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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도 꽃이냐고? 아니, 우주의 중심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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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꽃도 꽃이냐고? 아니, 우주의 중심이지!"

[꽃산행 꽃글·72] 최근 밥상에서 만난 식물 몇 가지

최근 밥상에서 만난 식물 몇 가지

호박

심심하게 세월을 견디며 늙어가는 호박. 호박꽃도 꽃이냐, 라고 어리석게 말할 때의 그 호박. 강화도에서 텃밭을 일구는 친구는 호박밭을 헤매다가 호박을 발견할 때의 경이를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다른 어떤 열매는 그렇지 않은데 유독 호박만이 그렇다고 했다. 참 아무렇지 않게 생긴 그 호박을 중심에 놓고 세상을 재편할 수도 있겠다.

어떤 이는 오늘 아침에 호박을 먹은 사람. 한 숟가락 잘람잘람 된장국을 떠먹을 때 호박 한 조각은 포함되었을 것이다. 현명한 주부라면 된장만으로 된장국을 끓이진 않았을 터. 비록 눈치를 못 챘을지라도 그가 오전을 견딘 기운이 실은 호박의 달큰한 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아침을 건너뛴 사람. 오늘 저녁에는 막걸리 집에서 약속이 있다. 막걸리에 어울리자면 우선 모듬전이 놓이겠지. 젓가락으로 호박전 하나 집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모듬전 소쿠리에서 호박전이 가장 빨리 사라진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 사람치고 사흘이 지나도록 호박 한 조각 섭취 안하기란 정말 어려운 노릇일 것이다.

어디 호박만이랴. 호박꽃이야말로 세상의 중심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 아닌가. 호박은 혼자 사는 법이 없다. 얼크러설크러져 있다. 무더기 지어 있는 줄기와 잎의 호위를 받으며 꽃들이 피어난다. 그 꽃에도 두 종류가 있으니 암꽃과 수꽃. 수꽃에는 수술이 좆처럼 푹 튀어나와 있다. 우리가 먹는 호박의 열매는 암꽃에서만 달린다.

고향 외가에 가서 아침 산책을 나서는데 호박이 자꾸 따라왔다. 발이 없는 데도 걸음이 나보다 빨랐다. 어느 새 저 만큼에서 호박은 여기저기 노란 꽃들을 활짝 벌리고 있었다.

이 호박꽃을 두고 우주의 배꼽이라 한들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는가!

▲ 호박의 수꽃. ⓒ이굴기

▲ 호박의 암꽃. ⓒ이굴기

상추

"아지매, 여기 상추 좀 더!"라고만 할 줄 알았지 상추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고깃집에서 상추에 삼겹살 놓고 쌈장에 마늘 찍어 얹어 입이 불룩불룩하도록 씹을 줄만 알았지 상추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다.

오늘 새벽 강화도. 친구가 일군 주말 농장 텃밭에서 새삼 알았다. 상추는 흙속에 뿌리를 내리고 그런대로 통통한 줄기가 올라와 잎을 무성히 달고 있었다. 상추도 어엿한 식물이다. 잎차례는 어긋나기. 아침에 먹을 요량으로 상추를 뜯었다. 다시 말해 줄기의 바짝 가까이에서 잎자루를 자른 것이다. 그러자 그 단면에서 희미하게 흰 즙이 나왔다.

상추 줄기의 상처 난 부위에서 상큼한 냄새도 피어올랐는데 그 냄새를 따라 생각나는 게 있었다. 태백산에서 만난 피나물이었다. 피나물은 노란 4장의 꽃잎을 달고 잎이 무성하다. 그 잎이나 줄기를 자르면 피처럼 붉은 즙이 나온다. 보기엔 참 탐스럽고 산나물처럼 먹음직스럽지만 먹어서는 안 되는 독초이다.

직접 수확하고, 피나물과 비교하고, 흰 즙을 생각하면서 먹은 오늘 아침의 상추. 소주에 삼겹살은 없었지만 식당에서 먹는 상추와 그 맛을 비교한다면? 글쎄, 굳이 내 입으로 그걸 말해야 할까?

▲ 상추. ⓒ이굴기

가지

오랜만에 어머니 모시고 딸아이와 함께 고향의 외가에 갔다. 외할머니 누워 계시는 질번디기 산소. 그 옆에 딸린 밭에는 외삼촌 내외가 가꾼 각종 채소가 자라고 있었다. 낮에는 외삼촌의 살아있는 땀과 밤에는 돌아가신 할머니의 뒤척이는 소리.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에 훌쩍 큰다고 했던가. 밭에 자라고 있는 수박, 고추, 오이, 옥수수, 토마토, 가지는 씨알이 훨씬 굵어 보였다.

그중에서 보라색 가지를 보는데 떠오르는 요리가 있다. 언젠가 교육방송(EBS) 요리 프로그램에서 본 인상적인 것이다. 지금도 생각나는 요리법은 다음과 같았다. 통통한 가지를 씻고 3분의 1 부분을 가로로 길게 칼로 자른다. 그리고 스펀지 같은 가지 속을 숟가락으로 파내면 가지는 돛단배처럼, 혹은 작은 고무신처럼 변한다! 그 안에 갖은 양념을 한 소를 넣고 쪄서 먹는 것!

마당에 덕석을 깔고 두루판을 펴고 외숙모께서 저녁 밥상을 차렸다. 시골에서는 가지를 손으로 쭉쭉 째서 밥 지을 때 함께 찐다. 이를 양념장에 대강 버무려 먹는다. 그러다 보면 가지나물에 밥 알갱이가 묻어있기도 한다. 그래서 더욱 맛이 난다. 가지를 무척 좋아하는 나. 나의 젓가락은 가지나물로 가장 먼저 쏜살같이 달려 나간다.

▲ 가지. ⓒ이굴기

오이와 토마토

▲ 오이와 토마토. ⓒ이굴기
이 과일과 채소들이 자라는데 땀 한 방울 보태지 않았지만 외삼촌의 밭에서 그것들을 수확하는 데에는 누구보다 손이 제법 재빨랐다. 씨알이 굵고 통통한 것만을 골라 한 소쿠리 땄다. 질번디기 밭에서 내려와 작은 개울에 부려놓고 씻었다.

그중 작은 오이와 토마토가 돛단배처럼 개울물을 따라 떠내려가다가 돌에 걸렸다. 꼬부라진 저 오이의 맛을 나의 혀는 잘 안다. 약간 끈적끈적한 느낌의 맛을 남기지만 전체적으로는 바삭바삭하고 깔끔한 맛! 토마토는 또 어떤가. 아무리 찬물로 헹구어도 뜨거운 해의 기운을 입안에 벌겋게 칠한 뒤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외할머니 짚고 다니던 지팡이의 손잡이 같은 꼬부랑이 오이와 물에 첨벙 뛰어든 작은 행성 같은 토마토. 의도를 가지고 배열했더니 묵직한 물음표가 되었다. 차마 먹을 수가 없어서 입맛을 다시며 손에 들고 왔다.

나팔꽃

나팔꽃 모르는 이가 어디 있겠나. 하지만 나팔꽃에도 종류가 많다. 애기나팔꽃, 별나팔꽃, 선나팔꽃, 둥근잎나팔꽃, 미국나팔꽃 그리고 그냥 나팔꽃. 꽃의 모양이 비슷한 것으로는 메꽃과 고구마꽃이 있다.

어린 시절 이런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 여린 나팔꽃 한 송이를 따서 흰 런닝구 걸친 동생의 등짝에 올려놓고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나팔꽃의 붉은 꽃잎은 너무도 야들야들해서 꽃모양과 꽃 색깔이 옷에 그대로 인쇄되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했거늘 아예 꽃을 때린 셈이었다.

아침 이슬을 여러 방울 머금은 채, 시골 삽작마당 한 귀퉁이에서 담부랑을 기웃거리며 기어오르던 나팔꽃.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해인사에서 산 뿔 나팔을 닮은 나팔꽃. 그 꽃을 따서 나팔처럼 불면 옛날의 일들이 주렁주렁 쏟아져 나올 것은 나팔꽃.

아침 산책 길. 질번디기 할머니 산소 쪽으로 걸어가는데 나팔꽃이 전봇대 허리를 잡고 하늘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드면서 하루의 도(道)를 날마다 깨치는 나팔꽃!

▲ 나팔꽃.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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