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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마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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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마늘 이야기

[꽃산행 꽃글] 영월에서 영글다

영월에서 영그는 마늘 이야기

강원도 영월의 유명한 관광지 선돌. 그 선돌 근처의 식물 탐사를 했다. 같은 카메라를 둘러맸지만 예전이라면 그냥 전망 좋다는 곳에서 선돌만 찍고 다음 행선지로 발길을 서둘렀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관광지라고 정해놓은 것만 볼거리는 아니었다.

서강(西江)을 끼고 청령포까지 연결되는 유배길. 원주에서 청령포까지 한 많은 단종의 유배 경로를 재현하여 꾸민 옛길을 이르는 말이다. 돌계단을 훌쩍 넘어 가파른 아래로 내달으니 선돌을 감싸며 아늑한 유배길이 죽 이어졌다.

그런 사연을 간직해서일까. 포기마다 옛 자취가 녹아 있는 듯 야생화와 나무가 지천에 활짝 피었다. 숨죽여 피어나는 졸방제비꽃, 이름도 참 시원한 시베리아살구나무 그리고 몽고뽕나무, 줄기가 야들야들한 꼭지연잎꿩의다리, 깎아지른 절벽의 능선에 핀 바위솜나물. 이름과 달리 고약한 냄새가 나는 백선.

▲ 꼭지연잎꿩의다리. ⓒ이굴기

▲ 바위솜나물. ⓒ이굴기

강 연안의 밭두둑에는 참 보기 어려운 층층둥굴레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장관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가시가 아주 인상적으로 돋아난 시무나무가 빳빳하게 덩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길을 지나간 단종이 보았더라면 그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꼬아 꿰었을 것 같은 나무의 삐쭉한 가시!

▲ 시무나무. ⓒ이굴기

▲ 층층둥굴레 군락. ⓒ이굴기

기암괴석만 볼거리가 아니었다. 살아있는 나무와 꽃들이 오늘 나의 눈에는 최고의 관광 자원이었다. 왼편으로는 유유히 흐르는 강물, 그리고 오른편으로는 숱한 식물들과 동무하면서 서너 시간 만에 선돌 주위를 한 바퀴 빙 돌았다.

일행의 대부분이 빠져나가고 몇 사람이 어울려 느릿느릿 밭을 지나가고 있었다. 감자가 촘촘히 자라나고 고랑 사이로 명아주가 거무튀튀하게 자라고 있었다. 그 길가에 민들레 열매가 공중으로 막 흩날릴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저기 조금 앞서 동무 셋이 길바닥과 발바닥을 맞추며 걸어가는 참 좋은 풍경. 그 가운데 맞춤한 시 한 편이 떠올랐다.

패랭이꽃은
숨어서
포오란 꿈이나 꾸고

돌멩이 같은 것 돌멩이 같은 것
돌멩이 같은 것은
폴폴
먼지나 날리고

언덕에는 전봇대가 있고
전봇대 위에는
내 혼령의 까마귀가 한 마리
종일을 울고 있다

(김춘수, '길바닥' 전문)


산촌(散村)이라 멀리 드문드문 인가가 보이고 전봇대가 보였다. 그때 내 앞을 가로질러 휭,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매캐한 먼지를 일으키며 요란하게 달려가는 그것은 트럭이었다. 트럭의 짐칸에는 마늘이 한 가득 실려 있었다.

전문가에 따르면 강원도 영월 지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회암 지대라고 한다. 석회암 지대는 물이 굉장히 빨리 빠진다. 따라서 식물들이 물을 제대로 비축할 수가 없는 불리한 환경에 놓인다. 따라서 이 지역에 사는 호석회 식물들은 다른 지역과는 달리 특이한 분포를 보인다. 그런 설명을 들으면서 이런 상상을 해보았더랬다. 혹 호석회 지대의 식물들은 이런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러 무슨 특별한 장치를 뿌리에 하지 있지는 않을까?

트럭에 실려 가는 마늘은 뿌리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퍼뜩 깨달았다. 지금 저 마늘이야말로 굉장히 맛있는 마늘이란 것을! 생각해 보라. 물을 저축할 틈도 없이 사라지는 척박한 환경에서 저 마늘은 얼마나 야무지게 영글었겠는가. 트럭 한 가득 마늘을 싣고 가는 농부의 푸근한 마음과 함께 먼지가 나의 콧구멍으로 들어왔다. 매캐하고도 달콤했다.

▲ 트럭에 실려가는 마늘.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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