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러다가 문득 깨닫는다. 생각은 자유와 손가락 끝을 맞대고 있다. 햇볕도 잘 들지 않는 월세 몇 십만 원짜리 원룸에 갇혀서 호주의 어떤 섬에서 벌어진 사건을 생각할 수도 있고,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에 떠 있으면서 주가의 추이를 걱정할 수도 있다. 역사라는 이름의 파노라마를 종횡무진으로 감상하면서 시간의 제약을 부술 수도 있다. 물론 상황이 마냥 낙관적이지는 않다. 생각이 자유로 향하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에, 그 자유가 물리적인 힘과 연결되고 그 힘의 창끝이 자신들에게 향할 거라고 걱정하는 이들이 컨테이너로 방벽을 쌓고 생각의 활로를 차단하기 위해 추태를 부리기도 한다.
SF란 생각의 힘을 극한까지 누리게 해주는 장르다. 금기와 어설픈 도덕의 철제 방패는 SF와 만날 때 가장 먼저 녹슬고 부서진다. 그러니 (아직까지는) 우리가 제대로 넘어서지 못한 죽음이라는 이름의 철옹성도 SF를 이용한다면 얼마든지 해체하고 재조립할 수 있다.
▲ <불사판매 주식회사>(로버트 셰클리 지음, 송경아 옮김, 행복한책읽기 펴냄). ⓒ행복한책읽기 |
주인공 블레인은 적당히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는 요트 설계사다. 어느 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자동차가 고장나고 블레인은 죽는다. 하지만 제목이 암시하듯이 블레인은 눈을 뜬다. 그를 되살린 것은 '렉스'라는 회사다. 하지만 <불사판매 주식회사>에서의 부활은 기능을 정지한 육체가 다시 살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블레인은 다른 사람의 육체에 깃든 상태로 22세기에서 깨어난다. 22세기의 죽음은 다소 독특한 형태로(다른 말로 하자면 고전적인 종교와 신화의 내세관을 온통 짜깁기한 형태로) 정복되어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두 가지. 우선 인간의 마음과 육체는 기술을 통해 손쉽게 분리하고 다시 접붙일 수 있다. 그리고 육체적인 죽음이 도래해도 마음은 즉시 사라지지 않는다. 개인차는 있지만 살아남을 정도로 튼튼한 마음은 이른바 '내세'에 모인다. 소멸하지 않고 내세에 도달할 수 있도록 인간의 마음을 강화할 수도 있고, 내세와 현세는 통신도 가능하다. 이것이 <불사판매 주식회사>가 그리는 22세기의 모습이다.
죽음이라는 대단원을 기술로 정복했다면 사회상이 발칵 뒤집힐 건 불을 보듯 뻔하다. <불사판매 주식회사>의 22세기도 그렇다. 죽음이 극복할 수 있는 장애로 전락했기 때문에 그들의 인생관은 현재의 우리와 크게 다르다. 목숨과 마음을 담보로 한 사기극이 횡행하고 현실의 의미는 두 번, 세 번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자본과 힘의 논리가 삶과 죽음과 마음과 내세에 이르기까지 완벽하게 침투하는 것도 당연하다. 블레인은 바로 그런 세계에서, 완벽하게 낯선 죽음과 삶을 새로 접할 처지에 직면한다.
<불사판매 주식회사>에는 할리우드 산 SF의 기본 요소가 거의 전부 들어있다. 악질적이고 비인간적이며 인격의 수준은 어린애만도 못한 대기업의 총수, 늘 곁에서 맴돌면서도 속내를 완전히 드러내지는 않는 여주인공, 친구인지 적인지 종잡을 수 없는 주변 인물들, 철저하게 계산된 반전의 연속, 그토록 첨단에 선 기술이 지배하고 있건만 정작 도끼와 창으로 벌이는 육탄전, 마지막으로 빠른 속도감까지. 이 소설을 철저하게 흥미 위주로 읽으리라 마음먹는다 해도 모자람은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서평의 앞머리에서 두 문단이나 할당해서 생각의 자유를 칭송한 것이 아까우니 조금만 더 되짚어 보자. <불사판매 주식회사>에서 삶과 죽음을 논하는 태도에는 단순히 셰클리라는 작가의 개성 이상의 무언가가 들어 있다. 통계를 내보지는 않았지만 현재 유선과 케이블 방송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광고는 무엇일까. 음식과 보험 광고다. 그 중에서 보험 광고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강과 복지와 삶과 죽음이 철저하게 수치와 이익의 논리로 분석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인도주의의 비난에 잠시만 귀를 틀어막고 본다면 바로 그게 현재의, 생명과 죽음의 삼각함수이다. <불사판매 주식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인생과 죽음은 철저하게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인생과 죽음이 곧 시스템 자체이다. <불사판매 주식회사>는 그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금의 시스템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환기시켜준다.
또 하나, <불사판매 주식회사>는 그리 길지 않은 소설이지만 그 속에는 22세기에 사는 인물들이 다수 등장한다. 인물들은 하나 같이 '죽음'의 영역 한복판에서 움직이며 생활하고 있다. 지금의 우리가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기보다는 가급적 잠깐만 접하고 얼른 시선을 돌려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바로 여기에 '생각의 자유'가 펼치는 탐험과 인식의 가능성이 있다. 그만큼 <불사판매 주식회사>는 SF의 자유를 효과적으로 이용한 걸작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이 작품에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크게 지적하고 싶은 것은 균형의 문제이다. 블레인은 단순히 다른 사람의 육체를 빌어 살아난 것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로 끌려왔다. 또한 블레인이 특수한 경우도 아니다. <불사판매 주식회사>의 22세기에는 과거를 마음대로 조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죽음과 내세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느라 그처럼 커다란 가능성을 은근슬쩍 넘어간 것은 아무리 풍자소설이라는 명찰을 붙인다 해도 아쉽기 그지없다.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으로, 이 소설은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만든 적이 있다. 롤링 스톤스의 믹 재거가 조연으로 등장하는 <프리잭(Freejack)>(1992)이 그 작품이다. 영화는 철저하게 흥미 위주로 진행되며 사기와 반전과 소정의 액션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직 두 작품을 모르는 분들에게는 '선 소설 후 영화'의 순서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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