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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중국을 '착한 제국'으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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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중국을 '착한 제국'으로 만들 수 있을까?

[서남 동아시아 통신] '중국몽'은 제국몽인가

지난 8월 22~23일 이틀간 한국중국학회가 주최한 국제 학술 대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그 공통 주제는 '제국 전통과 대국화'이다.

취지문을 살펴보면, 대국굴기하는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기 위해 제국 전통과의 연속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연일까, 올 봄에 간행된 <역사학보>(제217집)의 기획 특집도 '역사적 제국의 비교 연구 : 제국 통합의 지속 가능성의 비결을 중심으로'이다. 지금 한국 학계는 바야흐로 '제국' 논의에 열중하고 있는가?

탈냉전 이후 국제 정치를 설명하기 위해 '역사의 종언'론, 문명 충돌론, 전 지구화론 등 다양한 담론들이 제기되었는데 제국의 새로운 해석도 그 하나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는 등 세계 질서를 홀로 주도하다시피하면서 미국의 헤게모니 행사를 설명하기 위해 '제국' 개념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전 근대적 형태의 개념'으로 간주되어 오랫동안 학계나 논단의 흥미를 끌지 못했는데 새삼 주목된 것이다. 그러나 제국을 통해 중국을 조망하는 작업은 쇠퇴하는 (특히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미국과 대조적으로 대국으로 부상해 'G2'로 불릴 정도로 세계적으로 위상이 높아진 거대 중국에 직면해 그 역사적 독자성에 대한 세계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의 소산이다.

제국을 경영해본 적이 없는데다가 제국주의 침략을 받은 피해자 경험이 있는 한국인은 제국을 곧 제국주의와 동일시하면서 부정적으로 간주하기 쉽다. 그러나 제국 담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제국을 도덕적 평가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 대신에 제국은 그 지배 영역이 광대하고 또 종종 팽창 경향을 보이는 광역 국가이고 그 영역의 광대함만큼이나 다양한 이질성을 통합하는 원리인 관용(또는 포용)이 작동된다고 본다. 요컨대 제국성의 특징은 관용과 팽창이다.

ⓒ프레시안

동서고금의 세계사에서 출몰한 제국들 가운데 특히 지금 중국이 주목되는 이유는, 중국에서는 세계사에 유례없이 전 근대적 제국이 여러 국민 국가로 분해되지 않고 그 본래의 성격을 유지한 채 오늘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 역사적 특이성이 오늘의 중국의 존재 방식을 규정하고 있으므로 제국으로서의 중국의 시각이 없다면 현대 중국에 대한 인식이 결코 깊어질 수 없다고 주장된다.

그런데 중국 안에서는 제국이란 시각을 별로 내세우지 않는다. 아마도 팽창이 갖고 있는 중화 제국의 부정적 역사 기억이 되살아날까봐서일 것이다. 그 대신 제국성의 또 하나의 특성인 관용을 부각한다. 그래서 본래의 중화 제국의 판도(Proper China)가 만주·몽골·신장·티베트로까지 확대된 청조의 영역(그 대부분이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로 계승되었다)에서 시행된 다원적인 통치 방식, 곧 관용의 다양한 메커니즘에 새삼 주목한다.

그것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이 조공 체제론, 문명 국가론, (신)천하주의론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제국이란 키워드를 전면에서 사용하지 않지만 제국 담론을 확산하고 강화하는 논의란 점에서 서로 닮았다. 전근대 '중화 제국'으로의 후퇴라는 부담을 덜면서도 제국의 유산을 활용하기 위해 제국보다는 문명이나 천하라는 좀 더 보편 지향적인 개념이 선호되는 셈이다.

그들이 과거 유산의 연속성을 부각시키지만 그것이 역사적 실제와 반드시 대응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역사학자들은 곧잘 지적한다. 그런데 제국 담론 주창자들의 핵심적 문제의식은, 천하론의 주요 발신자인 자오팅양(趙汀陽)이 말한 대로 "중국을 다시 생각해 다시 구축(重思中國, 重構中國)"하는 것이다. 하나의 국민 국가란 틀로만 볼 수 없는 방대한 규모를 가진 21세기 중국을 위해 새로운 렌즈를 찾는 시도라 하겠다.

바로 이 점을 중시하면 제국 담론이란 다름 아닌 '프로젝트로서의 제국'이다. 그것이 중국 안의 발신자에겐 중국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자부심, 곧 민족주의적 열망 및 미래 중국의 세계사적 역할에 대한 높은 기대의 표현이고, 중국 밖의 동조자(겸 발신자)에겐 서구 근대의 대안에 대한 조심스러운 전망의 발현이다.

바로 이런 특성 때문에서 제국 담론은 중국 지도부의 국가 전략에 동원되기 쉽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시진핑을 정점으로 한 중국의 현 지도부가 새로운 구호로 채택한 '중국몽' 구상을 기초하는 심층부 싱크탱크에 자오팅양도 참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몽은 제국몽인가.

중국몽이 제국 담론의 주창자들의 기대대로 제국몽이 되려면, 관용이 효과적으로 발현되어야 한다. 이런 제국으로서의 중국이란 시각에서 다시 보면, 중국이란 국가가 일차적으로 그 영역 안에서 관용을 얼마나 구현하는가가 중요해진다.

중국몽은 13억4000만 인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꿈과 욕망의 결집체로서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중국 인민의 역량 곧 경제력, 정치력, 제도력, 문화력이 결집되어야 한다고 선전된다. 여기서 각 개인의 다양한 꿈이 국가의 꿈으로 회수되지 않고 창의적으로 통합되는 방도를 찾아내는지 지켜볼 일이다. 또 중국 영역 밖의 이웃 국가들에게도 관용이 실감나게 해야 중국몽이 제국몽으로 용인될 것이다. 이와 같이 중국 안팎에서 관용이 작동될 때라야만 중국몽이 중국 지도부의 의도대로 발전의 꿈, 평화의 꿈 그리고 협력의 꿈으로 인정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아메리칸 드림'과의 경쟁만 의식한 채 국가 차원에서 동원하는 관변 이론에 머문다면, 중국이 '좋은 제국'이 되길 바라는 중국 안팎의 기대를 저버리는 꼴이다.

제국 담론의 발신자나 그 지지자들이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려면, 문명 국가나 (신)천하주의 담론 같은 장기적 과제를 중·단기적 국가 개혁 과제와 하나로 단단히 결합시키는 문제의식과 일관된 실천 자세를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추상화하고 관념화하는 오류에 빠지고 만다. 바로 이 점에 초점을 맞춰 우리가 제국 담론에 비판적으로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중국이란 세계사적 난제를 제대로 다루는 사고 훈련의 길 아닐까.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두 차례 동시 게재합니다. 백영서 연세대학교 교수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95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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