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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지옥문, 여의도에서 닫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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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지옥문, 여의도에서 닫을 수 있을까?

[좌담] "국회 밑에 원전감시국 설치" vs. "핵발전소 공론화부터"

핵발전소 비리가 캐면 캘수록 끝이 없다. 이 정도면 미꾸라지 몇 마리가 아니다. 사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얽힌 조직범죄다. 말 그대로 '핵 마피아'다. 단 한 번의 사고로 한반도 남동부 또 서해안 일대가 초토화될 수 있는 핵발전소의 위험을 염두에 두면 '핵 마피아'를 통제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핵발전소 감시 체계는 문제투성이다. 우선 견제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다. 현재 핵에너지 연구·개발과 핵발전소 건설·관리는 미래창조과학부-산업통상자원부가, 핵발전소 감시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담당한다. 하지만 애초 대통령 직속이었던 원자력안전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 국무총리실 산하 직속 기구(차관급)로 격하되었다.

핵에너지 육성을 담당하는 부처(미래창조과학부)가 핵발전소 감시 기관의 상위 부처다 보니 견제를 기대하기 어렵다.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제기도 나온다. 설사 대통령 직속으로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두더라도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대통령이 앞장서 핵에너지 육성에 나설 경우 행정부 차원의 견제는 애초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시민을 대의 하는 국회가 핵발전소 감시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는 없을까? <프레시안>과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생태환경특별위원회는 이 질문에 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성로 안동대학교 교수(행정학), 박태현 강원대학교 교수(환경법), 이원근 박사(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가 각자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프레시안 회의실에서 진행한 이 좌담의 사회는 양해림 민교협 공동의장(충남대학교 교수)이 맡았다. 이번 좌담은 불교생명윤리협회가 후원했다.

▲ 이성로 안동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핵발전소, 국민 투표에 부치자"

이성로 교수는 "국회가 핵에너지 정책과 핵발전소 감시에 좀 더 큰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교수는 "핵발전소를 확대할지를 놓고서 국민 투표와 같은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시민에게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체르노빌 사고나 후쿠시마 사고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핵발전소 사고는 그 영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큰 만큼 시민의 동의가 꼭 필요하다"며 "국민 투표는 그 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1979년 미국 스리마일 섬 핵발전소 사고를 계기로 핵발전 포기 여부를 국민 투표에 부친 스웨덴의 예를 들었다. 스웨덴은 1980년 국민 투표를 통해서 핵발전소 숫자를 당시 가동 또는 건설 중인 12기로 제한하고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기하기로 했다. 스웨덴은 2010년 6월 최대 10기까지 추가 건설하기로 정책을 바꿨으나 후쿠시마 사고로 그 실행 가능성은 낮다.

핵발전소 재가동을 추진했던 이탈리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정부도 지난 2011년 6월 국민 투표에서 제동이 걸렸다. 애초 이탈리아는 1987년 국민 투표를 통해서 핵발전소 폐기를 결정했으나, 늘어나는 전력 수요를 핑계로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추진했다. 하지만 역시 후쿠시마 사고 이후의 국민 투표로 이런 시도는 좌절됐다.

"국회 산하에 원전감시국을 두자"

이성로 교수는 이어서 "국회에 핵발전소를 감시하는 독립 기구를 마련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며 "국회에 입법 기능을 보좌하는 입법조사처나 예산 관련 기능을 보좌하는 예산정책처가 있듯이 국정 조사 기능을 보좌하는 국정조사처를 신설하고, 그 내부에 '원전감시국'을 둘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국정조사처의 모델로 미국의 감사원(GAO, 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을 꼽았다. 이 교수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감사원과 달리 GAO는 의회의 통제를 받는다"며 "이렇게 감사원이 입법부의 통제를 받는 나라는 미국 외에도 영국, 캐나다, 벨기에,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동안 감사원의 독립 논의는 계속해서 이뤄졌다.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감사원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연속 선상에서 이뤄진 4대강 사업을 감시하지 못한 것처럼, 그 독립성이 논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최소한 세입·세출 결산과 회계 감사 기능만이라도 국회로 이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성로 교수는 "국회에서 정부,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등을 감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을 갖게 된다면 핵발전소 감시 역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며 "이렇게 국회가 힘을 갖고 제 역할을 하도록 하는 일은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가 한 차원 성숙하는 데도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 핵발전소 감시를 맡을 역량은 있는가?"

▲ 이원근 박사(국회 입법조사처 조사관). ⓒ프레시안(손문상)
이런 이성로 교수의 주장을 놓고서 두 가지 쟁점이 제기되었다.

우선 행정부가 독점할 때보다 국회가 맡았을 때 핵발전소 감시 역량이 더 나아지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이원근 박사는 "핵발전소 감시 기구가 정부 산하에 있든 국회 밑에 있든 그 핵심 인력은 핵에너지 전문가가 될 수밖에 없다"며 "그런 전문가들이 현재 상황을 자성하지 않는 한 핵발전소 감시 기구가 정부에서 국회 산하로 바뀐다고 하더라도 큰 변화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특정 대학 원자핵공학과 출신이 주도하는 현재의 구조를 깨뜨리지 않고서는 핵 산업계의 자정 노력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 이 박사는 "진흥과 규제 양쪽을 포괄하는 원자핵공학과를 장기적으로 분리할 필요가 있다"며 "한 과에서는 진흥 방법을 연구한다면, 다른 과에서는 감시 방법을 궁리할 수 있도록 나눠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원근 박사의 지적은 핵발전소 사후 처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학위 과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학계 일부의 논의와도 궤를 같이한다. 사용 후 핵연료와 같은 방사성 폐기물 처리, 노후 핵발전소 관리·폐쇄 등의 과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이를 전담할 전문 인력의 육성이 시급히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한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국회 산하의 감사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를 놓고도 지적이 나왔다. 이원근 박사는 "여당이나 야당이 국회 산하의 감사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한다면, 대통령 직속 기구로 있을 때 제기된 독립성 논란이 언제든 재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태현 교수도 "여대야소 구조 속에서 또 여당 국회의원 대다수가 대통령 눈치를 보는 한국 정치 현실 속에서 국회 산하의 감사원이 핵발전소 감시와 같은 중요한 일을 수행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지적했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국회를 압도하는 현재의 구조 속에서 국회의 감사 기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원근 박사의 지적에 이성로 교수는 "현재 국회의 역량을 염두에 두고 시기상조라고 주저한다면 앞으로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며 "일단 국회에 권한을 부여한다면 정당과 국회의원은 유권자의 눈치를 봐서라도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교수는 "이렇게 국회의 권한을 높이는 일에 국회의원이 무관심한 모습은 한심하다"고 덧붙였다.

"국회가 진짜 할 일은 핵발전소를 둘러싼 공론을 만드는 일"

▲ 박태현 강원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박태현 교수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이성로 교수의 주장이 자칫하면 핵발전소를 둘러싼 정치, 사회, 윤리 문제를 간과한 기술 관료(technocrat)적인 해법을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핵발전소 감시를 정부가 할지 국회가 할지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자칫 핵발전소를 둘러싼 더 큰 맥락을 놓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핵발전소를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에만 신경 쓰다 보면 감시 체계를 보완하고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일에만 집중하게 된다"며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를 비롯한 핵발전소 사고는 이런 기술 관료적인 접근으로 결코 막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시급히 필요한 일은 핵발전소를 둘러싼 정치, 사회, 윤리 문제를 부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태현 교수는 2022년까지 핵발전소를 폐쇄하기로 한 독일의 경험을 거론했다. 체르노빌 사고, 후쿠시마 사고를 거치면서 정치인을 비롯한 다수의 독일 사람은 핵발전소를 지속 가능한 삶과 어울릴 수 없는 위험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인식이 가능한 데는 핵발전소 외에도 재생 가능 에너지와 같은 다른 선택지도 큰 역할을 했다.

박 교수는 "대조적으로 한국에서는 핵발전소를 에너지를 얻으려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할 위험으로 인식한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당장 국민 투표를 하더라도 핵발전소를 계속 건설해야 한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인식을 깨지 않고서는 핵에너지를 둘러싼 어떤 구조도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이런 사정을 염두에 두면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핵발전소와 관련한 다른 담론이 형성될 수 있도록 자극하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국회가 핵발전소의 여러 문제를 폭로하고 재생 가능 에너지와 같은 다른 대안의 가능성을 공론화하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 왜 '합의 회의'를 못하나?

이런 박태현 교수의 제안은 의회가 주도해서 '합의 회의(consensus conference)'를 개최한 덴마크의 예와 통한다. 1985년 덴마크 의회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과학기술 문제를 놓고서 일반 시민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시민 참여 방법 가운데 하나인 합의 회의를 1987년부터 개최했다.

합의 회의의 구체적인 방법은 이렇다. 국회가 핵발전소에 이해관계가 없는 10~16명의 보통 시민을 선별해 '시민 패널'을 구성한다. 이들은 가능한 한 나이, 계층, 지역, 직업 등에서 한국 사회의 여론을 대표할 수 있도록 조정된다. 이들 시민 패널은 수개월에 걸쳐서 핵발전소를 놓고서 다양한 입장을 가진 전문가와 상호 소통할 기회를 가진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서 시민 패널은 최종적으로 핵발전소를 어떻게 할지 독립적으로 판단해서 정책 권고를 내놓는다. 당연히 이들의 권고는 국회가 법안을 입안할 때 중요한 근거로 활용된다.

이렇게 국회가 합의회의를 주도하면 네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보통 시민이 에너지 정책과 같은 문제에 의견을 낼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할 수 있다. 둘째, 이들 시민은 여러 입장의 전문가와 소통할 기회를 보장받기 때문에 해당 사안에 관심이 없는 다른 시민에 비해서 훨씬 더 균형 잡힌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셋째, 이들이 전문가와 소통하는 과정 또 최종 입장 조율 과정이 언론 등을 통해서 공개되면서 해당 문제의 사회적 공론화를 촉진할 수 있다. 넷째, 국회는 보통 시민의 정책 권고를 법안에 반영함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고, 이를 활용해 전문 관료의 뒷받침을 받는 행정부에 대항할 수 있다.

이런 합의 회의는 한국에서도 시민 단체의 주도로 개최돼 주목을 받았다. 특히 2004년 시민과학센터는 핵발전 중심의 전력 정책의 타당성을 묻는 합의 회의를 개최했다. 이 합의 회의에서 시민 패널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전면 중단하고 에너지 전환을 모색해야 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냈다. 하지만 이런 결론은 정부는 물론이고 국회, 언론으로부터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 양해림 충남대학교 교수. ⓒ프레시안(손문상)

국회, 민주주의의 보루가 될 수 있을까?

양해림 교수는 "이성로 교수의 지적처럼 국회가 핵발전소 감시와 같은 일에 좀 더 많은 권한을 가지며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뿐만 아니라 핵발전소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도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일단 그 첫걸음은 행정부가 독점한 핵 관련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양 교수는 "독일의 예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대안의 존재 여부가 시민의 인식에 큰 영향을 준다"며 "핵에너지가 아닌 다양한 대안 에너지의 가능성을 보여줄 때 핵발전소를 둘러싼 논의도 더욱더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런 논의가 국회가 제 역할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국회의 다수 여당 새누리당은 21일 핵발전 비중을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계속 유지하고 2024년까지 예정된 핵발전소 11기의 건설을 계속 추진하는 에너지 정책을 발표했다. 정부가 2차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여당이 사실상 과거와 변함없는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국회가 과연 세상의 변화를 촉발하는 민주주의의 보루가 될 수 있을까? 전망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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