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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지구인, 응답하라 외계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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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지구인, 응답하라 외계인이여!"

[이명현의 '사이홀릭'] 폴 데이비스의 <우리뿐인가>

지난 8월 4일 존 빌링엄이 83세의 나이로 죽었다. 과학계 밖에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겠지만 그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외계지적생명체 탐색 프로그램(SETI)의 아버지로 불리는 이물이다. 과학적 외계지적탐색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한 1세대 세티 과학자라고 할 수 있다.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없지만 그가 쓴 책이나-한국어로 번역된 적은 없다.-다른 사람이 쓴 글 속에서 그를 자주 만날 수 있었다. 외계지적생명체 탐색 프로그램을 나사의 공식 프로그램화시키는데 큰 공헌을 했던 인물로 유명했다.

그의 죽음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다소 복잡하다. 먼저 한 인간으로서 그의 명복을 빈다. 그런데 곧 아쉬움이 마음속으로 몰려온다. 2009년 가을에 대전에서 열렸던 국제우주대회에 모였던 세티 과학자들과 재미있고 보람 있는 작업을 하나 추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세대와 1.5세대 과학자들이 이미 죽었거나 나이가 많아지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정리해 두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주로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들이 주도해 왔던 외계지적생명체 탐색 프로그램의 기획자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비전과 회한을 정리해 두자는 것이었다. 서양인이 아닌 아시아인이면서 전파천문학자인 내가 그 작업을 하는데 적격이라는 의견이 모아졌었다. 아무래도 시대적으로나 거리상으로나 문화적으로 좀 떨어져 있는 내가 새로운 시각으로 그들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작용했던 것 같다.

2010년에는 처음 두 번의 인터뷰 여행을 할 수 있는 비용이 마련되었다. 2011년 3월에는 유럽을, 가을에는 미국을 방문해서 1세대 세티 과학자들을 인터뷰하기로 일정을 조정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인터뷰할 첫 두 명의 대상자 중 한 명이 존 빌링엄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프랭크 드레이크였다. 영문 책을 낼 출판사를 탐색하는 작업도 같이 진행되고 있었다. 곧 좋은 소식이 있을 것이라는 귀띔도 들은 상태였다. 그런데 2010년 11월 말, 내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 마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세티 아카이브(SETI Archive)라는 이름까지 붙였던 이 프로젝트는 내가 투병 생활에 들어가면서 수면 아래로 들어가 버렸다. 나도 아직은 이 작업을 재개할 만큼 건강이 회복되지 못한 상태다. 그러는 사이 1세대 세티 과학자인 드레이크는 세티 연구소 소장에서 은퇴했다. 1.5세대 세티 과학자인 질 타터도 얼마 전 세티 연구소 소장에서 물러나 기금 모금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세티 연구소는 운영하는 기금의 구조가 복잡해서 유기적으로 독립된 두 개의 연구소의 연합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두 사람은 각 연구소의 소장직을 수행해왔다.

오랫동안 세티 연구소를 이끌어오던 두 세티 과학자의 은퇴는 어쩌면 1세대와 1.5세대 세티 과학자들의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할 시점에 우리가 도달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한 것 같다. 이런 와중에 빌링엄이 죽은 것이다. 그가 살아있을 때 직접 만나지 못한 아쉬움이 무척 크다. 나를 더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1세대와 1.5세대 세티 과학자들의 은퇴가 현실화되었고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정리해둘 시간이 점점 짧아진다는 사실이다. 멈춰진 채인 인터뷰 프로젝트를 빨리 재개해야한다는 강박이 나를 자주 압박한다.

▲ <우리뿐인가>(폴 데이비스 지음, 이상헌 옮김, 김영사 펴냄). ⓒ김영사
책장을 뒤져서 오랜만에 빌링엄의 책을 꺼내들었다. 1981년 그가 편집한 라는 책이 손에 잡혔다. 번역된 것이 없어서 여기에 소개하기가 힘든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대신 폴 데이비스가 지은 <우리뿐인가>(이상헌 옮김, 김영사 펴냄)를 소개하면서 빌링엄을 추모하려고 한다.

폴 데이비스도 1.5세대 세티 과학자에 속하는 인물이다. 1995년에 처음 발간된 이 책에는 1세대 세티 과학자들의 꿈과 열정이 데이비스 특유의 논리성으로 정리되어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다. 세티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각론에서는 많은 논쟁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세티 과학을 이끌어온 패러다임에는 모두 동의할 것이다. 빌링엄도 데이비스의 목소리를 통해서 일반인들에게 전달된 세티 과학자들의 그 꿈에 동의할 것이다.

"외계의 미생물을 단 하나만이라도 발견해도, 그리고 그것이 지구 위에 존재하는 생명체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진화했다는 것을 보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세계관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이는 코페르니쿠스와 다윈의 혁명만큼이나 우리의 사회를 철저하게 변화시킬 것이며, 그것은 진정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외계인의 메시지가 탐지된다면 인류는 엄청난 영향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외계생명체 탐색이 인류의 비전과 꿈을 뒤흔들어놓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1세대 세티 과학자들의 접근은 신중했다.

"1950년대에도 별들과의 엄청난 거리가 SETI에 장애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대에는 전파천문학이라는 과학이 잘 발전되었다. 마침내 천문학자들은 만일 은하계 저편으로부터 전해 오는 무선 신호를 탐지할 수 있다면 인공적인 신호들도 탐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따라서 전파망원경은 외계생명체 발견을 위한 최선의 희망이었다."

별과 별 사이가 너무 멀기 때문에 직접 가서 외계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명왕성까지 가는 데만도 10년이 넘게 걸린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다른 태양계까지 가는 데는 5만년 이상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래서 세티 과학자들은 고학기술문명의 결과로 생긴 라디오나 텔레비전 같은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먼별로부터(정확하게는 별들 옆을 돌고 있는 행성들로부터) 포착하려는 노력을 하자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빌링엄은 이런 기획을 했던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드레이크는 실제로 전파망원경을 사용해서 외계지적생명체 탐색을 시도했던 최초의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앞서 말한 전파망원경을 사용해서 인공적인 전파신호를 포착해서 외계인들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패러다임 아래 100여 차례가 넘는 세티 프로그램이 진행되어왔다. <우리뿐인가>는 1.5세대 세티 과학자인 데이비스의 눈을 통해서 1세대 세티 과학자들의 꿈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를 잘 정리해놓은 책이다. 특히 1995년 당시 한창 진행 중이던 피닉스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외계지적생명체 탐색의 테크닉과 과학적 의미를 논리적인 어투로 던져주고 있다.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하는 것은, 데이비스가 모두들 궁금해 하는 외계지적생명체 발견의 철학적 함의에 대해서 하나하나 꼼꼼하게 짚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데이비드가 <우리뿐인가>에 인용해 놓은 드레이크의 말을 다시 옮겨 적으면서 이 글을 맺으려고 한다.

"건초더미 속에 숨겨진 우리의 바늘을 찾기란 어렵다. 하지만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찾는 일은 우리 인류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탐구들 가운데 하나라고 느낄 것이다."

빌링엄도 늘 이런 말을 하고 다녔을 것이다.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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