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대 전 회장은 퇴임사에서 "달이 진다고 하늘을 떠나지는 않는다(月落不離天·월락불이천)"는 노자의 말을 인용하며 떠나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는 "다 이루지 못한 목표가 있기에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앞서 '연임 포기'를 공식화했던 지난달 기자회견에서 그는 "그간 일부 관행에 의해 지주사나 은행이 인사나 대출 문제에 있어 외부로부터 부탁(영향)을 받은 게 사실"이라며 "(그러나 KB금융지주는) 정부나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에서 부탁한 일도 없고, 인사의 독립성을 유지했다는 게 업적인 것 같다"고 말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또 "국제 금융 등 금융에 30년 넘게 몸을 담았지만 (고려대) 총장의 이미지가 더 컸던 것 같다"며 자신을 향했던 '낙하산' 비판에 대한 불편한 심경도 드러냈다. 어 전 회장은 1992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을 지냈던 이력이 사실상 유일한 금융권 경력임에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후광으로 KB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꿰찼다는 비판을 받았다.
금융계에서는 어 전 회장이 다음 달 말경에는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문책경고 상당의 징계를 받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측근인 박동창 전 KB금융 부사장이 일부 사외이사 재선임을 저지코자 왜곡 정보를 유출한 데 따른 관리·감독 책임이다. 문책경고 상당을 받으면 3년간 금융권 취업이 금지된다.
어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2년 후배이고, 이명박 정권 출범 후 국가브랜드위원장 등을 지내다 2010년 7월 KB 회장 자리에 올랐다.
KB금융지주는 '마지막 황제' 어 전 회장이 떠난 자리에 임영록 사장을 선임했다. 임영록 회장은 12일 열린 취임식에서 "경쟁 그룹에 비해 경영 효율성이 떨어지고, 주가와 시가총액도 열세"라며 "저성장·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돼 수익성과 건전성에 경고등이 켜지는 등 경영 환경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수익성 저하의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생산성 채널 관리와 조직 운영, 인력 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대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함께 지혜를 모아 달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노조와 머리를 맞대겠다"고 밝혔다.
▲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 ⓒ연합뉴스 |
금융계 호령했던 '4대 천황', 새 정부 5개월 만에 모두 퇴장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과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올해 초 사방에서 밀려오는 사퇴 압박에 '백기'를 들고 진즉 자리에서 내려왔다. 두 사람은 당초 임기 '완주' 의사를 거듭 내비쳤으나, 새 정부 금융 수장의 직설적인 물갈이 예고가 나오는 등 사퇴 압박이 커지자 얼마 버티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월 11일 당선 후 첫 국무회의에서 "새 정부의 국정 철학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공공 기관장을) 임명할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밝혔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그 뒤를 이어 "임기 남은 금융 기관장이라도 교체할 수 있다"고 말하며 기관장 물갈이를 예고했다.
이런 상황에서 감사원은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의 야심 프로젝트였던 '다이렉트 뱅킹'이 역마진 상품이라고 지적하고, 급속한 영업점 확대를 문제 삼았다. 결국 강 전 회장은 3월 말 임기를 1년가량 남기고 공식 사의를 표명했다. 747정책 등 'MB노믹스'를 진두지휘하며 경제계 최고 실세로 꼽혀온 강 전 회장의 퇴장은 쓸쓸했다.
이팔성 전 회장은 세 차례에 걸친 민영화가 실패로 돌아간 이후 본격적인 사퇴 압박을 받았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우리금융 민영화가 지연되며 조직이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기강이 해이해졌다", "(이팔성 전 회장이 거취에 대해) 알아서 잘 판단하실 것"과 같은 말들을 통해 이 회장의 자진 사퇴를 밀어붙였다.
그럼에도 이 회장이 완주를 고집하자, 감사원은 12조8000억 원 규모의 우리금융의 공적자금 운영 실태에 대한 감사를 벌이고, 측근을 자회사 사장으로 임명하는 등의 낙하산 인사와 불필요한 골프 출장, 고가의 선물 구입과 같은 방만한 경영을 문제 삼았다. '십자포화'를 맞은 이 전 회장은 결국 지난 4월 14일 임기를 9개월가량 남겨두고 자진 사퇴를 발표했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회장은 지난해 외환은행 인수가 성사된 직후 김정태 현 회장에게 왕좌를 물려줬다. 이른바 'MB맨'에 대한 사퇴 압박이 본격화하기 전이었던 만큼, 김 전 회장의 상황을 강만수·이팔성 전 회장과 비교할 수는 없다는 설명도 있다.
다만 김 전 회장도 어윤대 전 회장과 마찬가지로 금감원의 징계가 예정돼 있다. 김 전 회장은 재작년 퇴출을 앞둔 미래저축은행에 하나캐피탈이 유상 증자로 지원토록 김종준 당시 사장에게 지시한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제재 건도 이르면 내달 중 제재심의위원회에 상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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