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공중에서 오는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아무래도 물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물은 태양의 에너지를 충실히 저장하는 창고이다. 물은 사각형이거나 오각형 또는 육각형의 분자구조이다. 그 고리 구조 속에 촘촘한 방들이 있어 세상의 모든 것들을 품을 수 있다. 지난 여름을 달군 뜨거운 햇볕도 그 물의 방에 들어 있어 바다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그리고 이제 봄이 도래하니 서서히 방을 빠져나와 공중을 데울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에게 봄은 저 남쪽 바닷가에서부터 상륙하기 시작한다. 꽃에 빠진 지 이태. 집에서 무작정 봄을 기다릴 수는 없었다. 기회만 생기면 바깥으로 나돌기로 했다. 세상은 정지한 곳이 아니다. 순식간에 훌쩍 지나가고 도래하는 것들로 붐비는, 변화하는 곳이다. 그러니 집에서 정지하고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진도행이다. 목포를 지나 한반도의 오른쪽 발 아래로 내닫는 기분에 흥이 났다. 꽃샘추위가 아직은 기승을 부리는가. 운림산방 뒤편 고개에 서니 진도의 찬바람이 옷을 파고들었다. 그래도 그 기운을 뚫고 저 아래 보이는 남도의 바다는 천하의 비경처럼 감탄사를 나오게 했다. 구름 속에 섬과 바다가 어우러졌고 그 아래로 마을의 들판이 따사로운 햇볕을 쬐고 있었다.
▲ 진도 운림산방 뒤편 두목재에서 본 향동 마을의 풍경. ⓒ이굴기 |
진도에서 가장 높다는 첨찰산의 허리께를 헤매고 다녔지만 아직 야생화는 외출을 삼가고 있는 듯 했다. 우리가 볼 것은 산 속이 아니라 저 산 아래에 있는 것 같았다. 코스를 변경해서 하산하기로 했다. 그리고 찾아든 곳은 운림산방 고개에서 바라보았던 바로 그 인간의 마을과 들판. 마을 뒤편으로는 저수지가 있어 야생화가 쉽게 목을 축이며 피어있을 것도 같았다.
우리나라 마을은 어디를 가도 다들 비슷하다. 얌전하고 착한 기운이 물씬 묻어난다. 골목마다 그 기운들이 포진해 있는 것 같다. 밭이 있고 그 밭에서 골라낸 돌들로 쌓은 두렁이 있다. 그리고 마을 중앙에는 동청이 있고 마을회관이 있고 큰 느티나무가 큰 그늘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겨냥했던 그 저수지에서 내려오는가. 마을 한 가운데로 도랑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겨우내 굳었던 몸을 풀듯 도랑의 물소리는 카랑카랑하게 흘렀다. 물소리가 시원했다.
마을과 붙어있는 밭두렁에는 개쑥갓과 갓이 무성히 자라고 있었다. 담부랑은 물론이고 길가에 흔히 자라고 있는 대롱같은 빨간 꽃은 광대나물이다. 그리고 보라색의 꽃마리. 작고 앙징맞은 봄날의 대표적인 꽃들이다. 이렇게 사람들 가까이에서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자라나는 봄꽃들! 꽃다지, 냉이, 별꽃, 큰개불알풀, 방가지똥, 주름잎.
▲ 광대나물. ⓒ이굴기 |
▲ 큰개불알풀이 밭을 점령하면서 한가득 피어났다. ⓒ이굴기 |
그 꽃들을 구경하면서 마을을 통과해 나갈 때. 마을 가운데 조금 넓은 도랑 곁에 매화가 한 그루 활짝 피어났다. 벌 몇 마리가 매화을 탐하며 공중을 붕붕거리며 날고 있었다. 꽃과 벌을 찍고 보니 개울 건너에 작은 밭이 있고 할아버지 한 분이 일을 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경운기 탈탈거리는 소리가 났다.
"할아버지 지금 뭘 가꾸세요."
"아, 양배춘디요, 두 달 후면 내다 팔 수 있지라."
"동네가 아주 따뜻합니다."
"그럼요. 근데 어디서 왔지라?"
"예, 서울서 왔습니다."
"아, 그라믄 큰 차 타고 왔겠네요잉."
"……………?"
지금 나하고 몇 마디 말을 나누면서도 할아버지는 계속 일을 하고 계신다. 양배추 밭에는 두둑마다 비닐이 씌어져 있다. 이제 봄 기운이 완연하니 그 비닐마다 더운 양배추가 토해놓는 입김으로 물방울이 잔뜩 어려 있다. 할아버지가 하고 있는 작업은 양배추에게 숨구멍을 틔워주는 작업인 듯 했다. 할아버지는 긴 작대기로 두둑의 그 비닐 중앙을 뚫어주고 있었다. 그런데 작업 방식이 특이했다.
놀라지 마시라. 할아버지는 지금 작대기를 한 손으로 잡고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런데도 아주 능숙하게 두둑이 할아버지의 가랑이 사이를 쑥쑥 빠져나간다. 할아버지의 밭일 솜씨는 그냥 보기에도 예사롭지가 않다. 봄기운에 들뜬 밭을 능수능란하게 오른손만으로도 휘어잡고 있는 중!
할아버지의 한쪽 손은 어디에 있을까. 할아버지의 왼손은 호주머니에 있다. 할아버지는 지금 오른손만으로 작대기를 잡고 두둑을 덮고 있는 비닐의 구멍을 뚫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는데 고흐의 그림 '씨 뿌리는 사람'이 생각났다. 석양을 등지고 밭에서 씨를 뿌리는 농부. 굳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납득이 되는 그림이다. 그 그림에서 농부는 한 손으로 씨를 뿌리며 한 손은 씨앗을 담은 통을 받치고 있다. 일본의 정신세계를 일군 이와나미출판사의 로고도 이 그림, '씨뿌리는 사람'을 형상화한 것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할아버지는 고흐의 그림 속의 농부보다도 농사일은 훨씬 윗길인 듯하다. 밭을 장악하고 두둑을 호령하고 비닐을 제어하는 일을 한손만으로 능수능란하게 하고 계신다. 할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낯선 뜨내기 방문객 걱정을 해 주었다.
"근디, 뭐하러 왔시오."
"아, 이 동네 꽃구경 하러 왔습니다."
"꽃? 아직 꽃이 이를 것이디…"
"저 위 저수지에 가 보려구요."
"아직 추워서 꽃이 나왔을라나 모르것네."
아아, 나는 퍼뜩 깨달았다. 할아버지의 왼쪽 호주머니에 지금 들어있는 것을!
혹 아닐까. 세상의 봄은 저 할아버지의 호주머니에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할아버지는 그 호주머니에서 추위를 관리하며 조금씩 봄의 씨앗을 세상에 뿌리고 있는 게 아닐까. 저수지 위의 추위도 할아버지의 손바닥 안에 좌우되는 게 아닐까. 저 밭가에 핀 매화나무의 꽃의 개화시기를 조절하는 것도 실은 이 할아버지의 입김에 달려 있는 게 아닐까.
▲ 활짝 핀 매화와 그 꽃을 탐하는 벌. 그 곁에서 할아버지는 한 손으로 일을 하고 계셨다. ⓒ이굴기 |
한손으로는 작대기로 양배추의 숨통을 틔워주고, 또 한 손으로는 호주머니에서 봄을 만지작거리는 것! 전라남도의 한 동네. 진도군 고금면 향동 마을에서 따뜻한 봄 기운을 예감하면서 퍼뜩 그런 생각을 해 보았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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