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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키스만 남기고 떠난 90년대, 그리고 김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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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카로운 키스만 남기고 떠난 90년대, 그리고 김종학

[모 피디의 그게 모!] <여명의 눈동자>·<모래시계>를 그리는 이유

마흔여섯 모 : 김종학

기억에서 잊히지 않는 두 번의 입맞춤이 있다.

첫 번째는 91년의 일이다. 철조망을 사이에 둔 윤여옥과 최대치의 입맞춤. 일제시대, 관동군으로 뽑힌 최대치(최재성 분)는 버마로 떠나기 전, 정신대에 끌려온 윤여옥(채시라 분)과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이별한다. 꼭 살아남아 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약속. 차마 최대치의 옷깃을 놓지 못하는 여옥을 두고 떠나려다, 대치는 철조망 위를 기어올라 여옥의 목을 끌어당긴다. 입맞춤. 그리고 대치는 일본군들에게 끌려 내려가 발길질을 당한다. 이를 망연히 바라보던 여옥. 짓밟히는 남자와 여자. 그들 앞에 펼쳐질 형극의 날들.

두 번째는 95년의 일이다. 대학 연극 무대에서의 윤혜린과 강우석의 입맞춤. 80년대 혜린(고현정 분)은 집회에 참석했다가 경찰의 폭력진압에 쫓겨 도망친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았던 법대생 강우석(박상원 분)은 혜린의 팔을 잡아끌고 숨을 곳을 찾는다. 숨어들어간 대학 극단의 연극 무대. 연극은 진행 중이고 경찰은 쫓아오고 있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우석은 혜린을 데리고 무대 위로 오른다. 경찰이 들이닥치는 순간 그들은 마치 연극의 한 장면인 것처럼 입맞춤을 한다. 머뭇거리며 경찰이 다른 곳으로 향하자 혜린은 우석을 밀치고 뺨을 때린다. 집회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나무라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비난하듯. 우석은 그저 미소 짓는다.

첫 번째는 <여명의 눈동자>, 두 번째는 <모래시계>다. 둘 다 김종학 PD의 작품이었다. <여명의 눈동자>는 한국 드라마를 그 전과 그 후로 나누어 버렸다. 관동군, 정신대, 제주 4.3, 해방 후의 혼란. 중국, 일본, 동남아 해외 로케이션 촬영. 비극의 한국 현대사 속으로 들어가 유장한 서사를 뽑아냈던 전무후무한 규모의 작품이었다. 위 아래로 길게 칼자국 흉터가 진 최대치의 왼쪽 눈은 모든 상처받은 마음과 역사의 상징과도 같았다.

4년 후, <모래시계>는 저녁 10시대의 평일 거리를 깨끗이 비웠다. 정치 깡패가 등장했다. 80년 5월의 광주가 이야기 되었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가 볼 수 있다니, 할 수 있다니. 우리가 감동한 것은 단지 드라마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런 감상을 느낄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서, 변한 세상에 대해서도 우리는 감동했다. 군부독재가 끝났고, 대통령 직선제 이후 드디어 문민정부가 시작된 시절이었다. 90년대였다. 어떻게 그때 벌써 이런 드라마를 만들 수 있었을까. 글쎄,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였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다. 마법 같던 시절의 기적 같은 드라마. 새로운 시대의 시작.

▲ 1995년의 <모래시계>(SBS),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니, 볼 수 있다니'라는 감상을 안긴 기념비적인 드라마다.

드라마 피디로 입사 시험을 치를 때, 가장 감명 깊게 본 드라마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은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할 사항이었다. 응시생들은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를 그 대답에 넣어야 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넣자니 누구나 대답하는 변별력 없고 뻔한 답변이 되었다. 빼자니 너무 중요한 개인적 경험과 감상을 빼는 꼴이 되어 또 진솔하지 못했다. 그 두 편의 작품과 김종학 PD는 그대로 기념비이자 움직일 수 없는 역사였다. 자본과 시청률에 따라 평가받고 흔들리는 드라마의 운명을 넘어, 작품 자체의 존재감을 90년대에 새겼기 때문이다. 한국의 20세기가 오롯이 담긴 두 편의 이야기는 그 시절 한국인들의 공동의 체험이 되었다.

지금 일하는 대부분의 드라마 피디들에게 그와 그의 작품의 존재는 꿈의 씨앗이었다. 빼어난 작품, 잊히지 않는 감동, 전설 같은 성공, 자신의 이름을 딴 독립 프로덕션의 설립. 드라마 피디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드라마가 무엇을 말할 수 있는지, 한국에서 드라마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그 모든 것을 고민하는 데에 있어서 김종학 PD는 거쳐 갈 수밖에 없는 관문이었다.

고시텔, 연탄불, 청테이프, 유서. 한 분야에서 최고의 성취를 거둔 사람의 최후에 같이 오르는 단어라기에는 그 비극성이 너무 짙다. 마치 극적 대조를 위해 일부러 배치한 소품처럼.

영웅의 몰락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과거의 성취와는 색이 달랐던 최근의 연출작들과 그를 둘러싼 잡음들. <태왕사신기>와 <신의>는 그의 관심이 다른 데로 옮겨갔음을 느끼게 했다. 그만이 변한 건 아니었다. 성공한 드라마의 기준은 달라져 있었다. '한류'는 모든 것을 바꿨다. 더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시장의 국제적 확장과 사업의 다각화. 새로운 세계는 얼핏 복음과도 같았다. 드라마 제작에는 늘 많은 돈이 필요했으니까. <겨울연가>를 시작해 일본에 수출하는 드라마들이 줄을 잇자, 모두들 일본을 향한 문화적 정복감에 취했다. 사실 <겨울연가>는 일본을 겨냥해 만든 작품도 아니었는데.

배우의 인지도와 스타성은 깡패가 되었다. 주연 배우의 출연료가 치솟았다. 해외 수출을 담보해서 투자를 유치할 수 있으니까. 10년 전 강수연이 <여인천하>의 출연료로 500만원을 받았을 때, 출연료가 지나치게 높다며 성토하고 훈계하는 사설이 대서특필되었다. 10년 후인 지금 일부 주연급 톱 배우의 출연료는 억대를 넘어섰다. 그러나 배우 출연료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비판의 대상이 아닌 셀러브리티에 대한 동경과 가십의 대상일 뿐이다. 그리고 변화를 가져온 주체들은 그 변화에 종속되고 소외되기 시작했다. 속절없이.

한연노(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가 발표한 성명에서는 김종학 PD를 '시스템의 가해자이자 피해자'라고 기술하며 '방송사만 웃는다'고 방송사를 성토했다. 정말 그럴까. 방송사가 모두를 소외시킨 것일까. 사실 이는 모든 주체가 소외되었다는 판단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웃는 방송사'는 없다. 방송사는 단일 주체가 아니다. 드라마 판의 주체들이 모이는 장(場)일뿐이다. 제작사, 배우, 작가, 연출, 편성, 사업, 드라마에 관련된 모든 주체들이 저마다 자신의 몫을 최대한 찾아가려 몸부림치는 곳이 방송사다. 수많은 고래들이 싸우면서 새우 등이 터진다. 단역 배우들의 출연료와 스태프의 임금 미지급 사태가 그 예다. 방송사는 '고래'가 아니라, 그 고래가 싸우는 바다의 개념에 가깝다. 배우의 결정에 따라 편성이 바뀌고, 제작사의 결정에 따라 감독이 바뀌기도 하는 세상이다. 심판 없고 규칙 없는 드라마 제작 판에서 각자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사실 한연노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성명은 방송사라도 지목해야 최소한의 변화가 촉구될 것이라는 희망의 표현임을 이해한다.

김종학 PD의 죽음으로 드라마 제작 관행의 문제를 다시 조명하겠다는 포부는 속절없다. 어디 선명한 처방 하나로 세상이 좋아질 만큼 세상이 단순하던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드라마 판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그 노력에 힘을 싣고 누를 끼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다만 생각한다. 우리는 무엇을 잃어버린 걸까. 무조건 과거가 아름답고 현재가 괴로운 것은 아닐진대, 우린 무엇을 돌파해 어디로 온 것일까. 왜 그는 그렇게 떠나야 했을까.

그가 출세작을 남긴 90년대를 추모한다. 그 시절은 비단 드라마만의 꿈을 남긴 시절이 아니었다. 질곡의 한국사가 천천히 상승을 거듭해 그 과실을 취한다고 여겨졌던 시대였다. 80년대 일본의 버블 경제가 그랬듯이. 90년대 한국의 대중문화는 역사적 상승감과 세기 말의 자성적 분위기가 결합된, 독특한 시기의 산물이었다. 일단 시도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시스템의 초석이 되었다. 한국 대중문화만의 정체성이 'X세대'라는 꼬리표를 달고 서서히 자신만의 꼴을 형성해 가던 최초의 지점, 대중문화의 창작자과 수용자 모두가 창조적 꿈을 그리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문화 공산품의 안정적인 대량 생산과 대형 성공'을 목표로 하면서, 구심점을 잃고 휘청휘청 여기까지 온 셈이었다. 창작자들의 표현의 욕구와 수용자들의 감상의 욕구가 그 구심점이었다면 지금은 너무 많은 것들이 어지러이 산만하게 펼쳐지고 호흡도 짧아졌다.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강렬한 고민으로 가득했던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는 그렇게 <태왕사신기>와 <신의>로 옷을 갈아입었다. 취할 것을 취하고 잃을 것을 잃으면서. 그런데 김종학 PD가 90년대에 꾸었던 미래의 작품이 이런 모습이 맞았을까. 그는 만족하고 행복했을까? 그의 꿈의 색은 어떻게 달라졌던 것일까.

그의 꿈의 변화는 곧 드라마 피디들이 꾸는 꿈의 변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 우리는 모두 공동의 감정적 체험을 기대한다. 어떤 이야기로 그 체험을 가득 채울 수 있을까. 그리고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는 그 모태와도 같은 경험이었다.

"드라마에 아직도 밤을 지새우고 있는 후배들, 그들에게 폐를 끼치고 가네. (…)
혹시나 PD들에게 나쁜 더러운 화살이 가지 않길 바라며…"


고인의 유서에 남긴 글.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한 직업군을 대표하는 사람임을, 한국의 90년대에 꿈의 한 축을 출발 시킨 사람임을. 자신이 심은 꿈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그리고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함을.

그 꿈들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아아,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만을 남겨두고 90년대여, 너는 영영 떠나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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