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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성인 네 분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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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성인 네 분을 만나다!"

[꽃산행 꽃글] 삼성산 가는 길

삼성산 가는 길이다. 삼성산은 서울 관악산 근처에도 있지만 오늘 가는 삼성산은 대구 아래 경산 부근이다.

소롯한 국도로 접어드는데 차창으로 어느 이정표에 얼핏 세 사람의 이름이 보였다. 원효, 설총, 일연.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이름만 들어도 잘 아는 분들. 까마득한 성인의 반열에 오른 세 이름을 접하니 삼성산의 유래가 저절로 이해가 되었다. 이곳의 풍광과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은 듯해 마음도 저절로 가다듬어졌다.

참 좋았다. 이렇게 봄볕 따뜻한 날에 성인의 흔적이 물컹한 마을 근처를 걷는 기분이란. 그리 높은 산도 아니라 등산객의 부담도 벗어났다. 그저 좋았다. 넙데데한 구릉을 따라 구름처럼 흐르는 기분이란.

저 구름이 엄청 가벼운 몸으로 높은 곳에 있다 하나 나를 흉내 내지 못하는 것이 있다. 나처럼 이렇게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여기 이 인정 많은 동네의 대문 곁에서 피어나는 박태기나무, 살구나무, 대추나무를 관찰하지 못한다는 것!

나는 문득 새삼스러워진다. 그 열매만 게걸스럽게 먹을 줄 알았지 정작 그 나무들을 제대로 볼 줄 몰랐다는 사실을. 그래서 활짝 꽃이 핀 나무 아래에서 고개를 갸웃거리며 멀뚱멀뚱할 때 마을의 할머니는 다가와 일부러 이렇게 큰소리로 나무의 이름을 던져주시는 것이었다. "아이고야, 올해 살구꽃이 참 이뿌기도 하네!"

나는 비로소 살구나무를, 살구꽃을 내 몸으로 받아들인다. 흰 꽃잎은 내 피부를 통하고 살갗을 뚫는다. 환한 빛깔은 내 얼굴로 번져간다. 이제 나는 이전과는 사뭇 다른 살구를 제대로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 살구나무. ⓒ이굴기

▲ 박태기나무. ⓒ이굴기

작은 개울을 끼고 걷다가 어느덧 마을을 다 지났다. 개울물 소리가 졸졸졸 나는 곳이다. 밭 가운데 웬 여인이 봄나물을 캐고 복숭아밭이 올해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잔잔한 도랑물에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져 있고 말채나무가 뿌리를 드러내고 쉬고 있다. 그 뿌리는 절개지라서 허옇게 엉긴 엉덩이가 그대로 드러났다. 이끼가 잔뜩 낀 개울가에는 산괴불주머니가 활짝 피었고 그 옆으로 길가에 하얗게 핀 꽃은 민들레! 서양민들레가 전국으로 퍼져 가는데 이것은 토종의 우리 민들레!

삼성산은 그다지 높은 산이 아니었다. 우락부락한 돌들도 없고 성인의 얼굴을 닮은 듯 단정하고 호젓한 길이 내내 이어졌다. 본격적으로 산으로 입장하니 남산제비꽃이 무더기로 피어났다. 그리고 덩치가 제법 큰 오동나무가 산소 앞을 지키고 있다. 오동나무는 작년의 큼지막한 열매를 아직도 달고 있다. 그리고 줄기에 큰 구멍이 여러 개 있다. 오동나무는 큰 바람이라도 불면 제 몸을 뚫어 악기라도 삼으려는 것일까. 그것을 기막히게 알았는지 동고비로 짐작되는 한 마리가 하필이면 오동나무에 앉아서 오래 지저귀는 것이었다.

▲ 버드나무. ⓒ이굴기

▲ 오동나무와 동고비. ⓒ이굴기

오늘 우리가 목표로 한 꽃들이 너덜겅의 경사면에 여기저기 피어났다. 만주바람꽃, 복수초, 현호색, 남도현호색, 노루귀, 꿩의바람꽃. 아직 찬 기운이 우세해서 꽃들은 꽃잎을 닫고 있었다. 조금만 더 기온이 올라가면 꿩의바람꽃은 열두 장의 꽃잎을 활짝 펼칠 것이다.

이 조용한 산중. 세상의 모든 침묵이 여기로 집중된 듯 고요하고 고요하다. 그저 들리는 것은 꽃에 빠져, 꽃 앞으로 투신하는 소리. 그 요긴한 동작을 받아내느라 낙엽들이 들썩거리는 소리. 어릴 적 읽은 동화 중에 꿈을 찍는 사진사가 있었다. 문득 소리를 찍는 카메라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이 장면, 이 광경을 소리와 함께 제대로 담아내는 카메라!

봄기운에 흠씬 젖은 채 골짜기를 빠져나오는 길이었다. 올랐던 길을 고스란히 되짚어 내려왔다. 앞장서서 걷던 일행 한 분이 개울가에 서 있는 나뭇가지를 가리켰다. 올라 갈 땐 못 본 나무였다. 쉬나무라고 했다.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겠지만 이름만으로 연결이 되는 시 한편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가까운 대구에서 활약하고 있는 문인수 시인의 시, '쉬!'였다.

그의 상가엘 다녀왔습니다 / 환갑을 지난 그가 아흔이 넘은 그의 아버지를 안고 오줌을 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生의 여러 요긴한 동작들이 노구를 떠났으므로, 하지만 정신은 아직 초롱 같았음으로 노인께서 참 난감해하실까봐 "아버지, 쉬, 쉬이, 어이쿠, 어이쿠, 시원허시것다아" 농하듯 어리광 부리듯 그렇게 오줌을 뉘었다고 합니다. // 온몸, 온몸으로 사무쳐 들어가듯 아, 몸 갚아드리듯 그렇게 그가 아버지를 안고 있을 때, 노인은 또 얼마나 더 작게, 더 가볍게 몸 움츠리려 애썼을까요. // 툭, 툭, 끊기는 오줌발, 그러나 그 길고 긴 뜨신 끈, 아들은 자꾸 안타까이 땅에 붙들어 매려 했을 것이고, 아버지는 이제 힘겹게 마저 풀고 있었겠지요, 쉬- // 쉬! 우주가 참 조용하였겠습니다.

쉬나무는 가지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채 버드나무, 말채나무, 신나무, 자귀나무와 어울리며 물가에 서 있었다. 매끈하게 뻗은 줄기도 줄기지만 쉬나무는 겨울눈이 압권이다. 보라, 이 쉬나무의 겨울눈을. 아흔 넘은 노인이 환갑 지난 아들의 품에 안겨 오줌 누고 난 뒤의 시원하고 홀가분한 표정과 어쩌면 그리 꼭 닮으셨는가!

▲ 쉬나무의 겨울눈.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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