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영미권에서는 이미 '감시 연구'(surveillance studies)이라는 연구 분과가 성립했을 정도로 감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감시'를 표제에 삼고 있는 단행본만 해도 수십 권이 넘는다. 각 분과 학문들의 협업이 필수적이기에, 사회학, 정치학, 심리학, 철학, 법학, 문학 등 인문 사회 과학의 거의 모든 분과들이 이 문제에 뛰어들고 있으며, 과학 기술과 인문 사회 과학이 만나는 접점에 있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통섭' 내지는 '융합' 분야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감시' 문제에 대한 관심도는 높지 않다. 관련 연구도 드물고 감시 문제에 천착하는 시민 사회 단체들도 흔치 않다. 고도 감시 사회로 급격히 이행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을 고려하면 심각한 불균형이라 할 만 하다. 다행히 최근에는 이러한 불균형에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단행본 출판에만 국한에서 본다면, 2011년에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감시 사회의 변화 양상을 추적한 <9월 11일 이후의 감시>(데이비드 라이언 지음, 이혁규 옮김, 울력 펴냄)이 출간되었고, 작년에는 감시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추적한 <감시의 시대>(아르망 마틀라르 지음, 전용희 옮김, 알마 펴냄)가 출간되었다. 이외에도 인터넷에서의 감시 문제를 다룬 책들이나 프라이버시의 일반적 문제를 다룬 유용한 책들도 몇 권 있다.
▲ <감시 사회, 안전장치인가, 통제 도구인가?>(로빈 터지 지음, 추선영 옮김, 이후 펴냄). ⓒ이후 |
이 책은 철저하게 사례에서 출발해서 사례로 마무리를 짓는다. 실제로 도청, 이민 통제, 전자 정부, 신분증, 안면 인식 기술, 생체 정보, 의료 기록, 시위 진압, 테러, 감시 산업, 인터넷 통제 등 감시 문제의 거의 모든 테마의 사례를 다룬다. 하지만 단순히 사례를 기술하는 것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시 문제에 대한 나름의 분석틀과 문제의식을 함께 제시한다. 그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서두에서 언급한 딜레마다. 즉, 감시 사회가 우리에게 편리하고 안전한 사회라는 혜택을 주는 동시에, 통제를 강화하고 인권을 침해한다는 문제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사례에서 이 충돌과 딜레마의 긴장이 계속 된다.
감시 사회의 딜레마가 특별히 난제라는 사실은, '고문'과 같은 고전적인 인권 문제에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고문이 나쁜 행위라는 것에 대한 시민적 동의 수준은 아주 높다. 이미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고문을 하지 않고도 각종 수사 기법에 의해 범죄 사실을 적발하고 형사 처벌을 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즉, 고문이 주는 혜택을 체감하기 어렵고, 그 해악에 대한 공감 정도는 매우 높다. 다만 9.11 테러 이후에, "테러 계획을 알고 있는 테러리스트의 입을 열기 위해 그를 고문하는 것조차 안 되는가?"라는 극단적인 질문에 답하는 일이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한 정도다. (*주: 2010년에 출간된
반면에 감시의 문제는 훨씬 복잡하다. 2년 전부터인가 국세청 사이트에서는 1년 동안 사용한 모든 신용카드의 사용액을 자동으로 정리하고 합산해준다. 그것을 출력하여 국세청에 제출하면 신용카드 공제를 적용하여 환급금을 지급한다. 복잡한 연말정산이 클릭 몇 번으로 해결되는 순간, 여러 신용카드 회사에서 보유하고 있는 정보가 국세청에 공유되었으며, 만약 그 정보들이 하나로 모인다면 신용카드 사용자의 1년의 삶을 고스란히 추적할 수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잊게 된다. 여기서 '편리함'은 현실에서 쉽게 인지되지만, 신용카드 정보의 집적과 유출의 위험은 '설마'하는 '예외'로 여겨질 뿐이다. 감시를 산업화하는 업체들과 그것을 부추기는 정부의 전략도 감시의 문제를 '예외적인 것'으로 만들고, 감시 사회의 혜택을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이러한 감시 사회에 맞서려면, 그 '편리함'에도 불구하고 감시 사회가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위협하고 있으며, 그 위협은 '우연적 사고'가 아니라 '일상'임을 밝히는 것이 바로 '감시 연구'의 핵심적 과제다. 이 책이 끈질기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도 바로 감시 사회의 해악이 그 혜택보다 더 크다는 것이다. 수많은 사례들을 다루면서도 이 핵심적 주장을 일관성 있고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인상적이다. RFID나 안면인식 등 각종 감시 신기술에 대한 소개도 직관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서술되어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감시 기술을 알아야 그 문제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다. 기술의 놀라운 진보와 혜택에 집중하는 광고에 맞서, 그 '기술적 맹점'을 대중적으로 밝히는 일이 중요하다.
다만 한 가지, 이 책의 사례들은 대부분 해외 사례들이이다. 어느 주제나 다 그렇겠지만 한국 고유의 맥락을 다룰 때 어떤 주장이 더 큰 생명력을 가질 수 있다. 한국의 시민들이 감시 사회의 문제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영국의 CCTV 문제보다 서울 시내버스에 설치된 CCTV의 문제가, 구글이나 애플의 문제보다는 네이버나 다음의 문제가 훨씬 생생하게 와 닿는 것은 당연하다. 이 책이 원서에 없는 한국의 사례들을 정리하여 곳곳에 끼워 넣고, 참고할 만한 국내 자료까지 부록으로 넣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문고판으로 200쪽도 안 되는 원서가 300쪽이 넘는 번역서로 재창조된 사정이기도 하다.
▲ <감시 사회: 벌거벗고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기>(한홍구 외 지음, 철수와영희 펴냄). ⓒ철수와영희 |
감시 사회의 한국적 맥락을 다루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감시 사회의 한국적 특수성이 비교적 분명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그간 타율적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정신이 일상적 삶에 착근될 여유를 갖지 못했고, 이것은 '자유'나 '인권'이 '편리', '안전', '안보' 등에 의해 손쉽게 밀려날 수 있는 사회 역사적 조건을 제공했다. 또한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기술'이 가져다주는 혜택을 극적으로 경험했고, 최근에는 IT 산업의 빠른 성장을 즐기고 있다. 이것이 국가의 감시와 통제나 '감시 산업'이 시민 사회의 큰 저항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CCTV 감시, 생체 정보 수집, 개인 정보 수집, 주민등록제도 등에서 가장 발전된 감시 통제 시스템을 갖추었지만, 그 과정에서 별다른 반발에 부딪히지 않은 것은 저간의 사정에 기인하는 것일 터다.
최근 몇 년 동안 새로운 문제의 양상도 등장했다. 저성장 신자유주의 시대 사회 정책의 실패를 감시와 통제의 강화로 만회해보려는 불순한 의도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학교 폭력의 문제를 CCTV 설치로 해결하려고 한다든가, 사회 정책의 실패로 발생하는 일상의 범죄들을 생체 정보 수집 등으로 통제하려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러한 대안들이 문제의 궁극적 해결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하고 감시와 통제만 강화되는 최악의 결과를 낳는다. 얼마 전 보도된 CCTV의 무용성에 대한 지적이 그 생생한 예이다. 게다가 그 대안이 심지어 '고화질' CCTV를 좀 더 '촘촘하게' 설치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불순한 의도에 맞서는 것은, 감시와 통제에 대한 반대이기도 하지만 사회 정책의 방향을 바로 잡는 것이기도 하다.
ⓒ프레시안(손문상) |
기술의 발전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혜택을 누릴 권리도 있다. 그만큼 더 행복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감시 통제 사회를 구축하고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다면 그 행복이 과연 진정한 혜택인지 의심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한 편에는 국가 권력과 사적 권력이 자리 잡고 있고, 이에 맞서는 시민 사회의 힘은 미약하기만 하다. 속수무책 당하기만 하지 않으려면 감시 사회에 대항하는 시민적 연대가 요청된다. 감시 사회의 문제에 대한 시민적 동의 수준을 높이고, '다른 대안'이 가능하다는 것에 대한 광범위한 합의가 필요하다. 결국 시민 사회의 분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척박한 현실에서 감시 사회의 문제를 고발해왔던 소수의 활동가와 연구자들을 든든하게 지원해줄 이 두 권의 책의 출간을 환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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