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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2013 모래시계'? 경제사의 '꾼'들이 집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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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2013 모래시계'? 경제사의 '꾼'들이 집합한다!

[프레시안 books] 실비아 나사르의 <사람을 위한 경제학>

대하드라마로 묘사된 경제사상의 역사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이라는 더운 여름 날씨에 헉헉거리면서도 이 책을 사흘 내리 읽었다. 700쪽에 이르는 두께인데도 며칠 만에 독파해 버렸다. 한번 펼쳐든 다음부터는 밤이고 낮이고 책장을 덮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재밌고 흥미 진지한 장편 소설 같다. 유명한 경제학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제사상 관련 책들 중에 이와 비슷한 유의 것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비교가 불가능하다.

▲ <사람을 위한 경제학>(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반비 펴냄). ⓒ반비
이 책 <사람을 위한 경제학 : 기아, 전쟁, 불황을 이겨낸 경제학 천재들의 이야기>(실비아 나사르 지음, 김정아 옮김, 반비 펴냄)은 지난 200년간의 자본주의 역사 속에 등장한 맬서스와 마르크스, 마셜과 케인스, 웹 부부와 슘페터,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새뮤얼슨과 조앤 로빈슨, 아마르티아 센 같은 경제학자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대하드라마이다. 저자가 한 사람 한 사람에 관한 자료 수집에 많은 공을 들여 이루어낸 시대 묘사와 인물 묘사가 마치 한편의 소설을 읽는 듯하다. 본래 문학을 전공했던 저자의 빼어난 심리와 성격 묘사, 인간관계 묘사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인기를 끌었던 TV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을 시나리오 대본으로 하여 장편의 대하드라마를 방영해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사상은 시대의 산물이다. 경제학자들의 생각과 발언들 역시 그가 살았던 시대의 환경 속에서 나온 것이고 또한 그의 시대와 사람들을 향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창조해낸 경제학 이론과 경제사상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시대와 나라, 그를 둘러싼 환경의 맥락을 이해하여야 한다.

물론 역사학자 또는 경제학자들 역시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니, 역사학자와 경제학자들이 쓴 경제사상과 경제학의 역사에 관한 책들은 이미 꽤 많이 나와 있다. 그런데 그 책들이 예컨대 100년 전에 살았던 경제학자들의 속마음과 사생활, 개인적 야망과 연애사, 사적 대화와 편지까지 속속들이 묘사하면서 그 인물에 대해 말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세세한 자료 수집과 함께 문학적 상상력을 필요로 하며 거의 문학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처럼 저자가 경제학을, 게다가 지난 200년간의 경제학 역사를 문학성 짙은 전기 작가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포착하여 그것을 대하 장편소설로 쓰는 일은 드물다. 아니,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의 저자 실비아 나사르는 이처럼 보기 드문 작가이며 소중한 재원이다. '죄수의 딜레마'와 내쉬 균형의 게임이론으로 유명한 수학자·경제학자인 내쉬의 생애를 담은 전기 <뷰티풀 마인드>가 그녀의 작품인데, 이 작품을 토대로 영화 <뷰티풀 마인드>도 제작되었다.

빈익빈 부익부는 자본주의 경제의 숙명?

이 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주제는 과연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는 개선될 여지가 있는가라는 의문이다. 맬서스와 마르크스는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가 자연법칙과 같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며 이 책은 말한다. 맬서스는 노동계급은 본성상 (자연법칙상) 좀 먹고 살만하면 섹스를 즐기며 아이를 더 낳는 경향이 있으며 결과적으로 다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인구론의 관점에서, 가난한 이들의 생활 개선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마르크스 역시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성상 실질임금과 실질소득이 높아질 리 없다고 보았다.

그에 반해 앨프리드 마셜은 기술혁신과 공정개선 등 생산성 향상을 통해서 실질임금과 실질소득이 늘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시드니 웹과 비어트리스 웹 등 웹 부부는 페이비언 소사이어티(Fabian Society)를 설립하여 복지국가 운동을 펼치면서 각종 사회복지 및 노동 입법을 통해 가난한 이들의 삶의 개선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케인스 역시 비슷했다.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 이야기는 맬서스 경제학 비판

<사람을 위한 경제학>의 소설적 특징은 첫 장면부터 펼쳐진다. 굶주림의 시대인 1842년 영국, 찰스 디킨스와 토머스 칼라일, 토마스 맬서스가 연극 무대의 주인공들처럼 등장한다. 수년째 경제 불황이 지속되고 실업자와 빈민이 넘쳐났다. 칼라일은 자본주의와 함께 더욱 격화되는 빈부격차와 경제위기를 보수주의의 관점에서 비난하지만, 가난한 자들을 정부가 돕는 복지 정책에는 반대한다. 맬서스의 인구론에 따르면, 정부가 돕게 되면 가난한 이들은 다시 애를 더 많이 낳게 될 것이고, 따라서 다시 가난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최선의 방법은 가난한 이들을 더욱 가혹한 자연의 운명에 맡기는 것이다. 맬서스에 따르면, 자선 사업의 의도는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이지만 자선의 결과는 오히려 고통을 연장시키는 것에 불과했다.

"보수주의자와 자유주의자를 막론하고 모든 납세자가 맬서스의 책에 설득되었으며, 그에 따라 의회는 1834년 새 구빈법을 거의 아무 반대 없이 통과시킬 수 있었다. 공적 구제의 대상자를 교구 구빈원에 수용되는데 동의하는 사람들로 한정하는 법이었다."(23쪽)

▲ 찰스 디킨스는 <크리스마스 캐롤>을 통해 맬서스를 비판했다. ⓒ반비 제공

그에 반해 디킨스와 같은 개혁 지향적인 중간층 자유주의자들은 맬서스의 이론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맬서스를 비판하기 위하여 디킨스는 구두쇠 영감 스크루지가 주인공인 <크리스마스 캐롤>을 썼다. 1842년 12월 초 출간되자마자 대히트를 친 <크리스마스 캐롤>에서 유태인 자본가인 스크루지 영감은 당시 유행하던 맬서스의 정치경제학 명제를 입으로 말하면서 가난한 자들에 대한 적대감과 함께 그들을 돕지 않는 게 더 좋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스크루지 영감 앞에 나타난 '크리스마스의 유령'은 맬서스의 이론, 스크루지의 생각을 비판한다. 유령이 보여주는 자기 주변 사람들의 현실을 본 스크루지 영감은 반성하고 깊이 뉘우친다. 이처럼 디킨스는 "기존 자본주의 사회를 전복하지 않고서도 빈곤층의 운명을 개선할 방법이 있다"고 확신했다(뒤의 마셜과 케인스 역시 비슷했다).

"디킨스는 경제학이라는 과학이 없으면 세계가 굴러갈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렇지만 그는 '미래 크리스마스의 유령'이 스크루지를 개심시켰듯이, [맬서스나 존 스튜어트 밀과 같은] 정치경제학자들을 개심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치경제학자들이 가난을 자연 현상처럼 다루지 않기를 바랐다. (…) 디킨스는 혼자가 아니었다. 런던에서,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속속 디킨스와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오만과 편견>에서 <공산당 선언>으로

마치 자기 문학의 첫 여정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는데서 시작되기라도 한 양, 실비아 나사르는 이 책의 여러 곳에서 제인 오스틴의 삶과 시대에 대해 말하는데, 그러므로 이 책은 문학 전공자들도 편안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첫 문단은 <오만과 편견>의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삶에 대한 묘사로 시작한다. 그녀가 살았던 시기의 조지 3세 치하의 영국은 풍요로운 시대였고 오스틴의 가족 역시 - 상대적으로는 - 상위 5퍼센트 내에 드는 풍요로운 계급에 속했다. "어느 전기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오스틴 가족과 이른바 '하류층'의 격차는 절대적이고 자명한 격차였다." 실비아 나사르는 당시 영국 인구 95퍼센트의 생활수준은 평균적인 로마시대 노예보다 나을 게 없었다는 경제사 연구 결과를 제기한다. 이런 극심한 빈익빈 부익부의 환경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 혁명론에 자양분을 제공했다.

디킨스와 맬서스, 칼라일 이후에도 계속 이어지는 주제는 여전히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가난한 자들의 운명을 개선하는 것은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이다. 이 책이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묘사하는 방식 역시 한편의 드라마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4년에 처음으로 파리의 한 카페에서 만나는 장면과 그 배경을 한편의 드라마처럼 이야기한다.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1840년대에 쓴 글들과 당시 인구에 회자되던 다른 저작들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당시의 대영제국과 런던 경제와 삶의 다양한 측면을 온갖 역사 자료와 문학 자료들을 이용하면서 묘사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라는 인물보다는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삶을 묘사하는데 너무 주력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당시 런던의 주택과 교통, 무역, 신문보도와 문학 작품들의 맥락을 세세히 이야기 하고, 그 맥락 속에서 두 사람이 <공산당 선언>을 준비하고 발표하는 모습을 드라마처럼 묘사한다.

▲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 ⓒ반비 제공
"1847년 11월 29일,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카를 마르크스는 (…) 오르막길을 힘겹게 걷고 있었다. 발목이 빠지는 진흙은 미끄러웠고 인파는 쏟아져 내려왔다. (…) 엥겔스는 여전히 장교처럼 꼿꼿한 자세였고, 마르크스는 여전히 짙고 검은 머리털과 근사한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엥겔스와 마르크스가 영국에 있었던 것은 공산주의자 동맹의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 엥겔스는 동맹을 설득해 "만민은 형제"라는 심심한 구호를 버리고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는 좀 더 근육질의 구호를 채택하게 한 후였다. (…) 그들은 마침내 소호의 레드 라이언 술집에 도착했다. 독일노동자교육연합이라는 단체가 이 건물 2층에 있었다. 이 단체는 불법단체인 공산주의자 동맹의 위장단체였다. (…) 젖은 모직 냄새, 값싼 담배 냄새, 미지근한 맥주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엥겔스와 마르크스는 그곳에서 열흘 동안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음모와 의심의 기운 속을 항해했다. (…) 투표 결과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선언문이 채택되었으며 동맹은 "부르주아 계급의 전복, 사유재산의 철폐, 상속권의 폐지"에 대한 지지를 선언했다. 마르크스는 여러 차례 상속받은 유산을 탕진한 후 늘 그렇듯이 파산 상태였으나, 동맹 선언문의 결정판을 집필하는 일을 떠맡게 되었다. (…) 그가 생각하는 <공산당 선언>은 창세기와 묵시록이 하나로 합쳐진 어떤 것이었다."(50쪽)


물론 실비아 나사르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대하여 냉소적이다. 특히 마르크스라는 인물에 대한 저자의 묘사는 '투덜이 아저씨', '말과 행동이 다른 자가당착적 인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게으르고 충동적인 인물'에 가깝다. 마르크스는 엥겔스에 비해서도 인격적으로 못난 인물로 묘사된다.

콜걸을 끼고 살던 출세주의자 슘페터

세상을 바꾸어놓은 경제학자들의 삶과 인물, 시대에 대한 대하드라마 묘사는 한결같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의 전후 질서를 규정한 베르사유 조약 체결이라는 세계사적 사건을 중심으로 케인스와 슘페터, 하이에크와 미제스가 등장한다. 이들 모두 오늘날까지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천재적인 경제학자들이다.

베르사유 조약 체결과정에 중급 실무자로 참여한 케인스는 패전국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겪은 심각한 경제적 참화를 몸소 눈으로 목격했다. 케인스는 패전국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경제를 완전히 파탄 나도록 하는 (그리하여 패전국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 나치즘과 공산주의가 1920년대에 날이 갈수록 세력을 얻는 것을 조장하는) 베르사유 조약의 허점을 통렬하게 깨닫는다. 당시의 경험은 케인스가 그로부터 20년 후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세계 경제 질서(IMF와 세계은행을 포함한 브레튼우즈 체제)를 결정하는 국제회의를 주도하게 될 때 나타난 그의 구상에 결정적 영향을 끼친다.

한편 1920년대 초반 베르사유 조약이 논의되던 바로 그 시점에 슘페터는 패전국 오스트리아의 집권 사회민주당 정부에 참여하여 최연소(20대 후반) 재무부 장관으로 등극한다. 그의 임무는 베르사유 조약 하에서 굶주림과 실업, 파산에 직면한 자국의 경제와 재정을 안정화시키는 일이었다. 하지만 출세주의자이고 허영심 가득한 재무장관 슘페터의 행동과 사고방식은 집권 사회민주당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 '혁신적 자본주의'를 주창했던 야심가 조지프 슘페터. ⓒ반비 제공
돈 많은 어느 대자본가를 개인적 스폰서로 두면서 귀족적 생활 습관에 돈을 물 쓰듯 했고, 늘 두 명의 콜걸을 무릎 위에 앉히고 살아가는 재무장관 슘페터의 개인적 스타일에 대한 이 책의 소설적 묘사를 읽는 것 하나만으로도, 독자들은 경제학자 슘페터가 찬미한 '영웅적 자본가'(이들을 그는 '기업가' 또는 '기업가 정신'이라고 불렀는데)와 그런 자본가가 주도하는 '혁신적 자본주의'(이것을 오늘날 사람들은 '혁신주도형 경제' 또는 '창조 경제'라고 부르는데)의 허와 실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출세주의 없이 창조 경제는 없다.

슘페터가 재무장관으로 오스트리아를 통치하던 바로 그 시점, 젊고 착실한 하이에크는 미제스 등과 함께 사회민주당 정부와 나치즘(당시 성장하고 있던), 레닌 공산주의를 싸잡아 하나로 묶어서 비판하는 신자유주의 경제 사상을 차분하게 키워나가고 있었다. (그에 반해 하이에크의 친척인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1930년대 대공황을 모면한 소련 공산주의의 미덕을 찬미했다). 미국에서는 국가재정과 국가(연방정부)의 경제적 개입을 날로 확대하고 있던 루즈벨트 정부의 재무부 실무자(경제-조세 통계 전문가)로 취업한 밀턴 프리드먼 역시 하이에크와 유사한 생각을 하나하나 발전시키고 있었다.

이 책은 이렇듯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세계 대공황이라는 세계사의 한복판 속에서 이들 경제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어떻게 행동했고 어떻게 발언했으며 어떻게 살아갔는지를 장편의 드라마처럼 재구성해낸다.

케인즈의 화폐론, 어빙 피셔의 화폐수량설

저자 실비아 나사르가 탁월한 저자로서 대하드라마처럼 경제학자들을 다룬다고 해서 그녀가 경제학과 그 역사에 대해 잘 모를 것이라고 판단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녀는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긴 했지만 뉴욕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더구나 1973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바실리 레온티에프가 이끄는 미국의 경제분석연구소에서 4년간 근무하기도 했다. 그 후에도 <포천>과 <뉴욕 타임즈> 등에서 일하면서 경제 관련 기사를 썼다.

경제학 이론에 대한 그녀의 이해 수준은 예컨대 19세기 중후반에 영국에서 벌어진 사회적, 정치적 대립과 그에 관한 정치경제학 논쟁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묘사에 잘 나타난다. 당시 곡물법 폐지와 자유무역, 노동자 파업과 주택난, 빈민굴의 창궐과 콜레라 등의 사태를 놓고 (애덤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후계자인) 존 스튜어트 밀과 마르크스, 엥겔스, 앨프리드 마셜 등은 서로 견해를 달리했는데, 이 책은 이들 간의 견해차가 무엇이었는지에 관하여 깔끔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케인스가 1920년대에 쓴 <화폐론>, 어빙 피셔(Irving Fisher)가 20세기 초반에 발전시킨 화폐수량설 관련 논문들에 관해서도, 그들이 살았던 나라(영국과 미국)의 당시 시대적 맥락과 그리고 사회적, 정치적, 경제 이론적 논쟁 과정 속에서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지를 잘 묘사한다. 이 역시 다른 경제학설사 책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야망에 찬 여성, 세계사를 바꾸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여성 작가인 실비아 나사르는 현대 경제 사상의 발전에 끼친 여성들의 큰 역할에 대해서도 각별하게 주목한다. 먼저 '찬 이성, 뜨거운 가슴'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의 경우 그의 아내가 매우 지적인 협력자로서 마셜의 경제사상의 발전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더욱 위대한 여성은 비어트리스 웹(흔히 우리말에서 베아트리체 웹으로 번역)이다. 영국에서 1880년대에 버나드 쇼와 함께 페이비언 소사이어티를 창립하였으며, 우리나라에도 요즘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이른바 '복지국가론'을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그녀는 영국군 고급 장교 집안에서 성장하여 일찍이 런던 고급 사교계 진출을 꿈꾸던 야심에 찬 처녀였다.

보수당과 함께 영국 정치를 주무르던 자유당의 나이 많은 거물 정치인과 결혼하려 하는 20대 처녀의 야심과 허영, 그리고 그 연애 및 결혼에 실패한 처녀의 참담한 심경에 대한 이 책의 묘사는 좀 지루할 정도로 길다. 하지만 여자들이 좋아할 소설적 드라마의 소재이긴 하다. 게다가 그녀는 사춘기 시절부터 허버트 스펜서(사회생물학의 '적자생존' 입장에서 사회복지 및 복지국가를 맹렬히 반대한 시장 자유주의자)의 절친한 제자이자 친구였는데, 스펜서와 그녀 사이의 절친 관계 역시 뭔가 남녀 간 연애를 암시한다.

▲ 비어트리스 웹과 시드니 웹. ⓒ반비 제공
이렇듯 영국 상류층 출신이고 전형적으로 그 계층의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던 그녀가 급작스럽게 (물론 사회조사관이라는 취미 활동을 통해 복지국가 관념을 점점 발전시키고 있었지만) 시드니 웹이라고 하는 똑똑한 중간계급 청년과 (일부 정략적인 목적으로) 결혼하면서 페이비언 소사이어티를 창립하고, 그 단체의 활동을 통해 그녀의 본래 꿈인 최고급 사교계(정계) 진출의 꿈을 실현한다.

당시의 페이비언 소사이어티의 역할과 활동방식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참여연대와 매우 유사하다. 특정 정당이 아니라 자신의 정책 제안에 귀 기울이는 모든 정당을 고객으로 상대하는 그 시민단체의 활동을 통해, 연일 웹 부부는 윈스턴 처칠과 로이드 조지 같은 당대의 거물 정치인들을 상대했다. 그리하여 이 단체와 함께 두 부부의 명성과 인기는 날로 높아만 갔다. 국내외 명사가 된 것이다. 동시에 이 단체는 노동운동 지도자들과 함께 사회주의 및 복지국가 노선을 준비하면서 영국 노동당의 창당에도 매우 큰 역할을 했다.

이렇듯 비어트리스 웹은 1880년대에서 1940년대에 이르는 60년간의 영국 정치에 - 그리고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및 복지국가 흐름에 - 매우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움직임을 기획하고 주도한 이는 남편인 시드니 웹 또는 흥행꾼인 버나드 쇼가 아니라 바로 비어트리스 웹이었다고, 당시 페이비언 소사이어티 4인방 중 한 명이자 <투명 인간><타임 머신> 등을 쓴 SF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말을 빌려 실비아 나사르는 지적한다.

이 책에 따르면 주변의 남성들(연인과 남편을 포함한)을 압도하고 주도한 또 한 명의 여성은 조앤 로빈스 여사이다. 그녀 역시 1930년대 케인스의 제자 클럽에 들어가 자기 남편과 연인의 도움 속에 성장하면서 마침내는 남편과 연인을 능가하여 세계적인 인물로 등장하게 된다.

폴리페서가 어때서?

<사람을 위한 경제학>은 순수한 이론 경제학자들이 아니라 야망과 열정을 가지고 세계사적 변혁의 한가운데에 실천적 행동으로 뛰어든 경제학자들의 삶과 사상을 다룬다. 존 스튜어트 밀은 국회의원으로 일했고,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주의 혁명가였다. 앨프리드 마셜은 의회 자문교수였고, 슘페터는 재무장관이자 은행의 CEO였다. 케인스는 베르사유 조약에서 중급 실무관으로, 브레튼우즈 협정에서 최고급 실무자로 참여했다. 웹 부부는 최고급 정책 자문위원으로 영국 의사당에 살다시피 했다. 하이에크 역시 오스트리아와 영국, 미국의 경제정책(실천 경제학) 논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민과 국가의 물질적 삶을 다루는 경제학은 항상 정치와 결합되어 있다. 순수 경제학이란 없으며 경제학은 언제나 정치경제학인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 실무의 현장에 기꺼이 뛰어든 경제학자들, 폴리페서들이야말로 진정한 지식인들, 실천하는 지성이 아닐까? 보수건 진보건, 국사(國事)에 대한 열정적 관심과 참여가 없이 순수 이론 경제학에 매달리는 사람들 속에서 과연 새로운 창의적 경제학이 나올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어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루카스와 크루그먼, 스티글리츠에 관한 속편을 기다리며

이 책은 경제학의 주인공들의 삶과 생각을 더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많은 문학 작품들을 끌어온다. 19세기 초중반 영국의 사회 양극화가 불러일으킨 혐오감을 설명하기 위해 디킨스의<올리버 트위스트>와 <크리스마스 캐럴>이 사용되고, 사춘기 소녀 비어트리스 웹의 행동을 독자들로 하여금 설명하기 위해 헨리 제임스의 <어느 여인의 초상>이 동원된다.

게다가 이 책이 대단히 재미있는 것은 그 주인공들의 개성과 인격에 대한 묘사 덕택이기도 하다. 매일 1시간씩 외모를 치장하는데 공을 들이며 항상 승마 바지를 입고 강의실로 들어가는 슘페터, 늘 원고 마감을 어기는 마르크스를 헌신적으로 수호하는 신사 엥겔스, 결핵에서 살아남아 건강 전도사가 되어 독특한 낙관적 세계관과 함께 건강 및 사회복지에 관한 국가개입주의 경제학을 전개하게 된 어빙 피셔. 이들의 욕망과 야망, 열정은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차가운 수학 공식이 아니라 따스한 온기가 흐르는 본질적으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과학임을 보여준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은 앞서 말한 것처럼 "오늘날의 자본주의 세계 질서 하에서 가난한 자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것은 가능한가?"이다. 저자 실비아 나사르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본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가 높이 평가하는 인물은 디킨스와 마셜, 케인스이고, 또한 오늘날의 아마르티아 센이다. 즉 이 책은 디킨스로 시작하여 센으로 끝난다.

이 책의 흥미진진함은 뒤로 갈수록 약해진다. 물론 1944년 브레튼우즈 협상 과정에서 미국 측 실무대표였던 해리 화이트가 소련 공산당 지지자였으며, 따라서 자신이 애써 마련한 전후 브레튼우즈 체제(IMF와 세계은행, GATT 체제)를 스탈린의 소련이 거부하자 매우 당혹해 하였다는 등의 이야기는 여전히 재미있다.

▲ <뷰티풀 마인드>(실비아 나사르 지음, 신현용·이종인·승영조 옮김, 승산 펴냄). ⓒ승산
하지만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아쉽게도 1950년대 전후까지다. 이 책에는 새뮤엘슨과 토빈, 힉스 등이 전개한 정통파 케인스 학파의 이야기도 없고, 밀턴 프리드먼의 통화주의 이야기도 없다. 로버트 루카스의 합리적 기대이론도 없고, 하이먼 민스키의 포스트 케인시안 경제학도 없다. 당연히 크루그먼과 스티글리츠의 경제학도 없고, 폰 노이먼과 존 내쉬 같은 현대 게임이론의 대가들도 없다. 더구나 1970년대의 경제 불황과 케인스 경제학의 쇠퇴,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과 대처·레이건 정권간의 밀월 관계, 1990년대 초반 소련 및 동유럽의 몰락과 1997년 동아사아 금융위기 같은 세계사적 사건들도 없다. 또한 2008년의 미국 발 금융공황과 지금도 계속되는 유럽 위기도 없다.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세계사의 격동 속에서 저명한 경제학자들의 수행한 역할과 발언, 사상에 관한 대서사시를 실비아 나사르가 다시 쓰려면 700쪽 분량의 책을 2, 3권 더 써야 할 것 같다. 하지만 벌써부터 기대된다. 올해 66세인 그녀가 오래 오래 살아 그런 책들을 써주면 좋겠다. <사람을 위한 경제학>은 올해 내가 읽은 최고의 책이며, 지금까지 경제학과 경제학의 역사에 관해 읽은 최고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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