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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공포의 아토피! 아이를 더럽게 키워라!

[안종주의 '건강 사회'] 미생물의 건강학

10여 년 전의 일이다. 노인 사회 일본의 실태를 살피러 동료 기자들과 함께 도쿄, 나라 등지의 노인 요양원들을 둘러보았다. 나라 인근에 있는 '태양의 집'이란 한 노인 요양원을 방문했다. 숲이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 잡은 요양원은 나무로 지은 2층 집이었다.

한데 재미있는 것은 울타리 하나 사이로 유치원이 있었다. 안내인에게 물어보니 이 지역에서는 이 유치원이 인기가 많아 매년 모집 때마다 엄마들이 앞 다퉈 신청을 한다는 것이다. 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어 아침이면 부모들이 자녀를 자동차로 이곳에 데려다주고 오후에 다시 데려간다고 한다.

마당과 약간의 경사가 있는 숲 속 언덕 곳곳에 수십 명의 어린이가 삼삼오오로 흙장난을 하며 놀고 있었다. 몇몇 젊은 유치원 여선생님들도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과 함께 흙장난이나 소꿉놀이 등을 하고 있었다. 바로 옆에서는 한 무리의 어린이들은 뛰어다니고 있었다.

호기심에 우리 일행은 유치원을 방문했다. 통나무집으로 된 언덕 위 유치원에는 피아노 한 대와 나무로 된 의자만이 있었고 아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안내인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곳에서는 하루 종일 숲 속에서 뒹굴고 뛰어놀며 흙과 함께 지내는 것이 일과라고 한다. 비가 오거나 하면 유치원 안으로 들어가 피아노 연주 등 음악도 듣고 논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노는 유치원인 셈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대부분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면 손과 옷이 더러워지고 불결하다며 못하게 한다. 또 혹시나 흙에서 나쁜 병균이나 옮을까봐 야단을 치기까지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어린이들은 아파트 생활에다 포장도로 밖에 없어 흙이나 숲 속에서 뒹굴고 뛰어놀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다.

심심찮게 신문, 방송에서 생활용품이나 생활환경에서 세균 검출 운운하는 보도를 들을 때마다 일본에서 보았던 이 유치원 생각이 나곤 한다. 유치원 운영자와 이곳에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들은 세균이 득실거리는 흙장난을 주요 일과로 삼는, '불결한'(우리나라 부모들에게) 그런 곳을 좋아하는 것일까.

우리나라 신문, 방송들은 유독 세균이나 곰팡이 등 미생물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래서 휴대전화나 공중전화, 쇼핑 카트, 컴퓨터 자판 등에 세균이 득실거린다는 보도를 시도 때도 없이 해댄다. 이런 보도를 본 독자와 시청자들은 우리 몸에 단 한 마리의 세균 침입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세균은 불결하며 위험한 존재로 각인된다. 박멸해야 할 대상이다. 생활용품뿐만 아니라 우리 입안과 피부, 옷, 집안 공기, 마룻바닥, 벽 등에서 세균이 검출되면 큰일이나 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항균 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소독제가 가정 상비품이 돼버렸다.

우리 몸은 순수한 인간 세포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 몸은 피부는 물론이고 장 등 몸 곳곳에 세균들이 공존한다. 학술적 용어로는 정상세균총(Normal flora)이라고 부르는 이들 미생물 무리들은 우리 몸의 일부분이요 일생을 함께 살아가는 식구다. 만약 세균이 사라진 몸을 지닌 인간이 있다면 그는 얼마가지 않아 병원성 미생물에 감염돼 죽고 말 것이다. 세균 범벅인 사람이 정상인이고 세균이 전혀 없는 사람은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세균이 없는 사람은 지구 역사상 단 한명도 없었다고 보면 된다. 수많은 종류와 셀 수 없이 많은 미생물로 이루어진 정상세균총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귀한 존재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미생물만 보면 죄다 죽이고 싶어 안달일까? 왜 언론들은 세균을 무조건 피해야 할 존재로 보는 것일까? 이는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미생물이 우리 몸에 치명적인 감염병(전염병)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역시 극소수이기는 하지만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인유두종바이러스, B형간염바이러스 등 암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여기에 한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현대인들은 미생물을 건강과 관련해 유익한 놈과 나쁜 놈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앞서 이야기한 질병을 일으키는 나쁜 놈과 유산균이나 된장, 김치 등 발효미생물, 항생제를 우리에게 주는 미생물 등 좋은 놈으로 본다. 하지만 미생물은 이 두 가지 부류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유익하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은 놈들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좋은 놈이 아닌 것은 죄다 죽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 미생물이 실은 알게 모르게 우리 몸을 보호하고 병원성 미생물의 보호막이가 되는데도 말이다.

▲ 20세기 말 인류를 강타한 에이즈 바이러스를 전자 현미경으로 촬영한 모습(녹색). 이런 전 지구 전염병이 인간의 미생물 공포를 증폭시켰다. ⓒwikipedia.org

미생물을 죽여야 할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프랑스 의학자 파스퇴르와 독일의 코흐가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밝혀내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과거 수많은 인간의 목숨을 빼앗았던 중세의 흑사병을 비롯한 역사적 전염병과 감염 등이 모두 이들 미생물 때문이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세균 공포는 인간의 머릿속에 깊이 각인됐다. 인류 역사에서 결핵, 콜레라, 장티푸스, 이질, 매독, 디프테리아, 독감, 두창(천연두), 에이즈 등 악명 높은 감염병들이 우리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21세기 들어와서도 신종플루와 사스 등 미생물에 의한 감염병은 지구촌 전체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전염병 미생물 원인설이 확립된 이후 인간은 미생물을 박멸하고 미생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최대한 없애는데 온 힘을 쏟았다. 청결과 위생 관리가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역점 사업이 되었다. 과학자들은 미생물만 골라 죽이는 항생제와 각종 소독약품을 개발하는데 힘을 쏟았다. 그리고 현대인들은 값싸고 쉽게 이들 항생제와 소독약을 구입할 수 있게 됐다. '미생물은 우리가 멀리해야 할, 보는 족족 죽여야 할 적'이라는 믿음이 영구불변의 진리가 되어 인간의 뇌리 속에 너무나 깊이 박혔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가습기에 혹 서식할지 모를 세균 등을 죽이기 위해 물에다 살균제를 마구 섞어 사용한 것이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에 치명적인 세균이 자라 우리를 위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런데도 세균을 모조리 없애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폐에 독성을 지닌 살균제를, 그 위험성을 모르고 사용하다 현재까지 무려 112명이 숨진 것으로 드러났다. 세계 최초의 바이오사이드 집단 사망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것이다. 이 사건의 1차적인 책임은 살균제를 개발 또는 수입, 판매한 회사에 있고 2차적인 책임은 이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정부에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그 뿌리를 찾아가면 세균에 대한 우리들의 지나친 공포심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을까.

모든 살균제와 항균제, 항생제는 몸에 해롭거나 해로울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꼭 필요할 때만 사용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화장실 청소, 집 유리와 가구 청소, 부엌 청소, 자동차 청소 등에 사용하는 살균제와 각종 항균 제품(옷이나 생활용품 등) 등도 함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 심각한 폐 질환을 유발해 약 10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가습기 살균제. ⓒ프레시안(남빛나라)

좀 더러우면 어떤가. 병원성 미생물이 득실거리지만 않으면 된다. 때론 더러운 것이 몸에 좋다. 일본 '태양의 집' 유치원 어린이처럼 우리가 더럽다고 여기는 흙과 함께 뒹구는 것이 몸에 좋다. 흙은 결코 더러운 것이 아니다. 물론 파상풍균이나 화농성균 등이 흙에 있어 피부에 상처가 날 경우 감염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럴 경우 잘 소독하면 되고 파상풍에 걸릴 위험은 극히 낮다. 일본 태양의 집 유치원 설립자나 부모와 달리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못하는 사람은 파상풍균이나 흙속 병원균 존재 가능성 때문에 흙을 멀리할 수도 있겠다.

그런 이들을 위해 이른바 위생 가설(Hygiene hypothesis)을 소개하겠다. 나처럼 미생물, 보건학 전공자들은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아직 낯선 내용이다. 최근 한 공중파 방송에서 이 내용을 소개한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고 언론에서도 가끔 이 위생 가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요즘에는 위생 가설이란 용어는 기억하지 못해도 '마구 키운 어린이가 더 건강할 수 있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위생 가설은 1989년 <영국의학저널>에 데이비드 스트라찬이 어떤 감염이 우리 몸속에서 일어나면 알레르기 발생 위험이 낮아진다는 논문을 처음 발표하면서 세상에 나왔다. 그는 알레르기 질환인 건초열과 습진이 한 자녀만을 둔 가족의 어린이보다 대가족 어린이에게서 적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설명하기 위해 이 위생 가설을 제시했다. 다시 말해 태어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 대가족 환경에서는 핵가족 환경보다 각종 세균에 더 많이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데 이 때문에 알레르기 질환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뒤 이 위생 가설은 면역학자나 역학자들이 알레르기 장해 연구를 하는데 중요한 이론적 틀거리(framework)를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면 더 개발된 국가일수록 알레르기 질환 발병률이 높으며 산업화 이후 알레르기 질환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데 위생 가설이 사용된다. 이 가설은 최근 미생물 감염체와 함께 공생세균, 기생충이 인체 면역 시스템 발달에 중요한 매개체 구실을 한다는 것으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해가고 있다.

알레르기 질환은 해롭지 않은 항원에 대해 우리 몸이 부적절한 면역 반응을 일으킨 결과이다. 그런데 많은 종류의 세균과 바이러스는 인체가 이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줄여준다. 인류 진화 역사와 함께 감염체, 공생세균, 기생충이 우리 몸과 공존하며 균형 잡히고 조절된 면역 체계 발달에 기여해왔다.

하지만 근대 들어와 전염병 유행을 막기 위한 소독 등 위생 관리는 한편으로는 전염병을 줄이고 평균 수명을 늘리는데 일등공신 구실을 했지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광범위한 항생제 사용으로 병원균뿐만 아니라 비병원성 세균까지 죽어갔다. 어린이들은 위생 향상과 항생제 덕분으로 많은 질병의 위험에서 벗어나거나 위험이 줄어들었지만 아토피나 각종 알레르기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위생 가설은 우리가 약간 불결하다고 느끼는 환경에서 자란 어린이들이 다른 감염병이나 알레르기 질환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의학자들은 최근 몇몇 기생충을 이용해 자가 면역 질환인 크론병(유해한 박테리아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면역 체계로 유발되는 만성적인 장 질환), 다발성경화증, 천식, 궤양성대장염 등의 질환을 치료하는, 이른바 기생충 치료법을 선보이고 있다고 한다. 난치병 치료에 위생 가설을 응용하고 있는 것이다.

회충이나 촌충, 요충, 십이지장충 등의 기생충 가운데 적어도 하나 이상을 몸에 지니고 자라났던 지금의 50대 이상 중장년층과 노인들은 이런 기생충뿐만 아니라 대부분 어릴 때 7~8명 이상 한 지붕 아래서 생활하는 대가족 환경 속에서 지냈다. 또 자치기, 돼지불알 놀이, 구슬치기, 딱지치기, 고무줄놀이. 소꿉놀이 등 학교 운동장이나 집 밖 흙속에서 뒹굴며 지냈다.

그래서인지 1950~70년대에는 천식을 앓거나 아토피, 알레르기 질환으로 고생을 하는 사람을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많은 우리 어린이들이 천식과 아토피 등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 우리 어린이 건강을 위협하는 주범들이다. 여기에는 1980년대 이후 환경오염 악화 등의 까닭도 한몫을 하기는 하지만 그 이유를 잘 설명해주는 것이 바로 위생 가설이다.

지금부터 우리가 명심해야 할 일은 미생물은 우리의 적인 동시에 친구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무조건 미생물을 멀리하고 두려워하고 박멸하려 할 것이 아니라 적과 아군을 잘 구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독감이나 치명적인 감염병이 유행할 때는 손 씻기와 소독에 신경을 써야겠지만 평소에는 무해한 세균에 대해서 무덤덤해야 한다.

언론도 불필요하게 세균 공포를 조장하는 세균 검출 보도를 자제하거나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조금은 더러워야 건강해진다는, 매우 역설적인 이야기가 필요한 때가 바로 지금이다. 쓸데없이 세균 잡으려다 되레 당신의 건강을 해친다. 너무 깔끔 떨지 말자. 소독하느라 돈 들고 시간 들고 건강마저 해칠 수 있다. 건강한 몸과 건강한 사회는 약간의 더러움과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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