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례로 안드레이 니콜스키가 연주한 쇼팽 전주곡은 내가 무척 좋아하는 연주 중의 하나임에도 거의 입 밖에 꺼내는 일이 없다. 니콜스키의 연주는 객관적으로는 추천할 자신이 없는, 개성이 강한 연주다. 대체로 느린데다 저음 부분의 울림이 무척 어둡고 둔중하며, 그러다가도 포르테에서 갑자기 뻥 하고 터지는 식으로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 나는 주체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부딪히는 그 어둠이 좋다. 특히 2번 전주곡에서 다른 어딘가에 정신이 팔린 듯이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왼손 파트는 지금까지도 다른 어떤 연주보다 좋아한다. 그러나 그 어둠이 모두의 마음에 가닿을 수는 없다는 것도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피아니스트, 안드레이 니콜스키의 쇼팽은 나의 쇼팽이다.
▲ <마이너리티 클래식>(이영진 지음, 현암사 펴냄). ⓒ현암사 |
어쩌면 그도 관광지가 아니라 자신만의 해변을 찾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추천 요청에 있어서는 최악의 상황이다. 나는 거기까지는 도와줄 수가 없다. 그게 가능하려면 나는 그를 나 자신처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을 완전히 표현하지도, 심지어 제대로 알지도 못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큐어>가 보여주었듯 우리가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은 거의 무의미하다. 그는 자신을 옳게 설명할 수 없다. 설혹 그가 제대로 설명했다고 해도 내가 그의 '말'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분명히 뭔가를 놓칠 것이다. 누군가 '나의' 그 무엇을 골라 달라고 한다면 나는 그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행운을 빌어줄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는 불가지론적인 입장(또는 한물간 언어-구조주의적 껍데기를 빌려 온 센티멘털)에서 멈추고 싶지 않다. 언어의 불완전함이야말로 사람들이 음악을 찾아 듣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소의 생각 속에서는 채 인식하지도 못했던 자신의 조각들을 어떤 풍경 속에서 비로소 발견하고 전율하는 고고학적인 기쁨이야말로 다양한 음반 중에서 자신의 마음이 추구하는 리듬과 음색을 찾아 헤매는 이유가 아닐까.
클래식 음악의 한 곡 한 곡이 바다라면 각 곡들의 수많은 연주들은 알려진 각각의 해변들이다. 이 수백 개의 바다와 수천수만 개의 해변 중에서 '나의' 바닷가를 발견하고는 거기에 마음을 뉘이고 생각하고 추슬렀다가 그 상념을 단서 삼아 다시 다른 조각을 찾아 떠나는 것. 그래서 더 많은 나를(그게 꼭 멋지리라는 법은 없다) 발견하고 더 많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 마치 여행 같은 일이다. 아니, 분명히 하나의 음반은 하나의 여행이다.
문제는 여행의 방법이다. 클래식 음악 방송을 자주 들으며 종종 한 곡씩 낚는 '낚싯대 드리우기'를 기본적인 방법으로서 권한다. 주위에 음악과 '당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다면 행운이다. 함께 듣고 움직이고 파 내려가면 좋다. 그러나 그런 행운은 잘 없으므로 곧바로 차선책에 대해 말해보겠다. 음악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이다. 여기서도 언어의 문제가 관건이 된다. 바로 음악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음악 교양서들을 살펴보면 직접적인 언어로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비유법을 사용한 경우가 가장 흔하다. 언어가 음악을 직접 지시할 때, 사실 비유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문제는 그게 다 주관일 뿐이라는 점이다. 인상비평은 정보의 전달이라는 측면에서는 대체로 낙제점이다. 반면에 악보와 사료를 바탕으로 한 가능한 객관적인 분석을 시도함으로써 풍부한 정보 전달을 보장하지만, 일반 언어와는 다른 체계를 갖춘 음악 이론-언어를 배우지 않고서는 이해 자체가 불가능한 (준)전문 음악서들도 있다.
그런가 하면 언어가 음악을 직접 지시하지 않고 자신만의 구조물을 세운 뒤에, 그 플롯의 형태가 목표하는 음악의 구조 또는 분위기를 묘사해 내는 문학적인 방법도 있다. 이 문학적 방법은 대단히 인상적인 사례들을 남겼는데, 이때도 문제는 있다. 독자들이 그 구조의 유사성을 알아채기가 쉽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게다가 전문서와 달리 독자들은 그 작품을 이해했다고 판단해 버린다).
▲ <몰락하는 자>(토마스 베른하르트 지음, 박인원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
마지막 부류는 바로 데이터베이스 형식이다. 지시가 아닌 정보의 집합체로, 각종 백과사전이나 연대기, 에피소드들의 모음 같은 책들이다. 작성자의 입김이 인상비평의 형식으로 삽입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데이터베이스라는 본연의 목적을 넘어설 수는 없다. 정보가 우선하고 독자들은 그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자료들을 취사선택할 수 있어서(즉,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갈 수 있어서) 이쪽이 가장 권장된다.
여기에는 장점이 하나 더 있다. 어떤 음악 또는 음반을 접할 때 거기에 실화에서 기반한 스토리라인을 덧붙임으로써 음악에 더욱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는 점이다. 인간은 스토리를 좋아한다. 영화에 삽입된 음악 때문에 클래식에 입문한 사람들이 많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스토리 만들기'가 음악 감상의 강력한 동인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드물게는 알렉스 로스의 현대음악 연대기 <나머지는 소음이다>(김병화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처럼 일정 이상의 선행지식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고, 불행하게도 별 쓸모없는 가십거리 나열에 불과한 경우는 그보다 많다.
이영진의 <마이너리티 클래식>(현암사 펴냄)은 대중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형 음악 교양서가 빠질 수 있는 위의 두 가지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본래 잡지에 연재하던 형식이어서 각 챕터의 호흡도 짤막하고, 어려운 표현도 거의 없으며 덜 유명한 연주자들과 그들이 남긴 음반들을 선별하고 추천한 데에서도 정성이 느껴진다. 각 음반에 대한 평을 짤막하게 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묘사에만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있으나, 분량상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되며 그 표현 자체도 납득할 만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 <나머지는 소음이다>(알렉스 로스 지음, 김병화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21세기북스 |
피아니스트 윌리엄 카펠과 유리 에고로프가 보이는 선명한 대조도 인상적이다. 둘 다 요절한 피아니스트지만 카펠은 자신의 인생처럼 힘과 결기로 가득 찬 연주를 선보이다가 비행기 사고로 급사했고, 에고로프는 망명자와 동성애자라는 두 가지의 소수자 입장을 견디지 못하고 약물 과다로 사망한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단호하고 강렬한 카펠과 둥글고 영롱한 울림의 에고로프, 둘의 연주가 얼마나 다른지 실제로 들어보면 마치 그들의 인생이 건반 위에서 재현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받을 수 있다.
물론 음악에 스토리를 입히는 것은 음악 감상에 음악 외적인 부분이 개입한다는 측면에서 권장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이므로 강제로 제거할 사안이 아니다. 나는 앞서 음악 감상의 여정이 자신의 내면이 찾으려는 풍경을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자신이 원하는 풍경이 어떤 음악(사조 또는 특정 곡)의 구조 자체, 즉 해변이 아니라 바다 자체라면 그는 알아서 자연스럽게 바다로 향할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실제로 어떤 음악 또는 음악가를 좋아하게 될지는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따라서 우선은 어디에라도 당도해보는 것이, 즉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 두려움 없이 자신이 혹하는 스토리를 찾아 그 스토리를 품은 음악과 함께 머무르기를 권하는 바다. <마이너리티 클래식>은 거기에 필요한 소재들을 많이 제공한다. 그리고 여기에 <마이너리티 클래식>만의 장점이 두 가지 추가된다.
▲ 요한나 마르치의 슈베르트 앨범. |
둘, 덜 유명한 음반들이 많이 소개된다. 명백한 장점이다. 우선 남들이 죄다 몰려 듣는 해운대 같은 명반에 대한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명성이야말로 불필요하며 부작용으로 가득한 음악 외적 요소다. 왠지 나도 좋다고 말해야 할 듯한 압박도, 꼭 들어야 한다는 식의 부담도 음악 감상의 장애물이다. 그러니 가능한 벗어나는 게 좋다. 어차피 명반은 언젠가 듣게 될 거니까 말이다.
▲ 발레리 아파나시에프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앨범. |
이러한 특징들로 인해 <마이너리티 클래식>은 클래식 음악에 입문한 뒤 여정의 실마리를 찾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이다. 물론 이 책 자체가 위대한 업적은 아니다. 음악가들의 삶 자체가 내뿜는 빛을 제외하면 책 자체가 특별히 반짝이는 문장이나 성찰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게다가 음반 추천에 있어 태생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연재 형식으로 작성된 원고다보니 연재 당시에 국내에서 입수 가능했던 음반과 책이 발간된 현재 시점에서 구할 수 있는 음반에 차이가 생긴 것이다. 일례로 책에서 구할 수 있다고 언급한 루에드 랑고르의 교향곡집을 위시한 Dacapo 레이블이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지 벌써 수년이 지났고, 반면에 절판되었다고 언급된 알렉시스 바이센베르크의 쇼팽 야상곡은 최근 라이센스로 재발매되었다. 세월 따라 뭐가 새로 나오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는 것이 인지상정인지라 이런 괴리는 어떤 상품을 추천하는 책들의 불가피한 운명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런 점을 감안하고서라도 <마이너리티 클래식>은 여전히 가치 있는 책이다. 좋은 대상들을 선별한 뒤에 그에 대한 충실한 자료들을 수록한 뛰어난 데이터베이스의 역할이라는 측면에서는 최근에 등장한 클래식 음악 교양서 중에 견줄 상대가 없다. 이 책을 읽고 마음에 드는 스토리를 찍은 다음에 그 인생에서 펼쳐진 음반들을 골라 청취해 보자. 당연히 실패할 수도 있고, 때로는 현재의 자신이 아직 그 음악의 진가를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보장할 수는 없다. 어쩌면 클래식 음악 자체가 자신에게 아무런 흥미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생이 원래 그런 거 아니겠는가. 관건은 실패의 확률을 줄이는 것이다. <마이너리티 클래식>은 그 목적에 충실히 부합하고…뭐 더 필요한 거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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