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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이라는 게 도무지 싫을 때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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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이라는 게 도무지 싫을 때까 있다"

[꽃산행 꽃글]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

쌍떡잎식물 쐐기풀목 느릅나무과의 낙엽활엽 교목으로 춘유(春楡) 또는 가유(家楡)라고도 하는데, 높이는 20미터, 지름은 60센티미터이며, 나무껍질은 회갈색이고, 작은 가지에 적갈색의 짧은 털이 있다. 봄에 어린잎은 식용하며 한방에서 껍질을 유피(楡皮)라는 약재로 쓰는데, 치습(治濕), 이뇨제, 소종독(消腫毒)에 사용한다. 목재는 건축재, 기구재, 선박재, 세공재, 땔감 등으로 쓰인다. (<두산 백과 사전>)

느릅나무에 대한 설명이다. 위에 따르면 느릅나무는 참 쓸모가 많은 나무인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가.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키는 것처럼 느릅나무의 운명이 참 얄궂다. 사람들이 가만 놓아두는 법이 없다.

경주의 날씨는 아주 맑았다. 이제 곧 본격적인 꽃산행이 시작된다. 어제는 지리산, 오늘은 토함산. 경주 도심을 빠져나온 차가 보문 관광 단지 끝의 엑스포공원에 닿았다. 그 마지막 점검을 위해서 잠시 정차한 것이다. 밤늦게 경주로 이동해 마신 간밤의 숙취가 아직 덜 깨었다. 혼몽한 가운데 공중 화장실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처리하고 오는데 화단 귀퉁이에 시과(翅果)가 잔뜩 떨어져 있다. 무슨 귀중한 물건이라도 싼 듯 흰 창호지 같은 것으로 싼 열매들. 이리저리 바람 부는 대로 휩쓸려 다니면서 한 구석에 잔뜩 모여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열매의 주인은 느릅나무였다. 나무는 엑스포공원의 동쪽 출입문 가까이에 가지를 활짝 드리우고 환하게 서 있었다. 이 나무는 토양에 수분이 많은 계곡 주위에서 잘 자라는 나무이다. 그런데 이 아스팔트 도심의 한 복판에 서 있는 느릅나무. 나무의 이런저런 용도를 고려하여 식재한 것이리라. 그렇더라도 설마 이뇨 작용을 의식해서 화장실 근처에 굳이 심은 것은 아니겠지?

▲ 경주 엑스포공원의 느릅나무. ⓒ이굴기

이제 나는 곧 감포 가는 길로 넘어가다가 오른편으로 꺾어져 토함산의 한 골짜기인 시부거리로 꽃산행을 떠난다. 그곳은 참으로 귀한 야생화가 지천이라고 한다. 앵초를 비롯해서 노랑무늬붓꽃, 날개현호색, 앵초, 양지꽃, 벌깨덩굴 등의 식물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디 그뿐이랴.

나의 가슴이 진작부터 설레는 건 그런 야생화 탓만은 아니었다. 토함산이다. "한발 두발 걸어서 올라라 맨발로 땀흘려 올라라 / 그 몸뚱이 하나 발바닥 둘을 천년의 두께로 떠바"치고 싶은 토함산. 여러 번 이 길을 지나다녔지만 어쩐지 차를 버리고 꼭 걸어서 오르고 싶은 토함산. 바로 그 산이었다. 기회가 왔다. 그 토함산을 오늘 비로소 그렇게 오르기 때문이었다.

토함산. 나는 1971년 가을에 그 산에 올랐었다. 초등학교 6학년 수학여행 길이었다. 지금도 정확히 기억난다. 맨발은 아니고 운동화를 신었다. 등에 배낭은 아니었고 옆구리에 작은 가방을 맸다. 모자도 하나 걸쳤던 것 같다. 입에 사탕 하나를 넣고 우물거렸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작은 몸뚱아리로 작은 길을 걸어 토함산의 석굴암까지 올라갔었다. 그때의 그 찬란한 기억 속의 토함산이지 않겠는가.

그러나 경주의 끝머리에서 토함산으로 가는 채비를 하면서 42년 전으로 떠나기 전에 당장 하루 전으로 떠나야 할 일이 있었다. 그것은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 아래에서의 일이었다. 바람 따라 가지를 흐느적거리고 바람에 쫓겨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느릅나무 열매를 보는데 16시간 전의 생생한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바로 어제의 지리산 꽃산행. 새재에서 올라 치밭목까지 가는 중간 길목인 삼거리에서 하산하여 유평 마을까지 돌아오는 코스였다. 갑자기 이상해진 날씨 탓이라 예전의 생태계와는 전혀 다른 꽃의 지도를 보여주는 지리산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에는 기대하지 않았던 뜻밖의 장소에서 예쁜 꽃무더기를 만났다.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며 연등이라도 달아놓은 듯한 풍경. 그것은 금낭화였다.

▲ 연등처럼 달려있는 금낭화. ⓒ이굴기

한껏 흔쾌해진 기분으로 내려오는 길이었다. 오전에만 해도 짱짱하던 하늘이 오후 3시 무렵이 되자 예보한 대로 비가 알맞게 내리기 시작하는 가운데 멀리서 마을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개울물 소리도 커졌다. 울긋불긋 야생화와는 전혀 다른 인가의 지붕색도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밭이 보이고 비닐로 감나무를 접붙이는 광경도 눈에 띄었다. 그렇게 구불구불한 지리산의 골짜기가 내어주는 길이 끝나고 시멘트로 포장된 인공의 길로 접어드는 길가에 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었다.

이 정도의 굵기로 자랐다면 족히 수십 년을 자랐을 나무였다. 노인의 얼굴에 반점이 얼룩지듯 이끼가 슬쩍 묻어 있는 나무였다. 조릿대의 잔가지가 바싹 달라붙어도 내치지 않고 동거하는 나무였다. 있을만한 자리에서 알맞게 자라서 휘영청 드리워진 나무, 그것은 다름 아닌 느릅나무였다.

곧게 자라기를 여러 해. 그러나 나무는 이제 얄궂은 운명에 처한 느릅나무였다. 이 나무에 속한 무슨 용도를 채취해 가려고 그런 것일까. 누가 그랬는지 톱으로 나무의 밑둥을 돌아가면서 잘라놓았다. 아마 나무가 받은 상처의 깊이를 따진다면 체관은 물론이고 물관도 틀림없이 손상을 받은 듯 했다. 아마 오래지 않아 느릅나무는 물과 양분의 이동경로가 막혀 고사할 것이 틀림없을 것 같았다.

느릅나무에게 톱이 할퀴고 간 곳은 사람으로 치면 어디쯤에 해당할까. 단순하게 높이로만 친다면 아랫도리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내 눈에는 굳이 그렇게만 보이는 게 아니었다. 할 말을 가득 품고 있으되 입술 깨물며 꾹 다문 입처럼 보였다.

꺼칠꺼칠한 느릅나무의 피부에는 다만 고요한 침묵만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돌연한 소리가 들리고 톱이 막무가내로 들어왔다 빠져나간 뒤 나무는 입 하나를 달게 되었다. 느릅나무의 입은 그렇게 갑자기 생겨난 것이었다. 상처를 꿰매며 나무는 할 말이 많은 듯 했다.

우리와 반대편에 살았던 파블로 네루다의 <산보>라는 시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 발이 싫어지고 내 손톱과 / 내 머리카락 그리고 내 그림자가 싫어질 때가 있다 / 내가 사람이라는 게 도무지 싫을 때가 있다."

상처 난 느릅나무 아래에서 오래 머물렀다. 가랑가랑 비속에 내 그림자가 눕고 내 그림자 위로 느릅나무 그림자가 포개지는 것 같았다. 그림자 속에 상처는 표시나지 않았다. 할 수 있다면 그만 내 입도 꿰매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그래도 여전히 느릅나무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 입술 깨물고 서 있는 느릅나무.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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