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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제아 일본, 이대로 몰락하나?

[동아시아를 묻다] 악우(惡友) : 천년의 유산

1. 속국

자민당이 압승했다. 작년 중의원에 이어, 이제 참의원까지 탈환했다. 양원 석권으로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당장은 아니겠지만, 평화헌법 개정, 전후 체제 탈각이라는 아베의 숙원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지리멸렬한 야권을 감안하자면, 어떤 임계점을 돌파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쯤에서 자기반성이 필요하겠다. 나는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 4년 전 호기롭게 출범했던 민주당 정권이 저렇게 맥없이 무너질 줄은 몰랐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표방하며 대미 자주노선과 다극적 세계를 지향했던 하토야마 노선에 큰 기대를 걸었다. 희망적 사고를 투영하여 객관적 판단을 그르쳤던 것이다.

미국의 반발과 압박은 거셌고, 외무성과 방위성 등 관료들의 저항은 드셌다.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어깃장을 놓을 만큼의 세(勢)는 여전했던 것이다. 과연 혁명은 멀고, 개혁은 더디다. 안팎으로 정권을 흔들던 차에 3·11의 재앙까지 겹치며 민주당은 조락했다.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 참여 등 미일 관계 복원을 최우선시하면서 정권의 존재 이유도 사라졌다. 차별성을 상실하고 3년 천하를 마감한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동아시아 전문가 개번 매코맥의 <종속 국가>(이기호·황정아 옮김, 창비 펴냄)라는 책이 있다. 전후 일본을 빗댄 표현이다. 'Client State'를 옮긴 것이다. 번역어 선택이 과하다고 여겼다. 헌데 이참에 살피니 일본어는 더하다. 아예 '속국(屬國)'으로 표기한다. 미일 관계를 종주국과 속국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의존적 독립' 혹은 '종속적 주권'의 모순적 상황을 일컫는다. 미국의 보호와 일본의 충성을 교환하는 (신)봉건 관계이다. 부정하기 힘든 진술이다. 국가 간 체제의 실상에 대한 일침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의 위협을 강조하며 미국의 속국을 감내하는 일본의 역설에는 20세기에 대한 향수병이 자리한다. 동아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열도가 중원을 앞선 시절이다. 매우 이례적인 예외 상태였다. 그러나 중일 간 경제 규모는 이미 역전되었다. 순위 변동보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 추세이다.

세계 총생산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위상은 1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 2030년에는 6퍼센트, 2050년이면 3퍼센트 대가 될 전망이다. 다시 작은 나라가 된다. 반면 21세기 중엽이면 중국의 비중은 30퍼센트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단기적 변수와 곡절은 있겠지만, 장기적인 구조 변동은 거스르기 힘들 것이다. 아편전쟁 이전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역전'이라는 말도 딱히 어울리지는 않다. 항상적인 상태로의 복원, '정상화'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반전(反轉)'이라는 표현을 선호한다. 지난 100년의 돌출을 대신하여 1000년의 유산에 방점을 두는 것이다. 무릇 인구가 많은 나라가 그만한 비중의 경제적 규모를 일구고 또 그만큼의 정치적 역할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법이다. 대소(大小)와 상하(上下)가 교란되면 난세가 인다.

그렇다면, '우경화' 또한 적합한 표현이 아니지 싶다. 일본의 현재를 따지기에 좌우의 잣대는 적절치 않다. 초지일관 우파로 기울어져 있었다. 오히려 작금의 실상은 반전하는 역사의 물결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상태에 가깝다. 몸은 21세기인데, 마음은 20세기에 있다. 머리를 채우는 지식 체계 또한 대저 20세기 산이다. 인지부조화가 심한 것이다. 심리적인 저항이 강한 것이다. 100년을 과대평가하고 1000년을 과소평가하던 근대적 편향의 부작용이고 후유증이다.

ⓒ프레시안(손문상)

2. 천하(天下)와 천황(天皇)

내가 머물고 있는 곳은 일본인이 많이 산다. 일본 절도 있고, 일본 음식점도 많다. 덕에 제법 규모를 갖춘 서점도 있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동향도 시시각각 확인할 수 있다. 헌데 눈살이 찌푸려지는 책들이 적지 않다. 중국, 북조선, 한국을 표적으로 삼은 책들이 신간 진열대를 장식하고 있다. 대저 대륙과 반도와의 차이와 이질성을 강조한다. 이웃을 '못난 친구(惡友)'로 폄하했던 탈아(脫亞) 의식의 지속이고 변주이다.

나는 일본의 탈아 의식이 전혀 엉뚱한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실제로 일본은 달랐다. 동아시아에서 매우 예외적으로 무사들이 지배하는 국가였다. 그래서 재빠른 '근대화'가 가능했다는 해석에도 수긍하는 편이다. 군인들의 전성 시대였던 20세기와 아귀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그에 반해 중국과 조선, 월남과 류큐는 시간차를 두고 문인들이 지배하는 지식 관료 국가를 이루었다. 동아시아는 문명 공동체였고, 그 이념적 토대는 신유학이었다. 신유학의 가장 큰 특징은 <대학(大學)>이다. 사서(四書)의 하나로 등극하여 신유학에 진입하는 첫 관문이 되었다.

<대학>은 문자 그대로 대아(大我)를 키우는 배움이다. 소아(小我)를 거두고 천하를 으뜸으로 삼는 공공적 사고를 연마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 아래 민족과 국가 또한 소아의 확장에 그친다. 군자는 천하를 염려하는 우환 의식을 배양하고, 태평천하를 일구는 실무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그들이 도통(道統)을 틀어잡고 정통(政統)을 확보한 군주를 견제하고 견인한다. 보편적 이념으로 현실 권력을 비판하는 전통이 천년의 유산으로 확산되고 심화되어 왔다.

그럼에도 유독 일본만은 신유학에 입각한 지식 관료 국가의 경험이 미천했다. 그래서 기민하게 국민 국가로 전환할 수도 있었다고 여긴다. 서구 문명에 대한 거부감이 가장 덜했던 것이다. 국가와 민족을 초월한 천하관의 훈련이 미진했기에, 내 나라 내 민족의 이해를 최고로 삼아 만국이 만국에 투쟁하는 20세기에 독보적인 성취를 이루었다. '차마 그러하지 못하는 마음(不忍之心)'이 덜했던 것이다.

그래서 류큐, 대만, 조선을 차례차례 복속하며 중화 질서를 내파해갈 수 있었다. 규모와 역량에 따라 차등적 역할을 배분하여 경쟁을 억제하고 상호 의존과 상호 구속으로 평화를 담보했던 지역 질서를 앞장서서 해체한 것이다. 그만큼 동아시아 문명에 대한 귀속감이 모자랐다. 사해동포의 천하(天下)를 공유하지 못하고, 만세일계의 천황(天皇)을 존숭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웃 나라들과 친밀하게 어울리는 세련된 외교 경험 또한 극히 부족했다. 20세기 초반의 아시아 침략, 20세기 후반의 미일 동맹 편승은 비단 20세기만의 산물이 아니다. 뿌리가 제법 깊다.

그래서 섣부른 낙관을 삼갈 일이다. 재무장 또한 전전 군국주의의 부활로 그치지 않는다. 오래된 '무'(武)의 관성이다. 내부적으로는 문치의 경험이 박해 지식인과 민중의 권력 통제가 미약하고, 외부적으로는 이웃들과의 다자 외교에 미숙하다. 끝내 동방 문명의 원리에 익숙하지 못한 것이다. 그런 편이 미국의 아시아 정책에도 부합한다. 사무라이와 카우보이의 의기투합으로 대륙 봉쇄의 군불을 재차 지피는 것이다. 환태평양(Trans-Pacific)의 실체이다.

그러나 지나친 비관 또한 피할 일이다. 미일 동맹의 하위 구성원이었던 대만과 한국의 행보가 냉전기와는 딴판이다. 대륙과 대만의 시장 통합은 나날이 더해가고 있다. 일국양제라는 재(再)중화의 물결이다. 한국 또한 중국과 '인문 유대'를 도모한다. 좌/우, 민주/독재로 세계를 양분했던 왕년의 가치 동맹을 복제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지난 100년을 능가하는 1000년의 유산이 재가동되고 있다.

일본은 재차 탈아로 기울었다. 100년의 답습이자 1000년의 습속이다. 그러나 새천년은 일본 편이 아니지 싶다. 동아시아의 형세는 점차 열도만이 소원했던 19세기 이전과 방불하다. 북조선과는 여태 외교 관계가 없고, 중국과는 냉랭하며, 한국과 대만도 우호적이지 않다. 오키나와는 더욱 불만이다.

고립을 자초하며 '악우(惡友)'를 자처하는 일본이 애달프다. 그칠 곳에서 그쳐야 안도 밝고 허물도 사라지는 법이다(止于止內明無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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