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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사태, 정전 60년 체제의 적나라한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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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국정원 사태, 정전 60년 체제의 적나라한 실상"

[정전 60주년 기획 인터뷰] <1> 성공회대 김동춘 교수

<프레시안>과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는 정전 60주년을 맞이해 기획 인터뷰를 연재한다. 이번 인터뷰는 한국전쟁과 정전체제의 역사적, 현재적 의미를 짚어보고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진단해 보고자 마련됐다. 첫 번째 순서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김동춘 교수와 만남을 가졌다.

김동춘 교수는 분단과 전쟁, 그리고 정전체제의 문제를 민중의 관점에서 조명해온 대표적인 학자이다. 그는 학문과 실천의 경계를 넘나 들면서 가장 고통받아온 사람들의 애환을 이해하고 이들의 삶에 투영된 왜곡된 과거를 바로잡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현재와 미래를 만들 수 있다고 역설해왔다. 김 교수는 일상적인 삶과는 다소 멀게 느껴질 수 있는 정전체제의 문제를 일반인의 시각에서 풀어나갔다.

김 교수는 우선 현재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는 현재 벌어지고 있는 NLL 논란에는 한국전쟁, 한미관계, 남북분단, 남남갈등의 성격이 모두 녹아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 상황이 답답하지만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고 본격적인 사회적 토론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전 60주년이라는 세계사적으로 기이한 현상을 두고도 우리가 이를 크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김 교수는 "외적 요인보다 남북 당사자들 내부 변수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적으로 냉전이 완화되고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음에도 북한은 건재하고, 남한의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카드로 북한과 적대의식을 고취"했다며 이러한 이유로 "한국전쟁 이후 시간이 지났음에도 오히려 남북 간 적대감이 더 강화됐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정전체제를 끝내고 평화체제로 가기 위해 남북한이 윈-윈하는 길을 찾아보는 차분한 노력과 동시에, 이를 국민들에게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족'을 너무 강조하면 적대적으로 나갈 수도 있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이해관계에서부터 출발해서 정전협정 등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들어가면 사람들에게 분단 문제의 성격과 본질을 정확히 알게 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2일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김동춘 교수와 평화네트워크 대표이자 프레시안 편집위원인 정욱식 대표 간 대담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 대담 중인 김동춘(오른쪽)교수와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겸 프레시안 편집위원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먼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파문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싶다.

김동춘 : 국정원이 대선 개입으로 인해 치명적인 위기에 몰리게 되면서 자기방어를 하고 동시에 역공을 펼치기 위한 하나의 카드로서 공개한 것으로 본다. 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또다시 죽이는 '부관참시'에 해당하는 것이다. 대화록을 공개한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레드 콤플렉스나 북한에 대한 거부감을 활용한 것이다. 이들은 한국의 진보세력 혹은 노무현 정권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카드로 북한과의 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이 북한에 양보하고 굴욕적인 모습을 보였을 것으로 생각되는 자료를 뽑아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천안함, 연평도 사건이 발생한 것도 이러한 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하나의 배경이 됐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과는 다른 맥락에서 북한의 위협이나 적대성을 다시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일반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노 전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은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옹색한 논리로, 국가기밀을 전격 공개한 것은 국정원이 그만큼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거꾸로 방증해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본인이 임명한 최측근 인사가 이것을 공개했는데 여기에 대해 박 대통령이 모른 체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관료조직의 특성상 상관의 명령 없이 하급자는 어떤 경우에도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특징으로 봤을 때 하급자가 상급자의 지시나 명령 없이 단독으로 이것을 공개했다면, 이는 심각한 기강 훼손이다. 만약 상급자인 박 대통령 묵인 하에서 움직였다면 이것은 박 대통령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 자기들의 조직이익과 정치적 이유로 국가기밀을 이런 식으로 공개하는 일을 보면 한국의 보수집단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국가고 국민이고 완전히 무시하는 존재라는 것을 폭로해준 사건이 아닌가 생각한다.

프레시안 : 북한을 국내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는 과거부터 빈번히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가 효과를 보는지의 여부는 때에 따라 달랐다. 작년 대선에 이어 이번에도 대화록 공개 파문도 상당한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 정치에서 '북한 불러오기'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김동춘 : 이른바 '북풍'은 2000년대 이후에는 거의 효과가 없어졌었다. 그런데 지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대선 기간 중에 등장한 이유는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론 60년대 이후부터 서해에서의 간헐적인 긴장과 군사적 충돌은 있어왔다. 그러나 북한이 민간인 거주지역인 연평도에 직접 포사격을 한 것은 이와는 다른 문제다. 이것이 남한 사람들에게 주는 패닉 효과, 충격효과가 있었기 때문에 북방한계선(NLL) 문제 제기가 남한에서 효과를 볼 수 있던 것이다. 천안함 사건도, 여러 의혹이 있지만, 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의 공격에 의해 남한의 병사들이 죽은 것이기 때문에 지금 NLL 문제가 사람들에게 피부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하나는 작년 대선후보가 바로 문재인 후보였다는 점이다. 그는 노 전 대통령의 분신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여당 입장에서는 반(反)노무현 정서를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국면이 작년 대선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사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 이상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이룬 것은 없지만 10.4선언 등을 통해 일정 정도 김대중 정부의 페이스를 유지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에서 문재인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다시 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대화록을 공개한 세력들은 지난 대선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을 때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한 듯하다. 그래서 이번에 NLL 카드를 또 꺼내면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정서적인 차원의 NLL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프레시안 : 연평도 포격과 NLL의 정서적 측면이 함께 작용한 것 같다. NLL이 '우리 젊은이들이 피와 목숨으로 지킨 선'이라는 정서적인 측면이 많이 투영된 것 같은데 이런 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김동춘 : 우선 북한의 연평도 포격은 북한이 아주 잘못한 일이다. 물론 남북 관계가 긴장으로 치달았고 '비핵개방3000'이라는 대북정책을 폈던 MB정부의 잘못도 있긴 하지만 북한이 민간인 거주지역에 포격했다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해석하는 과정, 특히 NLL 문제에 대해 남한 주류 신문의 과도한 여론 왜곡이 있었다고 본다.

이번 대화록 공개 이후 실시한 여론조사의 질문이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NLL을 포기한 것이냐 지킨 것이냐'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질문 자체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이 질문이 성립하려면 사람들이 NLL이 무엇인지 아는지를 먼저 물어봐야 하고, 그리고 설문 응답자들이 대화록을 읽어봤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나는 국민의 80% 정도는 NLL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고 본다. 그리고 대화록의 내용에 대한 판단 역시 언론, 특히 거의 정권의 앵무새가 되어버린 방송에 의해 걸러진 내용을 들은 것에 기초한 것 같다. 실제 조사결과를 보면 평소의 정당 지지 성향에 따라 의견이 완전히 갈라진다. 이런 조사는 정말 잘못된 것이고 무의미한 것이다. 국민들 다수는 NLL을 곧 영토경계, 즉 주권의 범위라고 생각한다. 우선 국민들이 NLL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물었어야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1953년 정전회담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그 결과가 무엇인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초보적으로라도 있어야 하는데, 국민들은 그 문제에 관한 한 거의 무지 상태에 있다.

기본적으로 NLL, 즉 북방한계선은 영토의 경계가 아니다. 정전협정에서 해상의 남북한 경계는 설정되지 않았다. 오히려 정전협정 당시 NLL은 미군이 이승만 정부가 북에 쳐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경계선으로서의 성격이 훨씬 강했는데, 지금 언론은 이것이 마치 주권이 미치는 영토의 한계인 것처럼 국민들을 오도하고 있다. 또 서해는 한강 하구에서 경기도와 황해도 경계선의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정전협정 체결 당사자 간 아무것도 합의한 것이 없었다. 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이 내용을 확인했지, 변경한 것은 없다. 그리고 서해 5도는 남한의 영토라기보다는 유엔군이 군사적으로 점령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들 섬을 '점'으로 봐야 하고 이것은 해양법상의 영해의 범위는 12해리 밖에 있으며 한국의 국토와 선으로 연결되어 있지도 않다.

즉 서해의 북방한계선은 육지에서와 같은 군사분계선이 아니고, 이들 서해 5도 이남의 남한 영해 밖의 바다는 남북한이 협의에 따라 같이 활용할 수도 있는 공간이다. 그러한 공간을 영토의 개념이라고 억지를 쓴 언론과 그것을 받아들인 국민과 그 의식을 그대로 테스트한 것이 이번 여론조사의 본질적인 문제였다.

프레시안 : NLL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비정상성'이 시간이 가면서 더 강해지는 것 같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도 있는 것 같다.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NLL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김동춘 : 정전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객관적 사실이 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국민들의 의식, 양쪽을 다 봐야 한다. 문제는 한국전쟁 및 정전협정의 과정 자체가 국민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고 그것이 이후에 정부의 공식 입장이나 언론에서 매우 왜곡되게 다뤄져 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조선일보>는 예전에 NLL은 영토선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이제는 NLL이 마치 영토선인 것처럼 보도한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참여정부 당시 국방장관이었는데 당시 남북 정상회담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국방부나 외교부에도 이 문제 전문가들이 많을 것이다. 말을 해야 할 사람들이 진실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또 역사학자나 사회과학자들 중 정전의 성격에 대한 기본적 사실들을 제대로 연구한 사람이 드물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이렇다.

▲ 김동춘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남북한이 처해 있는 분단 현실을 좀 더 깊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언론이나 기존의 정치가들의 선동적 발언을 그대로 따르면서 스스로 판단력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일반 국민들도 문제다. 결국 이번 국정원의 대화록 공개 사건은 우리사회의 적나라한 모습이 얽혀있는 문제다. 나는 이 문제 전문가는 아니자만 NLL 문제에는 한국전쟁, 한미관계, 남북분단, 남남갈등의 성격이 다 녹아있다고 본다. 기왕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하니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없게 되었고, 답답하지만 이를 교훈으로 삼아 본격적인 사회적 토론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전 60주년,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이한 현상인데...

프레시안 : 올해는 정전 60주년이다. 전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끝난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60년이 흘렀다. 그런데 서구사회에서는 지난 20년 동안 냉전이 끝났다는 담론이 지배적이었다. 서구학자들의 한반도 냉전에 대한 인식은 어떻다고 보는가?

김동춘 : 그래서 현장 방문 경험이 중요하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그들이 평소에 알고 있던 것보다 남북한이 엄청나게 강고한 분단 상태라는 것이다. 흔히 한반도를 과거 독일의 분단과 많이 비교한다. 외국 사람들은 과거에 중국-소련의 국경도 갔다 온 사람이 많은데 남북한처럼 강고한 국경을 본적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유럽 같은 경우 그냥 여권 한 번 보여주면 통과할 수 있는데 우리는 철장이 처져 있고 군인들도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지 않나. 철장 너머로는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상태인 이런 식의 분단이나 국가 간 경계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식의 장벽을 친 당사자는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아니라 사실은 남북한이다. 예를 들어 비무장지대(DMZ)에서 유엔군과 인민군 관할지역은 사실 엄격한 국경, 즉 주권국가 간의 경계선도 아니다. 서해 한강 하구는 원래 정전협정 상 어로 등 민간인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정전협정은 실제 이런 내용인데 현재 그런 지역들을 가보면 전혀 민간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분단의 장벽은 엄청나게 높다. 이것이 대체로 DMZ를 보고 갔던 외국인들의 평가다.

프레시안 : 전쟁이 계속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끝난 것도 아닌 정전 상태가 60년이 지나고 있는 것은 분명 세계사적으로 봐도 대단히 비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정전체제가 특별히 불편하거나 불안하다고 느끼지 않는 것 같다. 대다수 국민이 그렇게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동춘 : 그건 결국 남북한 당사자가 만든 것이다. 60~70년대 초 납북어부 사건이 많지 않았나? 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해상에서 북방한계선이 애매했기 때문에 동해에서 원산 근처까지 고기잡이를 하러 가기도 했다. 서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심지어는 북한 어선과 인접해서 같이 고기를 잡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상의 경계선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70년대 이후다.

우리가 이러한 분단의 형태를 가지게 된 이유는 남북한 분단의 독특한 성격에 기인하는 것이다. 일단 남북은 서로 한 번 전쟁을 거쳤다. 또 하나는 남북 당사자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서로가 상대방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지 않나. 어떤 형태로든지 병합해서 자기 체제 방식으로 통일하려는 의지가 있다. 그런 강한 민족 정체성이 역설적으로 강한 증오를 낳게 된 배경이 된 것 같다. 특히 북한의 60년대 남조선 혁명론과 60년대 후반 1.21 사태와 울진 삼척 지구의 북한 게릴라 남파 사건이 남한 정부로 하여금 적대감을 느끼게 되는 계기로 활용됐다.

유신체제 기간 동안 물밑에서는 남북 당사자들끼리 대화가 있었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상호 적대감을 이용해 남북한 당사자 모두 자신의 정치 체제 유지를 공고히 하는 데 활용했다. 그러면서 느슨했던 남북한의 분단이 더 강고하게 굳어졌다. 남한에서는 70년대 이후에 끊임없는 간첩조작 사건이 있었다. 70년대 중후반이 되면서 남북한 분단이 30여 년이 지났기 때문에 서로 이질성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남파된 사람들이 남한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함에 따라 북한에서도 70년대 중후반부터 간첩을 별로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은 북한 카드를 활용하여 체제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서 간첩 사건을 조작하게 된 것이다.

남한은 북한에 대한 공포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려고 했다. 여기에 기무사의 전신인 보안사와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경쟁적으로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어 냈다. 이 과정에서 남한은 국민들에게 북한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감을 강화시켰다. 결국 한국전쟁 이후 시간이 지났음에도 오히려 남북 간 적대감이 더 강화되는 일들이 70년대부터 발생한 것이다. 세계적으로 냉전이 완화되고 사회주의 체제가 실패한 체제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북한이 건재하고 있다. 남한의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카드로 북한과 적대의식을 고취한 것이다. 결국 외적인 요인보다 남북 당사자들의 내부의 변수가 더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프레시안 : 정전 60년 동안 정전체제라는 비정상적인 체제에서도 한국은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북한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러한 남북한 차이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김동춘 : 분단과 정전이라는 상황이 한편으로는 남한 민주주의에 굉장히 부정적으로 작용해왔다. 북한에서도 김일성 유일체제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북한으로 하여금 반미의식이나 북한 내부 단결을 강화시키는 계기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남한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미국은 남한의 이승만 정부나 박정희 정부에 대해 별로 내키지 않는 지지를 보냈던 것 같다. 1946년부터 이승만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 그러한데, 친미적 정권이 들어서서 남한의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중요했고, 어느 정도 민족적 지지 기반이 있는 지도자가 미국식 민주주의를 실행하는 것이 미국으로서는 최선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 중립적인 세력들이 들어설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극우세력이나 군부세력이 집권하게 된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보면 남한을 미국 민주주의나 자유 민주주의의 쇼윈도로 써야 하는 측면이 있다.

남한 내부에서 본다면 분단 상황에서 극우 독재, 반공주의 체제가 등장했지만 이 세력이 갖고 있는 정권의 취약성이 있다. 기본적으로 친일세력 중심으로 남한의 지배층이 만들어지지 않았나. 태생적으로 취약한 정당성을 가졌기 때문에 국민들을 충분히 통합하지 못하고 설득해내지 못하는 결정적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민주화 세력이 기존의 지배세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저항의 근거가 생긴 것이다. 결국 민주주의라고 하는 미국식 제도의 이식과 남한의 지배체제가 갖고 있는 취약성 때문에 민주화 운동이 강하게 클 수 있었다. 제3세계 국가 중에서는 비교적 강력한 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조건이 됐다.

경제성장의 관점에서 보면 남한에서는 자본주의 체제 안정화를 위해 지주세력 제거가 필요했다. 남한의 지주세력은 한국전쟁 전후 빨리 제거가 됐다. 이로 인해 남한이 역동적인 사회로 갈 수 있는, 즉 계층이동의 가능성이 더 커지는 사회가 됐다. 이 가능성이 남한사람들로 하여금 지위 상승의 열망을 부추기고, 그 지위 상승의 열망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기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굉장히 복합적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한국이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장하고 일정한 정도의 민주화를 이룰 수 있었던 조건이 역설적이게도 분단과 전쟁이라는 조건 때문에 가능했을 수도 있지 않나 싶다. 물론 '그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이뤄낸 것일 수도 있다.


한국전쟁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들


프레시안 : 선생님께서는 '전쟁과 사회'라는 역작을 통해 민중의 시각에서 한국전쟁을 재조명한 바 있다. 정전 60주년을 맞이해 감회가 새로울 것 같은데, 사회학적 관점에서 한국전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김동춘 : 한국전쟁이 한국사회에 남긴 유산은 전쟁 피해자 문제, 이산가족 문제 등 다양한 것들이 있지만 우선 정치적으로 보자면 북한에서 김일성 체제 강화와 남한에서 극우보수 세력의 헤게모니를 결정적으로 강화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남한에서의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헤게모니가 해체되지 않은 것도 궁극적으로는 한국전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정원 사태도 그 일단을 보여준다. 전쟁 때문에 기무사 국정원과 검찰 등 공안세력의 세력이 입지가 강화되고 한국에서의 민주화 세력, 노동 세력 등의 입지를 치명적으로 약화시켜서 한국 사회의 권력관계, 힘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 사회가 정상국가로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즉, 한국이 정당 간에 정상적인 경쟁을 통한 권력 장악의 게임 룰이 정착하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됐다는 것이다.

정당정치를 살펴보면 휴전 상태에 있는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 간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데, 남한은 담론 지형, 이데올로기 지형, 정당의 지형에서 진보정당이 등장하기 어려운 조건이 됐다. 또 야당이 단독으로 집권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다. 설사 단독집권을 하더라도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봤듯이 지탱불가능하게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박근혜, 이명박정부는 아무리 죽을 쒀도 지지율이 30~40%가 나오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민주개혁세력은 뭐하나 잘못하면 지지율이 10%대로 곤두박질친다. 한국사회가 국가세력, 즉 분단과 반공주의에 터를 잡고 있는 세력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집권해도 외교부, 국정원, 국방부, 검찰을 못 건드렸다. 이러한 국가를 지탱하고 있는 것이 전쟁이다. 한국전쟁의 경험과 그 이후 계속되고 있는 휴전 상태가 이를 지탱하고 있다.

한국전쟁의 또 하나의 부정적 결과는 법치의 부재다. 한국사회는 강자들이 노골적으로 법을 어기고, 실제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광주 학살의 책임자이면서도 저렇게 천수를 누리고 있는 것은 우리사회의 힘의 관계의 현실을 보여준다. 이게 전쟁과 그 이후에 계속되는 남북 적대상태가 우리 정치지형에 남긴 유산이다.

민중의 관점에서 보자면 민중의 자력화(empowering)가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기 어렵다는 측면이 있다.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장벽이 매우 크다. 풀뿌리 지역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는 조건이 전쟁에 의해 거세됐다. 결국 중앙, 즉 정부가 마을 동네까지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이다. 다음으로는 노동세력이 노동조합까지는 만들 수 있지만 여전히 노조 간부는 감옥에 갈 각오를 해야 노동운동할 수 있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아래로부터 자력화가 그런 대항적인 정치 이데올로기 혹은 담론 지형에서 일정한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 바로 전쟁이 남긴 유산이 아닌가.

물론 나는 모든 것을 한국전쟁으로 환원시키고 싶지는 않지만, 기본적으로 이 정전, 분단 시스템에 일정한 정도의 변화가 와야, 즉 정전체제가 평화체제로 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권력지형의 변화와 민중의 자력화, 정당의 재편이 어느 정도 연동되어 있다고 본다.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굳어진 정전체제가 한국이나 시민사회에 있어 압도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한국 시민사회는 민주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국면에서 힘을 발휘한 부분도 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시민사회의 성장이 지지부진하고 한계에 봉착하게 된 것은 아닌지 하는 지적도 있는데?

김동춘 : 4.19 혁명 발발 직후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면서 시민사회나 정당정치가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가 있었는데 5.16쿠데타로 그 기대가 무너졌다. 이후 87년 6월 항쟁 국면이 열렸지만 이것 역시 노태우의 집권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이 이른바 정상국가, 혹은 정상적인 정당정치로 갈 수 있는 계기는 오히려 예외적 상황에서 있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일정한 정도의 민주화, 정당정치 활성화, 법의 지배가 진전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87년 이후 이러한 것들을 좀 더 힘차게 나아가게 하는 과정에서 한국 내부의 변수가 아니라 국제 정치경제가 큰 걸림돌이 된 것이다. 즉 지구적 신자유주의가 더 큰 요인이었다고 본다.

▲ 김동춘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물론 87년 노태우 5년간의 집권도 치명적이었다고 본다. 노태우의 집권이 구세력들이 또 다시 우리 국가나 정치에 터를 잡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DJ가 집권했을 때는 이미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후였다. 10년 동안 구세력들이 새로운 기반을 만들 수 있는 계기가 어느 정도 마련됐다. 그래서 DJ와 노 전 대통령은 이러한 부분에 있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다. 예를 들면 검찰개혁, 국정원개혁, 언론 개혁 등을 못하게 되니까 구세력들이 여전히 기세등등하게 됐다. 결국 정치권력은 DJ나 노 전 대통령이 가졌을지 모르지만 사실상의 국가 권력은 여전히 구세력이 쥐고 흔들었던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IMF 외환위기 이후 소득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부터 민주화 담론이 빛이 바래기 시작하고, 일반 사람들은 시민적 주체나 민주화 주체가 아니라 소비자로 호명되기 시작했다. 소비자로 호명되기 시작하면서 정치참여나 사회참여가 지지부진해지고, 그렇게 됨으로써 선거정치는 기존의 언론에 의해 지배당하고 지역주의도 계속 영향을 발휘하게 됐다. 또 90년대 후반에는 지구적인 보수화 영향도 있었다고 본다. 그전까지는 냉전세력의 힘이 남아있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다고 하면 90년대 후반 이후에는 냉전세력의 영향과 신자유주의로 인한 전 세계적인 보수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와 시장주의에 의해 민주적 가치가 밀려나는 과정이 시민사회의 약화와 연동이 되어 있는 것으로 본다.

프레시안 : 선생님께서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학살 진상규명범국민위원회'와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활동하시면서 분단, 전쟁, 휴전을 거치면서 국가폭력에 의해 희생된 사건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보상 및 명예회복을 주도하셨다. 이러한 활동의 성과와 한계를 짚어주시면서 앞으로의 과제를 말씀해 달라.

김동춘 : 한국 전쟁 중 북한 인민군에 의한 학살도 많이 이뤄졌고 이에 대해서는 우리도 배워서 잘 알고 있지만 국군이나 경찰, 미군에 의한 피해를 거론하는 것은 터부시됐다. 내가 이 문제를 건드린 것은 반공을 정당화해왔던 논리를 일부 흔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나는 이것을 이데올로기 문제가 아니라 피해자의 입장에서 접근했다. 피해자가 안고 있는 상처와 가족의 파탄은 진실이니까. 그 진실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공식 이데올로기의 허구를 문제 삼은 것이다.

피해자의 관점에 서서 분단문제나 전쟁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6.25 침략은 북한이 했다고 하더라도 전쟁 중에 모든 피해가 북한군 때문에 발생한 것은 아니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먼저 행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승만 정부가 무고한 사람을 그렇게 죽일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이는 전쟁과 무관한 한국 정부의 책임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피해자의 눈높이에서 우리 사회에, 기저에 깔린 사람들의 삶을 보려했던 것이다.

이 사람들은 우리 사회에서 '국민'이라는 범주에서 배제된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존재가 한국사회의 비밀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현실이, 한국 사회 전체 문제와 맞닿아있다고 본다. 유대인 학살이 유대인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독일 사회와 나치즘 전체를 말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에서 빨갱이로 몰려서 죽었다는 사실과 그 이후 군사정권이 수시로 간첩조작, 연좌제, 민주화 운동 세력의 탄압 논리로 등장한 종북 논의까지 계속되는 무한한 권력 자원이 존재한다. 바로 이 권력 자원의 배후에서 권력의 불쏘시개가 된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가 있다. 이들의 상처와 고통을 한국 사람들이 정면으로 응시했을 때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민주화될 수 있고 도덕적 사회가 될 수 있다. 이 문제를 응시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계속 뒤틀린 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유럽사회가 독일의 나치와 전범문제에 대해 집착한 이유는 유럽사회의 자기반성이 있기 때문이다. 유태인을 배제시킨 것이 유대인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소수자와 노동자까지 계속 배제시키는 사회 시스템과 연동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학살 피해자들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이들의 아픔을 공감할 때 우리 사회가 정상적인 시민사회와 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고 봤다. 그런 측면에서 제가 했던 작업은 거창한 이데올로기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이분들이 당한 고통을 통해 이분들의 명예회복을 통해 이 사람들을 한국의 시민으로 복귀시키는, "빨갱이는 죽여도 돼"가 아니라 "빨갱이라도 불법적으로 죽이면 안돼"라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빨갱이라도 불법적으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반화시킨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정상사회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정에서 반은 성공했고, 반은 실패했다고 본다. 진실규명을 했고 이것이 일정한 정도 알려졌고, 이제는 한국 사람들도 제주 4.3이나 6.25 때 남한 사람들과 미군이 민간인을 죽이는 경우도 있었고 억울한 희생자도 있었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다고 본다. 여전히 돌아보려고 하지는 않지만, 그 문제가 어느 정도 공론의 영역에 등장한 것 같다.

그러나 절반의 성공이라고 한 이유는 이 사람들에 대한 진정한 명예회복이 아직 안됐기 때문이다. 진정한 명예회복을 위해서는 그들을 빨갱이로 몰았던 그 상황과 논리가 극복되어야 하고. 가해의 문제를 들춰내야 한다. 무엇이 이들을 죽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왜 우리 사회에서 죽은 사람들을 수십 년 동안 탄압해도 모른 척하고 있게 됐는지 들춰내야 궁극적인 명예회복이 가능한 것이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군과 경찰의 공식 사과와 자기 잘못에 대한 반성과 잘못한 사람들에 대한 처벌의 문제로도 연결된다.

70~80년대 간첩 사건을 조작한 사람들 처벌해야 하고, 만약에 그들이 모두 사망해서 이제 처벌을 못한다면 그들이 누구인지 널리 알리기라도 해야 한다. 누가 이 잔인한 고문을 지시했고, 이 지시가 어떤 정치적 의도와 목적으로 이루어졌고, 거기서 이득을 누린 사람이 있고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고, 피해를 본 사람은 어렵게 살아 왔고 등등의 이야기가 공론화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해자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 권력과 지위를 누리고 살고 있다는 정도의 사실관계는 밝혀야 한다.

내가 말하는 절반의 실패가 오늘날 국정원 사태의 배경이 됐다고 본다. 이런 일이 잘 됐다면 국정원 개혁안 논의가 좀 더 진척이 돼서 확실하게 국정원이 국내정치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다. 이게 확실히 되지 않아서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실, 기무사랑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민간인 사찰하고 그러지 않았나.

프레시안 : 최근 민간인 사찰, 안보교육, 국정원 대화록 공개 등을 '종북 논리'로 정당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 어떻게 보나?

김동춘 : 과거사 규명이 정점을 찍었을 때는 88년이었다. 당시 광주학살 문제로 사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래서 88~89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광주 보상법을 스스로 제안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것이 앞으로 우리 사회가 민주화가 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공감대도 높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구세력이 다시 등장하면서 과거 DJ, 노무현 정부 때 눈치를 봤던 세력들이 이제 겁이 없어지게 됐다. 민주화세력도 두 번 집권했으니까 과거에 피해 받은 것을 어느 정도 보상받은 것 아니냐는 생각도 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민주화 문제는 끝난 사안이라는 자신감,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일반 국민들이 갖고 있는 무감각함에 편승해서 구시대적인 증오와 적대의 논리를 또다시 들고 나오는 것이다. 한마디로 한심하고 못난 사람들이다. 아직도 반공, 빨갱이, 종북 들이대야만 자신들의 입지가 정당화된다고 보는 것 같다. 내부의 반대파는 원수처럼 여기면서 미 국가안보국이 주미대사관 도청해도 한마디 항의도 못하는 주제에 말이다.

프레시안 : 곧 출간하실 저서, <이건 기억과의 전쟁이다>라는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나?

김동춘 : 10년 동안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 운동을 하면서 느꼈던 점, 정부 조직의 일원으로서 조사하면서 느꼈던 한계와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이다. 주로 학살문제를 중심으로 다뤘는데, 한국의 과거 청산 혹은 정의 수립 등의 일반 문제로 보셔도 좋을 것 같다. 그러한 여러 쟁점들이 거기에 녹아있다. 이를 통해 학살 피해자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보는 우리 사회 문제를 언급했다.

왜 사람들은 우리 사회가 정의의 수립문제, 예를 들어 이승만 정권 때 있었던 3.15 부정선거 같은 일들이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는데도 무덤덤한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이기도 하다. 과거 국가의 인권침해 해결이 과거사가 아니라 사실상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법질서와 민주주의, 정의 수립의 문제로 보고 있다. 그래서 역사와 현실은 같이 가는 것이다.

지금 젊은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반대로 이러한 일들을 겪었던 사람들은 너무 지쳐있다. 예전부터 그랬고, 그런 게 권력이라는 허무주의와 체념에 젖어 있다. 또 우리 사회가 결정적으로 IMF 이후 양극화가 되면서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하루하루를 사는 데 허덕이고 있다. 자신의 현실과 정치현실과 연결시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사용자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 강자의 노골적 불법이 교정된다고 하더라도 비정규직이 곧바로 정규직이 되거나, 대기업의 횡포에 한계상황으로 밀리는 자영업자들의 상황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강자의 불법을 단죄하는 문제를 자신의 경제적 문제와 별개로 인식한다. 그렇지만 강자의 불법이 단죄되면 적어도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하는 노동자들이 철탑에는 올라가 극한적 저항을 하거나 개인적으로 자살을 택하지 않을 수 있다. 법이 제대로 집행되면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처절하고 외롭게 당하는 사람은 없을 수 있다. 지금은 아무리 비참하게 몰려도 정부도 정당도 언론도 시민사회도 아무도 그 사람들을 도와주지 않고 있지 않나? 바로 이런 문제가 국가가 불법적으로 자행한 과거의 학살문제를 오늘 어떻게 처리하는가와 연동되어 있다고 본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본 정전협정과 평화체제의 의미는

프레시안 : 일반 국민들의 시각에서 볼 때 정전체제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그리고 이를 극복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김동춘 : 그동안 우리는 주로 그것을 통일담론으로 이야기해왔다. 사실 한국전쟁과 정전체제 성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북한이 붕괴하더라도 그것이 통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정전협정 내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휴전회담 중 북한 지역을 중립지대 혹은 신탁통치 지역으로 남겨둔다는 논의도 있었다. 또 유엔군이 38선을 넘어갔을 때 북한 지역에 대한 관할 문제가 그 때 이미 쟁점이 됐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지금 북한이 붕괴한다고 하더라도 북한 땅은 남한 땅이 될 수 없다. 정전협정의 성격을 알지 못하면 과거 이승만처럼 북한 땅이 남한 땅으로 될 수 있다고 국민들을 오도시키게 되는 것이다.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남한이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군사분계선 이남을 유엔이 관할해야 하는데 곧바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의해 한미연합사가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들을 한국 사람들이 거의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즉, 한국사람들은 오늘의 남북 분단이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국제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냉정하게 보면 정전협정의 당사자가 남한이 아닌 이상 어쩌면 통일의 당사자도 남한은 아니다.

사실 올해가 정전협정 60년이라는 것을 아는 한국 사람도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회담 당시에도 마찬가지였겠지만 정전이라는 것 자체가 한국 사람의 입장에서 내키지 않는 것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의 의중을 무시하고 반공포로를 석방한 것도 국제적인 규범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지만, 당시 한국 사람의 정서로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말하자면 과거나 현재나 권력이 조장한 국민 정서가 현실을 압도한 것이다. 이는 곧 한국이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백두산까지 태극기를 휘날리자라고 착각한 것이다. 그게 바로 이승만의 담론이고 지금 정부나 언론이 선동하고 잇는 것이다.

스스로 발휘할 수 있는 정치 군사적 힘이 하나도 없는 처지에 이승만의 선동적 발언으로 당시 국민들이 휴전회담 반대 데모에 참가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정전협정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통일해야 하는데 왜 휴전이냐는 식이다. 이게 정서적으로는 맞는 말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다. 이게 60년이 지난 지금에도 거의 안 바뀐 것 같다. 북한이 망하면 통일하는 것이니까 북한을 강하게 압박해서 붕괴시킨 다음 남한 체제를 북한까지 확대하자는 것이 보수 세력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이다.

▲ 김동춘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지금 체제는 정확하게 말하면 정전 상태다. 정전은 그냥 군사 지도자들끼리 만나서도 합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휴전이라기보다는 정전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런 현실을 별로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통일에 대한 정서가 기성세대에는 있기 때문에 추상적으로 통일됐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이 분단된 체제가 너무 익숙해져있다. 특히 전후세대에게는 남한이라는 국가가 이제는 북한과 별개의 국가로 익숙해져 있다는 측면도 있다. 특히 지금의 20-30대는 남한이 어느 정도 발전된 상태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그래서 북한과 통일을 하거나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그게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통일에 무관심한 것이다. 현상유지가 더 바람직하거나, 현상유지를 깼을 때 오는 부담도 있다. 통일비용 부담에 대한 의지도 없고. 그래서 정전 60년이 한국사람들에게는 거의 관심거리가 아니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평화와 통일을 민중들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민중의 시각에서 어떻게 접근할 수 있다고 보는가?

김동춘 : 먹고살기 바빠서 이런 문제에 신경 쓸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가장 어리석은 태도라고 본다. 남북한의 분단은 우리사회의 모든 시스템을 뒤흔들 수 있는 결정적인 변수이고, 동아시아 질서 나아가 한미관계, 중·일 관계, 한중관계까지도 모두 연동되어 있는 엄청난 사안이다. 전쟁이 나면 정치에 무관심한 평범한 사람도 죽을 수 있다. 반대로 사실상의 전쟁체제를 종식시키면 평범한 사람의 운명, 일상과 삶의 질도 바뀐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모두 당장 평화통일 운동에 나서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분단 하에서 겪은 고통과 슬픔, 그리고 평범한 한국인들이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한 군사대결체제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이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하는지를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고민하는 수준이 되어야 현실이 바뀐다. 사실 우리 사회의 '보통'사람에게 평화나 통일 문제는 굉장히 먼 문제다. 그러나 당장 군대 복무 문제만 보더라도 그것은 결코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1953년 이후 2005년까지 군대에 간 남성들 중 비전투상황에서 6만 명이 죽었다. 이게 작은 문제인가?

평화문제나 통일문제는 남한의 정치경제 사회를 지배하는 거시적으로 압도적인 현실이다. 물론 평화체제가 수립되거나 북한이 망한다고 해서 당장 남한의 경제 상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는 않을지는 모르지만 우선 남한 청년들이 남북 군사 충돌이나 군 복무 중 불의의 죽음을 당할 가능성을 없앤다는 첫 번째 의미가 있다.

두 번째는 경제적인 문제가 될 텐데, 나는 남북한이 경제적으로 통합되어 단일 경제권이 되지 않고서는 어느 쪽도 경제가 안정화되거나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본다. 경제적으로 남북한이 결국은 윈-윈 하는 길이 있고 그 길은 남북한이 평화체제로 나아가서 상호 적대를 통해 지출되는 이른바 분단비용을 줄이는 일부터 시작할 수 있다. 분단 비용에는 미국 무기구입에 사용되는 국방비도 있겠지만 남한 사회 내에서 적대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비용, 그리고 미군 주둔비를 보조하는데 지출하는 비용도 있다. 이러한 비용을 줄이고 국가 재정을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가져갈 여지를 만드는 길이 장차 평화와 통일의 길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곧 평화를 일상화하는 문제다.

바로 이 점에서 통일,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노력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상태에서 통일 담론은 크게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남북한이 둘 다 좋은 길로 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우리나라와 중국은 사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최근 대만은 마잉주(馬英九)가 집권하면서 연간 500만 명이 중국 본토를 왕래하고 있다. 본토 학생들이 대만에 유학을 가고 있고 그 어느 때보다 양안관계가 우호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건 중국과 대만 모두를 위해 좋은 것이다. 과연 대국다운 자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남북한도 이와 같은 마찬가지 상황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건설업이 지금 최악의 상황인데 북한지역에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를 통해 길을 열 수 있고 나진-선봉, 압록강 문제, 북한 희토류 매장 등등을 고려해 현재 남한 경제의 돌파구로서 북한 문제를 바라볼 필요도 있다. 물론 이것을 친(親)자본적 통일의 길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남북이 윈-윈 하는 길이 있고 그런 길을 찾아보는 차분한 노력 속에서 왜 우리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하는지를 활동가들이 국민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독일 통일을 보면서 느낀 생각인데 이른바 '쿨'하게 접근하는 것이 더 쉬운 통일일 수 있다. 오히려 '민족'을 너무 강조하면 적대적으로 나갈 수도 있다. 대만과 중국을 봐도 그런 느낌이 든다. 보통 사람들의 상식과 이해관계에서부터 출발해서 정전협정 등을 차분하게 설명하고 들어가면 사람들에게 분단 문제의 성격과 본질을 정확히 알게 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남북한이 평화 혹은 통일로 나아가면 동북아뿐만 아니라 세계 정치에서도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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