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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스타일'로 신분 상승, '본전' 찾고 '갑질'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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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강남 스타일'로 신분 상승, '본전' 찾고 '갑질' 가능하다?

[엘리트 부모의 수기] 한국 '학습 노동'의 현주소

"본전의식을 추방하자"

군복무 시절, 부대 화장실 문에는 이런 표어가 붙어있었다. 병영 안에서 잇따르는 구타 및 가혹행위의 배경에는 선임병들의 '본전의식'이 있다는 상급부대의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내가 얻어맞으며 졸병 생활을 했으니, '본전'을 건지려면 나도 졸병을 때려야 한다는 생각 말이다. 부대에서 구타 사고가 생기고 얼마 뒤, 병사들이 한데 모여 '본전의식 추방' 구호를 외치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행사를 마치고 내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한 선임병이 '솔직히 어떻게 본전 생각이 안 날 수 있느냐'라며 중얼거리던 게 기억난다.

엘리트를 망가뜨리는 독약, '본전생각'

오랫동안 봉인돼 있던 기억이 튀어나온 것은 '프레시안 books' 편집 팀의 주문을 받은 직후였다. "'공부'를 주제로 삼은 책들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데, 이런 책들을 소재로 삼아 비판적인 에세이를 써보라"라는 주문이다. 실제로 '프레시안 books'가 골라준 책들을 집어 들었더니 가방 한 가득이었다. '이 많은 책을 언제 다 읽나'하는 걱정이 먼저. 그리고 뒤따른 걱정은 책들이 영 재미없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이들 책이 주로 다루는 건 대학생이나 직장인이 하는 공부가 아니라 중고등학생이 입시를 겨냥해서 하는 공부였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딸이 자라서 입시를 치르기 전까지는 별로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가 아니다.

▲ <강남 엄마의 정보력>(김소희 지음, 북라이프 펴냄). ⓒ북라이프
그럼에도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본전의식'과 얽힌 오래 전 기억이 떠오르면서였다. 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공부, 특히 각종 시험공부에 대한 입장만큼 '본전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도 없다.

졸병 때 몇 대 맞은 기억, 그 알량한 '본전'이 아깝다고 벌벌 떠는 어린 고참들을 보며 군대 안에서 몇 가지 결심을 했었다. 그 중 하나가 전역 이후에는 본전 생각이 나지 않을 만한 일을 하며 살자는 거였다. 예컨대 판사나 검사는 본전 생각에 빠지기 쉬운 직업이다. 이처럼 준비 과정이 지나치게 피곤한 직업은 택하지 말자는 결심이었다. 충분한 수양이 되지 않은 사람이 판검사가 되면, 공무원 월급에 만족하지 않고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치른 고생에 대한 대가까지 청구하는 경우가 있다. 이건 사람 망가지는 지름길이다.

지난 1월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지명됐다 낙마한 이동흡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에 관한 온갖 엽기적인 일화들은 삐뚤어진 '본전의식'이 사람을 어떻게 망치는지를 잘 보여준다. 후배 판사들과 룸살롱에 간 그가 '2차'(성매수)를 권하며 "솔직히 말해 봐라. 그러려고 출세하고 돈 모으는 거 아니냐"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또 부장판사 재직 시절, 법원 여직원에게 법복을 입혀주거나 벗겨주도록 시켰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런 특권의식의 배후에는, 이등병 때 얻어맞은 기억을 움켜쥐고 사는 육군병장과 비슷한 '본전의식'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동흡 전 재판관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아니더라도, 법조인이나 의사, 교수 등 청춘을 공부로 보낸 이들이 나이를 먹은 뒤 여러 방식으로 '본전의식'을 드러내는 예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남들이 젊음의 특권을 누릴 때 내 청춘은 퀴퀴한 골방에서 썩어갔는데, 나이 먹은 지금 이 정도 대우는 받아도 되는 것 아니냐'라는 생각으로 법원 직원이나 제약회사 영업사원, 대학원생 등 상대적 약자에게 퍼붓는 온갖 종류의 '갑질'을 정당화하는 경우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갑질' 문화는 다양한 방식으로 변이돼 사회 곳곳에서 창궐하고 있다.

북유럽 법관은 왜 '본전 생각'을 안 할까

사람 사는 세상이면 어디나 다 비슷비슷한 것 아니냐고? 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지난 2008년 가을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을 돌아다니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똑같은 시간대, 똑같은 하늘 아래서 살아도 문화가 다른 나라들이 있다. 이들 나라에선 이메일로 미리 약속만 하면 국회의원이나 주요 정당 대표를 누구나 쉽게 만날 수 있다. 내가 겪은 일이다.

출발 전 노르웨이의 차기 수상 후보로 유력시되던 우파 정치인에게 만나고 싶다는 메일을 보냈다. 별 기대를 안 했는데 수락 답변이 돌아왔다. 약속한 시간에 의회 정문 앞에 가니까 수수한 옷차림의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비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메일을 주고받았던 당사자가 분명했다. 의원 회관에서 일을 하다 나왔다는 그녀는 동네 아주머니처럼 편안하게 수다를 떨다 약속된 인터뷰 시간이 끝나자 바로 자리를 떴다.

현지 교포들에게 이런 경험을 이야기했더니 다들 심드렁했다. 그곳에선 당연한 일이라는 게다. 유력 정치인뿐 아니라 법관, 교수, 외교관, 의사 등이 다 마찬가지라고 했다. 출발 전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었지만 막상 몸으로 겪으니 느낌이 강렬했다.

거기서도 이들 직업을 얻으려면 상대적으로 오랫동안 공부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북유럽 법관이나 교수, 의사들은 유난히 착해서 '본전 생각'이 안 나는 걸까. 그럴 리는 없다. 그렇다면 왜? 현지 교포나 외교관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지만 딱 떨어지는 답변은 듣기 어려웠다. 이런 저런 정보를 모아서 내가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북유럽에선 공부가 크게 괴롭지 않기 때문'이라는 거였다.

공교육은 대부분 무상으로 이뤄지고 사교육 역시 미미하므로 경제적 의미에서는 본전 생각이 날 이유가 없다. 학업성취도를 기준으로 아이들의 등수를 매기거나 경쟁을 부추기는 일이 금기시된다. 그러니 남과 성적을 비교하며 상처를 받는 일도 드물다. 심리적인 본전도 별로 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북유럽 엘리트 집단이 상대적으로 '본전 생각'에서 자유로운 것은 이런 구조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아이들의 끔찍한 학습 노동

▲ <이범, 공부에 反하다>(이범 지음, 한즈미디어 펴냄). ⓒ한즈미디어
반면 한국에선 공부가 일종의 노동, 그것도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소외된 노동'에 가깝다. 학습 노동의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는 속도나 방식을 학생의 개성에 맞춰 조절하는 게 불가능하다. 학습 노동의 결과물이 지닌 의미나 쓰임새에 대해서도 학생은 알 길이 없다. 전형적인 소외된 노동이다. 국제 학력평가에서 OECD 꼴찌 수준을 기록한 학습 흥미도는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다. '소외된 노동'이 즐거울 리 없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학업성취도는 최상위권이다. 하지만 학업성취도를 학습시간으로 나눈 값, 일종의 학습효율지수라고 할 수 있는 이 지표는 하위권이다. 이런 정보를 종합하면, 산업혁명 초기의 아동 노동이 떠오른다. 한국 학생들의 학습 노동이 이와 꼭 닮았다. 전혀 흥미가 없는 공부를 아주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하는데, 최고의 성취도를 기록했다.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아이들은 왜 저항하지 않을까. 부모들은 왜 아이들을 '소외된 노동'으로 내몰까. 그 이유 역시 다들 알고 있다. 이런 노동의 결과물이 향후 노동 시장에서 차지할 지위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학습 노동을 잘 견뎌내면, 어른이 되고 나서 전문직이나 공무원, 대기업 정규직 등으로 진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들 직업군은 '갑'이다. 나머지 직업군, 예컨대 중소기업 노동자,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등은 '을'로 살아야 한다. 그리고 '갑'과 '을'의 관계는 봉건시대 신분질서 만큼이나 견고한 차별 구조다. 전체 인생을 놓고 보면 학습 노동에 시달리는 아이로 보내는 시간보다 '갑'과 '을'로 엮인 어른의 세계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훨씬 길다. 이런 점을 두루 고려하면 어린 시절에는 '소외된 노동'에 저항하지 않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게 지금까지 통용된 공식이었다.

살벌한 수험 경쟁, 어차피 본전 못 뽑는다

그런데 조금씩이나마 변화가 생겼다. 우선 과거에 비해 '본전'의 규모가 아주 커졌다. 노동은 원래 돈을 받고 하는 게 정상이다. 노동을 통해 생산한 가치보다는 적을지언정, 돈을 받는 게 옳다. 학습 노동이라고 해서 달라야 할 이유는 없다.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은 대부분 학생이 고른 게 아니다.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이고, 여기엔 정부와 기업이 원하는 인재에 대한 지향이 녹아 있다. 아주 거칠게 이야기하면 기업과 정부가 원하는 인재로 자라는데 드는 비용은 기업과 정부가 부담하는 게 옳다.

하지만 현실은 반대다. 학습 노동을 하는 아이들의 부모가 비용을 댄다. 그리고 그 비용은 계속 불어난다. 천문학적 규모로 팽창한 사교육 시장이 주요 원인이다.

이처럼 들인 '본전'은 막대한데 산출은 미미하다. 기껏 대학에 진학해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입시만큼이나 치열한 취업경쟁이다. 이른바 명문대학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다. 승리자가 되는 길목은 점점 좁아진다. 승리한 뒤 역시 문제다. 1997년 외환위기, 그리고 2000년대 초 정보화 혁명 등을 거치는 동안 대기업 사무직의 노동 강도는 꾸준히 상승했다. 과거에 서너 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혼자서 한다. 또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면서 고용불안은 더 심해졌다. 회사에서 쫓겨난 이들을 위한 안전망은, 여전히 없다. 막대한 본전을 들여 명문대 학벌을 쟁취하고 취업경쟁에서 승리한 대가가 너무 초라하다.

결국 본전 생각으로 억울해하는 육군병장의 표정을 닮아가는 이들이 늘어간다. 한편에선 어떻게 쟁취한 학벌인데, 그게 왜 이토록 싸구려 취급을 받느냐며 원통해한다. 이들 중 일부는 스스로 학벌주의의 포로가 돼 차별의 벽을 쌓는다. 그게 아니면 '이젠 학벌보다 직업'이라며 의·치·한의대 진학에 목을 매거나 공무원 시험 준비에 골몰한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이들 직업군에 진입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은 크게 늘었다. 의사나 공무원이 된다고 해서 과거만큼 편안한 삶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본전 생각에 찌푸린 이들은 계속 늘어난다.

다른 한편에는 아예 본전 자체를 들이지 않겠다는 아이들이 있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동네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의 말을 들어보면, 과거에 비해 학습의욕이 낮은 아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공부 열심히 해봤자 별 것 없다'라는 걸 깨달은 아이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공부, 더 정확히는 시험 공부를 통한 신분 상승' 신화는 한국 사회를 유지하는 기둥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이런 신화가 무너진다면,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강남엄마, 묻어둔 본전이 제일 큰 사람들

▲ <우리교육 100문 100답>(이범 지음, 다산북스 펴냄). ⓒ다산북스
이런 궁금증을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리다 떠올린 단어가 '사교육 1번지 강남'이었다. 사교육에 막대한 돈을 쓸 뿐 아니라 입시 관련 정보를 격렬히 소비하고 유통하는 게 이곳 학부모들이다. 한마디로 현행 교육체제에 묻어둔 본전이 큰 사람들이다. 그들은 지금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본전투자의 효율이 하락 추세인 지금, 그들은 본전 생각으로 인상을 찌푸릴까. 아니면 여전히 본전이 아깝지 않다는 입장일까. '프레시안 books' 편집 팀이 건넨 책들 가운데 <강남 엄마의 정보력>(김소희 지음, 북라이프 펴냄)을 우선 고른 것은 그래서였다.

"나는 강남에 산다고 강남 키드라고 보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강남의 교육 스타일에 맞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사는 곳에 관계없이 모두 '강남키드'이다. (…) 많은 아이들이 주말에는 KTX를 타거나 승용차를 타고 대치동에 모여든다. 이 아이들도 강남 키드이다.(49쪽)"

물론, '강남 엄마'가 꼭 서울시 강남구에 사는 학부모만 가리키는 건 아니다. <강남 엄마의 정보력>의 저자가 이야기하듯 '강남의 교육 스타일'을 따르느냐 여부가 관건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조금 더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대치동 일대 주민들의 교육열이 높고 사교육이 발달되어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대치동의 진정한 특징은 같은 강남권에 있는 압구정동과의 대조를 통해 특히 잘 드러난다.

(…) 압구정동에는 사업을 통해 성공한 사람들을 상당수 찾아볼 수 있는 반면, 대치동에는 의사, 법조인 등 전문직 비율이 유난히 높으며 현재 학부모 세대에서 경제적 안정을 이룩한 사람들이 많다. 이러다보니 이들은 자녀 세대도 자기 세대와 마찬가지로 전문지식을 통해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가 유달리 강하다. 이러한 의지는 자녀의 성적과 좋은 학력, 학벌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대치동에는 '학원 아이쇼핑'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학부모들이 학원을 여러 군데 돌아보며 입체적인 상담을 통해 정보를 얻고, 종종 단체로 몰려다니면서 이를 공유하고 종합한다. (…) 이렇듯 성가시고 까다로운 학원 아이쇼핑족에 대처하다 보니, 대치동 학원가의 상담실장들은 전국 최고의 정보력과 입심을 가지고 있다.

반면 압구정동의 학원은 대치동보다는 운영하기 편하다. 학원에서 안정적이고 신뢰감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는 평판이 있으면 부모들이 상담실을 찾아와서 몇 분 정도 상담한 뒤에 바로 등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대치동 일대에서는 전문직으로 성공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전문직으로 직행할 수 있는 최적의 코스를 밟는 것을 최고 목표로 삼는다. 자연히 명문대 의대·법대 진학이 지상과제가 되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대학입시가 인생에 있어 극히 중요한 관문이 되는 것이다.

반면 압구정동·청담동 주민들은 전문직에 대한 집착이 대치동만큼 강하지 않으며, 그보다는 국제적인 시야와 사회의 흐름을 파악하는 안목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조기유학은 아주 자연스런 선택지가 되는 것이다." (<이범, 공부에 反하다>(이범 지음, 한즈미디어 펴냄) 35~37쪽)

어린 시절 '학습 노동'에서 본전 뽑았던 그들, 과연 자식들도?

연봉 18억 원을 받던 입시학원 강사에서 교육평론가 및 정책 실무자로 변신했던 이력으로 화제가 됐던 이범 씨가 낸 책 가운데 일부다. <강남 엄마의 정보력>이 강남 식 사교육의 수요자 입장이라면, 이범 씨가 낸 여러 책들은 한때 공급자였던 입장에 서 있다. 일단 이범 씨의 설명을 따른다면, <강남 엄마의 정보력>에 묘사된 강남 엄마는 엄밀히 말해 대치동 엄마다.

▲ <아깝다 학원비!>(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엮음, 비아북 펴냄). ⓒ비아북
이들은 어린 시절 '학습 노동'에 충실했던 덕을 톡톡히 본 세대다. 이들은 '시험 공부를 통한 신분상승' 가능성을 믿을 만한 이유가 있다. 자신의 체험이니까. 그래서 이들은 명문대 학벌 및 전문직 자격증의 가치를 평가하는데 인색하지 않고, 이를 얻기 위한 비용을 치르는데도 아낌이 없었다. 그게 이들이 거주하는 서울 강남 일대를 사교육 산업의 중심으로 키웠다. 동시에 이들은 사교육 시장의 가장 까다로운 소비자로 군림하며 입시 관련 정보를 판독하는 안목을 길렀다. 전국의 학생들이 '강남키드' 흉내를 내고 '강남 엄마의 정보력'이 전국적인 관심사가 된 것은 그 결과다.

학력고사 시절의 경험을 갖고 <강남 엄마의 정보력>을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진다. 과장이 아니다. 말 그대로 깨알 같은 정보, 치열한 고민이 페이지마다 빽빽하다. 자식의 명문대 진학과 전문직 획득이라는 목표에 최적화된 형태로 진화한 학부모를 만나게 된다. 고백컨대 이 책 첫 장을 펼쳤을 때만 해도 그저 만만한 기분이었다. '읽지 않아도 뻔히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겠거니' 싶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맙소사, 입시 제도가 이렇게 복잡하다니'하는 생각이 먼저. '부모가 멍청하고 게으르면, 자식이 아무리 똑똑하고 부지런해도 명문대 들어가기가 불가능한 세상이 됐구나' 싶은 깨달음이 나중.

"아이에게 해당되는 교육과정, 내신 성적, 특기 그리고 성향이라는 네 가지 데이터를 확실히 파악하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입체적인 시각을 갖는다면 고된 입시와 사춘기를 겪어내는 아이는 물론 부모 역시 한 단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설명이 빈말로 여겨지지 않는다. 적어도 허투루 쓴 책은 아니다. 그래서 더 답답하다.

강남 엄마도 부담스런 강남 교육

입시준비와 중등교육을 등치하는 태도는 잘못이라는, 당연한 지적을 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고상한 지적과는 거리가 먼, 아주 실용적인 독자조차 숨이 턱턱 막힌다는 말이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다.

"강남 엄마들이 자신의 일을 찾아나서는 것은 미뤄두었던 자아실현의 절실함일 수도 있지만 경제적인 이유가 더 크다. 아이들이 대학 졸업 후 진로를 위해 로스쿨에 가거나 의치학전문대학원을 준비하거나 마치는 데 드는 비용은 대학 졸업 때까지 드는 비용보다 몇 배나 더 많다. 아이들이 번 돈으로 턱없이 부족하다.

(…) 나는 대학에 합격한 큰 아이에게 이제부터 하고 싶은 공부를 어떻게 해낼 것인지 계획하라고 했다. 학점을 잘 관리하면 엄마가 기업체 인턴을 주선할 수 있다고 했다. 그나마 그것도 큰 기회가 될 법한데 아이는 치열한 학점 경쟁에 벌써 한숨이 나오나 보다. (…) 아이들에게 원하는 만큼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이제 부모는 더 무섭다는 결혼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아이를 대학에 보내자마자 언제가 될지 모르는 아이의 결혼비용을 생각한다는 게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 (…) 남편은 아이들이 결혼할 때 아빠가 뭐하시는지 분명 물어볼 텐데 백수이면 큰일이라며 무슨 일이든 꼭 하고 있겠다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 남들은 그러게 왜 아이의 교육에 그렇게 많이 투자했느냐고 한다. 그 부분은 우리 부부도 오랫동안 토론을 했던 주제이다. 집을 살 것인가 아니면 아이의 교육에 투자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 나는 교육에 투자하자는 쪽이었다. 교육에 대한 투자야말로 상상할 수 없는 부가가치 창출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물론 아이를 교육시켜도 성적에 큰 변화가 없고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을 때 잠시 잘못한 건 아닌지 고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뭐라 해도 자식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부모이다. 다들 비웃고 안 된다고 하고 아이 자신마저도 그런 생각을 할 때 아니라고 단호하게 얘기하고 또 투자를 하였다. (<강남 엄마의 정보력>, 275~277쪽)"


이 대목을 읽고 한숨이 나오지 않을 부모가 얼마나 될까. 저자 김소희 씨는 석사 학위를 받고 연구직으로 일하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아이의 교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었다"라고 한다. 저자의 남편 역시 석사 학위가 있으며 <조선일보>, 삼성경제연구소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한다. 한국 사회 평균을 훨씬 웃도는 학력과 경력이다. 여기에 더해 자녀 교육을 위해 맞벌이를 포기하는 게 가능한 경제적 조건, 수능 문제풀이보다 더 까다로운 현행 입시 제도를 꼼꼼히 분석할만한 지력과 성실성, 대학생 자녀에게 기업체 인턴을 쉽게 주선해줄 수 있는 인맥까지 두루 갖췄다. 그런데도 책 곳곳에서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라고 토로한다. 하물며 이 가운데 하나도 없는 보통 부모라면 대체 어쩌란 말인가.

강남 엄마는 왜 교육 자체에 대해선 질문하지 않을까

▲ <왜, 선행학습을 금지해야 할까?>(열린사회참교육학부모회 지음, 베이직북스 펴냄). ⓒ베이직북스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경이로운 헌신성에 몇 번이고 감탄했다. '나처럼 게으르고 이기적인 사람은 부모 자격이 없나보다' 싶은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질기게 머리에 달라붙었던 것은 의문이었다. '이토록 치열하게 고민하는 강남 엄마는 왜 한국 교육 그 자체에 대해서는 의문을 던지지 않을까'라는 의문이다. <강남 엄마의 정보력>의 가장 인상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자식이 좋은 학벌을 얻게끔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자세히 열거한다. 그러나 그게 근본적으로 왜 필요한지에 대해선 묻지 않는다.

이 책에는 입시 전형을 위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 필요한 게 잔뜩 열거돼 있다. 예를 들면 고교 수학경시대회 입상도 그 중 하나인데, 책에 따르면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부터 학원에서 기출문제를 풀면서 대회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게 정상인가? 경시대회는 원래 해당 분야에 특출한 재능을 지닌 아이를 발굴하려는 게 목적인데, 이걸 기출문제로 미리 연습하는 것부터가 잘못이다. 어차피 각종 경시대회가 취지에서 벗어난 채로 운용된 지 오래 됐으므로 어쩔 수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지능이 아주 높은 영재가 아닌 보통 아이가 고교 수학을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미리 공부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고교 수학을 학원에서 선행학습 했다는 중학생들의 정체는 뭘까. 그들이 실제로 한 건 뭘까. 수학 개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학원에서 일러준 문제풀이 요령을 외워서 적용하는데 그친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공부가 아니라 학습 노동인데 학원은 왜 아이들에게 노동을 강요하고 학부모에게 돈을 받을까. 또 이렇게 공부한 아이들이 실제로 고등학생이 되면 고교 수학을 제대로 공부할까. 과거에 배운 적이 있다는 이유로, 대충 들여다보고 말지 않을까. 고교 수학은 고등학생 때 공부하면 더 짧은 시간에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데, 왜 굳이 중학교 때 선행학습을 하면서 시간 낭비를 하는 걸까. 외국 학생들과 비교하면, 한국 학생들은 공부에 들인 시간에 비해 성취도가 낮은 편이라고 하는데 학원이 부추기는 무리한 선행학습이 한 원인이 아닐까. 한국 학생들이 유난히 머리가 나쁠 리는 없지 않은가.

'경시대회'라는 한 단락만 읽어도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나 이 책에는 이런 질문이 들어갈 틈이 없다. 모든 게 당연하기만 하다. (사교육 업체들이 왜 '선행학습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지, 그게 아이들에게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에 대해선 <우리교육 100문100답>(이범 지음, 다산북스 펴냄), <아깝다 학원비!>(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엮음, 비아북 펴냄), <왜, 선행학습을 금지해야 할까?>(열린사회참교육학부모회 지음, 베이직북스 펴냄) 등이 참고가 된다.)

아무도 본전 못 뽑는 교육이라면…

의문은 이밖에도 많다. 저자는 대학을 졸업한 아이가 로스쿨이나 의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하는 데 드는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한탄한다. 그러나 왜 강남키드들은 변호사나 의사만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은 없다. 또 강남 엄마조차 부담스러운 교육 비용이라면, 극소수 가계를 제외한 사회 구성원 대부분에게 짐이 된다는 뜻인데 이런 비용을 사회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는 데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예컨대 글 앞부분에서 소개한 북유럽 국가들에선 의사와 벽돌공의 소득 및 사회적 대우 격차가 크지 않다. 직장에서 잘려도 기본적인 안전망은 보장된다. 따라서 굳이 적성에 안 맞는 아이들까지 의사나 변호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는 환경이다. 그렇다면 꼭 의사나 변호사가 되려는 아이들에게도 좋다. 경쟁이 한결 누그러지니까. 게다가 대학 교육이 무상이다. 물론 세금도 많다. 그러나 저자를 포함한 강남 엄마들이 사교육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보다 많지는 않다. 천문학적인 사교육비를 들여 소모적인 경쟁을 하느니, 그 돈을 세금으로 갹출해서 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게 더 경제적인 선택이다.

각자 생수를 사마실 돈을 거둬서 상수도를 정비하면 모두가 훨씬 싼값에 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조금 천박한 표현이라 글로 옮기기 민망하지만, 자녀의 입시에 인생을 건 강남 엄마들 가운데 어느 정도가 '본전'을 뽑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교육 비용은 천정부지로 뛰는 반면 명문대 학벌 및 전문직 자격증의 상대적 가치는 계속 줄어든다. 강남 엄마들이 자라던 때와는 다른 환경이다. 아마도 '본전'을 뽑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예 본전 생각을 할 필요가 없는 사회로 만드는 게 현명한 일 아닐까.

치열한 개인과 무력한 사회

이런 지적에 대해 저자를 포함한 강남 엄마들은 "그건 정치권이 할 일"이라고 맞받아칠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념적인 이야기로 몰아붙일 수도 있겠다. 물론 그렇다. 정치적이고 이념적인 이야기다.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긴 지금, 내가 궁금한 건 개인 차원의 문제에 대해선 이토록 치열하게 고민하고 조사하는 이들이 왜 그걸 사회적 논의로 확대할 생각은 하지 않을까라는 점이다. 아마도 개인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풀어본 경험이 없는 탓이리라. 치열한 개인과 무력한 사회. 강남 엄마들의 치열한 교육수기에 비친 한국의 그림자다.

ⓒ프레시안(손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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