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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월스트리트 경제위기를 예측한 바로 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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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월스트리트 경제위기를 예측한 바로 그 책!

[이렇게 읽었다] 로베르 부아예의 <조절이론>

1991년 소련의 붕괴와 이어진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이 맑스 경제학의 대위기를 초래했듯 2008년 세계경제위기는 이른바 주류 경제학(Mainstream Economics), 즉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대위기를 초래하였다.

따라서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비현실적인 추상적 수학 모델의 '아름다움을 진리로 착각'하고 있는 경제학(Paul Krugman의 비판, 2009년), 제도와 문화를 외생적 변수로 보고 이론적 모델 설정에서 부당하게 배제하는 순수 경제학(Jeffery Hodgson의 비판, 2010년), 효율시장가설처럼 자원배분기구로서 시장이 완전하다고 맹신하고 자유방임을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Richard Freeman의 비판, 2010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 <조절이론>(로베르 부아예 지음, 김태황·서익진·서환주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 ⓒ뿌리와이파리
1929년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버금가는 2008년 대침체(Great Recession)가 초래한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의 이론적 파탄을 계기로, 1929년 이후 그랬던 것처럼 경제학계 내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모색되고 있다. 한때 헤지펀드의 대부였던 조지 소로스(George Soros)가 창립한 '새로운 경제적 사고 연구소'(Institute for New Economic Thinking)의 활동은 그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금융 불안정성 명제에 기초하여 자본주의에서 금융위기 발생의 필연성을 강조한 하이만 민스키(Hyman Minsky)에 대한 재조명, 금융에 대한 규제와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의 불가피성을 주장하고 있는 케인즈 경제학으로의 회귀, 고삐 풀린 시장이 사회를 파괴하는 과정을 분석하고 시장이 제도와 문화를 통해 사회 속에 착근(embedded)해야 함을 강조한 칼 폴라니(Karl Polanyi)에 대한 관심 고조, 그리고 무엇보다 사적 소유와 시장에 기초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에서 위기가 발생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칼 맑스(Karl Marx)의 <자본론> 열독 붐 등은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의 위기 속에서 새로운 경제학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다양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볼 때, 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 붕괴를 계기로 대위기에 빠진 후 아직도 그 위기를 극복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하지 못한 기존의 맑스 경제학과 2008년 세계경제위기 이후 이론적으로 파탄한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한 대안적인 진보 경제학으로서 1970년대 중반 프랑스에서 탄생하여 진화해온 조절이론(Régulation Theory)을 주목할 가치가 있다.

미셸 아글리에타(Michael Aglietta)와 로베르 부아예(Robert Boyer)가 주도해온 조절이론은 생산관계를 중심으로 자본주의를 분석하는 맑스의 통찰에 기초하면서도 맑스를 현재적으로 가공하여 새로운 정치경제학을 정립하고자 한다. 따라서 조절이론은 맑스주의의 이론적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자본론>의 분석을 수정하거나 확장하고자 한다. 이러한 수정과 확장을 위해 제도학파(Institutionalist)의 제도분석과 후기 케인즈학파(Post-Keynesian)의 거시 경제분석의 방법론을 맑스 경제학에 접목시키고 있다. 방법론의 측면에서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조절이론=맑스 경제학+제도 경제학+케인즈 경제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를 두고 기존의 맑스 경제학에서는 조절이론을 절충론이라 비판하며 평가절하한다. 서로 다른 이론체계를 무비판적으로 혼합시켜놓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서로 다른 방법론의 이종교배를 통해 새로운 방법론을 창출하려는 시도라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조절이론은 맑스 경제학에 기초한 학문 융합 시도라 할 수 있다. 이런 방법론 융합 과정에서 조절이론은 <자본론>에서 죽은 것을 버리고 살아있는 것을 계승하며 주요 개념들을 현실 자본주의의 구체적 분석에 유용하도록 수정하고 확장하는 이론적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맑스의 <자본론>을 성경처럼 신성시하고 일체의 수정을 이단으로 배척하는 교조적 맑스주의, 또 자본주의의 심대한 구조 변화와 다양성을 무시하고 자본주의의 본질불변론에 집착하는 '화석화된 맑스주의'(ossified Marxism)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조절이론의 시도를 정통을 파괴하는 이단의 배교행위로 보고 있다. 하지만 교조적 맑스주의와 화석화된 맑스주의는 자본주의의 구조와 변화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지 못하고 새로운 사회를 위한 비전과 정책 대안 제시에 무력하다는 것이 입증된 지 오래다.

축적체제와 조절양식이라는 개념은, 맑스의 직관에 기초하면서 <자본론>을 수정하고 확장한 조절이론의 이론적 혁신의 산물이다. 이 두 중심 개념을 통해 조절이론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위기, 자본주의의 다양성과 가변성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었다. 최근 자본주의의 다양성론(Varieties of Capitalism)이 주목받고 있지만 조절이론은 자본주의의 다양성을 체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공한다.

특히 축적체제 분석은 각국의 국민계정의 통계자료를 사용하여 시공간에 걸쳐 관찰되는 다양한 축적체제들의 파라미터를 엄밀하게 추정해내는 작업으로까지 나아감으로써, 재생산 도식 분석에 머물고 있는 기존의 맑스 경제학에 비해 훨씬 큰 현실 설명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분석 방법을 채택함으로써 조절이론은 경제학계 내에서 주류 신고전파 경제학 및 케인즈 경제학에 대해 비교우위를 가지고 경쟁할 수 있는 시민권을 얻게 되었다. 이것이 맑스의 통찰에 기초한 제도분석으로 자본주의를 해명하는 제도정치 경제학(Institutional Political Economy)으로서의 조절이론이 가지는 이론적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론적 특징을 가지는 조절이론을 정립하고 발전시키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해온 가장 대표적 학자가 바로 로베르 부아예다. 로베르 부아예의 2004년 저서 <조절이론: 1. 기초(Théorie de la Régulation: 1. Les Fondamentaux)>(김태황·서익진·서환주 옮김, 뿌리와이파리 펴냄)는 조절이론의 최근까지의 이론적 혁신을 가장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제시하고 있는 노작이다. 프랑스에서 유학한 경제학자들이 번역한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조절이론이 기존의 맑스 경제학과 신고전파 경제학의 방법론 모두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독자적 방법론을 정립하고 있는 정치경제학임을 알 수 있다.

이 책에서 부아예는 우선 왜 지금 정치경제학으로의 복귀가 필요한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초를 이루는 제도형태들이 무엇인지, 국가와 경제의 관계는 어떠한지를 밝히고 있다. 이어서 그는 교조적 맑스주의가 주장하는 자본주의의 철의 일반법칙은 없으며, 대신 사회세력들 간의 제도화된 타협의 산물인 제도를 통해 조절되는 방식, 즉 조절양식의 다양한 전개만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임노동 관계, 경쟁 형태, 화폐제도와 같은 제도 형태들이 총체적으로 결합되어 자본주의의 시간적 가변성과 공간적 다양성을 낳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는 신고전파 이론의 균형 개념이나 불균형 개념과도 구별되고 기존 맑스 경제학의 재생산 개념과도 다른 '조절'(régulation) 개념의 독자성을 부각시킨다.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의 다양한 조절양식을 소개한다.

자본주의적 축적의 일반 법칙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맑스경제학과는 달리 조절이론은 축적체제 개념을 통해 자본주의의 역사적 동학에 접근한다. <조절이론>에서 부아예는 축적체제 개념을 정교하게 논하고 있고 포드주의(Fordism)를 비롯한 자본주의의 다양한 축적체제의 특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수리경제학적 접근에 기초하여 축적체제의 일반모형을 설정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아울러 축적체제의 지속가능성의 조건을 밝히고 있다. 독자는 이를 통해 조절이론이 케인즈주의 거시경제학과 구분되는 특유의 제도 거시경제학(Institutional Macroeconomics)을 발전시키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은 위기 이론에 할애되고 있다. 부아예는 조절이론의 위기 이론이 임노동관계를 포함하는 맑스의 생산양식 개념 기초 위에 성립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조절이론은 위기를 축적체제와 조절양식으로 구성된 발전양식(mode of development)이 가지는 활력이 내생적으로 고갈된 결과라고 보는 점에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내재적 모순으로부터 위기 발생을 해명하는 맑스 경제학의 전통 위에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조절이론은 맑스의 공황 이론과 위기의 근본 원인을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에서 찾는 대부분의 맑스주의 위기 이론과는 다른 위기 이론을 발전시켰다.

부아예는 이 책에서 축적체제의 위기와 조절양식의 위기, 요컨대 발전양식의 위기에 초점을 맞추어 위기를 설명한다. 이는 공황 이론과 자본주의의 체제 위기 중심으로 위기 이론을 전개하는 기존의 맑스 경제학 위기 이론과 구분된다. 부아예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분석한 공황은 '조절의 일부분으로서의 위기'로 파악된다. 자본주의의 체제 위기는 생산양식의 위기로 본다.

조절이론이 밝히려는 발전양식의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하나의 축적체제 그리고 그에 상응한 조절양식이 생명력을 다할 때 나타나는 위기이다. 이러한 위기 유형은 자본주의 역사의 장기적 동학 과정에서 나타났음도 불구하고 기존의 맑스 경제학이 해명 못한 부분이다. 장기파동(long wave)이론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이론의 체계성 측면에서 조절이론에 미치지 못한다. 조절이론의 독특한 위기이론을 부아예는 이 책에서 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론에 기초하여 부아예는 <조절이론>에서 제2차 세계 대전 후 선진국에서 성립한 포드주의 발전양식의 위기, 한국처럼 수출 주도 발전양식을 가진 대외의존경제의 위기, 1990년대 일본 자본주의의 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80-1990년대 수입대체 모델을 가졌던 라틴아메리카의 위기, 1990년대에 미국에서 전형적으로 성립한 금융주도 축적체제의 위기 등을 분석한다. 특히 금융주도 축적체제의 성립과 그 위기 요인을 비교적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프랑스에서 이 책이 처음 출판된 2004년 이후 4년만인 2008년에 발생한 미국 월스트리트 발 세계경제위기를 예측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저자인 부아예의 이론적 통찰력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조절이론>의 한국판 서문에서 부아예는 조절이론이 위기의 현대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한 필수 이론임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판 서문은 2008년 위기 이후 최근까지의 자본주의의 변화 특히 그 위기 양상을 탁월하게 묘사하고 있다. 아울러 조절이론의 이론적 특징을 간명하게 요약하고 있다. 책의 군데군데 그려진 그림은 저자 특유의 설명법으로 조절이론의 진수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옮긴이들이 후미에 단 조절이론 소개는 이 이론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 매우 유익할 것으로 생각된다.

조절이론은 시장만능을 믿고 자유 시장을 주장하는 신구 보수주의와 대립함과 동시에 자본주의의 철의 법칙을 불가피하게 보고 자본주의의 최종위기에 집착하는 구 진보주의와도 대립하고 있다. 사회를 양극화하고 파괴하는 경향이 있는 시장을 제어할 수 있는 보다 나은 제도설계를 통해 자본주의 내에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진보적 발전양식을 지향하려는 새로운 진보주의와 조절이론은 친화력을 가진다.

조절이론은 새로운 진보에게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보는 관점과 진보적 경제정책 수립을 위한 상상력을 제공한다. 이 책에서 부아예는 조절이론이 새로운 진보의 정치경제학임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 사회주의 붕괴이후 비전을 상실하고 화석화되어 상상력이 고갈된 기존 맑스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진보의 경제학으로서 조절이론이 생명력을 가지고 진화하고 있음을 이 책은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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