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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과 성인 사이, 김수영을 끌어안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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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과 성인 사이, 김수영을 끌어안은 그녀!

[프레시안 books] 김현경의 <김수영의 연인>

인물에 대한 회고담은 당대성과 맞물려서 최대한 객관화된 언술을 펼치지만, 살아남은 자의 입장에서 그 숙제를 떠안고 애도를 완성하는 쪽으로 입장이 기울든가, 죽었지만 여전히 유효하고 계속해서 유효할 영원성을 부여하는 쪽으로 입장이 기울 수밖에는 없다. 숙제를 떠안고 애도를 완성하려면 인물을 직시해야 하고, 영원성을 부여하려면 인물을 신화화해야 한다. 직시를 통해선 남겨진 자의 극복할 몫이 전수되고 신화화를 통해서는 남겨진 자의 의지처가 확보된다.

나는 이 두 가지 중에서 숙제를 떠안는 방식을 좋아한다. 숙제는 출구와 같다. 사방이 자물쇠로 꼭꼭 잠겨 있는 듯한 이 현실에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인물이 신화화되는 것을 좋아하지 못한다. 신화화된 인물은 숭배되기 마련이고, 그 어떤 위대한 인물도 숭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나는 문학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어떤 스승에 대해서도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극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싶어서다.

인물에 대한 회고담이 우리에게 왜 필요할까. 작고한 인물을 다시금 불러내어 그에 대해 우리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서다. 왜 다시 생각해야 할까.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를 다른 거울로 비추어 보고 반성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반성 이후에 오롯이 남는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의 숙제를 풀기 위해서다. 그러나 숙제를 푸는 일은 간단하지 않다. 그래서, 어떠한 역할에 대한 향수를 지나치게 갈구하곤 한다. 우상을 만들고 적도 만들고 자꾸만 제대로 살았을 것만 같은 시대를 재현하고 싶어해한다. 그런 욕망이 회고담을 제공하거나 요구한다.

그러나 사람은 우상이 될 수 없다. 단지 우상으로 덧칠된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이 덧칠 중에서 우리가 가장 좋아라 하는 부분은 어쩌면, 우리의 우상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순간일지 모르겠다. 우상이되 평범한 우리와 닮은 구석이 있는 우상. 인간적인 우상. 우상 숭배의 가장 편안한 방식이다.

▲ <김수영의 연인>(김현경 지음, 책읽는오두막 펴냄). ⓒ책읽는오두막
시인 김수영의 미망인 김현경 여사가 쓴 <김수영의 연인>(책읽는오두막 펴냄)을 읽었다. 김수영의 작품을 자주 꺼내 읽는 나에게 이 책은 김수영의 사적 영역에 초대되는 즐거움을 주었다. 그의 키가 178센티미터였다는 것도 알았고, 그가 어떤 옷을 즐겨 입었는지도 알았고, 그의 집필 습관과 집필 공간도 엿보았다. 1년에 12~13편 정도의 작품을 썼다는 것도 알았다. 그리고 그가 비교적 살 만해졌을 때에 교통사고를 당해 숨을 거뒀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살만해졌을 때에 쓰인 시가 '풀'이라는 사실을 알고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문학적 태도와 생활의 태도 사이에서 절룩이며 지침과 부침에 시달리는 나 같은 소심한 시인에겐 그 역시 지침과 부침에 시달렸고, 그의 아내도 그로 인해 지침과 부침에 시달릴 수밖에 없게 된 사연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 그게 위안이 되었다기보다는 길고 긴 한숨이 나왔고, 설움(김수영의 전문 용어)이 밀려왔다. 그 설움은 김수영 식 독기를 수반한 것이어서 좋았다. 자기모순을 노려보다 한 차례 허물어진 뒤 찾아오는 독기어린 의지. 시인의 스승은 현실이라고 김수영은 말했다. 이 책의 2장에 소개된 김수영의 한 편 시와 그 시가 쓰인 경위를 따라가자니, 시인이 지향하는 문학적 환경과 시인이 몸담고 있는 시대적 환경과 시인이 꾸려가야 할 생활의 환경, 이 세 가지 현실 모두에 저항하기 위해 그는 독한 시를 썼던 듯 싶어진다. 그러니까 결국은 자기에게 저항하기 위해서. 시대와 싸울 겨를이 없을 만치 치열하게 자기와 싸우는 것으로 시대와 싸우는 시인. 이 책을 다 읽고 나자 내게 요약된 김수영의 초상이다.

인물에 관한 회고담이 추억을 완성하기 위한 목적과 인물을 완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뉠 수 있다면 이 책은 추억을 완성하기 위한 목적에 가깝다. 글의 흐름과 구성 방식은 인물의 사적 영역을 보완해서 인물을 완성하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필자가 자신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해 문장을 풀어나가고 있는 걸 목격하게 된다. 연인에 의해 재구성된 회고담이라 두 사람 간의 사랑에 비중을 많이 두고 있고, 특히 김수영의 사랑보다는 김수영이 어떤 여인을 사랑했는지, 연인에게 시인이 어떤 사랑을 받았는지가 더 비중이 크다. 그래서 이 책을 덮고 나니, 이미 신화화된 김수영이 좀 작아진 느낌이 든다. 회고록이 신화화된 한 인물의 인간미를 지향해서 좋았지만, 그게 이 책의 집필 의도는 아닌 것으로 보여서 미묘한 모순이 독후감으로 내게 남았다. 이 모순은 어쩌면 사랑의 모순이자 시인을 사랑한 자의 어쩔 수 없는 모순이지 않을까. 더군다나 속물됨과 성(인군)자 사이에서 자기모순을 앓던 염결한 김수영이었으니까.

김수영은 소위 "불침번의 세계"(고은의 발문에서)에서 생을 연소한 시인이다. 그런 그가 연인은 어떻게 사랑하였을까. 그의 시에서는 물론 이에 대해서마저도 불침번이었다. '성', '죄와 벌' 같은 시에선 잔인하거나 우스꽝스러울 만큼 불침번이었다. 김수영의 연인의 사랑은 그 반대에 가깝다. 적어도 이 책에서는 그렇다. 그의 문학에 대해서도, 그의 생활에 대해서도 최선에 최선을 다했다. 모든 멍에를 짊어진 사람처럼. 눈먼 사랑처럼. 한 사람은 불침번을 서듯 시를 썼고, 한 사람은 불침번을 서듯 사랑을 다했다. 시인은 사랑에 대해서도 불침번을 서듯 했고, 시인의 연인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불침번을 서듯 살았다.

<김수영의 연인>은 김수영의 신화화를 완결 짓기 위한 출발을 했는가 싶었지만, 신화화에 실패한 느낌이 든다. 김수영의 인간미를 보태기 위한 많은 구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김수영이 자신을 혹독히 까발리듯 써놓은 시들 덕분이었다. 덕분이라는 표현은 이 실패가 좋았다는 의미다. 회고록이 자주 지향하는 신화화는 내가 김수영에게서 배운 시정신과 반대 방향에 있으니까. 어쩌면 김수영은 훗날 자신의 일대기가 미화되는 것을 봉쇄하기 위해 그런 시들을, 그 적확하고 신랄한 언어로 써놓은 것은 아닐까.

추억을 완성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추억은 완성될 리 없다. 기억은 언제나 제멋대로이고 자기증식을 일삼으며, 그래서 부실해지기 일쑤다. 추억을 완성하려 할 때 기억의 왜곡은 불가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다는 것은 하나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집요하게 애쓰는 것이다".** 불가능한 완성을 불가피하게 애쓸 때, 불가능한 완성을 더 아름답게 추억하려 애쓸 때 삶은 더 아름답게 지탱된다. 시대의 모순과 시인의 모순과 사랑의 모순, 그 모든 모순을 애써 껴안는 불가능의 체험은 김수영의 아내였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 중요하진 않지만, 필자가 정지용 시인을 만난 대목과 칼(KAL)기 납북 사건을 기술한 부분은 연대기가 좀 맞지 않는다.
** 르네 샤르, 소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패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세계사 펴냄)에서 재인용했다.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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