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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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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꽃산행 꽃글] 대마도 가는 길 ③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대마도는 섬이다. 도로의 폭이 아주 좁았다. 아마 섬이라서 최대한 길도 절약해서 닦은 모양이었다. 그래서 덩치가 제법 나가는 버스가 서로 충돌하지 않으려면 속도를 확 줄이고 조심스레 비켜야 했다. 잎이 줄기에서 나오는 모양을 '잎차례'라고 한다. 잎차례는 어긋나기, 마주나기, 돌려나기, 깃꼴겹잎 등이 있다. 버스 운전사들은 가로수의 잎차례에서 지혜를 배운 듯 서로 조심스레 어긋나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바퀴나 차체가 무언가와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다. 가령 미끄럼을 방지하려 시멘트 블록이나 모래를 뿌려놓은 곳을 지날 때가 그렇다. 그 어떤 경우든 이 소리들은 모두 밑에서부터 들린다.

섬이라서 그랬나. 버스가 산길을 가는 데 차 지붕에서 득득 긁는 소리가 났다. 위에서부터 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처음에는 잘 몰랐다. 몇 번이나 그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도로 쪽으로 축 드리워진 나뭇가지가 버스의 지붕을 때리는 소리였다. 그 소리를 그냥 흘러듣지 않고 귀중하게 귀에 모은다면 오랜 지혜를 터득한 늙은 나무가 안전 운전하라고 버스의 머리를 쓰다듬는 소리일 수로 들릴 수도 있겠다.

섬이라서 그랬나. 땅이 좁은 줄은 아는 건 사람만이 아닌 듯 했다. 나무들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허리가 굵은 나무들이 많았다. 땅이 아니라 하늘로 멀리멀리 뻗기 위해서일 것이다. 또한 혼자 크는 나무보다는 서로 얽혀 있는 나무들이 많았다. 울릉도에 갔을 때도 그런 현상을 보았는데 덩굴식물들을 잔뜩 업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서로가 서로에 의지하면서 빽빽하게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 콩짜개덩굴. ⓒ이굴기

섬이라서 그랬나. 산들도 높았다. 골짜기는 좁고 깊었다. 그러니 길은 자연스레 구불구불할 수밖에 없었다. 낭떠러지도 많았다. 대마도 식물기행 이틀째. 다테라 산(龍良山. 559미터) 허리쯤까지 가는 동안 격하고 급하고 아찔한 코너와 굽이를 버스는 달려야 했다. 마주 오는 차가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난다며 낭패스런 일이 아닐 수 없을 것 같았다. 아슬아슬한 커브를 돌 때마다 어김없이 튀어나오는 주의판이 있었다. 그것은 둥근 볼록 거울이었다.

섬이라도 산에는 정상이 있다. 그곳이 없다면 산은 삼각형이 될 수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계속 오르기만 할 뿐 내려갈 수도 없을 것이다. 마침내 정상이 있었다. 오늘은 우리가 가장 먼저 정상을 다녀가는 듯 했다. 그러나 우리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이곳을 다녀간 이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무덤에 해당하는 시설이 그곳에 요란하게 있는 것이었다.

그이들은 정상에서 더 위 어딘가로 갔을 것이다. 우리는 정상을 찍고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 내려왔다. 그들과 우리 일행을 묵묵히 바라보는 나무들. 모두들 떠나도 나무들은 그대로 제 위치를 지키며 서 있었다. 새덕이, 붉가시나무, 식나무,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비자나무, 육박나무, 돌배나무. 좀굴거리나무.

▲ 좀굴거리나무. ⓒ이굴기

▲ 식나무. ⓒ이굴기

▲ 후박나무. ⓒ이굴기

산의 정상을 빠져나와 넓은 임도를 걸어가는 데 좀 전에 버스를 타고 갈 때 보았던 볼록 거울이 나타났다. 그것은 길이 구부러지는 곳마다 자리 잡고서 오고가는 것들을 비추고 있었다. 그 앞을 지나려니 슬며시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괜찮은 풍경 하나를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를 안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나의 몸을 때리고 뿔뿔이 흩어지던 빛들. 그것들은 이 숲속으로 혹은 나무의 키를 훌쩍 넘어 하늘로 달아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중 일부가 볼록 거울에 붙들려 방금 전의 내 모습을 실물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지지대에 달려있는 '注意'라는 글씨와 빨간 화살표가 어울리면서 거울 속에 있는 '방금 전의 나'를 위험물로 날카롭게 지적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 둥근 것에 든 것이 실은 위험한 것이니 주의하시오!

셀카로 나 혼자 담긴 것을 여러 장 찍었다. 각도가 묘해서 마음에 드는 것을 얻기가 쉽지는 않았다. 영문을 모르고 지나가던 일행 몇 분도 둥근 볼록 거울에 포착되었다. 네 바퀴로 가는 버스에 비해 우리는 지금 두 발로 걷는 사람들. 우리는 그리 위험한 속도를 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즐겁게 찰칵!

▲ 볼록 거울 안에 집결한 인물들. ⓒ최영민

볼록 거울에서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나만 혼자 더 남았다. 이리저리 각도를 재면서 사진 몇 장을 더 찍었다. 그리고 김춘수의 '꽃을 위한 서시(序詩)' 첫 소절을 중얼거리면서 서둘러 일행의 뒤를 쫓아갔다.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 / 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 / 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 // 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 너는 이름도 없이 / 피었다 진다. // 눈시울에 젖어드는 이 무명의 어둠에 / 추억의 한 접시 불을 밝히고 / 나는 한밤내 운다. // 나의 울음은 차츰 아닌 밤 돌개바람이 되어 / 탑을 흔들다가 / 돌에까지 스미면 금이 될 것이다. // …… 얼굴을 가리운 나의 신부여. (김춘수, '꽃을 위한 서시(序詩)'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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