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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송혜교 지키고 싶다! 대체 난 왜 이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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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 송혜교 지키고 싶다! 대체 난 왜 이럴까!

[이명현의 '사이홀릭']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인 '불편한 진실'을 볼 때마다 반복되는 내 심리 상태의 변화는 이렇다. 일단 웃게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얼굴이 붉어지면서 진짜 불편한 마음이 생긴다. 그러다가 다시 씩 웃게 된다. 인정하기 싫지만 공감했다는 뜻일 것이다. 개그맨 황현희의 말마따나 자신의 이런 행동이 "왜 그럴까요?"하고 궁금해졌다면 '500원'을 허경환에게 건넬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연장통>(전중환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을 사서 펼쳐보시라.

"이 책은 진화를 우리의 일상생활에 초대하려는 노력이다. 진화는 티라노사우루스의 발톱을 설명할 때나 창조과학이라는 사이비 과학을 물리칠 때만 간혹 필요한 구닥다리 개념이 아니다. 진화는 때론 지겹고 때론 가슴 뛰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사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유용한 도구다.

이 책은 왜 우리가 MC 유재석의 자학 개그에 박장대소하는지, 왜 드라마 주인공을 제발 죽이지 말아달라고 방송국 게시판을 도배하는지, 왜 직장 간부와 면담하기 전에 저절로 옷깃을 여미게 되는지, 왜 카페에 가면 창밖이 내다보이는 구석자리에 앉는지, 왜 찬송가를 부르면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지 이야기할 것이다."


▲ <오래된 연장통>(전중환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명백한 사실이지만 자꾸 이야기하기에는 낯간지러운 것들이 있다. <오래된 연장통>의 추천사에서 최재천이 밝혔듯이 이 책의 지은이인 전중환은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진화심리학을 정식으로 전공한 학자이다." 진화심리학이 나름 유행을 타고 있고 서점에서 불황 속에도 진화심리학 책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한쪽 현실이라면, '전중환'에게 이런 수식을 붙일 수밖에 없는 것이 또 한편의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인 것이다.

진화심리학에 대한 이해는커녕 표피적인 단어를 곡해해서 진화심리학 책이라고 내놓은 것이 이 분야에서 잘 팔리는 책의 반열에 올랐던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대한민국 최초 진화심리학자 전중환'을 내세우는 낯간지러운 일이 지금 우리 사회에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자괴감마저 든다. 어쨌든 넘쳐나는 진화심리학 번역서를 만나기 전에 전중환의 <오래된 연장통>을 만나보는 것이 '정통'의 길을 가기 위한 좋은 선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끼우면 번거로워지고 우스꽝스러워진다.

우리는 137억 년 전 빅뱅이라는 순간을 겪으며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팽창하기 시작했던 우주 속에 살고 있다. 우주는 지금 이 순간에도 팽창하고 있다. 뜨거웠던 우주 초기에 물질의 재료가 되는 양성자나 전자들이 생겨났고 우주가 조금 더 차가워지면서 이들이 뭉쳐서 수소나 헬륨 같은 원소를 만들어냈다. 별이 생기고 그 내부에서 핵융합 작용이 일어나서 별빛이 만들어 지는 동안 산소, 질소, 탄소 같은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이 생겨났다. 별이 진화해서 일생을 살고 나서 폭발하면서 철이나 구미 공단에서 유출되어서 문제가 되었던 불산을 이루는 불소 같은 원소들이 만들어졌다. 우리 몸은 이루고 있는 원소들은 이 때 만들어진 것들이다. 우리 몸은 그것들을 재활용해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진화 과정에서 생명의 출현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화학적 반응의 결과였을 것이다. 지구에도 생명이 태동했고 진화를 시작했다. 인류도 우주의 탄생부터 생명의 출현과 진화라고 하는 장엄한 우주의 역사를 머금은 채 현재에 이르렀다. 우리는 우주의 역사를 머금은 별 먼지인 것이다. 그리고 진화의 과정 속에서 적응의 결과물로 또는 그 부산물로 숱한 연장들을 몸속에 갖게 되었다. 우리 자신이 '오래된 연장통'이 된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어떤 배우자를 고를 것인가, 비바람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포식동물을 어떻게 피할 것인가 등 수백만 년 인류의 조상들에게 주어졌던 다수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설계되었다. 톱이 판자 자르기, 드릴이 구멍 뚫기를 각각 잘 수행하게끔 특수화된 공구들이듯이, 인간의 마음은 각각의 적응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게끔 특수화된 수많은 심리적 '공구'들이 빼곡히 담긴 연장통이다. 비록 전기 대패나 슬라이드 만능 각톱처럼 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그 필요성이 대두된 첨단 공구들까지 다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톱이나 망치, 드라이버처럼 전통적인 공구들만 들어 있는 오래된 연장통이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가끔씩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말이다."

나는 초콜릿을 즐겨먹는다. 내 건강을 걱정하는 주위의 따가운 눈초리 때문에 자제하고 있지만 그래도 늘 초콜릿이 탐나곤 한다. 사실 초콜릿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대립되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나는 늘 내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려는 집착을 보이곤 한다. 하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내가 철이 덜 들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다만 우주의 역사를 머금은 장엄한 존재로서 그 본성에 따라서 나의 소임을 다했을 뿐이다.

"예컨대, 먼 옛날 홍적세의 아프리카 초원에서 아주 드물게 볼 수 있었던 잘 익은 과일들은 다량의 영양분을 제공해 주는 에너지원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단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게끔 진화하였다. 오늘날 이러한 욕구를 초콜릿과 치즈케이크를 통해 채워지고 있다."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어떻게? <오래된 연장통>을 보시라. 나는 음식을 먹을 때 후추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결말이 뻔한 드라마를 보면서 흥분하고 결말을 고쳤으면 하는 소망을 벅찬 가슴에 담아두기도 한다. 무신론자인 내가 기도를 한다면, 예쁜 여주인공의 불행한 결말을 행복한 것으로 바꿔달라고 드라마 작가에게 하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궁금하면 내게 500원을 주는 대신 <오래된 연장통>을 펼쳐보시라.

"문화는 생물학적 진화와 대척점에 있지 않다. 집단 내의 동일성과 집단 간의 차이를 가리키는 개념으로서, 문화는 궁극적으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 진화의 보편적인 산물인 보편적인 인간 본성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노력'이다. 당연히 우리의 거시적, 미시적 활동은 모두 진회심리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우주적 존재이고 진화적 존재인 인간을 '근대'라고 하는 짧은 시간 속에 가둬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시간의 축적 속에 생겨난 '오래된 연장통'을 외면한다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는 요원할 것이다. 문화도 예외가 아니다. 종교도 물론이다.

"무신론자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소식은 이렇다. 어떠한 종교든지 자신의 교리가 다른 종교들에 비해서 본질적으로 우월하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다. 또한, 종교가 번성하게 된 까닭은 초자연적인 신이나 사건이 실제로 존재하거나 일어났기 때문이 아니다. 종교는 자연선택이 인간의 마음을 세속적인 생존과 번식강의 문제들을 해결하게끔 설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떠안아야 했던 부대 비용이었다. 인터넷 쇼핑몰의 배송비가 사라지지 않듯. 인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종교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위 인용문을 보고 질문이 계속 이어진다면 이미 진화심리학의 세계에 들어온 것이다. 도덕성은? 동성애는? 그렇다면 '단풍의 색깔은 왜 화려한가?' 이런 질문은 어떤가? <오래된 연장통>에서는 이런 세상의 모든 질문에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답하려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진화심리학의 대가들의 좋은 책들이 넘쳐나게 번역되어 있지만 한편에서는 쓰레기 같은 왜곡과 몰이해를 바탕으로 쓴 사이비 진화심리학 책이 판치는 세상에서 '진화심리학'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한 권의 입문서를 원한다면 <오래된 연장통>을 추천하겠다. 에피소드 중심의 가벼운 에세이면서도 최신의 연구 결과들이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낯간지럽게도 '대한민국 최초'인 전중환이 쓴 책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고 설명해주는 친절한 가이드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진화 이론은 창조주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불완전한 과학이라고 믿거나, 인간의 마음에 대한 진화적 접근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며 무시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지만, 다윈 혁명은 어쨌든 진행 중이다. 부정할 수는 있어도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는 빅뱅의 산물인 생각하는 별 먼지이고 오래된 연장통을 지닌 진화의 결과물이다. 이 모든 우주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인간에 대한 가치 탐구는 이 지점에서 이런 자각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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