도킨스는 자신의 복사본이 널리 퍼지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 유전자의 특징을 강조하고자 '이기적인 유전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는 장대익, 강양구 같은 개체는 그저 이기적인 유전자가 잠시 몸담고 있는 생존 기계일 뿐이죠. 그런데 밈 역시 이기적이긴 마찬가지입니다.
밈 역시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의 복사본을 더 많이 퍼뜨리는 것이 지상 목표인 양 행동합니다. 예를 들어, 건강을 해치는 다이어트 법을 생각해 보세요. 이런 다이어트는 분명히 개체의 생존에 위협이죠. 하지만 밈 입장에서는 개체의 생존 따위에는 관심이 없죠. 그저 다이어트 법이 많이 퍼지기만 하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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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큰 파괴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새로운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죠. '무엇이 이득을 보는가?' 바로 이런 질문이요. 흔히 오해되고 있듯이,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가 어떤 의식을 갖고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유전자가 마치 더 많은 복사본을 퍼뜨리는 것이 자신의 목표인 양 행동한다는 뜻이에요.
그렇다면, 사회에서 마치 더 많은 복사본을 퍼뜨리는 것이 자신의 목표인 양 행동하는 어떤 것이 감지된다면 그것을 이기적 밈이라고 부르지 못할 법이 없죠. 저는 '복제자'라는 열쇳말로 자연과 사회를 아우르는 일종의 일반적인 설명을 시도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각각 자연과 사회에 상응하는 복제자가 바로 유전자와 밈이죠."
- 그렇게 자연과 사회를 복제자로 아우르는 일반 이론을 시도하는 게 세상을 더 잘 이해하는데 어떤 유용성을 가질 수 있을까요?
"최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 중에서 두드러진 흐름은 인간과 비인간 행위자의 상호 작용을 동시에 고려하는 접근입니다. 예를 들어서 인간 행위자와 비인간 행위자의 연결망으로 과학 더 나아가 사회를 이해하려는 브뤼노 라투르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 ANT)'은 대표적인 예죠. (☞관련 기사 : "세균, 쇠고기, CO2를 국회로 보내자!")
그런데 이런 접근은 큰 한계가 있어요. '연결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무엇이 이득을 얻는가'라는 질문에 둔감하죠. 라투르가 자신은 '묘사(description)'할 뿐 '설명(explanation)'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한계를 보여주는 또 다른 방증입니다. 그런데 밈은 묘사뿐만 아니라 설명도 가능하죠. '어떻게(How?)'뿐만 아니라 '왜(Why?)'에 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왜' 어떤 비인간 행위자(이것이 바로 밈이죠)는 인간 행위자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널리 확산되는가? 밈으로 설명할 때, 이런 메커니즘을 훨씬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게 제 전망입니다. 조만간 밈으로 행위자 연결망 이론을 재해석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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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하는 인간
지식인은 자신의 학문 영역을 넘어서 사회를 향해서 발언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장대익의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가장 도드라지는 모습은 바로 종교 비판이다. 마치 도킨스가 그렇듯이 그는 한국에서 가장 급진적인 종교 비판자다. 일단의 창조론자들이 과학 교과서 진화 부분의 삭제와 수정을 요청했을 때, 그는 검투사처럼 나서서 사태를 반전시켰다.
그런데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에서 장대익은 우리를 '신앙하는 인간(Homo religiosus)'으로 정의했다.
- 우리를 '신앙하는 인간'으로 정의한 걸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이 책에서 제가 취하는 관점은 지구의 생명체를 탐구하는 베가성의 외계인입니다. 영화 <콘텍트>(1997년)에도 나옵니다만, 전 세계 인구의 95퍼센트는 어떤 식으로든 절대자를 믿습니다. 외계인의 입장에서 보면, 얼마나 흥미로운 현상입니까?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호모 사피엔스의 한 특징으로 신앙을 꼽겠죠."
- 신재식 김윤성 선생님과 함께 <과학 전쟁>(사이언스북스 펴냄) 원고를 <프레시안>에 연재할 때의 일화가 생각나는군요. 김 선생님께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죠. 종교를 그토록 비판하는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자의 모습도 종교학자의 눈으로 보면 굉장히 '종교적인 행태'라고요. (웃음)
"도킨스뿐만 아니라 저까지 에둘러 꼬집은 거였죠. (웃음) 우리를 신앙하는 인간으로 정의한다고 해서 제가 종교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닙니다. 저는 종교 (현상)이야말로 진지한 탐구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폐해가 아주 크니까요. 그리고 그런 탐구 과정에서 밈 이론이 중요한 역할을 할 거예요.
이미 도킨스와 데닛이 선도적인 연구를 시작했죠. 도킨스는 종교적 믿음 체계가 주로 부모에서 자식으로 전달된다는 것에 주목해서, 종교를 컴퓨터 바이러스와 같은 치명적인 밈으로 간주합니다. <만들어진 신>에서 유신론적 종교를 박멸해야 할 '정신 바이러스(virus of mind)'로 규정한 것도 이런 맥락이죠.
마치 자신의 복제만을 위해서 인간 숙주를 무차별 공격하는 감기 바이러스처럼, 종교도 신자-공동체 숙주 따위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그 자체만을 위해서 작동하는 정신 바이러스일 뿐이라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는 무신론 운동이야말로 더 나은 세상을 위해서 시급히 해야 할 일인 거죠."
- 데닛은 도킨스와 약간 입장이 다르죠?
"데닛은 도킨스의 정신 바이러스 이론이 밈의 무법자적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했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그는 종교 밈을 '야생 밈(wild-type meme)'과 '길들여진 밈(domesticated meme)'으로 구분하죠. 현대의 고등 종교는 경전, 신학교, 성직자 등과 같은 기구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길들여진 밈이라는 거죠.
그런데 도킨스나 데닛이나 중요한 질문에 답을 못합니다. 어떤 밈이 다른 밈에 비해서 선호되는 이유를 놓고는 만족스러운 설명이 없어요. 도킨스와 데닛을 포함해서 그간 종교를 놓고서 이뤄진 여러 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답변을 내놓는 것은 저의 또 다른 숙제 중 하나입니다."
ⓒ프레시안(최형락) |
탐구하는 인간
장대익은 자신을 철학자(생물철학)이자 과학자(진화학)로 규정한다. 너도 나도 융합을 말하지만 정작 융합과는 거리가 먼 학문 풍토에서 이런 경계인은 처신이 쉽지 않다. 대개는 이쪽저쪽 눈치를 보면서 말을 아끼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는 다르다. 그의 목소리는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단호하다.
장대익은 과학주의자다.
- "인간에 대하여 과학이 말해준 것들"이라는 제목에서 지식인 장대익의 욕망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듯합니다.
"맞아요. 한국에서는 (과학자가 아니라) 과학이 훨씬 더 목소리가 커져야 합니다. 인문학은 인간, 사회과학은 사회, 과학은 자연, 이런 식의 전통적인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요. 진화론 또 최근의 뇌 과학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인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과학의 성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모든 분야에서 과학의 목소리가 너무나 작습니다. 과학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분들도 돈벌이 수단으로만 간주하죠. 과학기술을 묶어서 쓰는 버릇만 봐도 알 수 있죠. 과학을 휴대전화나 반도체를 만들어서 파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이러니 과학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분들도 정작 과학은 모릅니다. 또 그걸 부끄러워하지도 않죠.
이런 식이면 곤란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죠. 한국의 인문학에 대응하는 게 미국에서는 '핵심 교양(liberal arts)'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인문학'이 바로 이 핵심 교양이죠. 그런데 핵심 교양의 중심에 놓인 것이 바로 과학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문 사회 예술뿐만 아니라 과학을 알아야 하니까요.
과학이 우리에 대해서 얼마나 새롭고 참신한 것들을 업데이트해왔는지 보여주고자 이 책을 썼습니다."
- 한쪽에서는 과학의 오만을 얘기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과학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제대로 일별하기 위해서라도 과학을 아는 일이 필요하죠. 사람들이 과학에 너무 관심이 없다 보니, 과학이 소수의 과학자 공동체나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전문가의 손에만 놓이게 된 것이죠. 즉, 과학의 긍정적인 면을 살리고 부정적인 면을 견제하기 위해서도 과학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게 필요하다는 겁니다."
ⓒ프레시안(최형락) |
공감하는 인간
공감하는 인간(Homo empathicus).
탐구하는 인간(Homo scientificus), 모방하는 인간(Homo replicus), 신앙하는 인간, 융합하는 인간(Homo convergenicus)과 함께 장대익이 꼽은 "과학이 말해준" 인간의 특징이다. 그는 공감이야말로 인류 문명이 가능케 한 인간의 본능임을 거울 뉴런과 같은 과학의 최신 성과를 소개하며 설명한다.
- 거울 뉴런에 내용의 큰 비중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최근 과학자들은 타인의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되는 현상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활성화되는 곳의 신경 세포를 거울 뉴런, 그것의 집합을 거울 뉴런계라고 부르기로 했죠. 이런 과학의 성과는 인류가 어떻게 모방을 통해서 (즉, 밈의 확산을 통해서) 오늘날과 같은 문명을 만들었는지 보여주죠.
더 나아가 이런 거울 뉴런의 존재는 인류 문명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를 놓고서도 희망의 근거를 제공합니다. 타인에게 가해진 고통스러운 자극을 보는 것만으로도 뇌의 일부 뉴런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어요. '행동의 관찰'이 아니라 '고통의 관찰'에도 거울 뉴런이 반응하는 거죠.
심지어 한 실험에서는 고통을 당하는 사람의 모습을 관찰하지도 소리를 듣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단지 상대에게 고통의 자극이 주어졌다는 신호를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뇌의 한 부분에서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인간의 본능이라면 앞으로 인류에게 희망이 있지 않을까요?"
1976년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를 펴낼 때만 하더라도 진화학은 '차가운 학문'이었다. 마침 그 때는 사회 연대에 기반을 둔 복지 국가 공동체가 흔들리던 시점과 겹친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인간과 인간 (또 종 간 장벽을 넘어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새로운 연대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장대익은 '따뜻한 진화학'을 말한다.
장대익은 전작 <다윈의 식탁>(김영사 펴냄, 2008년)에서 '진화론도 진화한다'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새삼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장대익도 진화한다.' 그가 펴낼 다음 책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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