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이렇다.
늘 그렇지만 글을 쓰면서 동시에 딴짓을 좀 하고 있었다. 페이스북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올린 사진과 글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의 아침 독서 :
<안녕, 여긴 천문대야>
이지유 글, 조원희 그림, 비룡소
연령 : 7세부터.
일단 나도 거의 반사적으로 댓글을 하나 달았다.
이지유 선생님 남편이 천문학자!!!
▲ <안녕, 여긴 천문대야!>(이지유 지음, 조원희 그림, 비룡소 펴냄). ⓒ비룡소 |
이지유 선생도 서울대 지구과학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천문학과에서 천문학을 공부했다고 하네요. 이 분이 그 유명한 별똥별 아줌마네요. <별똥별 아줌마가 들려주는 OOO이야기> 시리즈의 저자.
그렇다. 이 책의 지은이는 학교에서 남편을 만나서 결혼했다. 남편은 나도 개인적으로 달 아는 천문학자지만, 이 책의 지은이를 내가 처음 만난 것은 2009년 세계 천문의 해 사업과 관련된 어느 미팅에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구상하고 있던 어린이 과학책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가 아이에게 하듯 조금조근 내게 들려주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책이 나올 때까지 '오프 더 레코드'를 요청했던 그녀가 들려줬던 어느 멋진 스토리를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문득 그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는지 궁금해졌다. 이지유의 다른 책들도 살펴봐야겠다는 욕망이 생겼다.
Keck 천문대 이야기. "마우케니아 산에 있는 돌을 주워 가면 재수가 없대요."
친구가 댓글을 통해서 '독후글'을 올리고 있었다. 나는 서평을 쓸 때 가능하면 그 책의 내용을 직접 말하지 않고 주변만 두드리는 전략을 쓰곤 한다. 독자들이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서 직접 읽어보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서평을 쓴다는 핑계로 그 책의 내용을 이야기하게 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솔직히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이 글에서도 앞으로 <안녕, 여긴 천문대야!>를 읽게 될 독자들이 스스로 발견할 경이로움의 과정을 박탈할 수는 없어서 내용 쓰기를 주저하고 있었다.
마침 친구가 자기 글에 댓글로 <안녕, 여긴 천문대야!>의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하고 있었다. 나는 친구의 댓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나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고 친구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비겁한 짓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하기로 마음먹고 나니 이 글을 쓰는 것이 한층 더 즐거워졌다. 이런 결정을 우연히 내려 준 나의 뇌에게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 그 친구는 친구니까 나를 이해해 줄 것으로 (혼자) 믿기로 했다.
캐나다-프랑스-하와이 천문대 이야기도 나옵니다.
"밤새 일하는 천문학자에게 간식은 필수거든."
"성단을 보면 별이 어떻게 나이를 먹는지 알 수 있어요. 대단하지요?"
"저기 저 별이 노인성이야. 저 별을 보면 오래 산대."
하와이는 일 년 중 맑은 날이 300일 가까이 되어 거의 매일 별을 관측할 수 있어요. 게다가 마우나케아 산꼭대기는 아주 높아 별을 보기 좋아요. 땅으로부터 4200여 미터나 떨어져 있다 보니, 대부분의 구름이 산 아래에 있거든요.
마우케니아 산에는 어떤 천문대들이 있을까?
캐나다 프랑스 하와이 천문대 CFHT - 성단을 연구
켁 천문대 Keck - 우리 은하가 어떻게 생겼는지 연구, 일반인 관람 가능
스바루 천문대 Subaru - 렌즈가 휘지 않게 하는 장치가 있어서 별을 선명하게 볼 수 있어요.
제니미 천문대 Gemini - 쌍둥이자리를 이르는 말. 북반구 하와이와 남반구 칠레에 똑같이 망원경이 하나씩 있다.
천문대는 산꼭대기에 있기 때문에 천문대에 갈 때는 꼭 긴팔 옷을 챙겨야 해요. 천문학자를 위한 할레포하구에는 OO, 당구장, OO 등이 갖춰져 있어요.
책 끝부분에 '천문학자의 하루'라는 면이 있다. 매우 훌륭하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과학 동화책. 최고!!
책 제목에서나 내 친구의 댓글을 읽으면서 짐작했겠지만 <안녕, 여긴 천문대야!>는 하와이에 있는 몇몇 천문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과학 동화다. 글도 재밌었고 그림도 좋았다.
<안녕, 여긴 천문대야!>의 가장 큰 미덕은 균형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내용을 이끌어 가는 서사는 단순하고 일상적인 내용이다. 그런데 그 서사가 낯설지 않고 현실적이라는 것이 좋았다. 그런 만큼 책을 읽는 동안 나도 그 이야기 속에 있을 것만 같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그 속에는 설렘이 있었다. 꿈이 현실 속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안녕, 여긴 천문대야!>를 돋보이게 하는 진짜 비밀은 단순함 속의 디테일에 있는 것 같다. 꿈을 쫒아가는 설정이지만 낯설지 않은 일상의 서사를 구사하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훌륭한 균형감 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 하와이 산꼭대기에 있는 여러 천문대와 천문학자의 일상을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어쩌면 지은이의 배경이 만들어낸 최선의 균형감각의 발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안녕, 여긴 천문대야!>는 단순하지만 지루하지 않고 일상적이지만 꿈이 스며있고 미니멀한 묘사지만 디테일이 살아있는 하나의 잘 완성된 균형미가 뛰어난 작품이다. 과학 동화의 한 전형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이렇게 하여 올해 64번째 책을 읽었다. 상쾌하다.
이 책에 대한 친구의 댓글은 일단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아, 얼마 전에 이 책 받았는데 어제 또 한 권을 받았다. 인연인가 보자. 한권은 초등학생인 조카에게 선물. 읽어보니 좋다. 지금 쓰고 있던
친구의 긴 댓글 아래 나는 이런 댓글을 남기고 <안녕, 여긴 천문대야!>를 읽기 시작했고 금새 다 읽었고 이 글을 후다닥 쓰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또 슬쩍 살펴보니 '이제 쓰자'는 내 댓글에 두 명이 '좋아요'를 눌러놓았다. 이 글을 쓰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순간적으로 내 마음의 모드를 전환시켜 준 나의 뇌에게 또 다시 감사할 따름이다.
만약 천문대에 간다면 반드시 빅 아일랜드에 들러서 살아 있는 킬라우에아 화산과 마우나케아 산꼭대기에 있는 천문대를 꼭 구경하세요. 참, 하와이 말 "마할로"를 아끼지 말고 써 주세요. "고마워요"라는 뜻이랍니다.
마할로!
천문학자라고 모두 천문대에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론천문학자들은 천문대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 천문학자다. 여느 일반인이나 다름없다. 천문대로 여행이나 견학을 가야만 한다. 나 같은 전파천문학자도 하와이에 갈 일이 별로 없다. 사실 하와이 산꼭대기에 전파망원경이 몇 대 있기는 하지만. 관측천문학자라고 모두 밤에 관측하는 것은 아니다. 태양을 관측하는 천문학자는 당연히 낮에만 관측을 한다. 어떤 면에서는 전파천문학자가 제일 힘들다고 할 수 있다. 24시간 관측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은 하와이의 광학망원경을 사용하는 관측천문학자를 모델로 '천문학자의 하루' 코너를 묘사했겠지만, 태양천문학자나 전파천문학자의 이야기도 같이 살짝 넣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제 글을 다 썼다. 친구의 페이스북 글에 댓글로 "서평 다 썼다. 오늘 밤 '프레시안 books'에 올릴 예정이다"라고만 쓰면 느닷없이 찾아온 <안녕, 여긴 천문대야!>와의 짧지만 유쾌했던 조우에 마침표를 찍는다. 방금 댓글을 올렸다. 이제 정말 이별이다.
나도 하와이에 가고 싶다. '마할로'라고 백만 번은 외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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