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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버림받은 추녀, 갓난아기마저 죽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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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버림받은 추녀, 갓난아기마저 죽인 걸까?

[김용언의 '잠 도둑'] 교고쿠 나쓰히코의 <웃는 이에몬>

요쓰야 지방에 사는 무사 다미야 마타자에몬에게는 이와라는 딸이 있었다. 낭인 이에몬을 사위로 들였으나, 이에몬은 마음이 변하여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하고 이와를 쫓아냈다. 이와는 광란을 일으키고 행방불명되었다(혹은 이에몬이 이웃 이토 집안의 처와 통정하여 이와를 독살했다고도 한다). 그 후부터 다미야 집안에는 변괴가 계속되고, 마침내 이와의 혼을 달래기 위해 '오이와 이나리 사당'을 세웠다.

▲ <웃는 이에몬>(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펴냄). ⓒ북스피어
교고쿠 나쓰히코는 <웃는 이에몬>(김소연 옮김, 북스피어 펴냄)에서 원래의 '오이와 괴담'(혹은 '요쓰야 괴담'이라고도 부른다. 에도의 요쓰야 지방이 무대이며 겐로쿠 시대 17세기 말~18세기 초에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창작된 괴담이다)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물론 오랜 시절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온 괴담의 내용이 한결같은 건 불가능하다. 위에 인용한 <웃는 이에몬> 속 요쓰야 괴담과 한문괴담소설 모음집 <야창귀담>(이시카와 고사이 지음, 김정숙·고영란 옮김, 도서출판문 펴냄)에 소개된 오이와 괴담의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는 것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시대 흐름이나 지역적 특성, 구전자의 취향 등에 따라 구체적 내용이 변화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 중 남편 이에몬이 극악한 악당이며 아내 이와는 남편에게 버림받는 가련한 희생자라는 뿌리만은 동일하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위의 전제마저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등장인물의 이름과 몇몇 관계(이와와 이에몬이 부부 사이고, 연약한 여인 우메가 이에몬에게 연심을 품고, 이와의 얼굴이 모종의 사건 이후로 극도로 추해진다)를 제외하고는, 기존 요쓰야 괴담에 익숙한 독자들마저 충격 받을 정도로 이야기 자체를 변형시켰다. 괴담의 성격은 간직하되 이것은 매우 추하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되었다. 마치 이와의 얼굴 반쪽은 짓무르고 피고름이 흐르지만 나머지 반쪽은 본래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기괴한 형상인 것처럼, <웃는 이에몬> 역시 그러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웃어본 적이 없는 가난한 무사 이에몬은 목수 일로 생계를 꾸려나간다. 그에게 혼담이 들어온다. 하급 무사 다미야 마타자에몬의 딸 이와와 결혼하여 나름대로 지역 명문가인 다미야 집안 데릴사위가 되라는 제안이다. 이와는 마을의 소문난 미인이었으나 원인 모를 병을 앓고 난 뒤 얼굴이 추하게 망가졌다. 자긍심이 강한 여인 이와는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자신의 추한 얼굴에 기겁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점점 마음 한 구석이 움츠러든다. 이에몬이 의외로 혼담을 수락하고, 둘 사이에 기이한 애증이 싹틀 무렵 이와에게 어떤 집착을 품고 있던 포악한 상급 무사 기헤이가 모든 것을 망가뜨려 버린다.

웃을 수 없다는 건 무엇을 뜻하는가. 이에몬이 웃지 않는다는 여러 차례 강조되는데("이 나리는 붙임성이 없는 만큼 신용할 수 있습지요"), 그것만큼이나 이와의 딱딱한 얼굴 또한 두드러지게 강조된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신을 힐끔거릴 때 처음엔 무사의 딸로서의 예의를 지키며 접대용 미소를 보내지만, 사람들은 '저런 얼굴로도 남자를 원하는 걸까'라며 노골적으로 조롱한다. 그 다음부터 그녀의 얼굴에서 웃음은 사라진다. 표정 자체도 사라진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웃는 이에몬>에 등장하는 거의 대부분의 웃음은 매우 부정적으로 그려진다. 웃음은 행복과 만족을 표현하는 자연스러운 표현의 발로가 아니다. 본심을 감추는 가면으로서 혹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거나 공격하기 위한 무기로서 작동한다. 피의 학살극이 전부 끝나고 난 뒤,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이에몬의 얼굴에 새겨진 웃음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행복이자 거기 이르기까지 그가 겪어야만 했던 온갖 불의와 고통을 생각한다면 숭고한 감정마저 불러일으키는 승리의 전리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승리의 웃음조차, 수백 마리의 쥐와 뱀과 벌레 떼에게 뒤덮여 있었다.

또는 웃기 위해 움직이는 얼굴 근육과, 고통으로 경련을 일으키는 흉터 부근 근육의 움직임이 과연 그렇게 다를까? 이와의 흉한 반쪽 얼굴만큼이나, 그리고 복수를 위해 칼로 스스로의 피부를 벗겨내 본연의 특징을 지워버린 하인 나오스케의 흉터투성이 얼굴을 들여다보자면, 그 상처야말로 그들만의 웃음이 아닌가 싶다. 가식적인 미소가 아닌, 본인이 원치 않아도 내보일 수밖에 없는 근육의 움직임. 온통 모두가 억지로 가면 같은 웃음을 짓는 세계 속에서 이와와 나오스케의 흉측한 얼굴은 그들이 결코 이 가짜들의 표상에 순순히 복종하고 안주하여 살아갈 수 없음을, 그들은 '다른' 세계에 속해 있음을 알려주는 표식이었는지도 모른다.

▲ 요시토시 츠키오카의 '요쓰야 괴담' 그림(1892). (출처 Wikimedia Commons)
"세상의 하찮은 놈들이 당신을 보고 웃는 이유는 얼굴의 상처가 흉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숨기려면 숨길 수 있는 그런 것을 숨기지 않는, 꾸미지도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그런 강한 당신이, 세상 사람들은 무서운 게지요. 무서워서 웃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에몬은 다른 남자들과 달리 비위를 맞추기 위한 웃음을 일절 짓지 않는다. 전혀 웃지 않는다. 기헤이의 집을 찾아오는 악당들은 대개 실실 웃고 있다. 돈 많은 요리키에게서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먹으려고 비굴하게 다가오며 짓는 천박한 웃음, 오만한 상직 악당을 대하며 꾸며 낸 웃음, 쓴웃음, 나쁜 일에 가담하는 엷은 웃음, 바보 웃음-. 모두가 실실 웃으며 느슨한 얼굴을 하고 있을 뿐,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자는 하나도 없다.

<웃는 이에몬>에서 또 하나 중요하게 다뤄지는 부분은 '헤아려 짐작하는 능력'이다. 기본적으로 이것은 시력, 눈과 연관되는데 "본래 사물은 보이는 것이 아니다. 보는 것이다"(강조 부분은 원문 그대로다)라는 단순한 진리를 깨닫는 이들은 거의 없다. 모든 욕망은 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가련한 처녀 소데는 이에몬을 발견하고 그에게 절절한 짝사랑을 품지만, 이에몬은 소데를 보긴 보았으되 제대로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소데는 그의 눈의 '사각지대'에 존재한다. 또 다른 딱한 처지의 여인 우메 역시 이에몬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서 첫사랑을 느끼는데, 이에몬은 그 감정 역시 "당신은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딱 잘라 거절한다.

사실 눈에 맺힌 상은 있는 그대로의 상이 아니라, 대부분 그 마음에서 비롯된 감정의 불순물의 장막이 겹쳐진 상이기 때문이다. 이와가 격분할 때 그녀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피고름이 그녀의 눈에 맺혀 세상이 전부 시뻘겋게 보이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너무 쉽게 믿고 판단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결국 죽음으로만 그 죄의 대가를 치를 수 있다. 이에몬과 이와는 얼굴을 보지 않고 서로에 대한 설명만을 들은 채 직관적으로 혼례를 결정하는데, "그것에 대해서 이에몬은 별반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십 년을 사귀든 삼십 년을 살든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고, 그렇다면 아무것도 몰라도, 한 번도 만나지 않아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부부의 연을 맺은 뒤 얼굴을 마주 대하며 살아가는 이후부터 그들은 상대방의 의도를 어림짐작하고 원망하기 시작한다. 눈은 마음에서 오는 것이고("지금의 이와 님은 분명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볼꼴 사납습니다-그러나 그것은 전부 마음에 달려 있는 것"), 마음 또한 눈에서 시작된 오해를 멋대로 재단한다. "저를 보세요, 제 얼굴을, 제 마음을 보세요-"라는 이와의 외침은 이에몬에게 제대로 가닿지 못한다. <웃는 이에몬>은 그 오해들이 사소하게 조금씩 쌓이면서 이와를, 그리고 마을 전체를 절망과 광기의 장막으로 순식간에 뒤덮는다.

"동정도 그렇고 원한도 그렇고, 받는 쪽에 그런 마음이 없으면 성립하지 않습니다. 동정을 받는 쪽은, 그것이 사실은 경멸이라고 해도 경멸받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요. 세간의 약속이거든요. 그것을 깨어 버리면 아무것도 안돼요. 마음이란, 이와 님, 어떤 마음이든 그대로 상대에게 통하는 일은 없습니다. 마음을 받는 쪽이 멋대로 만들어 내지요."

이를테면 이와는 에도 시대의 '다락방의 미친 여자'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과거의 흉하고 비천하고 광기어린, 그래서 온갖 악한 명칭을 부여받고 모두에게 미움 받고 유폐될 수밖에 없었던 존재들이 저자의 재해석을 통해 실상 그 시대에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는 단독자이자 근대적인 표상으로 등장한다.

▲ <망량의 상자>(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손안의책 펴냄). ⓒ손안의책
교고쿠 나쓰히코는 지금까지 <우부메의 여름>(김소연 옮김, 손안의책 펴냄)과 <망량의 상자>(김소연 옮김, 손안의책 펴냄) 등으로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미스터리와 끝끝내 해결되지 않는 불길한 괴담을 교묘하게 결합시키는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현해왔다. <웃는 이에몬>에서도 괴이한 현상은 철저하게 사람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즉 악령이나 저주는 산 사람의 악행이 불러일으키는 공포가 빚어낸 허상일 뿐이라는 근대적 재해석으로 설명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더위 속에서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처럼, 견디기 힘든 으스스함이 뜨거운 정념의 이야기 전체를 자욱하게 뒤덮는 분위기 창출 면에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테면, <웃는 이에몬> 초반의 이런 구절.

"나리-"
"사람은,"
"나리. 그, 사람은-."
"-사람이라는 것은 찌르면 죽을까요?"

등장인물들은 망설이고 주저하며 말끝을 흐리는 어법을 구사하는데, 모두가 서로의 행간에 숨겨진 악의와 고뇌를 읽어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파멸한다. 행간의 공포를 절절하게 느끼는 것은 독자에게 주어진 몫이다.

아쉬운 부분을 하나 지적하자면, 여러 등장인물을 각 챕터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 혹은 그녀의 마음의 중요한 전환점을 꼼꼼하게 따라잡았던 교고쿠 나쓰히코가 정작 이와와 이에몬의 결혼 생활은 너무 소략히 서술하지 않았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주변의 흉계도 흉계려니와 자신을 믿는 마음이 너무 컸던 꼿꼿한 두 사람이 감정을 표현하는데 서툴렀기 때문에, 서로를 향한 본심이 만나지 못하고 사소하게 어긋나는 지점에서부터 모든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둘의 어렴풋한 연심이 원한 서린 멱살잡이까지 이어지는 황량한 추락의 과정이 좀 더 설득력 있게 제시되었다면, 결말의 안타까움이 더 한층 깊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바람이 남는다.

그런 아쉬움을 제하고서라도 <웃는 이에몬>은 '으슥한 밤중에 창 너머로 아련히 보이는 귀(鬼)에 대한 이야기, 즉 야창귀담'의 뛰어난 표본으로 손색이 없다. 집안 곳곳에서 아무리 없애도 자꾸 튀어나오는 뱀과 벌레와 쥐를 바라보는 이들의 심정처럼, 자신도 몰랐던 본심이 끈적끈적한 악몽의 표피를 뒤집어쓴 채 다가오는 이들의 악몽처럼, 각자 정념의 덫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 혹은 그 기회를 잡고 싶어하지 않았던 이들의 파멸처럼 후덥지근한 여름밤, 더없이 어울리는 선택이다. 햐쿠모노가타리 괴담회(百物語 : 어두운 밤 촛불 100개를 켜놓고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무서운 이야기를 할 때마다 촛불을 하나씩 끈다. 100개의 이야기를 끝내고 마지막 촛불을 끄면 정말로 괴이한 일이 일어난다고 한다)의 100번 째 이야기처럼, <웃는 이에몬>의 책장을 덮고 나면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에 촛불이 훅 꺼지고 진짜 공포가 시작되는 기분에 사로잡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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