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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자나무 빨간 열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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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자나무 빨간 열매를 보았다

[꽃산행 꽃글] 다시 방문한 대마도

현충일 징검다리 연휴를 이용해서 대마도 식물 탐사를 다녀왔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대마도 꽃 산행이었다. 다테라산(龍良山, 559미터)을 오르는 길. 대마도는 섬이라도 인적이 드물어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다. 요란한 등산객이라곤 우리 같은 관광객들뿐. 생업에 바쁜 본토인들은 산에 오르는 이가 드물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숨을 고르기 위해 중간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호자나무가 눈에 띄었다.

호자나무는 우리나라에는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나무. 다 커도 50~60센티미터에 불과한 아주 작은 나무이다. 그래도 작은 가시가 촘촘히 나 있고 늙은 노송처럼 옆으로 벌어져 그 어떤 위엄을 풍기는 나무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처럼 작은 호자나무는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뽐내며 있다.

▲ 호자나무. ⓒ이굴기

숨을 몰아쉬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나의 눈에 호자나무의 빨간 열매가 들어왔다. 그중에 하나는 누가 베어 먹은 흔적이 뚜렷했다. 알겠다. 호자나무의 가시를 피해 빨간 열매를 어느 새가 부리로 쪼아 먹은 것이렸다.

그 자국을 보면 어느 짐승의 짓은 아닌 것 같았다. 짐승의 입에 저리 정교한 것은 없다. 만약 짐승이라면 그 정도 작은 열매는 그냥 따먹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가시에 입이 찔리기도 했겠다. 한눈에 보아도 그것은 날카로운 새의 부리가 남긴 흔적이었다.

사과 한 입 베어 먹은 것 같은 호자나무 열매를 보는데 옛날 생각이 났다. 철없던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던 나는 그냥 구경하는 것에 머물렀지만 어른들은 올무를 놓아 꿩, 노루, 멧돼지들을 잡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꿩을 잡는 방법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의 화공 약품 가게에 가서 독극물인 청산가리를 구한다. 그땐 그게 가능했다. 그것을 흰 쌀처럼 잘게 나눈다. 그리고 찔레나무 열매가 달린 가지를 꺾는다. 반드시 빨간 열매여야 했다. 그 열매에서 씨를 파내고 청산가리를 넣는다. 그리고 껍질을 단단히 여민 뒤 군데군데 포인트를 정해 그 가지를 꽂아놓는다.

왜 꿩은 빨간 열매를 좋아했던고? 그것이 맛있는 열매인 줄로 알고 덥석 물은 꿩은 얼마 날지를 못하고 숲 속에서 헤매다가 죽는다. 청산가리를 삼키다가 타는 듯한 통증에 머리를 풀 더미에 처박고 몸을 떨다가.

덫을 놓은 우리는 그 독극물이 든 열매를 하나하나 점검해 나가다가 하나라도 없어진 것을 확인하면 그 주위를 온통 뒤진다. 꿩이 청산가리가 든 찔레나무 열매를 먹은 것이 틀림없는 것이다. 우리는 야호! 쾌재를 부르면서 사방으로 흩어진다. 가까운 곳 어딘가에 죽어있을 꿩의 시신을 찾아서.


내가 무얼 알았겠는가. 그래도 희미한 기억으로 몇 장면이 남아 있다. 동네 뒷산에서 꿩을 찾겠다고 헤매고 다닌 기억, 그리고 어느 해 정말 운 좋게 꿩 한 마리를 주워들고 산을 내려오던 기억. 그리고 그날 저녁 무를 넣고 끓인 꿩 국을 맛있게 먹었던 기억. 그때 모처럼 먹는 고깃국이라고 입안에서는 혀가 장구를 치며 들썩거렸겠지! 숟가락에 번들거리는 한 방울의 기름도 모조리 남김없이 싹싹 핥았겠지! 혹 남은 국물이 더 없나, 어머니 눈치를 슬쩍 보았던가?

모른다고 다 용서가 되는 건 아닐 것이다. 용서가 안 되겠기에 호자나무 빨간 열매가 내 눈으로 들어왔을까. 그리고 이런 옛 기억을 끄집어내도록 만드는 것일까. 그래서 어떤 새 한 마리가 있어 열매는 홀랑 다 먹지 않은 것이었을까. 그리고 그 흔적을 남겨서 그것을 보는 이로 하여금 옛날 기억의 흔적을 상기시켜 주는 것일까.

호자나무는 '호랑이 발톱처럼 날카로운 가시를 가진 나무'라는 뜻이라고 한다. 기억은 한번 박히면 좀처럼 빠지지 않는 호랑이 발톱 같은 성질을 가진다. 대마도 산행 중에 만난 호자나무의 빨간 열매. 어느 새가 쪼아놓은 그 열매를 보면서 철없던 그 옛날의 기억 한 자락이 떠올라 내 마음의 한 자락을 한참 동안 붉게 만들었다.

어느 새가 쪼아 먹은 호자나무 열매. ⓒ이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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