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잘 몰랐지만 오늘날 이나마 이렇게 건강을 유지하는 건 그때 콩나물 시루같은 버스를 피해 아침과 오후마다 우룡산을 오르내린 덕분임을 나는 어렴풋이 짐작하는 바이다. 떠나는 날이 다가오고 여행 일정을 받아보니 마지막 날에 한국전망대에 오르는 것이 잡혀 있었다. 옳거니, 그곳이 바로 '그곳'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저 잘 자란 구절초만한 높이의 키였을 때. 항상 늦잠을 자느라 아침 등굣길은 지각하지 않으려 늘 빠듯했다. 그나마 하굣길은 여유가 있었다. 따뜻한 햇살의 어느 맑은 하루, 우룡산 기슭을 지나면 五六島(오륙도)가 보였다.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에서도 오륙도는 등장한다. 그러나 나는 이은상의 시조에서 <오륙도>를 먼저 만나고 외웠다.
五六島 다섯 섬이 다시 보면 여섯 섬이 / 흐리면 한두 섬이, 맑으신 날 五六島라 / 흐리락 맑으락 하매 몇 섬인줄 몰라라.
취하여 바라보면 열 섬이 스무 섬이 / 안개나 자욱하면 아득한 빈 바다라 / 오늘도 비 속에 보매 더더구나 몰라라.
그 옛날 어느 분도 저 섬을 헤다 못해 / 헤던 손 내리고서 五六島라 이르던가 / 돌아가 나도 그대로 어렴풋이 전하리라.
그때 바람에 흔들리는 구절초처럼 나의 가슴이 울렁이고 날씨 더욱 맑아 화창한 날. 고개를 더 멀리 들면 아득하고 가뭇한 곳, 수평선과 나란히 떠 있는 곳으로 어떤 섬이 보였다. 그것은 흰 구름에 쌓여 있었다. 그 섬이 대마도였다. 그곳은 내 청운의 눈길이 한번 끝까지 가 닿는 곳이기도 했다. 당시 내 꿈이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그 어떤 너머를 지나 멀리멀리 가고자 했을 때, 그곳은 징검다리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말하자면 그곳은 중학생이었던 내가 육안으로 볼 때, 가장 먼 어느 곳이었다.
대마도에서 나흘간의 일정을 소화하면서 오전에는 주로 공원이나 도심이나 신사를 구경하고 오후에는 매번 산에 올랐다. 인적이 드문 산 정상에 오를 때마다 나는 부산 쪽을 향해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바다만 보일 뿐 방향이 잘 가늠되지를 않았다. 나는 집을 떠나면서 은밀하게 기획했던 욕망을 제대로 풀지 못한 채 마지막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대마도 식물 기행 마지막 날이 왔다. 이날은 아침을 먹고 바로 센뵤마키(千俵蒔, 해발 490미터) 산을 탐사하고 한국전망대에 오른 뒤 점심을 먹고 오후 3시에 배를 타고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어느 한적한 마을 입구에서 내려 산 입구로 들어서니 폐허가 된 사당이 보였다. 그 주위로 개비자나무, 돈나무, 마삭줄, 긴잎도깨비고비 등이 얼그러져 있었다. 양봉을 하는지 벌꿀통도 눈에 많이 띄었다. 생달나무, 비파나무, 후박나무, 까마귀쪽나무의 잎사귀를 눈으로 휘잡으며 정상에 오르니 거대한 풍력 발전기가 돌고 있었다.
▲ 센뵤마키 산 입구에서 만난 대마도 벌통들. 우리나라의 벌통과는 사뭇 달랐다. ⓒ이굴기 |
센뵤마키 산 정상에 섰다. 억새가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였고 바다 건너 장쾌한 광경이 나의 눈에 바로 들어왔다. 흰 물결 이는 곳을 지나 시퍼런 바다가 보이고 그 끝으로 조붓한 동네가 보였다. 아아, 그것은 바로 부산이었다. 해운대 돌아가는 곳으로 아파트 숲이 선명하게 육안으로도 잡혔다.
산을 내려와 한국전망대에 갔다. 대마도에서 부산이 가장 잘 보이는 곳이라 했다. 부산에서 대마도까지는 고작 49.5킬로미터 남짓. 마라톤 거리보다 조금 더 길다. 철 모르던 중학생에서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는 무려 40년. 빛의 속력으로도 뛰어넘을 수 없는 세월이다. 전망대라 했지만 전망은 센뵤마키 정상이 오히려 더 나았다. 선명하게 보이던 부산의 집들이 이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우룡산으로 짐작되는 곳에 오래 눈을 고정시켰다. 어쩌면 저곳은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던 내가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정지용)"이 아닐까. 그곳을 파헤치면 코 밑 수염이 막 송송하게 돋아나기 시작하는 중학생 하나가 툭 뛰어나오지 않을까. 검은 그림자를 데리고 선 채 상념에 젖어 있는 내 머리 위로 대마도의 까마귀 몇 마리가 돌연 급강하하더니 근처 숲으로 몸을 숨겼다.
우리 몸은 많은 말을 한다. 들쭉날쭉한 손가락을 가만 들여다보면 복잡한 해안선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 해안선을 따라 많은 일들이 오고 가는 것! 나는 우둘투둘한 손가락들을 계속 만지작거리면서, 바다 저쪽 거뭇한 우룡산 근처를 계속 바라보면서, 옛일을 생각나는 만큼 발굴해내려고 힘껏 노력했다.
▲ 센뵤마키 정상에서 바라본 부산. 나의 육안은 카메라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나 저 사진보다도 훨씬 뚜렷하게 나의 어린 시절이 묻힌 동네를 볼 수 있었다. ⓒ이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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