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오~샹젤리제♬" 할배들과 함께 춤을!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오~샹젤리제♬" 할배들과 함께 춤을!

tvN+나영석 PD의 버라이어티 <꽃보다 할배>

나영석 PD가 연출한 평균연령 76세 남자배우들의 여행 버라이어티 tvN <꽃보다 할배>를 보는 순간, 문득 6년 전이 떠올랐다. 지난 2006년 여름 "자급자족 야생 버라이어티"를 외치는 강호동의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시작한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은 나영석 PD를 일명 '스타PD'로 만들어 준 프로그램이었다. 6년 후 지상파에서 케이블로 옮겨갔고, 국내가 아닌 해외로 여행을 떠났고, 패기 넘치는 젊은이 대신 조금만 걸어도 무릎이 아픈 '할배'들이 주인공이 됐다. 야외취침은커녕 복불복도 꿈도 못 꾸는 상황이 된 것이다.

차이점은 그 뿐이 아니다. '1박 2일'에서 처음부터 '은초딩'(은지원)이 만들어지고 '국민일꾼'(이수근)이 탄생한 건 아니었다. 이수근이 처음부터 웃겼던 것도 아니었다. 첫 회에서 강호동이 이수근의 마이너스 통장을 공개해도 이수근은 마땅한 애드리브를 던지지 못했다. 제작진이 걸핏하면 굶기고, 고달픈 운전을 시키고, 멤버 중 한 명을 잔인하게 낙오시키고, 잠자리 복불복 게임을 시켰다. 그 안에서 서서히 캐릭터가 쌓였다.

그러나 '꽃보다 할배'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캐릭터가 생기고 관계망이 형성됐다. 생전 처음 와보는 파리임에도 무조건 돌진하는 '직진' 이순재, 형님들의 모닝커피를 담당하는 '일섭다방' 주인이자 무릎이 아프면 장조림이고 뭐고 일단 발로 걷어차는 '심통' 백일섭, '구야형'이라는 별명만큼이나 자상하고 사려 깊은 신구, 이서진보다 더 세련된 패션 센스를 자랑하는 로맨티스트 박근형, 그리고 "길이나 찾고 표나 끊고 식당이나 수소문하는" 마흔 셋 막내 이서진. 이 모든 것이 첫 회, 리얼 타임으로 따지면 파리에 도착한 첫 날 만들어진 것이다.

▲ tvN 여행 버라이어티 <꽃보다 할배> ⓒtvN

뚜렷한 캐릭터만큼이나 대립 구도도 명확하다. 루브르 박물관에서 이순재는 그림에 집중하는 학구파인데 반해 백일섭은 출구 타령만 하는 출구파였다. 저녁 식사 후 일정을 정하는 과정에서도 이순재는 샹젤리제 산책을 원하는 직진파였으나, 백일섭은 숙소 복귀를 원하는 숙소파였다. 그 와중에 신구와 백일섭은 걸음 속도라는 별 것 아닌 주제로 옥신각신했다. '할배'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티저 영상만으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지금 샹젤리제를 걷느냐 숙소로 가느냐의 문제였다. 급기야 이서진은 "기권"을 선포했다.

취침 전 무조건 카메라를 철수시키라는 백일섭의 엄포 때문에 '1박 2일'처럼 잠들기 전 멤버들의 대화는 들을 수 없다. 강호동의 코골이처럼 리얼한 잠버릇도 담아낼 수 없다. 아무려면 어떤가. 아침 풍경 30분만 찍어도 충분한 분량이 나오는 것을. VJ들과 민박집 주인을 제치고 새벽 5시에 기상한 할배들의 모습은, 거창한 아침밥을 내건 기상미션이 있어야 겨우 일어나는 '1박 2일' 멤버들의 모습과 대조된다. 일어나자마자 아내와 통화하는 로맨티스트 박근형, 일어나자마자 복대와 한바탕 난리를 피우는 신구, 일어나자마자 아침밥을 기다리며 물병에 소주를 조심스럽게 따르는 백일섭, 트로트 벨소리에 번뜩 잠이 깬 까치머리 이순재. 모두가 부은 얼굴과 부담스러운 쌍꺼풀로 카메라를 바라보던 '1박 2일' 젊은이들보다 훨씬 다채로운 풍경이다. 심지어 나이 70에 형님들 커피를 타고, 나이 74에 가지런히 수저를 놓는 광경을 대체 어느 방송에서 볼 수 있단 말인가.

'1박 2일'의 나영석 PD는 출연자들과 입수를 건 내기를 진행할 만큼 적극적인 제작진이었다. 그러나 '꽃보다 할배'의 나영석 PD는 노련한 협상자가 아니라 다소곳한 중재자에 가깝다. 샹젤리제파와 숙소파로 분열된 '할배'들을 설득했던 것도 막내 이서진이 아니라 나영석 PD였다. 제작진이 만든 판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2회 동안 제작진이 관여했던 것은 '이서진 몰카' 뿐이었다. "뭉치지 못해서 안달이 난" 할배들, 심지어 70년 넘게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50년 넘게 배우의 길을 함께 걸어 온 할배들이 모였으니 제작진이 따로 개입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할배들 자체가 살아있는 이야기니 말이다.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신선함이 떨어지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요즘, '꽃보다 할배'는 '할배 버라이어티'라는 신생 장르를 만들어냈다. 평균연령 76세 '할배'들이 파리 노천카페에서 소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할배 정신은 버라이어티 정신보다 더 강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