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청와대에 입성한 박근혜 정부는 전임 이명박 정부가 해놓은 일을 보고 열불이 뻗쳤을 것이다.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온실 기체 감축 문제도 그중에 하나임은 틀림없다. '녹색 성장'이니 뭐니 하여 외국을 쏘다니더니, 전임 대통령은 덜컥 온실 기체 중기 감축 목표라는 것을 국제 사회에 공언하고 말았다. 2020년까지 우리나라의 온실 기체 배출량을 BAU(온실 기체 배출 전망치로 번역된다) 대비 30퍼센트나 줄이겠다고 공약한 것이다.
암튼, 이명박이 폼 좀 잡은 것까지는 좋다 이거다. 박근혜 신임 대통령이 더 속 터지는 것은 설거지해야 할 그릇만 잔뜩 남겨둔 청와대의 열쇠를 넘겨받았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집무실에 앉아 보고를 받고 보니, 2020년에 줄이겠다고 공언한 목표치를 달성할 방법이 없어 보인다. 2020년 목표치에 대비해서 2010년의 실적치를 보니 이미 17.5퍼센트를 초과해 있는 상태이고(기후변화행동연구소 안병옥 소장), 계획대로라면 2015년을 정점을 찍고 줄어들어야 하겠지만 전혀 그럴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온실 기체 배출량이 계속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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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정부 때 에너지 증가세를 잡을 만한 무슨 조치라도 좀 취했어야 어떻게라도 해볼 텐데. 이명박 정부는 에너지 사용량 추세를 유지하면서 온실 기체 배출량을 줄일 수 있을 만병통치약처럼 선전한, 핵 발전에 몰입하다가 오히려 최근의 전력 위기까지 자초했다. 게다가 가파른 전력 수요 증가의 고삐 역할을 할 전력 가격을 정상화하고 다른 에너지원 간의 이용 비중을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에너지 관련 가격 및 조세 정책을 손질하는 것에는 무진장 늦장을 부렸다.
그 결과 정부의 에너지 수요 예측을 비웃으면서 가파른 전력 수요 증가가 나타났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뭐라도 대책을 강구해야 할 상황이었고, 건설 기간이 긴 핵발전소 이외에도 석탄 발전을 대거 늘릴 계획을 세우게 됐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순간에 확정 발표한 제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은 산업통상자원부가 앞장선 '쿠데타'라고 볼 일이다. 제대로 된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 공언한 온실 기체 감축 목표치 달성의 어려움쯤은 가볍게 무시했다. 게다가 막대한 이익을 낳고 있는 대기업의 화력 발전소 건설 의향을 대폭 수용하면서, 특혜 시비까지 감수했다. '녹색 성장'은 그렇게 가고, '창조 경제'의 예고편은 이렇게 시작했다.
온실 기체 감축 정책의 관할권을 두고 전임 정부 내내 산업통상자원부와 경쟁을 해왔던 환경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환경부는 '차세대 먹을거리'로 기후 변화와 온실 기체 정책 분야를 점찍어 두고 있으니, 여기서 잠자코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제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 부처 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나섰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당찬 투지였다. 국회 입법조사처마저 이를 비판하는 보고서를 발표하기까지 했다. 법적으로 정한 기본 계획의 의무 사항을 담지 않은 것에서부터, 기존의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의 수요 목표치와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존 계획에 비해 에너지 수요 증가 예측치가 과대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누구의 편을 들어주어야 할 일인가? 전력 위기를 야기하고 '쿠데타'까지 벌인 산업통상자원부가 괘씸하겠지만 경제 운용을 위해서 에너지 공급을 안정화해야 생각했을 탓인지, 오히려 환경부에 수습 방안을 주문했다. 희한한 개념이라고 할, BAU를 재산정해보라고 주문한 것이다. 자 여기서부터가 박근혜 정부의 '꼼수'가 펼쳐질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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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U를 재산정하는 방법이 국제적으로 공언한 감축 목표치의 문구를 수정하지 않고도, 에너지 수요 증가에 맞춰 공급을 증가시키기 위해 합법적으로 공약을 위반할 수 있는 방안이 된다. 예를 들어서 2020년의 온실 기체 배출 전망치가 100이라고 했을 때 30퍼센트의 감축 목표에 따라 온실 기체 배출량을 70까지만 줄여야 하지만, 지금의 에너지 수요 증가 추세로는 70이라는 배출량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면? 배출 전망치를 150으로 재산정한 후, 2020년에 별 노력 없이 애초의 배출 전망치 100에 도달한다고 하더라도 30퍼센트의 감축 목표는 초과 달성하였다고 평가, 보고할 수 있는 것이다.
어찌 이런 꼼수가 가능할까? 애초 BAU라는 개념이 그 내용이 비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무슨 말인가 싶을 거다. 'BAU'란 영어 'Business As Usual'의 약어로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한다'는 의미 정도로 이해될 수 있다. 이를 정책 분야의 언어로 해석하면, 현재까지 도입된 정책을 유지하는 것 이외에 추가적인 정책을 취하지 않을 경우에 예상되는 미래의 에너지 수요 예측치(혹은 온실 기체 배출량 예측치)를 'BAU'로 삼는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개념으로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배출권 거래제나 온실 기체 감축 목표 관리제처럼 새로운 정책을 도입하지 않고 현재와 같은 추세를 유지했을 때 한국의 미래 에너지 수요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책 도입에 따른 에너지 수요 절감 효과를 계산하는 일도 만만치 않은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한 사회의 미래 에너지 수요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도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전력 수요 예측을 생각해보자. 요즘처럼 전력 수요가 과소 예측되었다고 비난 되고 있기도 하지만, 1980년대에는 과대 예측된 전력 수요 탓에 전력 예비율이 무료 83퍼센트(1986년)에 달한 적도 있다. 제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에서 예측의 정확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내재한 근본적인 불확실성을 완전히 몰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런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노력들 자체가 정부가 가진 특정한 정책적 관점과 입장―예를 들어, 공급 중심의 성장주의―안에서 이루어지면서, 에너지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쪽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견고하고 딱딱해 보이는 BAU라는 것 자체가 어떻게든 손볼 수 있는 물렁물렁한 수치를 담게 되는 것이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이 배출량 전망치를 재산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에서부터, BAU가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방증하는 것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온실 기체 감축 목표치를 설정할 당시, 기후변화정책연구소를 비롯하여 환경 단체들이 소극적인 감축 목표치뿐만 아니라 BAU를 기준으로 삼는 방식에 대해서도 함께 문제 삼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온실 기체 감축 의무를 진 선진국처럼 1990년도는 아니라도 2005년을 기준으로 감축 목표치를 설정해야 할 일이었다. 에너지 수요를 관리하고 더 나아가 절감해야 할 '성숙의 시대'에서는 BAU를 기준으로 삼는 일은 피해야 한다. 무책임성을 유발하는 정책 개념은 버려야 한다.
▲ 이달 들어 첫 전력 수급 경보 '준비' 단계가 발령된 9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출입구의 전국 실시간 전력수급 현황판에 '준비' 단계가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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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수요를 예측하는 일을 '에너지 포캐스팅(energy forecasting)'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현재까지의 추세를 미래로 연장해보는 것이다. 매년 3퍼센트의 에너지 수요 증가가 있었다면, 향후에도 그렇게 증가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사실 1970년대 석유 파동 이전, 프랑스를 비롯하여 많은 국가에서 기본적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수요를 예측했었다. 전후 호황기 속에서 지속적인 경제 성장과 소비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던 때의 일이다.
당연히 지금은 이보다 훨씬 복잡한 예측 모델을 사용하고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과거의 추세로부터 미래를 예측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에너지 예측 모델의 복잡성이 정확성을 보증하지 못한다. 바츨라프 스밀은 수많은 비용이 들어간 복잡한 예측 모델보다 자신이 책상에 앉아 계산기로 만들어낸 수치가 더 정확하게 수요를 재현해낼 수 있다는 점을 <새로운 지구를 위한 에너지 디자인>(허은녕 등 옮김, 창비 펴냄)에서 보여줬다.
한국 정부가 사용하는 에너지 포캐스팅 모델의 세부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기본적인 접근은 비슷한 것으로 생각된다. 미래의 경제 성장률, 인구 추세, 산업별 부가 가치 전망, 유가(혹은 전력 가격) 등의 주요 요인과 전력·에너지의 미래 수요량 사이의 인과 관계를 과거의 추세로부터 발견해내고 이를 수학적 모델로 만든 다음, 주요 전제 값을 결정하여 투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미시 모형의 경우―예를 들어, 산업 부문의 전동기, 가정 부문의 가전제품, 교통 부문의 승용차 등과 같이―에너지를 소비하는 거의 모든 부문의 활동을 수학적으로 묘사하고 관련 정보를 수집하여 구축한다는 점에서, 거시 모형과 다르게 더욱 복잡하다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에너지 예측 모델의 세부 내용과 그 결과치에 대해서는 이에 관여하는 연구자와 이를 확정하는 전기위원회 혹은 국가에너지위원회(및 산하 위원회)에 참여하는 몇몇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접근할 수 없다. 세부적 사항은 공개되지 않기도 하지만, 공개된다고 하더라도 일반 시민들이 이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시민들을 대신하고 도와서, 이를 독립적으로 검토할 만한 전문가들도 거의 없고 그를 지원할 제도적 기반도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예측 모델이나 그 활동이 블랙박스처럼 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냥 정부 발표를 믿거나, 그나마 좀 비판적으로 분석해보려면 공식 문서 상에 드러난 몇 가지 수치만을 따져보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올해 2월에 확정된 제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을 보자. 한 국회의원 보좌관은 언론 기고에서 전력 수요 예측을 위해서 전제 값으로 사용된 경제 성장률 전망치의 적정성을 문제 삼았다. 그가 보기에 높은 전망치는 전력 수요의 증가로 나타난다. 경제 성장과 전력 수요 사이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이는 타당한 판단이다. 그의 분석을 들어보자.
"산업통상자원부는 6차 계획을 수립할 때, KDI의 전망치를 이용해 2012~2027년의 연평균 성장률을 3.5퍼센트로 설정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지난 3월 말 '2013년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하면서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3퍼센트에서 2.3퍼센트로 대폭 낮췄다. (…) 장기 경제 성장률 전망에서도 OECD는 2012년 11월에 발표한 '글로벌 경제장기 전망'보고서에서 한국의 경제 성장률을 2011~2030년 2.7퍼센트, 2030~2060년 퍼센트 1퍼센트라고 전망했다. (…) 특히 세계 경제 불황과 국내의 출산율 감소 및 인구 고령화로 인해 성장률 둔화가 지속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번 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의 수요 예측은 과도하게 책정되었다" (☞관련 기사 : 제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의 허와 실)
국회예산정책처의 <제6차 전력 수급 기본 계획의 문제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도 보자. 이 보고서는 전제 값으로 사용된 전기 요금을 문제 삼았다. 이번 계획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 요금 전망치를 매년 평균 물가 상승률 전망의 3분의 1 수준에서 반영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비판을 보자.
"6차 계획은 높은 전력 수요에 대한 원인이 전력 다소비 산업 구조와 낮은 전기 요금에 기인한다고 평가하여 전력 수급 불안의 원인을 정확히 지적하고 있다. (…) 그러나 전기 요금을 과거 추세에 따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은 전력 수급 상황에 대한 평가 결과를 6차 계획에 환류하지 않았다거나 비중 있게 반영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수요 예측에 사용되는 전제치들의 타당성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것을 넘어서, 보다 타당한 전제 값을 활용하여 대안적인 에너지 수요 전망치를 만들어 볼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 제기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져 공개적으로 토론된 적도 없을뿐더러, 비밀에 부쳐진 예측 모델에 직접 새로운 값을 투입하여 계산해 볼 기회도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눈앞에 두고 있는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의 수요 예측에서, 워킹 그룹에 참여하는 시민 단체의 전문가는 에너지원별 가격 조정을 주장하면서 세 가지 가격 시나리오를 내놓고 있다. 그러나 그가 그런 시나리오에 따라 에너지 수요 예측 모델을 이용해서 계산해 볼 기회가 있을지 궁금하다.
다시 온실 기체 배출 전망치(BAU)의 재산정 이야기로 잠시 되돌아가 보자. 정부의 입장에서는,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가 주관하는 이 작업은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주관하는 에너지 수요 전망치를 만드는 작업과 조화를 이루어야 할 일이다. 환경부로서는 이 작업을 통해서 국가 에너지 정책에 주도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 것이고, 산업통상자원부로서는 이를 최대한 막아내야 할 상황일 것이다. 따라서 어떤 전제 값을 사용할 것인지부터 시작해 여러 사항에 대해서 신경전이라고 부를 만한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것이 합리적 토론 일수도 있겠지만, 협상에 가까운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숫자의 전쟁'이라는 말은 우선 이런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리라는 짐작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양측 전문가들 수준에서 이를 맞추는 작업이 끝나지 않아서, 국가에너지위원회 수요 분야 워킹 그룹에서 이에 대해서 토의하지 못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혼란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이유이겠지만, 양측 전문가들이 서로 맞춰내 '딱딱해진' 숫자들을 워킹 그룹의 전문가들이 다시 검토, 조정하는 것이 얼마나 가능한 일일까 싶다. 시민들을 대신하여 숙의하고 토론하는 역할이 워킹 그룹의 민간 전문가들의 몫이라면, 허수아비가 될 가능성도 있다.
문제가 제기된 경제 성장률, 전기 요금 그리고 에너지원 간의 상대 가격의 조정 문제를 반영한 대안적인 수요 예측을 해볼 기회가 주어질까? 이런 기회를 얻지 못하고 한번 수요 예측치가 굳어지고 나면,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구체적인 정책들이 수립되어도 비판하기가 쉽지 않다. 이 수치가 밀양이나 삼척과 같은 곳에서 벌어지게 될 사회 갈등의 근본적인 뿌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숫자의 전쟁'은 이런 것을 염두에 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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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에 닥친 국가 에너지 기본 계획의 일정을 생각하면 늦은 감이 있지만, 보다 합리적인 에너지 수요 예측을 위해서 두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우선 최근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이진우 부소장이 한 토론회에서 제안한 것처럼, "복수의 시나리오" 접근법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독립적인 연구팀에서 각기 다른 접근과 전제에서 출발하는 복수의 에너지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 결과뿐만 아니라 사용된 전제 값 그리고 관련된 사회 경제적 가치 판단, 나아가 예측 모형 자체의 타당성까지 공개적으로 검토하고 토론해보자는 것이다. 지금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와 에너지경제연구원의 협의와 토론을 보다 공개적으로 진행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공개적 토론의 장에 정부 측 시나리오 외에도, 국회와 시민 사회의 대안적인 시나리오도 함께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2년에 인구 구조 변화에 초점을 맞춘 에너지 시나리오를 발표한 바 있고, 시민 사회 진영에서는 대안에너지포럼과 그린피스한국사무소 그리고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각기 다른 방식의 대안적인 에너지 시나리오를 작성하여 제시한 바 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발전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감으로부터 출발한 시나리오들이다. 이런 시나리오들이 가진 문제 의식과 접근 방식 그리고 제시된 수치들을 함께 비교, 검토하는 에너지 시나리오의 개방된 포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포캐스팅의 접근과는 다른 규범적 접근 방식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에너지 백캐스팅' 접근을 주목하자는 것이다. 에너지 포캐스팅 접근은 에너지의 미래를 결정짓는 객관적 법칙을 발견하여 이를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며 궁극적으로 사회는 그것에 적응할 준비를 해야 한다고 전제하는 것이라면, 백캐스팅 접근은 우리가 희망하는 에너지 미래를 규범적으로 설정하고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현재 무엇을 준비하고 변화시켜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기후 변화와 석유 정점과 같은 위기에 직면하면서 우리는 어느 정도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적당하며 어떤 에너지원을 사용하는 것이 좋은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하고 토론하는 과정이 선행된다. 그 후 단계별로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를 결정해가는 것이다.
이런 백캐스팅 접근이 중요하고 유효한 것은 에너지 계획의 참여성과 민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예측해낸 에너지 미래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들 자신이 살아야 할 에너지의 미래를 구상하는데 능동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각기 상이한 입장들이 민주적으로 토론됨으로써, 결정된 정책 추진의 수용성과 지지가 확대될 수 있다. 이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 한국에서 싹터 오르고 있는 탈핵 에너지 전환을 향한 시민들의 열정과 의지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기도 하다. 또한 이를 활용하는 것은 한국 에너지 정책의 책임성을 제고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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