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보면 경이감은 과학소설만이 아니라 과학 자체의 미학일 수 있다. 내가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저 빛을 내는 존재는 이미 사멸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우주의 광활함을 상상할 때, 인터넷에서 마음에 꼭 드는 자료를 발견하고는 수십억 인구 중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지구 반대쪽에 한 명 존재한다는 사실에 설렐 때, 과학적 지식은 대상을 신비화하거나 억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가슴 뛰게 하는 경이의 원천이 된다.
▲ <경이의 시대>(리처드 홈스 지음, 전대호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우리에게 그 시기는 보통 낭만주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개인의 주관과 개성, 자연스러운 감성을 분출한 작품들이 쏟아졌던 시기였다. 그 사조는 갈릴레오와 뉴턴이 주도했던 17세기 과학혁명 이래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고도 해석된다. 한편 과학사에서는 당시를 산업혁명의 시대라고 부른다. 예술가들이 뭐라고 하든 한편에서는 기계가 득세한 시대였던 것이다. 이후 영국에서는 제국주의가 절정에 이른 빅토리아 시대가 왔다. 그리하여 전 세계에 세속적 산업주의가 퍼졌고 낭만주의 시대에 전조를 보였던 종교/예술과 과학의 대립이 본격화되었다. 적어도 그렇게 배웠다.
이렇게 보통 '예술'의 낭만주의와 '과학'의 산업혁명으로 나뉘어 파악되는 시기에 '경이의 시대'라는 제삼의 이름을 붙인 저자의 의도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저자는 당시가 갈라졌던 것만큼이나 합쳐졌던 시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낭만주의 시인들은 단순히 과학의 싸늘함에 지레 손사래를 치며 반대 방향으로 질주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오늘날의 시인들보다 당대 과학에 관심이 많았고, 그 내용을 과학자들과 토론했으며, 새로운 과학적 앎에 대한 복합적인 반응으로서 자신들의 시 세계를 구축했다.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당시에는 '과학자(scientist)'라는 단어도 개념도 없었다. 의학, 철학(신학), 음악 등 전통적인 고전 교육을 받았으되 베이컨이 주장한 귀납적 탐구 방식에 매료되어 그런 방식으로 자연을 탐구하고자 시도했던 사람이면 곧 과학자였다. 그들은 오늘날의 과학자들보다 당대 예술에 관심이 많았고, 과학적 발견을 문학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 예사였다. 그리고 두 집단을 하나로 묶는 것이 바로 경이감이었다. 그 시절에는 세상의 경이에 기여하는 것을 가입 자격으로 삼는 과학자들과 예술가들의 혼성 사교계가 존재했다. <경이의 시대>는 그 사교계를 스케치함으로써 과학과 예술이 나눴던 대화를 들려준다.
그 스케치는 또 여러 방식으로 할 수 있겠지만, 저자 리처드 홈스가 택한 방식은 '집단 전기'이다. 홈스의 이력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홈스는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퍼시 비시 셸리 등 낭만주의 시인들의 전기를 써서 인정을 받은 낭만 시대 전문 전기 작가이다. 또한 영국초상화미술관이 소장한 낭만주의 작가들의 초상을 해설한 1997년 책에서 독특하게도 과학자들까지 포함했던 데서 알 수 있듯이, 일찌감치 두 집단의 혼성 사교계에 주목해 왔다. 홈스에게 <경이의 시대>는 전기 작가로서 사십여 년의 연구를 한 두름에 꿴 노작인 셈이다. 가령 그는 바이런이 이탈리아에서 모월 모일에 무엇을 저녁으로 먹었는지도 술술 읊을 것처럼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시시콜콜한 일화와 상념에까지 정통하다는 느낌을 주는데, 이 책에서는 그 장점을 살려 그들과 당대 과학자들의 교차를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것이 목표이다.
어쨌든 <경이의 시대>의 중심에 서는 것은 과학자들이다. 두어 세대에 걸친 등장인물 수십 명 중에서도 주인공을 꼽으라면 다음의 세 명이다.
▲ 조지프 뱅크스의 초상. ⓒen.wikipedia.org |
그런데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뱅크스가 왕립협회장으로 무려 42년간 재임하면서 이른바 낭만주의 과학을 진두지휘했다는 점이다. 왕립협회 350년 역사에서 그 다음으로 오래 재임한 회장은 24년을 기록했던 아이작 뉴턴이다. 부유하고 세련되었던 뱅크스는 정신병 발병 이전의 조지 3세와 각별한 친분을 유지하며 왕실과 귀족의 자금을 왕립학회에 끌어들였다. 자신은 통풍으로 휠체어를 탄 신세가 되었으면서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젊고 재능 있는 후배들을 발굴하여 전 세계로 위험한 탐험을 보내고 고된 실험을 독려하는 일에 정열을 쏟았다. 오늘날 뱅크스는 타히티 체류와 오스트레일리아 유형지 개발을 적극 장려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주로 큐 왕립식물원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달리 말해 제국주의적으로) 꾸민 큐레이터로 기억되지만, 이 책을 읽노라면 당시를 '경이의 시대'가 아니라 '뱅크스의 시대'라고 명명해도 좋겠다고 생각될 정도다.
▲ 윌리엄 허셜의 초상. ⓒko.wikipedia.org |
허셜의 과학은 결과뿐 아니라 방식도 낭만주의적이었다. 허셜은 비범한 천재가 밤잠을 잊고 몰입하여 홀로 경이로운 발견을 해낸다는 관념, 오늘날까지도 통용되는 과학자에 대한 그런 환상적 통념에 딱 맞았다. 그는 자연을 들쑤셔 괴롭히는 압제자가 아니라 부드러운 구애로 그 비밀을 벗겨내는 찬미자였다. 과학은 자연을 숭앙했으며, 자연의 여신은 그에 감복하여 베일을 벗고 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발견이라는 선물을 선사한다고 했다. 훗날 과학자에 대한 또 하나의 통념으로 자리 잡는 과학과 자연의 대립은 아직 없었다.
▲ 험프리 데이비의 초상. ⓒko.wikipedia.org |
데이비는 라부아지에와 게이뤼삭 등을 주축으로 화학을 선도하던 프랑스에 맞서 프리스틀리의 뒤를 잇는 영국의 자존심으로 부상할 만큼 기체 화학에 기여했으나, 뭐니뭐니해도 제일가는 업적은 안전등의 발명이었다. 메탄이 자욱한 지하 갱도에서도 폭발하지 않는 안전등을 발명함으로써 데이비는 직업 과학자가 국가와 대중에게 봉사할 수 있다는 현대적인 관념을 예시했다. 또한 재미난 점은 데이비가 콜리지, 워즈워스, 월터 스콧 등과 교제하며 평생 시를 썼다는 것이다. 콜리지가 데이비에게 화학도 좋지만 시를 포기하진 말라고 했던 말은 인사치레에 지나지 않았을지라도 인상적이다. 오늘날 과학사에서 데이비의 위치는 그가 조수로 채용하고 인정사정없이 부려 먹었던 마이클 패러데이나 과학밖에 모르고 소박하여 왕립학회에게 무시당했던 원자론자 존 돌턴 다음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만큼은 홈스가 데이비를 주인공으로 고를 만했다. 과학자가 잔뜩 남긴 시를 분석할 기회가 그리 흔하겠는가.
이들 주인공 주변에 홈스가 배치한 조연들은 하나같이 무모할 지경으로 모험과 실험에 몸을 던진 낭만주의자들이었다. '종이 주머니에 구름을 집어넣어' 하늘을 날았던 최초의 기구 비행사들, 선교나 통상의 목적 없이 오로지 환상의 도시 팀북투를 발견하겠다는 집념만으로 아프리카 내륙을 헤매다가 목숨을 잃은 탐험가 멍고 파크, 데이비의 화학 강의를 들었고 당시의 생기론 논쟁에 대해 잘 알아서 그에 대한 생각을 <프랑켄슈타인>에 반영했던 메리 셸리, 오빠 윌리엄 허셜의 모든 발견에서 공저자나 마찬가지였으며 스스로 뛰어난 혜성 사냥꾼으로서 여성 최초로 국왕으로부터 과학자 연금을 받았던 캐럴라인 허셜. 이들에게 영감을 얻어 과학자들은 구름을 분류하고 바람을 측정하기 시작했다. 터너와 컨스터블은 그 구름과 바람을 화폭에 옮겼다. 이렇듯 분야를 넘나들며 영향을 주고받은 이어달리기는 끝없이 나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이 서평이 길어지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 책이 700쪽이나 되지만 짧게 느껴지는 것도 그 때문인데, 물론 이것은 홈스의 필력 덕분이기도 하다. 자신이 살아 보지 못한 시대를 수십 년 파고들어 수많은 조각을 수집한 뒤 그것들을 큰 그림으로 새롭게 배열한 이런 책은 평생 한두 권 이상은 못 쓸 것 같다.
그 필력에 정신없이 빠졌던 나는 독서를 마치고서야 생각해 본다. 그래서 굳이 그 시기를 '경이의 시대'로 재구성한 의미가 뭐지? 과학과 예술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구체적으로 따지는 것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다. 홈스가 명시적으로 학술적 분석을 시도한 대목은 한 군데도 없다. 오히려 어떤 대목은 너무 단순하고 순진하게 연관성을 가정하지 않았나 싶다. 가령 허셜이 악보를 초견하는 데 익숙한 음악가였기 때문에 밤하늘의 패턴도 잘 읽었을 것이라는 발언 등이 그렇다. 책의 부제는 '낭만주의 세대가 발견한 과학의 아름다움과 공포'라고 되어 있지만 등장인물들 외의 일반 대중이 당시 과학에서 어떤 아름다움과 공포를 느꼈는가도 별로 나와 있지 않다. 독자는 생생한 사건들과 문학적 언어들을 통해서 당시의 분위기를 스스로 짐작해야 한다.
<경이의 시대>는 언뜻 산만하게 흩뿌려진 듯한 점들을 놓고 점 잇기 그림을 그린다. 우리는 점과 점이 이어지는 과정을 볼 뿐, 완성된 그림이 어떤 모습인지는 책에 적혀 있지 않다. 그것이 정말 '경이의 시대'라는 이름에 값하는 그림인지는 우리 판단으로 미뤄져 있다. 그러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실도 있다. 설령 그 그림에 통일성이 부족하여 매혹적인 낙서에 불과하다고 판단하더라도, 이 낙서는 바스키아도 울고 갈 만큼 매력적이라는 점이다. (다만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홈스가 누락한 과학적 내용, 가령 라부아지에의 근대 화학, 린네의 분류학, 창조론을 반박하기 시작한 지질학 등을 좀 더 알아야 할 것 같다. 또한 영국인이 아닌 우리로서는 홈스가 상식처럼 여기는 영국 문학계의 지형도를 쫓기 버거울 수 있다. 가령 홈스에게는 '존슨 박사'는 존슨 박사일 뿐 그 이상의 설명은 당연히 사족이다.)
오히려 경계할 것은 이 스케치에서 부득부득 과학과 예술의 '통섭' 내지는 '두 문화의 융합'을 읽어내려는 태도이다. 이 책은 한때 그것이 가능한 시대가 있었으니 우리도 가능하다고 암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과학의 상황이 전혀 달라진 오늘날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어떤 실천적 단서를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은 억지다. 홈스가 제기한 유일한 논제라면 오늘날 우리가 과학자에 대해 품고 있는 이상적 이미지(천재, 고독, 유레카, 영감, 자연의 조력, 헌신…)의 대부분이 낭만주의 과학의 시대에 빚어졌다는 점이다.
집단 전기를 통해 시대를 그린 이 책이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곳은 결국 개개인의 마음속이다. 낭만주의 시대와는 상황이 전혀 다른 현재에도 과학적 경이와 예술적 경이가 자연스레 공존할 수 있는 장소는 개개인의 마음속이다. 과학자와 예술가가 어울렸던 혼성 사교계는 누군가의 머릿속에 남아 있다. 홈스가 말미에서 뜬금없이 '과학자의 창조성을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경이감을 되살리는 것은 우리가 각자 경계를 넘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면 바이런의 다음 시구는 단순히 짐짓 과학을 높이는 척하면서 실은 조롱하려는 의도만은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 여기에는 진정한 감탄, 진정한 경쟁의식, 진정한 동료의식도 있는 것이다.
유리의 힘으로 별들을 발견하고 증기의 힘으로
바람의 눈을 향하여 항해하는 그들보다
훨씬 열등함을 스스로 잘 알지만,
나는 시를 통해 그들만큼 성취하기를 바라네.
-돈 후안, 제10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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