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대마도에서 만난 특별한 비상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대마도에서 만난 특별한 비상구

[꽃산행 꽃글] 대마도 가는 길 ②

대마도에서 만난 비상구

드디어 대마도에 상륙했다. 오래 전 나는 부산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그곳은 유엔 기념 공원 근처에 있는 대연중학교였다. 학교는 우룡산 기슭에 자리 잡았는데 그 산을 넘어서 등하교를 했다. 어느 맑은 날, 수업 마치고 집으로 가다 바다를 보면 오륙도 지나 아득한 수평선에 거뭇한 섬이 걸려 있었다. 대마도라고 했다.

어린 시절 나의 시선이 끝나는 곳에 아득히 있던 섬. 그때로부터 단 한 순간의 정지도 없이 나의 몸도 여기까지 육중하게 흘러왔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배안에 탑승하고 있는 셈이다. 배 안에서 바라볼 때 복면한 괴한 같던 그 대마도도 막상 도착하고 보니 여느 고장과 다름 없는 곳이었다. 간판이 요란하고 자동차가 붕붕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습기가 축축한 공기가 팔뚝에 착 감겨드는 가운데 어디선가 마이크 소리가 들렸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말이었다.

서울에서 먹은 아침이 푹 꺼지고 배가 고플 무렵 대마도에서 점심을 먹었다. 한 끼 차이로 국경을 넘은 셈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바로 시라타케 산에 올랐다. 식물들은 제가 뿌리내린 곳이 섬이란 것을 알고 이렇게 공중으로 진출하는 것일까. 인적이 드문 울창한 삼림 앞에서 저마다 사진을 찍고 전문가들의 식물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비가 약간 흩뿌려 잎사귀와 줄기들이 반들반들 빛났다.

지금은 2월 중순. 한반도에는 이제 겨울눈을 털고 곧 복수초, 앉은부채, 현호색, 변산바람꽃 등이 기지개를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꽃산행에서는 대마도의 특성을 살려 양치식물을 집중 공부하는 여행이기도 했다. 이 분야의 전문가로서 일행을 이끄는 분 곁에 바짝 서서 풀고사리, 발풀고사리, 부채개불이끼, 처녀개불이끼 등을 실컷 관찰했다.

▲ 풀고사리. ⓒ이굴기

대마도는 섬이라지만 숲이 몹시 울창했다. 특히 우람한 굵기의 삼나무가 위용을 자랑했다. 섬이라고 깔 볼 땅이 아니었다. 우산국을 정복하는 김에 대마도까지 마저 해주시지 않고! 목측(目測)이 가능한 것으로 치면 대마도는 분명 우리 땅이어야 했다. 일본국에서는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곳이다. 그런 요량을 하면서 요령 같은 방울을 달고 있는 편백나무 숲을 지나자니 두고두고 아쉬웠다.

한국과 일본의 어느 산인들 그렇지 않겠는가. 임도 아래쪽에서 처음 우리를 맞이하는 나무는 소나무과와 측백나무과의 키 큰 나무들이었다. 측백나무, 편백나무가 얼른 눈으로 들어왔다. 나무 공부할 때 아주 초보 단계의 이들을 구별하는 것도 나는 애를 먹었다. 그만큼 기초가 부실했던 것이다. 그중에서도 측백나무는 학교의 울타리나 정원수로도 많이 심어져 있다. 아마 나를 3년간 품어준 대연중학교 운동장에도 측백나무, 회양목이 심어져 있었을 것이다.

편백나무는 잎이 편평하게 수평으로 나 있다. 측백나무는 책갈피처럼 수직으로 나 있다. 이름이 비슷하다 하여 동백나무를 이들과 비슷하게 여겨서는 아니 된다. 겨울이 끝나고 봄의 전령사처럼 동백꽃을 다는 동백나무는 서로 과(科)가 다른 것이다.

고개를 드니 아름드리나무가 울창하게 하늘로 뻗어 있었다. 편백나무였다. 어느 분이 화백나무와 편백나무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화백나무. 이날 내가 처음 듣는 나무 이름이었다.

"다닥다닥한 잎 뒷면을 보면 편백은 Y자이고, 화백은 W자입니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었다. 비는 그리 위험한 물질은 아니다. 옷이 젖는다면 그저 조금 불편할 뿐. 그러나 일본에서 비를 쫄딱 맞는 건 조금은 서글픈 일일 것이다. 배낭에 비닐 커버를 씌우고 챙겨온 비옷을 꺼내 입었다. 온몸에서 빗소리가 튕, 튕, 튕, 튕겨나왔다. 잘 닦은 임도. 도로의 폭도 넓었다. 어느 일직선의 길에서는 좌우로 개비자나무, 구실잣밤나무, 보리밥나무, 보리장나무, 생달나무, 서어나무, 육박나무, 일본전나무, 황칠나무 등등 도열해 있기도 했다.

시다라케산 입구에 이런 팻말이 걸려 있었다.

"백악(白嶽)은 대륙고유종(大陸固有種)이 자라고 있으며 일한양요소(日韓兩要素)의 식물(植物)이 공존(共存)하는 매우 귀중(貴重)한 장소(場所)로서 국정공원특별보호구(國定公園特別保護區)로 지정(指定)되어 있다."

첫날의 오후였지만 많은 식물들을 보았다. 한국인과 일본인이 서로 다르듯 두 나라의 식물들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안목이 부족한 나로서는 그 차이를 아직은 알 도리가 없었다. 다만 여기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나무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한일 양국에 어렵게 공존하는 식물의 적절한 예가 될 듯도 싶었다.

그 나무는 빌레나무이다. 이 나무는 국내에서는 2003년 제주도의 곶자왈 지대에서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고 부엽층 형성이 양호한 곶자왈 내 함몰된 지형에서 무리지어 자란다고 한다(<한국의 나무>(김진석 김태영 지음, 돌베개 펴냄)).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에만 사는 셈이다.

▲ 빌레나무. ⓒ이굴기

섣부른 판단이긴 하지만 빌레나무는 대마도에서 아주 귀한 식물은 아닌 듯 했다. 시다라케 산의 중간 지대에 여러 그루가 있었다. 나는 아직 제주도, 즉 우리나라의 빌레나무를 본 적은 없다. 언젠가 곶자왈에 가서 빌레나무를 볼 것이다. 그때엔 이제야 간신히 우리나라에 한 발을 걸친 빌레나무를 더욱 기특하게 오래 바라볼 것 같다.

대마도 첫 산행. 식물을 보면서 산뜻하게, 그러나 대마도를 생각하면서 조금은 아쉽게 끝마쳤다. 그리고 버스에 올랐다. 대마도 여행 기간 우리가 이용한 버스는 30인승 중형 버스였다. 나는 맨 뒷좌석에 둥지를 틀었다. 의외로 편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바깥을 볼 때, 유리창에 큼지막한 글씨가 있었다. 빨간색이었다.

非常口. 위험할 때 급히 안전한 그 어디로 빠져나가는 입구. 빗방울이 유리창 엉겨 붙어 있는 게 자꾸 내 있는 곳으로 들어오려는 몸짓으로 보였다. 빗방울은 지금 내 앉아있는 곳을 안전한 곳으로 여기는 것일까.

다음날에도 非常口는 여전히 비상구였다. 비상구를 접면으로 하여, 나는 바깥으로 나가려 하고, 바깥은 내 있는 곳으로 들어오려 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날씨는 맑아 파란 구름이 흐르고 있고 하늘은 상쾌한 무늬를 그렸다. 앉은 자리에서 보니 非常口는 그곳을 배경으로 앉아 있었다. 그곳은 그 어느 날 내가 이곳을 비상(飛上)할 때 탈출할 비상구!

붉은 글씨의 비상구를 특별한 호기심으로 여러 번 보다가 무릎을 친 사실이 있다. 非常口. 그것은 세 글자가 정확하고 완벽하게 좌우대칭이 아닌가! 그러고 보면 어느 켠이 위험하고, 어느 켠이 안전한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듯!

▲ 안에서 바라본 비상구. ⓒ이굴기

▲ 바깥에서 바라본 비상구. ⓒ이굴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