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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여전히 살아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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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여전히 살아있다니?!

[아까운 책] 레베카 스클루트의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

'프레시안 books' 138호는 '아까운 책' 특집호로 꾸몄습니다. 지난해 가치에 비해 주목받지 못하고 우리 곁을 스쳐가 버린 숨은 명저를 발굴해 소개합니다. 다양한 분야 열두 명의 필자가 심사숙고 끝에 고른 책은 무엇일까요? 여러분도 함께 '나만의 아까운 책'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이 작업은 출판사 부키와 공동으로 진행했습니다. 여기 공개되는 원고를 포함해 총 47편의 서평이 실리는 단행본 <아까운 책 2013>이 오는 5월 초 부키에서 발간됩니다. <편집자>

일 년 전, 나는 2011년에 출간된 과학 분야 '아까운 책'을 고르면서 '과학의 순교자'를 소개하겠다는 표현을 썼다. <20세기 최고의 식량학자, 바빌로프>(피터 프링글 지음, 서순승 옮김, 아카이브 펴냄)의 주인공 니콜라이 바빌로프는 과장 좀 보태어 순교자라 할만했다. 스탈린의 총애를 업고 비과학적 이론을 내세워 전횡을 휘둘렀던 리센코와의 갈등이 없었다면, 세계적 유전학자가 감옥에서 굶어 죽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얄궂게도, 올해 '아까운 책'은 '과학으로 불멸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그 주인공은 1920년 미국 버지니아 주의 시골에서 태어난 헨리에타 랙스. 헨리에타가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은 아니다. 불멸을 누리는 것은 그의 암세포들이다. 헬라(HeLa)세포라고 불리는 그의 암세포들은 그가 죽고 지금까지 60년이 지나도록 세계 각지의 실험실에서 생명을 이어가고 있다. 나나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죽고 없어진 뒤에도, 헬라세포는 왕성하게 자라고 분열하여 수많은 딸세포를 낳을 것이다. 그러나 몸의 일부나마 영생을 누리는 헨리에타가 순교자 바빌로프보다 행복했는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았다.

▲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레베카 스클루트 지음, 김정한•김정부 옮김, 문학동네 펴냄). ⓒ문학동네

헬라세포가 무엇인지부터 알아보자. 세포가 죽지 않고 계속 산다는 것이 그렇게 특이한 일인가? 세포의 원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로 책 한 권을 쓸 만큼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인가?

세포를 시험관에서 기르는 조직 배양 기술은 현대 생물학과 의학의 토대이다. 살아 있는 인간에게 실험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1950년대까지만 해도 인간 세포 배양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세포는 금방 죽었다. 세포에게 어떤 환경을 갖춰줘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당시의 배양액에 들어가는 재료는 닭의 혈장, 송아지 태아, 제대혈 등이었다. 마녀의 가마솥이 따로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존스홉킨스 대학의 조지 가이가 헨리에타 랙스의 종양으로부터 긁어낸 불멸의 세포, 즉 최초의 인간 세포주를 발견했던 것이다.

헬라세포는 여느 세포와는 달리 무서운 기세로 불어났다. 가이는 그것을 무료로 배포했고, 덕분에 전 세계 연구자들은 오만 가지 실험을 실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헬라 세포에 온갖 독소, 방사선, 균을 노출시켰다. 물론 헬라세포는 암세포이다. 그러나 정상 세포의 기초적인 특징들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이 정상 세포 대신 헬라세포를 쓸 수 있었다.

더구나 헬라세포에게는 장점이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 세포는 표면에 납작 붙어서 자라지만, 헬라세포는 배양액에 둥둥 떠다니며 자랐다. 그러니 공간의 제약을 거의 받지 않았고, 과학자들은 배양액을 저으며 영양을 공급하면 그만이었다. 덕분에 헬라세포는 최초의 '세포 공장'에서 대량생산되었고, 우편을 통해 각지로 배달되었다.

이후 헬라세포가 사용된 실험들을 소개하는 것은 곧 20세기 생물학과 의학의 역사를 되짚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학자들은 헬라세포에 바이러스를 감염시켜서 바이러스의 행동양식을 알아냈다. 헬라세포를 써서 세포 냉동 기술을 개발했고, 완벽한 배양 환경을 찾아냈고, 하나의 세포를 복제하는 클론 기술을 알아냈다. 어떤 과학자는 실수로 헬라세포를 다른 세포와 섞었다가 양쪽의 염색체들이 터져 나오는 바람에 인간의 염색체가 46개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과학자는 핵폭탄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고자 헬라세포에 대량의 방사선을 쬐었고, 어떤 과학자는 우주 비행이나 심해 잠수 같은 극한의 환경에 처한 인체의 반응을 알고자 헬라세포에게 중력의 십만 배가 넘는 압력을 걸었다. 화장품과 제약 회사들은 실험동물 대신 헬라세포를 대상으로 안전성을 검사했고, 의학자들은 헬라세포를 대상으로 스테로이드, 항암제, 비타민 등의 효과를 조사했다.

특히 중요한 사건은 헬라세포가 소아마비 백신의 개발에 주춧돌이 된 일이었다. 나아가 과학자들은 암세포가 무한정 증식하는 이유 중 하나를 헬라세포를 통해 알아냈다. 염색체 끄트머리에 있는 텔로미어라는 부분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지는 것이 정상이건만, 암세포는 그렇지 않았던 것이다. 이후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학자들은 거의 모든 종류의 세포를 배양했다. 그러나 규모와 응용성에서 헬라세포에 필적하는 것은 없었다. 믿어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추정에 따르면 지금까지 배양된 헬라세포의 총 무게는 5천만 톤이 넘는다.

이쯤 되면, 헬라세포가 인류를 구했다느니 의학을 발전시켰다느니 하는 말이 지나친 과장만은 아니다. 지금은 여러 '불멸의 암세포'들이 배양되지만, 헬라세포는 여전히 널리 쓰인다. 의학과 생물학을 배우고 연구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헬라세포를 접한다. 누구나 헬라세포를 안다.

그러나 '헬라'가 헨리에타 랙스(Henrietta Lacks)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책의 저자 스클루트는 그런 의문을 품었다. 헨리에타는 누구였을까? 그도 자기 암세포의 중요성을 알았을까? 그에게 아이가 있었을까? 간단한 질문들인 것 같지만, 실상 그렇지 않았다. 스클루트의 취재는 쉽지 않았고, 즐겁지 않았다. 헬라세포의 길고 영광스러운 경력과는 달리 헨리에타의 삶은 짧고 고되었고, 헬라세포의 드높은 명성과는 달리 헨리에타의 기억은 꼭꼭 묻혀 있었다.

헨리에타 랙스는 31살이던 1951년에 자궁암으로 죽었다. 철강회사에서 일하는 남편이 있었고, 갓 태어난 막내까지 포함하여 다섯 아이가 있었다. 존스홉킨스 병원에서 종양 제거 수술과 방사선 치료를 받았으나, 무섭게 증식하는 암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불행한 인생은 아니었다. 당시 여느 흑인들처럼 노예의 후손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담배 농장에서 일했지만, 빨간 매니큐어를 바르기를 좋아하고 남편 몰래 춤추러 가기도 하는 활달한 여성이었다.

불행한 것은 그의 자식들이었다. 엄마를 잃은 아이들은 친척들 손에 자라면서 강제 노동, 학대, 성추행을 겪었다. 큰딸 엘시는 정신병원에 들어갔는데, 헨리에타가 죽고서는 아무도 아이를 찾지 않아 홀로 그곳에서 죽어갔다. 다른 아이들의 삶도 헬라세포 때문에 오히려 더욱 망가진다. 그들은 헨리에타가 죽고 20년이 지난 뒤에야 자기 어머니의 몸 일부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조직 채취가 환자나 보호자의 동의 없이 이뤄졌다는 것도 알았다. 그들은 '셀(cell)'이라고 하면 세포가 아니라 감방만 떠올리는, 무지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헬라세포를 둘러싼 소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그들에게 헬라세포를 활용해서 돈벌이를 하는 의사들을 고소하라고 부추겼고, 누군가는 "당신 어머니의 세포가 나를 고쳤다"며 고마워했다. 과학자들은 그들의 피를 원했다. 헬라세포가 왕성한 증식력으로 다른 세균주들까지 감염시키는 문제를 해결하려면 헨리에타와 자녀들의 유전자를 연구해야 했기 때문이다. 자식들은 제대로 된 설명을 못 들은 채 피를 제공한 뒤, 어머니의 병이 자기들에게도 있다는 것인지 궁금해 하면서 영원히 오지 않을 연락을 기다렸다. 기자들의 무책임한 호기심에 시달리기도 했다. 아무리 당시는 의료 윤리라는 말조차 없던 때라도, 헨리에타의 실명과 의료 기록이 가족도 모르게 언론에 노출된 것은 심각한 범실이었다.

더구나 흑인들에게는 백인 과학자들을 믿지 않을 이유가 있었다. 옛 노예주들은 흑인들을 다스릴 요량으로 병원에서 밤마다 흑인들을 실험 재료로 잡아간다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과학자들이 페니실린 한 방이면 매독을 낫게 할 수 있는데도 연구 차원에서 흑인 환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손 놓고 보기만 한 사건도 있었다. 흑인들에게는 과학도 인종차별의 장이자 도구였던 것이다. 과학이라고는 모르고 오직 미신에 가까운 신앙으로 삶을 견디는 사람들이니, 어머니의 세포가 불멸이 되어 이런저런 실험에 쓰인다는 데 기겁할 만도 했다. 가령 그들은 헬라세포와 쥐 세포를 융합했다는 뉴스를 들으면 어머니를 닮은 쥐가 태어난다는 말인가 싶어 충격을 받았다.

스클루트가 헨리에타의 삶을 추적하기 시작했을 때, 이런 우울한 이야기를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고마운 세포가 사람들의 삶에 이런 고통을 안긴 줄은 몰랐을 것이다. 과학 윤리에 대해 까다로운 질문들을 맞닥뜨리게 될 줄도 몰랐을 것이다.

헬라세포를 둘러싼 문제는 수십 년 전에 끝난 과거가 아니다. 요즘은 환자의 동의 없이 조직을 채취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못한 일로 여겨질 만큼 의식이 바뀌었으나, 환자의 법적, 경제적, 프라이버시 면에서의 권리와 의학 발전을 저울질하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지금도 우리가 병원에 남기는 조직은 우리의 동의 없이 연구에 쓰인다. 세포주의 권리를 인정할 경우 과학 연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법적 판단 때문이다. 내가 이 글을 쓸 무렵, 유럽 과학자들이 헬라세포의 게놈 정보를 모두 판독하여 발표했다는 뉴스가 들렸다. 그것도 윤리적으로 문제일까? 헨리에타의 자식들이 프라이버시 침해 가능성을 거론하며 반대하는 것은 정당할까? 의학 윤리와 게놈 특허를 둘러싼 문제들은 앞으로 우리가 더욱 자주 접할 이야기이다.

잊힌 여성의 과거를 추적하는 흥미진진한 구성 덕분인지, <헨리에타 랙스의 불멸의 삶>(레베카 스클루트 지음, 김정한•김정부 옮김, 문학동네 펴냄)은 미국과 영국에서 과학책으로서는 이례적인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리고 과학 윤리와 인종 차별의 쟁점들에 관한 활발한 논의를 끌어냈다. 미국 인종 차별의 역사와 종교 문화를 바탕에 깐 이야기가 우리에게는 좀 낯설 수도 있지만,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중요한 과학적 쟁점을 접할 수 있는 책의 장점이 더 알려지기를 바란다.

헨리에타와 헬라세포의 이야기는 많은 문제를 미완으로 남긴 채 맺는다. 헨리에타의 자녀들은 스클루트를 통해 비로소 상황을 이해하지만, 마음의 응어리가 다 풀릴 리는 없다. 생체 조직 기증자들의 권리에 대해 관련자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누구도 당장 올바른 답을 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모든 관련자들이 동의할 만한 지점이 있기는 하다. 책의 첫머리에 인용된 엘리 위젤의 말이 그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든 추상적 존재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대신,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유의 비밀과 보물을 간직한, 저마다 합당한 번민의 이유와 성공의 열쇠를 품은, 하나의 우주로 보아야 한다."

공익을 위해 익명에 부쳐졌던 한 개인의 우주를 되살린 이 책은 그녀는 물론이거니와 그녀로부터 혜택을 입은 우리 모두를 위한 씻김굿일지도 모른다.
함께 읽으면 좋은 책
1. <인체 쇼핑 – 살과 피로 돌아가는 경제>(도나 디켄슨 지음, 이근애 옮김, 소담출판사 펴냄)
인체 조직 매매와 특허를 둘러싼 가장 최근의 쟁점들이 무엇인지 깊이 있게 알 수 있다.

2. <안락사는 살인인가 – 사례로 만나는 의료 윤리의 쟁점들>(토니 호프 지음, 김양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
의료 윤리 분야의 대표적인 문제들을 간략하게 나열하여 소개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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