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S 대기업의 진짜 주인, 회장님이 아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S 대기업의 진짜 주인, 회장님이 아니다?!

[프레시안 books] 마조리 켈리의 <주식회사 이데올로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 주주자본주의

작년의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뜨겁게 떠오른 이슈는 경제민주화였다. 그리고 재벌총수들의 편법 상속과 끝없는 계열사 확장, 골목상권 침해와 중소기업 갈취 등은 박근혜 대통령 정부 역시 외면할 사항이 아니다.

그런데 경제민주화란 단지 재벌개혁을 넘어서야 한다. 수년 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에서 많은 나라들에서 부와 소득의 양극화와 빈부격차 확대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세계적으로는 금융자본주의와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따라서 경제민주주의란 말 그대로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 즉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어떻게 민주주의의 원칙에 맞게 재편하는 것이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런 의미에서 경제민주화 또는 경제민주주의는 그 자체로서 대단히 급진적인 구호로 들릴 수 있다. 따라서 경제 민주화 같은 급진적 슬로건을 대통령 선거에서 여야가 모두 외쳤다는 것은 우리 역사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그렇지만 유행처럼 번진 경제민주화의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행이 떴다가 사라지듯 빈약하고 조악하기 짝이 없는 이론적·경제사상적 토대가 발견된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발간된 <주식회사 이데올로기>(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의 내용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이 책은 본래 10년 전에 이미 <자본의 권리는 하늘이 내렸나?>(The Divine Rights of Capital)(강현석 옮김, 이소출판사 펴냄)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붇돋움에서 이번에 제목을 바꾸고 다듬어서 재출간하였다.

▲ <주식회사 이데올로기>(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북돋움 펴냄). ⓒ북돋움
10년 전만 해도 이 책은 세간의 주목을 받지 않았다. 그 무관심은 상당히 괴이쩍은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소액주주운동으로 대표되는 재벌개혁-경제민주화라는 이슈가 큰 인기를 끌고 있었고, 따라서 이 책의 관심사인 "주식회사의 주인은 과연 주주인가?"라는 질문과 "경제귀족주의를 타파하고 경제민주주의를 이룩해야 한다"는 화두는 큰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책의 본문을 읽어 보면 그러한 무관심의 이유가 이해된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총수자본주의가 아니라 주식시장과 그 투자자들의 자본주의, 즉 '주주자본주의'(shareholder capitalism)이기 때문이다.

마조리 켈리가 비판하는 것은 월스트리트와 주식투자 펀드들과 결합되어 1980년대의 레이건-부시 행정부 시기에 등장하여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면서 20년간 융성한 주주자본주의이다. 그리고 그 주주자본주의는 2008년의 미국 발 금융위기로 현재 위기에 처해있다.

적대적 기업사냥과 소액주주운동

이 책이 처음 출간된 해인 2003년 봄부터 투기적인 소버린 펀드에 의한 SK그룹 경영권 공격이 시작되었다. 즉 대규모 재벌그룹을 향한 투기적인 주식펀드의 적대적 기업사냥 공격이 처음 발생한 것이다. 소버린 펀드와 SK그룹 간의 경영권 분쟁에서 한국 사회는 분열되었다. 소액주주운동의 편에 선 이들은 "소버린 펀드의 행위는 총수자본주의를 억제하고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높인다"며 소버린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에 반해 다른 이들은 "재벌개혁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뒤로는 투기적인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주의를 불러들인다"고 비판하였다.

소버린의 SK그룹 공격은 당시까지만 해도 당연한 것으로 수용되던 소액주주운동과 그것과 긴밀하게 결합된 재벌개혁이 자칫 투기적인 카지노 자본주의를 수입하는 트로이의 목마로 기능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처음으로 사람들이 의식하게 된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재벌개혁이냐 주주자본주의냐"라는 (잘못된) 이분법적인 논란이 본격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김대중·노무현 민주 정부 시절 재벌그룹의 총수자본주의를 견제하고 경제민주화를 달성한다는 훌륭한 취지에서 다양한 미국식 제도들이 도입되었다. 당시 도입되어 지금 정착된 주주자본주의의 대표적 장치가 적대적 M&A와 스톡옵션이다. 이에 대한 마조리 켈리의 설명을 들어보자.

"법정 밖에서 주주 중심주의(주주자본주의)를 강제하기 위해 주로 세 가지 수단이 동원된다. (…) (먼저) 적대적 인수라는 노골적인 수단을 쓸 수 있다. '성과 나쁜' 기업의 주식을 모조리 사들여 회사의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를 인수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사회가 CEO로 하여금 주주 중심주의를 따르게 하려면 적대적 인수보다는 조금 덜 노골적인 다른 두 가지 수단이 있다. 하나는 CEO에 지급하는 보수(주로 스톡옵션)이라는 당근이고, 다른 하나는 (그래도 주식투자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 CEO의 해고라는 채찍이다.

최근 몇 년간 이 세 가지 수단(적대적 인수, 스톡옵션, CEO 해고)이 아낌없이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 기업들이 이윤만을 좇고, 정리해고를 감행하고, 해외에서 값싼 노동을 착취하는 공장을 세우고, 대(對) 기업 복지를 부르짖고, 세금을 회피하는 등의 짓거리를 더욱 무자비하게 추구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이런 야만적 행태는 최근 기업의 지배구조에서 벌어진 작은 혁명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91쪽)


우리나라에서 1990년대 후반 '민주 정부' 하에서 일어난 '기업지배구조 혁명'이 미국에서는 1980년대 레이건-부시 '보수 정부' 하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레이건-부시 행정부를 출범시킨 미국의 신보수주의(뉴 라이트) 운동과 긴밀하게 결합된 이 같은 '주주자본주의 혁명'에 대해 -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 미국에서도 크게 주목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 혁명에 대해 재계에서는 많이 이야기하지만, 바깥 세상에서는 주목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91쪽)

주주들, '주식투자자들의 반란'이라고 할 만한 이와 같은 혁명이 있기 전까지만 해도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했지만) 주식회사의 이사들은 겨울잠에 빠진 곰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상황은 미국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지속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초반 레이건 행정부가 헤지펀드 등 펀드 자본주의를 활성화시키는 각종 금융규제 완화(이것을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 시작이라고 한다)를 시행하면서 적대적 M&A를 전문으로 하는 기업사냥꾼들이 기회를 노리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1990년 포춘 500대 기업의 3분의 1이 적대적 M&A의 목표물이 되었다. 다른 2/3의 대기업들도 누군가가 나타나 급작스런 적대적 M&A를 당하지 않을까 겁에 질린 채로 살았다. 그리고 뮤추얼펀드 등 대형 주식투자 펀드들은 이런 기업사냥꾼들의 활약을 두 손 벌려 환영했는데, 적대적 M&A 공방전이 더 많이 진행될수록 주가는 오르게 마련이고 이들 역시 주가상승이라는 무임승차 이익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의 소액주주운동을 공식적으로 후원하는 미국의 캘퍼스(Calpers) 같은 대형 투자펀드들은 적대적 M&A를 촉진시키는 각종 기업지배구조 개혁을 글로벌 대기업들에게 요구했고, 그것은 우리나라 대기업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 정부에 의한 기업지배구조 혁명이 완수된 2000년대 초반부터 기업사냥꾼과 펀드들이 설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2003년에는 소버린 펀드에 의한 SK그룹 공격이 있었고, 2006년에는 미국의 칼 아이칸 펀드에 의한 KT&G(과거 담배인삼공사) 공격이 있었다.

회사의 주인은 과연 주주인가?

적대적 M&A의 기회를 엿보는 기업사냥 펀드들과 캘퍼스 같은 투자펀드들은 사실, 오늘은 이 회사에 투자했다가 내일은 그 주식을 팔고 다른 회사로 옮겨가는 떠돌이들에 불과하다. 그런 떠돌이들이 어떻게 "내가 이 회사의 주인이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은 주식회사의 법제도 자체가 "주식회사의 주인은 오로지 주주"라고 명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당연히 회사의 주인은 주주이며 주식회사의 활동은 마땅히 주주이익 극대화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008년의 세계 금융위기 발발 이후 이익만을 좇는 기업과 금융투자자들의 탐욕에 대한 비난은 많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그러한 탐욕의 뒤에 있는 경제시스템의 핵심인 상장 주식회사 제도의 구조 그 자체를 의심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그에 반해 <주식회사 이데올로기>에서 마조리 켈리는 시종일관 오늘날의 주식회사 제도 자체를 비판한다. 마조리 켈리는 주식회사 법제도의 근간에 있는 '주식회사는 주주의 재산'이라는 사고방식과 법조항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이야말로 오늘날의 경제 질서를 극소수의 불로소득 귀족들, 즉 주식투자자들이 쥐락펴락할 수 있게 하는 비밀이라는 것이다.

마조리 켈리는 오늘날의 주식회사를 과거 봉건시대의 영주 재산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한다.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주식회사 제도와 주주자본주의에 관한 기존의 관념에 대하여 근본적으로 의심하면서, 그것을 풍부하고 다채로운 역사자료와 현대 기업의 경영 사례들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마조리 켈리는 10세기와 15세기 봉건 영주 시대의 소유권-노예제 관념이 어떻게 오싹할 정도로 오늘날의 주식회사 제도에 살아남아 있는지를 비교한다.

"주주가 누리는 특권이 어디서 오는지 찾다 보면 소유라는 마법 같은 한마디가 주는 주술을 다시 만나게 된다. 세상은 주주가 기업을 소유한다고 이야기한다. 주주가 눈곱만큼 공헌하고도 많은 몫을 차지하는 이유다. (…) 소유라는 두 글자에 총체적 세계관이 담긴 셈이다. (…) 거대한 주식회사를 손아귀에 넣어 쪼개기도 하고, 빚을 얹기도 하고, 팔아버리기도 하고, 문을 닫기도 하고, 사람들을 쫓아내기도 한다. 그에 반해 기업의 직원들과 지역 사회는 이런 일을 멈출 힘이 없다." (73쪽)

"(노예제 시대와 봉건 시대에서 유래한) 이 같은 주인과 신하의 법칙은 소유 개념에서 살아 있는 화석처럼 고용주-종업원 관계의 법칙으로 남아 있다. 여전히 직원은 관습법에 따라 기업에 충성할 의무를 진다. 하지만 대량 정리해고에서 볼 수 있듯이, 기업은 직원에게 신의 따위를 지킬 필요가 없다." (75쪽)


그리하여 이 책은 (1) 회사의 실질적 주인은 주주가 아니라 직원과 경영자들이며, (2) 이러한 원칙의 실현은 (그것이 바로 경제민주주의의 본질인데), 반드시 자본주의 시장 경제를 완전히 뒤집어 엎는 공산주의 혁명이 아니더라도, 현재의 민주주의 헌법 질서의 틀을 지키면서 (그리고 민주주의적 헌법과 법질서가 경제 및 기업 영역에서 실질적으로 관철되기 위해서도) 점진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민주공화국은 주식회사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하며, 필요할 경우 그 해체도 명령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 모든 것이 회사의 법률적 주인인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경제 황제정과 경제귀족주의, 경제민주주의

헌법상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리고 민주공화국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며, 따라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궁극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있다. 그렇다면 기업은 어떤가? 기업의 주권은 궁극적으로 누구에게 있는가? 그 기업을 구성하는 모든 시민들 즉 종업원 등 임직원에 있는가, 아니면 일부 투자자들 또는 대주주들에게 있는가?

사실 이러한 질문은 민주주의에 대해 조금만 생각한다면 나오면 기본적인 질문들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런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이 이미 우리의 법질서에 주어져 있다. 즉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다수 나라의 상법-회사법에는 "기업의 주인은 주식소유자"라고 명기되어 있다.

내가 여기서 '대다수'라고 말한 까닭은 독일과 스웨덴 등 유럽의 일부 나라들에서는 기업의 주인은 주식소유자만이 아니라 동시에 종업원이라고 법률에 명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공동결정제란 자본과 노동, 주주와 종업원 양자가 동시에 회사의 주권자로서 권력(주권)을 공유하는 제도이다. 마조리 켈리가 이 책에서 설파하는 내용의 핵심은 유럽의 공동결정제가 주식회사들에 도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논란이 되는 이슈, 재벌개혁의 논란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삼성그룹의 주인은 누구인가? 이건희 회장인가, 아니면 소액주주인가? 아니면 삼성그룹에서 근무하는 수십만 종업원들인가? 만약 이건희 회장이 주인라면 그것은 경제 '황제정'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절대군주인 재벌 총수가 주식회사에서 황제처럼 군림하는 '총수 자본주의'이다.

그렇다면 소액주주들 즉 수많은 투자펀드들과 소액투자자들이 삼성그룹의 주인 노릇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것은 경제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의 개혁파 경제학자들은 그것이 경제민주주의라고 말하였다. 실제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주식투자 펀드들의 의결권을 대폭 강화시켰고, 동시에 적대적 M&A를 활성시킴으로써 주주자본주의적 경제민주화를 대폭 촉진시켰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마조리 켈리는 소액주주들, 즉 주식투자자 및 투자펀드들이 기업의 주인 또는 주권자 노릇을 하는 것은 결코 경제민주주의라고 할 수 없으며, 그것은 오히려 경제귀족주의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아주 상세하게 분석하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 책이 제시하는 대안적 경제민주주의는 소액주주운동 또는 사회적 투자(CSR)에 있지 않다. 소액주주운동이 되었건 사회적 투자(CSR)가 되었건, 모두 투자자 즉 주주들만이 회사의 주인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소액주주운동과 사회적투자(CSR)가 활성화될수록 오로지 주주 또는 투자자들만이 회사의 주인이라는 허구는 더욱 강화된다. 마조리 켈리는 직원과 종업원들, 지역공동체와 더 나아가 민주공화국 전체가 주식회사의 운명을 좌우하는 실질적 주인이라는 원칙이 법에 명기될 때만이 진정한 경제민주주의가 달성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식기반 경제의 주인은 종업원!

<주식회사 이데올로기>는 '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것이 얼마나 기업 생활의 현실에서 허구에 지나지 않는가를 여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하나의 사례를 보자(83쪽). 1995년 미국의 광고회사 치아트데이의 소유주들은 회사를 옴니콘이라는 타 회사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기존 직원들에 대한 정리해고가 임박했고, 이를 눈치 챈 치아트데이 런던 사무소의 앤디로는 모든 직원들을 규합하여 회사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그의 요청을 받은 고객사들도 그들을 따라서 거래 회사를 옮겨버렸다. 따라서 회사는 텅 비었다. 결국 옴니콘은 런던 사무소를 단 1달러만 받고 앤디로와 그의 동료들에게 넘겼다.

여기서 이 책은 질문을 던진다. 애당초 회사의 소유주 즉 주인이라고 불린 치아트데이는 이 회사의 무엇을 소유했던 것일까? 광고회사와 같은 지식기반 산업에서 회사의 최대 자산은 직원과 그들이 맺고 있는 고객 네트워크인데, 그 직원들은 노예가 아니다. 그런데도 현재의 주식회사들의 정관과 그 재무제표들에는 그 어디에도 "직원이 회사의 주인"이라는 원칙이 명기되어 있지 않다.

사실 이런 일은 광고회사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로펌(법률회사)과 광고회사, 회계사무소와 같이 인적 자본이 가장 중요한 업종의 경우 주식회사 제도는 매우 적합하지 않다. 대규모 기계설비가 필요한 제조업과 달리, 이런 업종의 경우 물적 자본보다 인적 자본이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더구나 인적 자본의 '창의성' 혹은 '적극성'이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경우, 주주들에게만 배당이나 자본차익 등으로 보상하는 주식회사는 매우 큰 영업 실패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지식기반 업종의 경우에는 주식회사가 아니라 파트너 제도를 도입해서 능력 있는 직원들에게 자본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그런데도 오늘날 거의 대다수 주식회사들은 회사의 직원들을 단지 '비용' 요소로, 해고를 감행하고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경영으로 생각한다. "회사의 최고 자산은 직원"이라는 멋진 슬로건은 자기자본수익율(ROE)과 주가대비수익율(PER) 등을 따지는 공시적인 재무·투자 관련 보고서에서는 허망하게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직원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재무제표상 낭비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 책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대차대조표나 손익계산서 등 재무제표의 작성 방식 역시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그 대안으로 재무제표를 직원 등 종업원의 이익의 관점에서, 또한 사회공동체와 환경생태의 관점에서 새롭게 작성할 수 있는 다양하고도 참신한 여러 가지 방법들을 제안한다. 그것이 얼마나 참신하고 멋지며 더구나 당장 적용 가능한 것인지, 우리나라에서도 마조리 켈리와 함께 하는 여러 가지 실천적 시민운동이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노무현 정부는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늘 입에 달고 담았다. 그리고 문재인 등 민주통합당 정치인들 역시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공평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하물며 그것이 스웨덴식 복지국가보다도 더 시급하다고 자주 말했다. 그런데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이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그런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많은 개혁진보 경제학자들은 재벌과 모피아(경제관료)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과 반칙을 철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재벌과 모피아가 지배하는 한국 경제를 '전근대적'이라고도 지칭한다. 그렇지만 <주식회사 이데올로기>의 제1부 경제귀족주의 부분을 읽어 보게 되면,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적인' 자본주의 시장 경제, 특히 미국 경제와 같은 시장 자본주의 역시 특권과 반칙이 넘치는 세상이라는 것을 보게 된다. 즉 자본을 소유한 주주들은 회사의 발전을 위해 전혀 기여하는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회사에서 새로 창출된 모든 부를 갈취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법률적 특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마조리 켈리는 재산권에 기초한 현대 주식회사의 주주들이 보유한 권리를, 과거 봉건시대 영주들이 가졌던 특권과 본질적으로 전혀 다를 것이 없는 특권이라고 질타한다. 그리고 마치 봉건 시대에 영주들이 지배하는 체제를 귀족주의라 부르는 것처럼, 주식소유자들이 지배하는 경제체제를 (경제민주주의가 아닌) 경제귀족주의라고 지적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투자자 등 주식투자자들이 장악한 현재의 주식회사 질서를 여섯 가지 원리로 요약하는데(29쪽), 그 설명을 따라가 보면 주식회사 중심의 오늘날 자본주의 경제 질서가 봉건 시대의 귀족주의와 놀라우리만치 닮은 "특권과 반칙의 체제"임을 깨닫게 된다. 주주들(그들이 재벌총수이건, 대주주이건, 소액주주인건 관계없이)이 누리는 특권을 민주공화국이 억제하고 규제하지 않는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은 실현될 수 없다.

경제민주화의 사상적 기초

그렇다면 경제귀족주의를 어떻게 타파하여 경제민주화를 이룩할 것인가? 이 책의 제2부는 경제민주화를 위한 사상적 기초를 제시함과 함께 그 구체적인 방법에 관한 논의이다. 그런데 마조리 켈리가 제시하는 그 여러 대안들은 매우 구체적이고 상상력이 가득한 것들이다.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재무제표와 새로운 재산권 법률, 강화된 인권 개념, 주식회사 내 시민(종업원)의 새로운 유형, 그리고 주주이익 극대화를 넘어서는 더욱 확장된 기업 목표 등이다.

경제민주주의는 궁극적으로 경제의 영역, 즉 그간 자본과 시장이 전적으로 지배하던 영역으로 민주주의 원리를 확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원칙은 단지 추상적 관념에 불과하며 당장 눈앞의 처참한 현실과는 별 관련 없는 공허한 헛소리로 들린다.

그렇더라도 마조리 켈리의 다음과 같은 미셸 푸코 인용은 의미심장하다.

"어리석은 전제 군주는 쇠사슬로 노예들을 구속할지 모른다. 그에 반해 참된 정치인은 관념의 사슬로 노예들을 구속하는데, 그것이 훨씬 강한 구속이다."(<감시와 처벌>(오생근 옮김, 나남출판 펴냄))

나 역시 마조리 켈리의 다음 말에 완전히 동의하면서 이 글을 끝내고 싶다.

"관념, 즉 사상은 사회 질서의 기초다.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면 사상의 기반 위에 세워야 한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