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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도와준다'고? 아니, 금을 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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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을 '도와준다'고? 아니, 금을 넘어라!

'프레시안 books' 138호는 '아까운 책' 특집호로 꾸몄습니다. 지난해 가치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우리 곁을 스쳐가 버린 숨은 명저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야 열두 명의 필자가 심사숙고 끝에 고른 책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함께 '나만의 아까운 책'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작업은 출판사 부키와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여기 공개되는 원고를 포함해 총 47편의 서평이 실리는 단행본 <아까운 책 2013>이 오는 5월 초 부키에서 발간됩니다. <편집자>

인권활동가들이 질색하는 말이 하나 있다. '권리'라는 말이다. 얼핏 생각하면 인권을 외치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할 것 같은 말이다. 그동안 국가의 폭력에 주눅 들어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이 그들이 바라던 바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던 청소년들이 우리에게도 머리를 기를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끌고 나와 우리에게도 보행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할 때처럼 말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권리'라는 말은 여전히 힘을 가지지 못한 이들에게는 힘을 주는 말이다. 자신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 것을 누리겠다는 요구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 <사람인 까닭에>(류은숙 지음, 낮은산 펴냄). ⓒ낮은산
그런데 왜 인권활동가들이 권리라는 말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예상치도 못했던 사람들이 권리라는 말을 쓰면서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당하게 해고당한 노동자들이 대형마트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으면 카트를 끌고 오던 몇몇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린다. 나아가 항의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에게는 '쇼핑할 권리'가 있으며 너희들은 그걸 방해할 '권리'가 없다고 큰소리를 낸다.

애초에 권리라는 말이 소수자, 힘없는 사람들이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는 당혹스럽지 않을 수 없다. 권리가 '힘 있는 사람'도 난발하는 언어가 되면서 오히려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와 행동을 제약하는 예기치 못한 효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권리라는 말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언어가 아니라 한 개인이 다른 존재들을 무시한 채 막나갈 수 있는 언어가 되어버렸다. 권리는 개인이 소유하는 어떤 권한을 의미하게 되었고, 다른 누구도 이 권한에 대해 일체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인권활동가들은 권리라는 말을 대신하여 어떤 언어가 필요한지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서로의 삶이 관련되어 있으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문제에 대해 돌아볼 것을 요청하며 깊이 있는 토론과 대화를 만들어내는 언어 말이다. 류은숙은 이 책에서 이런 상호의존성과 호혜성을 담고 있는 말을 '연대'라고 말한다.

그런데 연대라는 말 역시 권리만큼이나 오·남용이 심한 말이다. 대체로 연대라고 하면 품앗이와 비슷한 개념으로 사용된다. 내가 필요할 때 네가 도와줬으니 네가 필요할 때 나도 도와주겠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혹은 노-학연대나 노-농연대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이해관계가 다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함께 공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뭉치는 것을 연대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서도 여전히 강조되어야하는 것은 '같음'이다. 겉으로는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혹은 '구조적으로는' 같다는 것을 강조한다. 자본주의의 희생자라거나 혹은 분단체제의 문제라거나 하는 식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연대를 강조하는 말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 '같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함께하지 못하는 것일까? 차이와의 연대를 강조하는 순간조차 인간은 동질성에 기초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존재일까? 그렇다면 굳이 우리는 왜 '연대'라는 말을 사용해야하는 것일까?

류은숙의 <사람인 까닭에>(낮은산 펴냄)는 바로 이 물음에 대해 답하는 책이다. 그녀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복잡한 이론이나 철학을 들이대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우리에게 이것이 바로 연대를 실천하고 살아가는 삶이며, 이런 삶이 바로 삶 같은 삶이라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녀의 이야기는 한미FTA에 반대하며 자신의 목숨을 던진 택시운전사 허세욱 씨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여 해고노동자 동료들과 함께 하기 위해 크레인 위에서 11개월이 넘게 투쟁을 벌인 김진숙 씨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이를 통해 그녀가 전하고자하는 연대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같이 살자'야 말로 이 시대에 필요한 인권이요, 연대의 목소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혼자라도 살아남자'가 대세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졸저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엄기호 지음, 낮은산 펴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체제는 철저히 우리가 혼자가 될 것을, 그리고 혼자서 살아남을 것을 명령하고 있다. 모든 개인은 자기 스스로의 모든 것을 '자원'으로 여겨야한다. 그 자원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사용하는지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그리고 그것은 온전히 그 개인의 몫이다. 따라서 실패는 개인의 실패를 의미하고 비난받아야하는 것도 그 개인이다.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는 것은 비굴한 일이며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혼자라도 살아남기 위해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거나 미련을 가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조금이라도 더 이익이 된다면 바로 새로운 관계로 갈아타야한다. '같이'와 같은 가치는 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가장 불필요한 악덕이다.

'같이 살자'야말로 연대라는 류은숙의 주장이 혁명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다. 그녀는 이 글에서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으며 그 가치는 타인과 '같이'할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고 말한다. 그녀는 이것을 허세욱 씨와 김진숙 씨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는 능력'이라고 부른다. 이런 능력은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적게 가진 사람에게 가지는 동정과 같은 것이 아니다. "나만 아프다고 알고 살아온 삶을 부끄러워했고 직접 나서서 그 고통을 함께 하면 주변의 용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 바로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는 능력으로서의 연대다.

바로 이 점에서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는 신자유주의의 명령은 제 자신도차 구원 못하는 무능의 언어가 되지만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는 능력'은 세를 불릴 수밖에 없는" 구원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주변의 관심과 용기를 끌어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대란 내가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과 함께 하며 다른 남이 또 그 남과 함께 하기를 격려하고 끌어내는 초대의 언어가 된다.

류은숙은 이 책에서 이런 초대를 '금 밟기'라고 부른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수많은 금이 그어져 있다. 국가와 언어, 성별과 섹슈얼리티, 장애와 비장애, 등록과 미등록, 합법과 불법, 지금과 미래, 인간과 비인간, 생명과 비생명 등등 수많은 금이 우리 사이에 그어져 있다. 연대란 '동질성'에 기초한 운동이 아니라 이 차이를 만들어내고 있는 금 자체를 넘나드는 행동이다. 너와 내가 같다는 것이 아니라 너와 나를 가르고 있는 금을 무력화하는 것이 연대의 몸짓이다. 그것을 그녀는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여 강정에서 발견한다. 시위의 나온 장애인의 품에 안겨 있던 샛별이라는 강아지에게서, 길에 구르고 있는 돌멩이에게도 그어져 있는 선을 '함께' 넘어버리는 것이 연대가 된다.

이런 금 밟기는 빈민과 장애인, 성소수자 등 우리 사회에서 투명인간처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존재를 부여한다. 우리 주변에는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삶이 드러나는 순간, 그들은 탄압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따라서 이들은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고통에 대해 말할 수 없다. 사람이 '말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말 못한다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는 가장 극한의 형별이다. 존재하기 위해 존재를 드러내지 못하는 역설에 빠져 있는 것이 바로 이 '투명인간'들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몫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다.

류은숙은 연대란 바로 이렇게 몫이 없는 사람들에게 몫을 돌려주는 것, 나아가 그 존재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관용이나 연민이 아니다. 류은숙은 이것을 '상호관심'이라고 부른다. 그녀는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라는 말에 상호성이 침투하지 않는 한" 헛방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타자의 관점과 역할을 취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발견해야하는 것은 '공동 책임'이다. 류은숙은 이것을 위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위치에서 투명인간의 망토를 뒤집어쓰고 세상을 보는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그것이 연대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람인 까닭에>는 연대에 대한 책이 아니라 페다고지, 즉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책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가? 인간은 오로지 타자와의 만남, 부딪침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내가 질서라고 알고 있던 것이 작은 질서에 지나지 않고 그 바깥에 무질서가 아니라 더 큰 질서, 더 아름다운 질서가 있다는 것을 알 때만 인간은 용기를 내어 타자를 만날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영원히 동일자의 세계에 머물며 안전만을 도모하게 될 것이다. 이런 삶에는 성장이란 없다. 이 책에서 류은숙은 끊임없이 자기와 다른 사람, 자기가 모르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서 자기보다 더 큰 것을 발견해간다. 이런 점에서 <사람인 까닭에>는 사람은 어떻게 성장하는지에 대해 류은숙이 자신의 삶으로 보여주는 페다고지다.

함께 읽으면 좋을 책
1.<민주주의에 反하다>(하승우 지음, 낮은산 펴냄)
이 책은 민중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왜 정치의 시작이며 지배자들이 가장 두려워한 혁명적인 일이었는지를 감추어진 역사적 사실을 통하여 생동감 있게 이야기하고 있다.

2. <이 폐허를 응시하라>(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펜타그램 펴냄)
이 책은 재난이 휩쓸고 간 자리에 약탈과 적자생존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이 어떻게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고 돌보면서 지옥에서 천국을 만들어간 사례들을 들려준다. 희망은 저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우리가 서로 연대할 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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