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대마도 이즈하라 항까지는 두 시간 남짓 걸린다고 한다. 여권을 내고 출국 수속을 밟고 괘속선을 타러 가는데 부두 한 켠에 컨테이너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컨테이너는 육중했다. 무슨 내용물이 들어 있는지는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무게가 상당해 보였다. 내가 대마도로 떠나듯 어디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부두의 컨테이너, 컨테이너, 컨테이너. 모양은 한결 같았지만 색깔은 울긋불긋한 야생화처럼 저마다 달랐다. 목적지도 다들 다를 것이다.
▲ 부산항 여객 부두의 컨테이너들. ⓒ이굴기 |
중학교 시절을 나는 부산에서 보냈다. 그때 월남에서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맹호부대, 청룡부대, 백마부대의 젊은 용사들이 월남으로 차례차례 떠났다. 그 군인들이 출정할 때 우리는 수업을 중단하고 부두로 나갔었다. 어느 땐 아예 그곳으로 집결했다가 등교하는 적도 있었다. 귀국선을 환영하러 나간 적은 없었고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 아저씨들을 환송하러 태극기 들고 부두로 여러 번 출동했었다. 학생 동원하기가 식은 죽 먹기였던 시대이니 가능했던 풍경이리라.
정확한 위치를 가늠할 수 없었지만 이 부두 언저리 어디였을 것이다. 까만 교복을 입고 검은 모자를 쓰고 작은 태극기를 들고 줄을 맞춰 걸어갔던 곳. 그땐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우리는 환송식만 했지 환영식은 안 했던 것 같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가는 사람한테 더 위로를 보내야 하는 것이라서 그럴까. 살아서 왔다면 그 사실 자체가 더 큰 환영이라고 해서일까. 왜 전쟁터로 떠나는 사람들만 환송하고, 전쟁터에서 살아오는 사람들은 마중가지 않았을까. 나로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 그런 세월은 지나갔다. 어떤 질문도 해 보지 못했고 별다른 생각도 달리 없었다. 그저 한 무더기의 중학생들은 밀물처럼 부두로 갔다가 썰물처럼 그곳을 빠져나왔다.
이날 비가 살짝 뿌렸다. 그런 우울한 시절의 상념을 슬쩍 떠올리며 일행을 따라 걸어갔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여행객들이 배낭을 짊어지고 혹은 바퀴 달린 가방을 밀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컨테이너는 말없이 쌓여 있었다. 그런 풍경을 보면서 컨테이너 곁을 지나가는데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우리 살아가는 형식도 저 포개진 컨테이너의 그것과 뭐 그리 다를까.
내용물이 무슨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나, 껍질이 딱딱하고 완고한 것이나, 하나하나 쌓이는 것이나, 그 어디로 떠나는 줄을 모르는 것이나, 겉면에는 요란한 이름표를 달고 있는 것이나. 뭐 다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또한 둘러보면 마찬가지 아닌가. 싸늘한 날씨에 태극기 흔들다 언 몸으로 집으로 간 중학생이나, 부모님한테 일자상서 보내고 애인한테 러브레터 한 장 부치고 전쟁터로 떠난 군인들이나, 모두들 시간의 컨테이너에 담겨 차곡차곡 쌓여있는 것 아닌가. 물같이 흐르는 시간이라지만 살아낸 흔적들은 저렇게 따로따로 포장되어 마구 흩어지는 것 아닌가.
육중한 배였지만 파도와 추위를 피해 갈 수는 없었다. 국경을 통과하느라 그랬는지 그것들은 더욱 사나웠다. 두 시간을 그렇게 시달리고 보니 몸도 마음도 컨테이너처럼 딱딱해졌다. 멀미를 참으려고 깜빡 졸았다가 깨어보니 희미한 육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당장 오늘 오후부터 대마도의 산들을 차례차례 밟아나간다. 시라다케 산, 타테라 산, 미다케 산. 센뵤마키 산. 그 산들을 가득 품으며 빗방울과 거친 물보라 사이로 대마도는 복면한 괴한처럼 서 있었다. 대마도의 식물은 내 나라의 그것들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를까. 흥미진진한 중학생의 심정으로 대마도의 꽃을 찾아 뭍으로 올라섰다.
▲ 배 안에서 바라본 대마도. ⓒ이굴기 |
추신
3박 4일의 여정을 끝내고 귀국하는 날, 부산항 부두의 컨테이너 야적장에서 내가 떠날 때 보았던 그 지점을 유심히 보았다. 과연 짐작한 대로였다. 그새 육중한 기중기가 와서 해치웠구나. 나흘 전의 컨테이너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또 새로운 것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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