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4조 파운드 소송으로 이어진 말레이시아 종족 갈등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4조 파운드 소송으로 이어진 말레이시아 종족 갈등

[서남 동아시아 통신] 힌두 원리주의와 말레이시아 인도인

말레이시아가 독립 국가로서 성립된 1957년 이후, 다양한 커뮤니티의 화합과 조화로운 공존은 말레이시아의 중요 국가 목표 중 하나였다. 말레이시아의 인구는 인종적으로 다수인 말레이인이 67.4퍼센트를 차지하고 있고, 소수 집단으로 24.6퍼센트를 차지하는 중국계, 7.3퍼센트를 차지하는 인도계가 주요한 구성원이다.

말레이시아는 독립 전부터 말레이인과 소수 민족, 특히 중국인 사이의 지속적인 갈등을 겪었고, 이는 1963년 중국계가 우위를 차지하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축출당하여 독립 국가를 선포한 것으로 상징적으로 표면화되었다. 1969년에 일어난 인종 분규는 말레이시아 사회에 잠복하고 있던 소수 민족 문제가 독립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경제적 불균형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되었던 소수 민족 문제가 정치 분야에까지 확산되었음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후 말레이시아에서는 대규모의 분규나 폭동은 일어나지 않았고, 경제적으로 말레이인을 우대하는 부미푸트라 정책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각 종족 집단이 정치적으로 연합하려는 양상도 보였다. 정치권에서는 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를 아우르는 정당 연합 국민전선(Barisan National)이 선전을 펼치면서 각 커뮤니티 간의 분쟁과 갈등은 상당히 봉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각 집단의 상이한 문화, 전통, 종교는 오히려 갈등 양상을 문화적인 면으로 다변화시키고 있기도 하다. 이는 2000년 이후 특히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2000년대 중반, 말레이시아 인도인의 주목을 끌었던 소송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중 하나는 힌두인 샤말라(Shamala)의 무슬림 남편이 두 아이들의 양육권을 가져가서 이후 아이들의 엄마인 샤말라와 상의 없이 아이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킨 것이었다. 샤말라는 이에 아이들의 개종이 정당하지 않다며 소송을 청구했다.

또 하나는 2005년 인도계인 무르티 마니암(Moorthy Maniam)이 사망하자 이슬람 종교 단체들이 이슬람식 장례를 치르고 그를 매장한 것이었다. 무르티 마니암의 미망인은 남편은 죽을 때까지 힌두였다며 이에 항의하고 소를 제기했다. 두 사건 모두 무슬림과 힌두 간의 종교 분쟁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HINDRAF의 수장, 와이타 무르티(P. Waytha Moorthy)

▲ 와이타 무르티. ⓒ서남포럼
이후 2007년 말레이시아 인도인 커뮤니티는 또 하나의 소송 소식을 접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와이타 무르티(P. Waytha Moorthy)라는 인도계 말레이시아인 변호사의 주도로 영국 정부를 상대로 영국 법원에 제기된 소송이었다. 1957년 영국이 인도인을 무방비 상태로 다수인 말레이 무슬림의 손에 맡기고 철수하는 바람에 이후 말레이시아에서 인도인들의 인권 침해가 심각하게 일어났다며, 4조 파운드에 달하는 손해 배상을 청구함과 동시에 말레이인의 우위를 규정한 말레이시아 헌법 제153조를 폐기해 달라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4조 파운드라는 천문학적 배상이 실현 가능성이 있는지, 말레이시아 헌법의 폐기를 영국 법정에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지 등의 실질적인 문제는 고사하고(워낙 상징성이 강한 사건이니, 타당성 문제를 논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소수 민족들의 화합이 상당한 정도로 진행되고 있던 2007년에 이런 소송이 제기된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영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변호사 와이타 무르티는 HINDRAF(Hindu Rights Action Force)라는 인도계 단체의 지도자이다. 명칭에서 볼 수 있듯이 '힌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실력 행사'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급진적인 단체이다. HINDRAF는 30여 개의 힌두교 계열 비정부기구들이 모여 2005년에 새로 설립한 단체라고 하는데, 말레이인의 우위를 규정한 말레이시아 헌법에 반대하고 종교의 자유를 옹호하며 인도계의 빈곤 퇴치가 단체의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 외에 경찰 조사 중에 발생한 인도인들의 사망 사건을 재조사하라는 요구도 하고 있다.

힌두 아내들의 잇따른 고소와 '힌두'의 권익을 내세운 급진적인 인도계 단체의 상징적인 소송은 모두 힌두-무슬림의 문제인 동시에 인도계-말레이계 사이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이기도 하다. 최근의 종교적 관습 등을 둘러싼 갈등이 단순한 종족 분규보다 더 위험하다고 보이는 것은 종족과 종교가 지극히 단순화된 형태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위의 사건들에서 인도계는 무조건 힌두로, 말레이계는 모두 무슬림으로 치환되어 있다.

인도를 공부하는 내 입장에서 더욱 주목되는 부분은 이러한 종족과 종교의 단순화된 치환이 2000년대 이후에 가속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시기는 북인도에서 시작된 힌두 원리주의 열풍이 결국 힌두 원리주의 정당을 중앙 정부에 입성시킨 후, 인도 사회의 각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장해나가던 때였다.

재외 인도인(NRI : Non-Resident Indians) 사이에도 힌두 원리주의의 바람이 유행병처럼 번졌다. 부유한 재외 인도인의 돈이 힌두교 단체들을 통하여 인도에 쏟아져 들어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 돈의 일부는 인도에서 이슬람, 기독교 등 소수 종교의 이익에 반(反)하여 사용되었다. 해외 교포의 센티멘털한 애국심이 종교적 열정과 뒤섞여 묘한 민족의식으로 표출되었다.

인도에서 힌두교를 중심에 둔 종교적 민족의식은 '힌두스탄(Hindustan : 인도의 전통적인 명칭)은 힌두의 것'이라는 슬로건을 부활시켰다. 힌두가 아닌 이들은 힌두스탄의 주인이 아니니 조용히 복종하고 살라는 식이다. 무슬림, 기독교도, 불교도 등 20퍼센트에 육박하는 소수 종교인들을 소외시킬 수밖에 없다.

당시 인도에서 불었던 힌두 원리주의의 열풍은 특히 무슬림들을 타깃으로 하여 수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모스크가 파괴되고, 많은 무슬림들이 폭동으로 희생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교회가 습격을 당하고 기독교 선교사 가족이 몰살당했다.

똑같은 민족의식은 재외에서 소수파로 살고 있는 인도인들을 '힌두의 영광'을 찬양하며 똘똘 뭉치게 만들었다. 동시에 말레이시아의 경우와 같이 무슬림 다수의 사회에 살고 있는 힌두들은 그 사회 내 집단 간의 갈등을 종교 문제로 치환시켰다. 소수 집단의 고양된 민족의식은 주류 사회의 반작용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특히 이것이 원리주의적 종교 의식과 결합되었을 때는 더욱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뒤틀린 민족의식은 인도 본국의 인도인들에게도, 각국에 흩어져 있는 재외 인도인들에게도, 또 재외 인도인 커뮤니티와 공존하고 있는 여타 집단들에게도 해로운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말레이시아의 종족과 종교 갈등이 화합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는 그저 작은 에피소드이길 바랄 뿐이다.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화요일, 일요일 동시 게재합니다. 이지은 서강대학교 강사(국제대학원)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91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