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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자! '안철수의 품'이냐, '고난의 행군'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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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자! '안철수의 품'이냐, '고난의 행군'이냐?

[장석준 칼럼] 전략에 따라 갈라지자

대선 이후 새누리당 왼쪽의 정치 세력들 사이에서는 좌절과 혼란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혼돈 상태에 있는 것이 내가 속한 진보신당을 포함한 '진보' 세력이다. 많은 이들이 푸념하듯, 당명에 '진보'가 들어간 정당만 세 개다. 당원이었던 이들까지 당명이 헷갈려서 통합진보당 탈당계가 진보신당에 팩스로 제출되는 웃지 못 할 일들까지 벌어진다.

그래서 이들 정당은 요즘 재창당 수준의 체제 정비 작업을 벌이고 있다. 진보신당은 6월에 열릴 전당 대회에서 당명을 바꾸고 강령, 당헌을 새로 채택할 예정이다. 현재 당원 토론 중인 새 강령(안)은 "생태주의, 여성주의, 평화주의, 소수자 운동과 결합된 사회주의"를 당의 이념 지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진보정의당도 7월경 당의 여러 면모를 정돈할 것이라 한다. 당명, 노선과 관련하여 '사회민주주의'가 논의된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떤 방향이 됐든 현 상태를 극복하려는 노력 자체는 긍정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모호한 데가 있다. 뭔가 솔직히 이야기 안 되는 문제가 있다. 이것 때문에 당명이나 이념을 둘러싼 고상한 논의들은 본론을 꺼내놓기 두려워 늘어놓는 미사여구에 불과한 것 아닌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렇게 알맹이가 빠진 상태에서는 무슨 '주의'를 이야기하든 공허한 수입산 논의가 될 뿐이다. 이제는 속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

내가 보기에 그것은 정치 전략 문제다. 따지고 보면, 지금과 같은 진보 정당들의 난맥상은 2012년을 둘러싼 정치 전략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다. 2012년 총선, 대선을 앞두고 진보 정당 운동의 다수는 민주당(혹은 안철수 세력)의 집권에 힘을 보태고 차기 정부에 연립 파트너로 참여하는 길을 선택했다. 21세기판 '민주 대연합' 노선이었다. 민주노동당이 자유주의 정치 세력을 '대체'할 세력으로 부상하는 데 실패(2007년 대선이 그 분기점이었다)한 상황에서는 이게 현실 정치에서 생존할 유일한 길로 보인 게 사실이다.

이 노선을 실현하고자 '진보' 언론의 축복을 받으며 등장한 게 통합진보당이었다. 비록 고질적인 당 내 패권주의가 재연돼 곧바로 분당하기는 했지만, 통합진보당 잔류파든 진보정의당이든 대선 때까지 애초의 선택, 즉 민주 대연합 노선만은 의연히 견지했다. 반면 진보신당이나 노동 운동 내 정파들은 이런 선택에 합류하길 거부하며 이후 바뀐 정권에서도 계속 좌파 '야당'의 길을 걷고자 했다.

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승리한 대선 결과는 이 분립 구도를 일단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통합진보당과 진보정의당은 자신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계속 소규모 '야당'에 머물러야만 하게 되었고, 진보신당은 좌파 야당'들' 중 하나(그것도 당세가 가장 미약한)로 생존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정치 전략에 따라 나뉘었던 경계는 갑자기 근거를 상실해 버렸다.

지금 '진보' 진영의 각 당은 당명이나 이념 논의를 통해 서로 간의 경계를 확인하거나 재편하려는 중이다. 그러나 이게 정치 전략 문제를 우회하려는 선택이어서는 안 되겠다. 애초 갈라지게 된 게 정치 전략의 차이 때문이었다면, 이제 다시 필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추구하는 전략 방향을 명확히 드러내고 서로 같은지 다른지 냉정히 따져보는 일이다. 그러지 않고는 현재의 분립 구도를 유지하는 것도 군색하고, 마찬가지로 다시 무슨 통합을 추진하는 것도 공허할 뿐이다.

▲ 진보 정당의 명망가들 앞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안철수 신당'과 같은 제1야당을 만들고 그 일원이 될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 10년 이후를 내다보며 미래 사회 변화의 기반을 착실히 만들어갈 것인가? ⓒ뉴시스

내가 보기에 전략적 선택은 크게 두 가지가 있을 따름이다. 하나는 제1야당을 만들고 그 일원이 되는 길이다. 누가 봐도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민주당에 그냥 합류하자고는 말하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민주당 '좌파(그런 게 있다면)'나 '안철수 신당(아직 존재하지도 않는)'을 통한 재편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튼 대통령제-소선거구제 질서에서 단숨에 제1야당의 지위로 진입해 총선, 대선에 도전하는 길이 있을 수 있다. 당 대 당 합작을 통한 민주 대연합의 대실패 이후 남은 것은 이제 이러한 민주 대연합 신당 건설의 길이다.

이것은 현실 정치 세력으로서 분명 합리적인 한 선택지다. 따라서 특정 정치가들이, 그들이 비록 진보 정당 운동을 통해 성장했다고 할지라도, 이런 선택을 감행하는 것을 더 이상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히 하자. 이것은 정확히 4~5년 정도의 미래만을 염두에 둔 전망이다. 다음 선거에서 이기자면, 이 4~5년의 시간대가 가장 중요한 시간 지평이다. 이 정도의 미래를 주된 판단 준거로 삼아 활동하는 정치 세력도 분명 존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이 4~5년의 시간대보다는 훨씬 더 오래 산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시야를 10년으로만 더 넓혀 보아도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과제의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 2008년 금융 위기와 같은, 혹은 그보다 더 거대한 격변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이 전망에서는 박근혜 '이후'만큼이나 신자유주의 '이후', 자본주의 '이후'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진보 정당 운동은 본래 이런 미래를 예비하자고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 정치의 어느 한 곳에는 이 본업에 충실한 또 다른 정치 세력도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전략적 선택지다. 비록 현실 정치에서는 당분간 대단히 제약된 공간만을 점하게 될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10년 이후를 내다보며 미래 사회 변화의 기반을 착실히 만들어가는 길이다. 이 길을 선택하는 이들 중에는 서유럽 정치의 기준으로 보면 사회민주주의에 해당하는 흐름도 있을 수 있고, 좀 더 급진적인 좌파나 녹색당 성향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는 여전히 이러한 차이보다는 자유주의 정치 세력에 대한 독자성 여부가 더 중요한 경계다. 이 경계선 왼쪽에서 서로 다른 여러 흐름들은 독자적 좌파 정치라는 전략적 선택으로 수렴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은 굳이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이 전략적 선택에 따라 결집한 정치 세력은 1987년 수준으로 대중 운동이 새롭게 폭발하거나 완전 정당 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는 정도의 계기가 닥쳐야 정치 무대의 중심으로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어느 것 하나 상당한 세월의 고된 작업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 작업을 묵묵히 전개하는 과정에서 이 길을 선택한 이들은 '소수' 정치 세력의 숙명을 좀처럼 떨치기 힘들 것이다.

이것은 10년 이상 아니 거의 한 세대 정도를 내다보아야만 하는 선택이다. 당장 자신이 다음 선거의 주인공이 될 것을 기대하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의 정치적 진출을 예비한다는 마음으로 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항상 현재의 20~30대가 이 사회의 주류가 될 정도의 시간 지평을 염두에 두고 정당 활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도 다른 두 길이다. 하지만 둘 다 필요한 길이다. 나는 어느 길을 택할지 나름 입장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길에 함께 하자고 사람들을 설득할 생각이다. 두 번째 길이다.

하지만, 이미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다른 길을 선택할 이들을 붙들거나 욕할 생각은 없다. 다만 하나만은 당부하고 싶다. 되도록 빨리 자신의 전략적 선택이 무엇인지 솔직히 밝혀 달라는 것이다. 명망 있는 정치가들일수록 더 그렇다. 상황을 곁눈질하며 이리저리 말을 바꾸거나 제3의 어떤 선택이 가능할 것처럼 이야기해선 안 된다. 신념과 지조를 따지기 전에 대중에게 못할 짓이다.

옛 동지들에게 바라는 마지막 바람이요, 기대다. 제발 솔직해지자. 그래서 제대로 갈라지자. 그래야 제대로 모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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