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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조롱하는 진보여, 차라리 '애국'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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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조롱하는 진보여, 차라리 '애국'하라!

[프레시안 books] 폴 크루그먼의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1919년, 영국 재무부의 관리였던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직장을 때려치웠다. 1차 세계 대전에 패배한 독일에게 천문학적 전쟁 배상금을 요구하는 승전국들의 행동은 독일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갈 것이고, 그 결과는 또 다른 전쟁일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 그 새로운 책에 담겼다. <평화의 경제적 귀결(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이 바로 그것이다. 케인스는 그 책에서 현재의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그로 인해 발생할 미래의 파국을 예견하며, 그것을 막기 위해 취할 수 있는 대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의 최신작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박세연 옮김, 엘도라도 펴냄) 역시, 바로 같은 목적으로 쓰인 책이다. 크루그먼은 "지혜로운 대중을 기반으로 여론의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정치인들이 정책 방향을 바꾸도록 촉구하고, 그럼으로써 지금의 불황을 완전히 '끝내버리는' 것"(10쪽)을 자신이 낸 신간의 목적으로 삼았다.

요컨대 이 책은 한때의 유행어를 빌자면 '제곧내', 즉 '제목이 곧 내용'인 그런 종류의 책이다. 한국어에는 그 단어가 다소 다른 뉘앙스를 지니게 되었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책'(book)이라기보다는 '팸플릿'(pamphlet)에 가까운 그 무언가이다. 어떤 단행본으로서 오랜 세월동안 읽히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게 아니라, 특정한 시기의 특정한 주제에 대해, 신문이나 잡지 등에서 소화하기에는 긴 분량의 논의를 풀어내는 그런 종류의 출판물이라는 것이다.

▲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폴 크루그먼 지음, 박세연 옮김, 엘도라도 펴냄). ⓒ엘도라도
미국을 포함해 서구권에는 이렇듯 '팸플릿'을 통해 지적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인 논의를 끌어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역사를 움직인 사례가 종종 존재한다. 물론 세상은 그의 경고를 듣지 않았고 그래서 천문학적인 전쟁 배상금을 독일에 요구하다가 경제 불황이 깊어졌으며, 그 좌절과 갈등을 타고 히틀러가 부상하게 되었지만, 앞서 언급한 케인스의 <평화의 경제적 귀결>은 그 작성 방식과 두께 및 내용으로 볼 때 '팸플릿'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미국 독립 혁명에서 이념적 바탕을 제공한 <상식(Common Sense)>도 마찬가지다. 토마스 페인은 두 권의 팸플릿을 아주 짧은 시간에 열정적으로 써냈다. 당장 영국과 전쟁을 하게 된 마당에, 오랜 세월을 두고 '사유'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글을 쓰는 것이 곧 실천이며, 실천하는 것이 곧 글을 쓰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전쟁의 발발을 막기 위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폴 크루그먼의 이 책 역시 바로 그런 절박함과 긴박감의 산물이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페이지를 넘겨보자. 앞서 말했듯 이 책의 주제는 제목에 쓰여 있다.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불황"은 무엇인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나긴 경기 침체를 의미한다. 그것을 어떻게 끝낼 수 있을까? 폴 크루그먼에 따르면 지금까지의 '양적 완화'보다 더욱 강력하게 시중에 자금을 유통시킴으로써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경제학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경제 불황을 끝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빈 병에 돈을 집어넣은 후 땅에 묻은 다음, 사람들이 알아서 꺼내가게 하는 것"이라는 케인스의 말을 누구라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불황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의 불황은 경기 부양책을 추가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그런 것인데, 어리석게도 긴축재정을 펼침으로써 가래로 막을 것을 호미로 막고 있다는 것이 크루그먼의 주된 논지다.

결론을 아는 것과 그 결론이 도출되는 과정을 따져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지만, 경제학에 있어서 이 책의 예상 독자인 "지혜로운 대중"에 속할 뿐인 필자로서는 그 내용을 일일이 검토하거나 반박할 능력이 없다. 어쩌면 폴 크루그먼의 말대로 미국 경제의 경우 양적 완화를 계속하고 경기 부양책을 가능한 한 최대한 동원하는 것이 현재의 불황을 끝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일 수도 있고, 아니면 그의 논적들이 하는 말처럼 그렇게 무턱대고 돈을 풀다가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전체 경제가 도탄에 빠질 수도 있다. 그 내용을 차분히 짚어가며 '경제 두뇌'를 키우는 것은 독자들의 개별적인 몫으로 남겨두기로 하자.

그럼 대체 왜 필자는 경제학적인 조예도 없으면서 이 서평을 쓰겠다고 나섰던 것일까?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경제학도는 아니지만 예전부터 폴 크루그먼의 팬이었기 때문에 꼭 한 번 그의 책에 대해서건 삶에 대해서건 뭔가 써보고 싶었다. 둘째, 이 책은 노벨 경제학상 수상에 빛나는, 또한 본인이 오래도록 '팬심'을 가지고 있던 폴 크루그먼의 책이지만 현재 한국의 상황에 곧이곧대로 대입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아니 '팸플릿'은, 단지 경제학적인 논의를 넘어서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일단 두 번째 논점부터 이야기해보자.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이 책의 제목이자 주제는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이다. 그런데 대체 "이 불황"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필자는 앞서 그것을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나긴 경기 침체"라고 막연하게 이야기했지만, 거기서 가장 중요한 고유명사 하나가 빠졌다. 폴 크루그먼이 지금 당장 끝내라고 외치는 그 불황은, 바로 '미국'의 불황인 것이다.

정통 케인지언의 논리대로 유효수요를 창출해 불경기를 이겨내기 위해 돈을 많이 찍어내는 전략은, 어디까지나 생산량이 곧 소비량과 동일한 '단일 경제'를 전제로 했을 때 성립한다. 가령 한국처럼 자국의 통화가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으며 주요 천연 자원을 외국에 의존하는 나라의 경우라면, 무턱대고 돈을 찍어낸다고 해서 불경기가 끝나거나 하지는 않는다. 한국의 경제는 한국 바깥의 요소들, 즉 환율, 미국과 중국 및 일본의 경기, 주요 원자재의 가격 등에 의해 심각하게 요동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한국이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 대국이 되었더라도 이 상황은 마찬가지다.

반면 미국은 다르다. 세계 2위에서 10위까지 나라의 국방비를 전부 합쳐도 미국의 국방비에 미치지 못한다. 미국은 전 세계 GDP의 30퍼센트 가량을 생산하고 있다. 가장 결정적으로, 미국의 돈인 달러는 현재 국제 결재 및 금융 거래에서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 기축통화다. 미국 경제는 대외 요소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으며, 오히려 미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미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에게 매머드급 '대외 요소'로 작용할 뿐이다.

그러므로 폴 크루그먼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논의를 거의 그대로 차용하여 '당장 돈을 찍어내서 이 불황을 끝내라!'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세상이 단 하나의 국가로 이뤄져 있다면 부채의 전체 규모는 순 부채 가치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이다. 한 사람의 부채가 곧 다른 사람의 자산이기 때문이다"(204쪽)라고 하는데, 이 말은 "순 외채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으며 핵심적인 문제도 아"(같은 곳)닌 미국의 경우에는 잘 들어맞는다. 반면 기업들이 무리하게 단기 자금을 대출받은 후 그것을 갚지 못해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이했던 한국의 경우, 이렇게 단순한 해법을 내놓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는 제목이 곧 내용인 단순한 책, 아니 팸플릿이다. 하지만 미국인이 아닌 우리는 이 책을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읽을 수 없다. 미국에서 불황을 끝내기 위해 양적 완화 정책을 펴면, 거기에 맞춰서 한국은 한국의 경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지금처럼 바로 그 양적 완화 정책을 서서히 철회하고자 하는 분위기를 보인다면, 또 거기에 맞춰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의 세상은 우리의 것보다 훨씬 경제학 교과서에 맞춰서 움직이는 곳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한 번 '거리두기'를 하고 이 책을 다시 읽으면 이제 좀 더 새로운 면모가 보이기 시작한다. 폴 크루그먼이라는 한 사람의 '애국자'가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유명한 국제경제학 교과서의 저자인 그가, 앞서 우리가 살펴보았듯 단순한 케인지언 정책만으로 모든 나라의 모든 불황에 맞설 수 없다는 것을 결코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다음으로 나는 몇몇 다른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들과 함께 미국의 경우를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거니와, 솔직히 말해서 가장 '걱정'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반면 유럽 지역은 '단일 통화'라는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으며, 이로 인해 특별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160쪽)

▲ 폴 크루그먼. ⓒwww.epipaideia.com
이것은 뻔한 이야기이지만 결코 뻔하지 않다. 폴 크루그먼의 관심사는 1차적으로 미국 경제가 살아나는 것이고, 그 다음이 세계 경제의 부흥이다. 전 세계가 각기 다른 화폐를 사용하고 각기 다른 정부와 중앙은행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전 지구적 단위의 경제를 운용하기 위한 슈퍼-거시 경제학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폴 크루그먼이라는 한 양심적 지식인은 그러므로, 자신의 조국이며 본인이 가장 "'걱정'"하는 나라인 미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한 처방을 제시한다. 누구보다도 급박하고 진심 어린 목소리로,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 책의 '결론'을 알고 싶은 사람은 굳이 책을 살 필요도 읽을 필요도 없다. 반면 그 논의 전개 과정을 통해 경제학적 지식을 쌓거나 갈고 다듬고 싶은 이에게, 필자가 따로 해줄 수 있는 조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팸플릿'을 하나의 책으로, 주인공과 서사가 있고 그 모든 것이 전제로 삼고 있는 배경도 가지고 있는 언어적 구조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이 책은 한 애국자의 진심어린 호소로 인해, 저자의 의도와는 무관한 모종의 감동을 선사한다(물론 그와 나의 처지가 다르므로 거기에 취해있을 수야 없겠으나, 일종의 1인칭 소설처럼 감정 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는 뜻이다). 보수주의자들에게 '빨갱이' 소리를 듣는, 미국의 정치 지형 내에서 가장 왼쪽에 속한다고 분류되는 그이지만, 이토록 강한 애국심과 열정으로 현실에 개입하고 지적인 논의를 형성하고자 애쓰는 모습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한편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박근혜 정부의 외교, 경제, 정치적인 방향에 대한 지적인 논의를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가운데, '일베'가 어쩌고 윤창중의 "그랩"이 저쩌고 하는 소리만이 진보 언론의 지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단지 값싼 조롱과 회의주의만이 한국의 담론계를 꽉 채우고 있다.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이 책은 일종의 1인칭 영웅전처럼 받아들여져야 할 필요가 있다. 폴 크루그먼의 결론에 모두가 동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국에는 각자의 지식과 전문적 식견을 바탕으로, 이렇게 뜨겁게 논쟁하는 지식인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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