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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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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밭

[꽃산행 꽃글] 금당실을 가다

금당실은 경상북도 예천에 있는 전통 반가(班家) 마을이다.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가장 살기 좋다는 열 군데인 십승지(十勝地) 중의 하나라고 한다. 예로부터 사방이 5겹의 산으로 둘러싸여 병화(兵火)가 들지 못한다고 하였다. 해서 임진왜란 때에도 마을이 온전했던 곳으로 유명하다.

산림과학원에서 주최한 원주, 예천 지역 산림 문화 생태답사에 참가했다. 작년(2012년) 6월의 일이었다. 어깨를 맞추며 휘돌아가는 돌담 골목길, 잘 짜인 한옥이 어우러져 고담한 분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개량된 고택들 중에서 우천재(愚泉齋)가 우리들의 숙소였다. 소박하게 차린 한정식으로 저녁을 먹고 마당에서 '조상들의 빗물 이용에 관한 지혜'에 대한 토론을 벌였다.

▲ 답사 중에 들른 예천 회룡포의 물도리동. ⓒ이굴기

최근 대한민국을 쥐고 흔드는 건 대통령도, 언론도, 검찰도, 군인도 아니다. 그것은 하늘로부터 유래하는 가느다란 물질이었다. 비였다. 세상에 물이 바짝 말랐다.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고 논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가뭄이 너무 오래 지속되어 작물은 물론이고 작물을 바라보는 농심(農心)과 그 농부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동시에 타들어갔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4대강 사업으로 홍수와 가뭄을 모두 극복하였다고 흰소리를 질러 가뜩이나 어지러운 심사에 홧홧하게 불을 지르기도 했다. 이번 주말에도 비가 뿌리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가슴에 세굴(洗掘) 현상이 일어나고, 인내심도 바닥이 드러날 것이란 생각이 저절로 드는 토요일 오후였다.

빗물에 대한 강의를 듣다보니 물 문제가 앞으로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보니 물 문제는 곧 비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생각 정도는 나도 하고 산다. 동물은 엽록소가 없어 광합성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식물이 애써 만들어놓은 탄수화물을 빼앗아먹는다. 그러니 냉정히 말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동물은 사실 식물에 기생하여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물론 나도 동물의 일원이다.

한편, 이에 빗대어 물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세상에 참 한량없이 많은 게 물이다. 그래서 지구를 물 행성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관찰해 보자. 지상에서 물을 생산할 수 있는가? 없다! 물은 오로지 하늘에서부터 유래한다. 길고 긴 물의 순환에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즉 물의 공급이 끊기면, 그리하여 지구에 비축된 물이 바닥이 난다면!

지구는 다른 여타의 행성처럼 물 없는 신세가 되고 결국은 생명체도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적막한 우주 공간으로 변하고 마는 것이다. 행사를 마치고 좋은 물로 빚었다는 막걸리로 뒤풀이를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먹구름이 하늘을 꽉 조이기 시작했다. 내일은 다행히 비가 올 것 같았다.

다음날 희붐한 새벽. 눈을 뜨니 문지방 너머로 건너온 빗소리가 방안에 가득 찼다. 아침을 먹기 전 동네 한 바퀴를 하기로 했다. 금당실 마을에 사시는 숲 해설사가 안내하면서 마을의 유래와 숨은 이야기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닭 울음소리가 아침 공기를 가르는 가운데 마을을 보호해주는 2킬로미터의 울창한 소나무 숲을 산책할 때였다. 예로부터 금당실 마을 사람들은 소나무를 베는 사람은 우물에 빠뜨리는 사형(私刑)에 처할 정도로 소나무를 아끼고 소중하게 보호하여 왔다고 했다.

▲ 금당실 마을의 소나무 숲. ⓒ이굴기

소나무 숲이 끝나고 텃밭 같은 곳이 나타났다. 작은 꽃밭이었다. 꽃밭은 꽃밭이되 꽃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지 않았다. 마치 갓 입학하여 등교하는 초등학교 1학년 학생처럼 일렬로 나란히 줄지어 있었다. 꽃들은 어느 집의 출입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것은 대문과 마당을 제대로 갖춘 한옥이 아니라 그냥 최근에 급조한 블록 집이었다. 지붕도 한옥을 흉내 내어 양철 기와를 올린 집이었다. 하지만 누가 애써 가꾼 흔적이 완연한 꽃밭덕분으로 그 공간의 허술하고 어색함이 훌륭하게 가려지고 있었다.

누가 만들었나. 이 집의 꽃길. 그 길의 입구에는 꽃만큼이나 특이한 이정표가 있었다. 막걸리 빈병을 거꾸로 꽂아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주인의 문패처럼 소박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왼쪽에는 초롱꽃, 매발톱, 앵초꽃, 금낭화. 오른쪽에는 사루비아, 봉숭아.

비가 내리는 가운데 자잘한 야생화들이 총기있게 눈을 반짝이며 빗물을 마시고 있었다. 흥건히 젖어가는 꽃들을 보는데 집의 출입문으로 줄지어 가는 꽃길에도 마음이 젖어들었다. 쪼그리고 앉아 사진을 찍고 있는데 서울대학교에서 조경학을 전공하시는 교수님이 한 마디 거들었다.

"꽃도 참 예쁘고, 이런 길을 조성한 이의 예쁜 마음이 저절로 느껴지네요!"

이 집에 사는 주인 양반. 늘그막에 꽃과 연애하는 기분으로 이 대궐을 만들었겠다. 막걸리 한 잔 걸치고 휘청거리며 귀가할 때 참 기분이 억수로 좋겠다. 어느 날엔 그 기분이 너무 흥건하게 도져서 그 기념으로 막걸리 빈병으로 꽃 대문을 만들었겠다.

오랜 가뭄 끝에 오늘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는 감주보다 더 달다. 막걸리보다 더 시원하다. 아침부터 그 달콤한 물에 취한 가운데, 꽃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문까지 걸어가 보았다. 초롱꽃, 매발톱, 앵초꽃, 금낭화. 사루비아, 봉숭아를 입으로 외며 왕복 운동을 했다. 걸을 때마다 꽃잎에서 튕기며 빗방울이 내 발목을 두드렸다. 간질간질함이 무릎 위로 퍼져 올라왔다.

이 집 아저씨는 아실까. 십승지 중 하나라는 금당실에서도 가장 승지(勝地)가 바로 이곳인 줄을!

▲ 금당실 어느 인가에 조성된 작은 꽃밭.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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