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일본에 갔을 때이다. 그때 가이드가 해준 젓가락에 관한 이야기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일본에서는 젓가락을 사용하여 상대에게 무엇을 전달해주는 것이 금기라고 한다. 특히나 젓가락에서 젓가락으로 주고받는 것은 굉장한 실례라고 한다. 일반 물건이야 젓가락을 사용하는 경우야 드물 터이니 그건 주로 음식물을 전해주는 경우라 하겠다. 우리나라에서는 등산이나 야유회에 가서 각자 도시락을 펴서 먹을 때 혹 별도로 싸온 반찬을 주위사람들과 나누어 먹는 건 흔한 풍경이다. 또 그렇게 얻어먹는 건 유별나게 맛이 있기도 하다.
일본에서 젓가락으로 상대에게 주는 것을 금기시하는 건 단지 위생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한다. 내가 처음으로 배운 일본어는 뒷골목에서 짤짤이 할 때 쓴 "이치, 니, 산"이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빨리 접한 단어 중에 '와리바시'가 있다. 중국집에 가서 단무지를 먹다가 나무젓가락을 떨어뜨리기라도 하면 만만한 종업원에게 "여기, 와리바시 하나 더!"하고 당당히 주문했던 것이다.
일본어에서 다리를 뜻하는 '橋'의 발음이 '바시'이다. (와리바시에서 '와리'는 쪼갠다는 뜻이다.) 그래서 日本橋는 니혼바시이다. 이처럼 일본어로는 젓가락과 다리가 발음이 같다. 젓가락과 다리. 그것은 용도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실제로 도시락에 든 음식물은 젓가락이란 다리를 건너 내 입으로 들어온다. 다리, 그것은 어디에서 어디로 건너갈 때 소용되는 도구이다. 우리는 이 다리를 건너 그 어디로, 전혀 다른 경계를 넘어 어디로들 간다.
일본의 장례 문화는 매장은 없고 다들 화장이다. 정확히 참관한 바는 없지만 마지막은 이러한 풍경이겠다. 재의 열기가 사그라지면 길고 흰 젓가락으로 유골을 수습해서 유족이 안고 있는 함으로 전해주지 않을까. 그러니 이승에서 저승으로 마지막으로 갈 때 젓가락을 흔연히 사용하는 것이리라.
대마도로 식물 관찰 여행을 하는 둘째 날. 타테라산(龍良山, 559미터)으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산은 인적이 드물고 관광지는 전혀 아니었다. 해서 점심을 식당이 아니라 도시락으로 때웠다. 산의 허리쯤에서 관광버스를 세우고 도시락을 먹고 있는데 젓가락에 관한 옛날 생각이 났다.
일본 도시락은 먹을 만했다. 산중 점심이라 운치도 더해졌고 대구에서 오신 분들이 나눠준 고추장과 멸치볶음이 가외의 맛을 더해주었다. 일본 음식이라 약간 달짝지근하기는 했지만 먹성이 좋은 나는 싹싹 비웠다. 그리고 그 역할이 끝난 와리바시를 반으로 분질러 빈 도시락과 함께 수습했다.
손이 무엇인가를 착착 잡는 것이라면 다리는 툭툭 내던지는 행위를 주로 한다. 우리의 몸은 손으로는 무엇인가를 악착같이 붙들고, 발로는 어디론지 향해 흔쾌히 내던지는 것으로 그 균형을 유지하는 게 아닐까.
머언 훗날 저승으로 가는 길의 한 입구라도 되는 듯 내 앞에 던져진 가파른 산길. 그 길의 중간에서 징검다리마냥 오늘 오후에는 또 무슨 꽃들과 양치식물과 나무들을 만나려나. 젓가락 같은 다리를 벌려 한 걸음을 성큼 내딛었다.
ⓒ이굴기 |
▲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조금 지나서 두 개의 작은 다리를 연속으로 만났다. 다리는 작아서 이름도 없었다. 그래도 다리를 건너 길은 위로 아득히 뻗어갔다. 그 길 위로 무언가가 부지런히 지나다니는 흔적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이굴기 |
추신
이날 오후에 내가 기록한 식물의 목록은 다음과 같았다. 보리밥나무 털머위 까마귀쪽나무 왕모람 녹나무 조록나무 구실잣밤나무 좀딱취풀 석송 호자나무 만년콩 생갈나무 식나무 산꽃고사리삼 붉가시나무 비자나무 만년청 동백나무겨우살이 광나무 후박나무 검양옻나무 산쪽풀 밤일엽 가는새고사리 느티나무 샌달나무 좀굴거리나무 육박나무 돈나무 맥문아재비 방가지똥 고란초 사철난 참식나무 조록나무 생달나무 동백나무 수염이끼 부채괴불이끼 육방나무 나도은조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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