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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등 국가' 일본, 어쩌다 이렇게 망가졌나?

[서남 동아시아 통신] 우익 정치 확대의 동학과 역사 인식

일본을 공부하는 이로서 지금처럼 일본을 우려해본 적은 없었다. 지금껏 일본은 얄미울 정도로 자기 처신을 잘해왔고 그것이 1980년대 경제 대국 일본을 가꾸어온 힘이 되었다. 그 때 일본은 소위 일등 국가(Japan as No. 1)로서 세계의 귀감이었다. 세계, 특히 미국과 같은 나라도 '시샘'하며 일본을 괴롭힐 정도였다. 그러던 일본이 1990년대에 '이상 징후의 나라'가 되었다가, 오늘날에는 '대단히 비상식적인 나라'가 되어있다. 세계를 리드하던 대국의 이미지가 이렇듯 30여 년 만에 극단적으로 변질되는 것은 보기 드물다.

나라와 사회와 삶의 기본을 꾸리는 것은 경제다. 그러나 미래를 둘러싼 희망과 절망의 갈림길을 전략적으로 결정해주는 것은 정치다. 지진과 쓰나미, 핵발전소 사고, 불안한 삶의 노곤함 속에서도 건강하면서도 강한 정치적 비전이 있다면 일본 사회는 여전히 희망이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7월의 일본 참의원 선거는 일본 사회의 미래를 결정할 커다란 분수령이다.

6월 23일 참의원 선거의 '전초전'격인 굵직한 선거가 있었다. 도쿄 도의회 선거가 그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보다도 훨씬 비극적이다. 잘 알겠지만 우익 정치의 총본산인 자민당은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헌법 96조(개헌 발의 요건을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으로 못 박은 조항)의 개정을 핵심 정책으로 내걸고 있다.

그들의 '숙원'인 집단 자위권 회복, 즉 미일 동맹의 이름으로든 유엔 '평화'의 이름으로든 해외에서 전쟁할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현재의 '인기'를 활용해 개헌의 물리적 장애물을 우선 없애겠다는 계산이다. 현재 참의원에서 2016년에 임기가 종료하는 의원 중에서 약 72명이 96조 개헌을 지지할 수 있는 '여당성' 보수 세력이다. 따라서 이번 '개선(改選)'에서 보수 정치 세력은 121석 중 90석 이상을 얻는다면 형식적으로는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엄격한 개헌 절차인 96조는 개정될 수 있고, 전후 일본을 항구 평화 민주 국가로 봉인해온 빗장이 풀리게 된다.

그런데 참의원 선거의 전초전에서 보수는 압승했다. 도쿄 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과 협력하는 보수파들은 전체 127석 중에서 91석을 차지해 3분의 2 이상을 점했다. 이 추세가 그대로 참의원 선거에서도 반복되는 것은 무리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나는 4월의 칼럼에서 미국이 심어 놓은 전후 민주주의의 '주박(呪縛)', 그 중에서 시민 사회의 성장 때문에 아베의 '우익 꿈'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다름 아닌 대의 민주주의의 '맹점' 때문에 우익 정치는 더욱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음을 이번 선거는 보여주었다. 시민 사회의 다수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건강한 현실 정치의 비전과 세력이 없으면 우익 세력은 정치적으로 더욱 강성해진다. 자민당의 우익 일본론에 동조하는 세력은 현재의 폐색(閉塞) 상황을 탈피한 '강한 일본'을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서둘러 투표장에 나갔다. 저조한 투표율이지만 43.50퍼센트의 투표자 중 다수가 그들이다.

그러나 유권자의 절반 이상은 자민당과 보수파가 싫어도, 다른 야당에게서 도저히 희망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투표하지 않았다. 이들은 양식 있는 시민 사회의 다수겠으나 정치적으로 절망하는 층위다. 비보수적인 시민 사회에서는 일부만이 투표장에 나선 것으로 보이는데, 이로 인해 공산당이 '선명 야당'으로서 각광을 받았다.

그러나 여전히 역부족이다.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세력들을 투표장으로 이끌고, 우익 선동과 경제성장의 환상을 비판적으로 극복할 힘 있는 현실 정치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민당의 '병리적' 주장과 행태는 시민 다수의 무기력증 속에서, 상대적 소수의 지지자들에 의지해 그 생명과 영향력을 더욱 지속해갈 수 있다. 이 우익 정치 과잉 대표 현상은 오늘날 일본 정치에서 가장 큰 위험이다.

ⓒ서남포럼

그러면 오늘날 우익의 현주소는 무엇일까? 약 100여 년 전 약육강식, 전쟁, 지배 등 온갖 난관을 만들었지만, 그들의 선조들은 부강한 조국은 만들려는 '풍운아적 꿈'이 있었다. "서구적 근대를 넘어서 일본식의 새 사회를 건설한다." 물론 나중에 일본 제국주의와 파시즘을 철저히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었지만, 일본주의를 포함한 다양한 색조의 근대 우익 이념들은 그 시기에는 나름 '미래 일본'에 대한 철학과 고민이 있었다.

그러나 그 후세 오늘날의 우익은 어떠한가? 기실 그들에게는 미래적 가치나 비전은 중요하지 않다. 과거 선조들의 부정적 행각을 정당화하는 것, 그리고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강한 일본을 추구하는 것이 그들의 '정체성'이다. 바꾸어 과거 지향적 부국강병론인 셈인데, '아베틱스'(아베 정치, Abe+tics)와 '아베노믹스'는 그 퇴행적 몽상의 단면들이다.

최근 고이즈미 휘하에서 대북 외교를 주도했던 다나카 히토시(田中均)와 아베 신조 간의 상호 비방, 그리고 다나카에 대한 우익들의 원색적 공격은 과거 회귀적 우익 정치가 보수적인 정치 현실주의(political realist)의 입장에도 얼마나 박약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인지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오늘날 일본 정치의 핵심 문제는 '역사'의 무거움을 인식하는 것으로 다시 돌아온다.

전전 파시즘에 대한 자기 극복의 결여가 오늘날 비극적인 일본 정치를 낳았고, 다시 이 박약한 '자폐 정치'가 일본을 비전 없는 어두운 과거로 이끌고 있다. 기실 역사 인식은 단순한 사실 인식의 차원을 넘어서, 건강한 미래를 기약하기 위해 현재를 올바른 철학 위에 정초(定礎)하는 중대한 일이다. 따라서 과거의 오욕은 언제나 엄격히 청산되어야 하고 그 역사는 정확히 교육되어야 한다.


나는 민주주의 사회의 지성적 기반을 엿보기 위해 유럽 국가들의 중·고등학교 교육을 가끔, 그러나 유심히 살핀다. 자신의 권리와 공동체에 대한 책무성을 중시하되, 불의에 저항하고 자기 사회의 민주적 출발점을 지키기 위해서 철저히 노력하는 것. 이것은 내가 특히 프랑스와 독일의 학교 현장에서 발견한 역사 교육에 대한 기본 태도다.

프랑스는 혁명의 정신과 공화제적 기초를, 그리고 독일은 레지스탕스의 기본 정신에서 나치 청산과 자기 성찰, 그리고 철저한 민주적 가치를 부정해서는 안 되는 공동체의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한 나라의 시민 사회에는 의당 역사 진화의 집단적 경험에 기초한 최소한의 민주적 공통분모와 동의가 있어야 할 일이다.

이 문제는 단지 일본 만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역사에 심각할 정도로 박약한 우리에게도 여전히 핵심적인 성찰의 대목이다. 바로 이와 관련해 일본의 보수 세력이 전후 민주주의의 청산과 과거 회귀를 위해 소위 '제3의 개국'을 운위해왔듯이, 일본의 시민 사회도 메이지유신, 패전 등 중요한 역사 시기마다 배제되고 지금까지 지연되어온 '시민 민주주의'를 일본 사회의 공통분모로 정착시키려는 전략적인 노력을 경주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민주적 시민 세력들은 그들의 '선조들'이 극복하지 못했던 '파시즘', 즉 극단적 우익 정치의 재현을 시민들의 '심화된 민주주의(advanced democracy)'로 막아내고, 분명한 역사 인식과 민주적 사고에 기초한 미래 지향적 정치 공동체의 재구축을 위해 보다 전면적으로 나서야 한다.

<프레시안>은 동아시아를 깊고 넓게 보는 시각으로 유명한 서남재단의 <서남포럼 뉴스레터>에 실린 칼럼 등을 매주 화요일, 일요일 동시 게재합니다. 송주명 한신대학교 교수의 이 글은 <서남포럼 뉴스레터> 191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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