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라는 말 한 번 안 들어보고 자랄 수 있겠나. 앵두, 앵두, 앵두. 그렇게 발음하면 예쁘게 폭 파이는 볼우물에 시선이 푹 꽂히듯 어쩐지 그 말 속으로 두근거리는 마음이 퐁당 빠져드는 것 같다.
자두나 복숭아 혹은 포도 아니면 사과 또는 딸기 같은 입술이라고 하면 어쩐지 바람 빠진 풍선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입술에 대해서는 꼭 이렇게 말해야 하는 것이다. 앵두 같은 네 입술!
그 붉은 너의 입술에 냄새나는 내 입술을 포개고 싶어 하면서 누구나 설레는 사춘기를 지난다. 그러니 앵두라는 말에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헛헛함, 떠나보낸 첫사랑의 아련함이 땡땡하게 뭉쳐있는 것 같구나.
앵두, 혹은 앵도라고도 하는 것. 앵도나무도 있고 산앵도나무도 있다. 앵도나무는 장미과, 산앵도나무는 진달래과. 앵도나무가 우물가에 흔히 있다면 산앵도나무는 산 중턱에 주로 있다.
그리하여 설악산 어느 한 구석, 귀때기청봉의 너덜겅을 오르다가 숨이 턱 차오를 때. 미리 그곳에서 기다리던 산앵도나무는 지친 나를 끌어당겨 주는 것이었다. 말에서 이미 그런 사연을 간직한 산앵도나무는 그 이름만으로도 헐떡이는 내 숨의 절반을 고르게 하여 주는 것 같았다.
혹 열매가 달려 있다면, 설령 붉게 익지 않았을지라도 나는 서슴없이 입안으로 넣어 깨물 것이다. 그때 시큼하게 퍼지는 그 즙은 거덜이 난 나의 나머지 원기를 보충하여 주고도 남으리라. 그런 생각만으로도 산앵도나무는 산앵도나무!
하지만 오늘 산앵도나무는 열매 대신 작은 꽃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같은 진달래과의 나무로 정금나무가 있다. 정금나무의 꽃도 어쩌면 그리 닮았는가. 그 꽃들은 나란히 열을 맞추어 달려 있었다. 소리를 모으기 위하여 하늘 대신 땅을 겨누면서.
▲ 정금나무. ⓒ박상무 |
그 옛날 시골에서 초등학교 다닐 때. 수업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는 사이렌이 아니라 종소리였다. 오줌이 마렵거나 얼른 복도로 나가 뛰놀 생각에 몸이 뒤틀릴 때 소사 아저씨는 그걸 기막히게 알아채시곤 때맞춰 땡, 땡, 땡, 종소리를 울려주었다.
교무실 창문 아래 화단에 우두커니 서 있던, 산앵도나무 혹은 정금나무 꽃을 빼닮았던 종.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라고 할 때의 그 학교종. 쇠로 만든 불알이 크게 달려 있던 종.
그 국민학교 졸업한 지 수십 년. 고향에 가도 지나치기만 했는데 재작년 벌초 갔을 때 일부러 잠깐 들렀다. 운동장에는 쑥부쟁이, 애기똥풀, 뽀리뱅이 등의 야생화가 잔뜩 우거진 채 저희들끼리 놀고 있었다. 우람한 플라타너스는 그대로였지만 어느 가지에 매달았던 그네는 간 곳이 없었다. 쓸쓸하고 쓸쓸했다.
설악산 중턱에 앉아 산앵도나무 환한 그늘에 땀에 젖은 얼굴을 적시며 숨을 고르며 산앵도나무 꽃을 보았다. 꽃을 보는 데 문득 이제는 폐교가 되어버린 시골의 국민학교 생각이 났다. 그 생각 끝에 떠오르는 뿔뿔이 흩어진 동무들. 그 중 한 여학생에게는 마음이 은근히 갔었겠지?
돌이킬 수 없는 방향들을 가리키는 듯 산앵도나무 꽃들은 저마다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땡그랑, 땡그랑……. 아득히 멀어진 그 모든 곳을 향하여 손을 뻗으면 산앵도나무의 종소리가 울려나올 것만 같았다. 앵그랑, 앵그랑…….
▲ 산앵도나무. ⓒ이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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