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외신에 따르면 미국 서점계의 대표 주자 반스앤노블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고 한다. 이전에도 위기설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이번에는 심상치 않은 듯하다. 최근 분기의 순손실이 우리 돈으로 1000억 원 가까이 된다니 회생 여부는 불투명해 보인다. 할인 전략에 치중한 아마존 등 인터넷서점으로의 고객 이탈과 전자책 전용 단말기 '누크'의 실적 부진 등이 겹친 결과이다. 2위 업체이던 보더스의 2년 전 파산 소식이 채 잊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서점계의 대붕괴 우려가 남의 일 같지 않다.
독서인구 감소와 출판시장 침체 통계가 세계 각국에서 나오고 있지만, 가격 경쟁력이 있고 유지비용이 적게 들며 수익률이 큰 헌책방은 상대적으로 건재한 편이다. 특히 신간과 구간, 중고책을 함께 진열하며 판매하는 서점들이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범람하는 영상·정보 매체에 의한 독서활동의 대체 효과가 두드러지는 가운데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읽고 생각하고 상상하는 능동적인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읽기의 즐거움을 아는 이들에게 그것은 포기할 수 없는 '정신적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온·오프라인 서점 모두가 침체에 빠지고 있지만 중고책방들은 어렵게나마 유지되는 형편이다.
동네 사랑방 노릇하는 서점이 살아남아
▲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웬디 웰치 지음, 허형은 옮김, 책세상 펴냄). ⓒ책세상 |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웬디 웰치 지음, 허형은 옮김, 책세상 펴냄)은 미국 버지니아 주 애팔래치아 산맥에 자리 잡은 빅스톤갭이라는 마을에서 헌책방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을 운영하는 민속학 연구자 웬디 웰치가 쓴 헌책방 경영담이다. 값비싼 고서를 사고파는 고서점이 아닌 일반적인 중고책방이다. 탄광촌이었던 시골 마을에 헌책방을 어렵사리 만들고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기까지 5년간의 궤적을 시간과 주제에 맞추어 유쾌하게 서술했다. '천부적인 이야기 구현가'라는 책날개의 저자 소개가 전혀 과장되지 않았음을 읽는 내내 공감하게 된다.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은 이곳이 헌책방이기 때문에 가능한 여러 장면들을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고인의 장서를 처분하기 위해 찾아오는 고객, 사고파는 책값 책정의 어려움, 매입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책 등등. 그런데 헌책방 경영이 그렇게 녹록한 것만은 아니다. 책마다 값을 정해 책꽂이에 정리하고 신용전표를 기록하며 세금을 계산하고 매장을 항상 청결하게 청소해야 한다. 홍보도 게을리 할 수 없다. 또 요즘 인기 있는 책이 무엇인지 부지런히 확인하고 고객과의 관계 유지에도 예민하게 신경을 써야 한다. 때문에 책이 좋아서 서점이나 한 번 해볼까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차라리 야간 경비원을 하세요. 그 편이 더 많이 읽을 수 있으니까"라고 말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우리 일의 팔 할은 먼지 털어내기와 무거운 책 나르기"이므로, 오히려 진득하게 책 읽을 시간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이 헌책방의 특성 중 하나는 '퀵 트레이드' 제도를 고안해 적용한 것이다. 처음에는 고객이 두 권을 기부하고 한 권을 바꿔서 가져가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다가 책이 넘쳐나면서부터는 5달러 이상 구매 고객에게 퀵 트레이드 책 한 권을 덤으로 얹어주는 방식으로 큰 인기를 끌게 된다. 베트남 참전 용사들에게는 그 코너의 책들을 25센트까지 파격 할인하기도 한다.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 서점은 헌책방 주인들이 훌륭한 책 감정사들임을 보여준다. 풍부한 서지학적 지식이 없으면, 아니 그것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성립하기 어려운 업종임을 일깨워준다.
▲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 서점의 고양이 사진. (출처: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 서점 페이스북) |
또한 책방은 그저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만남의 공간이자 편안한 제3의 공간이다. 뜨개질 모임, 예술영화 감상 모임, 수준 높은 독서 모임이나 글쓰기 모임, 강연회, 게임이나 하우스 콘서트 감상에 이르기까지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 서점은 동네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들락거리게 하는 많은 장치들을 마련한다. 사람들의 고민과 속내를 들어주고, 위로와 격려자의 역할까지 떠맡는다. 오프라인 서점의 장점을 살린 '대면 소통'의 노력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통해 관통하는 일관된 책방의 생명력은 '동네 사람들 말동무 되어주기'이다. 그래서 책방을 운영하려는 사람의 필수 조건은 '얼마나 책을 좋아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사람을 좋아하는가'에 있다는 단정이 압권이다. 저자는 "우리는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며 "(자영업 신간 서점이나 중고서점의)책방 주인들이 세상을 위해 하는 가장 좋은 일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정체성을 정의한다.
▲ <서점은 죽지 않는다>(이시바시 다케후미 지음, 백원근 옮김, 시대의창 펴냄). ⓒ시대의창 |
우리나라에도 동네 사랑방 노릇을 하는 서점들이 드물게 있다. 일산에 있는 어린이·청소년 전문서점인 알모책방이 대표적인 곳 중 하나이다. 책 읽어주기, 책 고르기 모임, 미술이나 어학 모임, DVD로 영화를 보고 와인을 마시며 이야기하는 어른 모임 등이 즐비하고, 도서관에나 있을 법한 자원 활동가들이 서점을 지켜준다. 학습 참고서도 없고 철저하게 도서정가제를 고수하지만, 주민들과 호흡하며 없어서는 안 될 마을 공동체의 중요한 커뮤니티 센터 역할을 거뜬히 해낸다. 동서양을 가리지 않고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문화센터, 사랑방, 인생 상담까지 해주는 서점들이 건재하다는 사실은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저자는 서점에 가서 실컷 책만 구경하고 주문은 아마존에 하는 독자들을 책망한다. 그런 행위들이 책 생태계에서 결국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헤아리지 못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미국이라고 해서 상황이 다른 것은 아닌 듯하다.
서점이 살아야 하는 이유
'테일스 오브 론섬 파인' 헌책방의 사례는 보는 시각에 따라 특수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연결시켜 주는 데서 의미를 찾는 서점이라면, "지역사회가 끈끈한 유기체로 살아남도록 돕는 것은 오프라인 서점들이 하는 역할 중 하나"라는 설명은 너무나 멋지다.
어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는 도서정가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외국 사례를 들려줘도 무의미하다고 한다. 그러나 정가제가 없는 미국의 소형 서점이나, 정가제가 철저한 프랑스나 일본의 소형 서점이나 어렵기는 매한가지이다. 물론 새 책을 취급하는 서점의 고충은 헌책방보다 훨씬 클 것이다. 문제는 서점의 존립과 발전은 하기 나름에 따라서 가능하고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또한 어떤 동네에 서점이 있고 없고가 그 동네의 주민들이나 문화 생태계에 끼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줄 '존재감'을 서점 스스로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차세대 서점상을 만들 '젊은 피'들의 등장이 필요하다.
나아가 독자는 지역 서점을 이용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서점을 살리기 위해 지역 서점상품권을 발행하거나 지역 도서관 또는 학교 등이 지역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여 지역 경제와 문화를 살리는 데 함께 동참해야 한다. 서점은 단지 상업적 공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문화적 자화상'을 담보하는 공공재적인 공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마지막 부분의 '감사의 말'에 이런 격려의 글귀를 남긴다. 서점인들뿐 아니라 독자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세계 각지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소규모 상점(책방)의 주인과 운영자들에게 : 버티세요! 문명 세계가 아직까지 자멸하지 않은 것도 다 우리 덕분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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