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여기에서 비평하고자 하는 <폴 리쾨르, 비판과 확신>(변광배·전종윤 옮김, 그린비 펴냄)이라는 국역의 제목을 단 책이 있는 줄도 전혀 몰랐다. 그래서 나는 서평을 부탁한 '프레시안 books' 쪽에 이 책을 서평 할 적임자가 아니라고 말했으나, 강권에 의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하지만 서평을 쓰기로 한 것은 다행이었다. 자못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는 <비판과 확신 : 프랑수아 아주비와 마르크 드 로네와의 대담>(이하, <비판과 확신>으로 약칭)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리쾨르의 최종적·근본적인 사상적 입장은 유대기독교적인 것이다.
▲ <폴 리쾨르, 비판과 확신>(폴 리쾨르 지음, 변광배·전종윤 옮김, 그린비 펴냄). ⓒ그린비 |
유대기독교의 사상에 대한 이러한 나의 비판적인 인식에 입각해서, 나는 그 어떤 종류의 것이라 할지라도 이른바 초월적 상승의 길을 택하는 철학 사상에 대해서는 진정한 의미의 철학 사상이 아니라 종교적인 형태를 띤 것으로 여기면서, 그런 철학 사상이 설사 억압받는 인민을 해방하는 사회역사적인 기능을 일정하게 수행했다고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온당하지 못하다고 여긴다. 한 종류의 억압을 다른 종류의 억압으로 바꾸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비판과 확신>은 폴 리쾨르의 사상적 이정(里程)을 전체적으로 조감하는 책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두 질문자들의 물음에 대해 폴 리쾨르가 답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머리말에 의하면, 이 대담은 1994년 10월에서 11월, 1995년 5월과 9월에 샤트네 말라브리에 위치한 폴 리쾨르의 연구실에 진행되었고, 이를 녹취해서 폴 리쾨르가 건네받아 보완하면서 필요한 경우 문헌적인 주석을 덧붙여 1995년에, 그러니까 그의 82세의 나이, 사망하기 10년 전에 작업해서 출간된 책이다. 그런 만큼, 리쾨르가 그의 사상적인 이력과 속내를 총망라해서 제시한 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대담이라는 형식은 그에 걸맞은 작업 방식이 아니겠는가.
1913년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겪게 되는 집안의 분위기와 사정을 토로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맨 마지막 '미학적 경험'이라는 제목 하에 구약성서의 <아가서>에 대한 해석을 통해 인간과 신의 근본적인 차이, 신과 인간 간의 수직성을 바탕으로 한 윤리학, 윤리학의 차원을 넘어서는 순결한 사랑의 상호성에 입각한 영성신학 등의 제시에 이르기까지 이 대담집은 리쾨르의 삶과 사상의 판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그런 만큼 다루어지는 주제도 다양하고, 그런 주제들이 부각되는 배경으로서 제시되는 리쾨르 본인의 개인적인 처지뿐만 아니라 자신이 처한 사회역사적인 현실에 대한 설명 또한 복잡다단하다.
<비판과 확신>을 통해 드러나는 폴 리쾨르의 자화상은 대략 다음과 같다. 그는 90세를 바라보면서까지 뚜렷하고 명징한 정신으로 철학적 사유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 장구한 세월을 그 나름의 사유의 특이성을 바탕으로 학문적 소통을 최대한 넓히고자 노력했다. 더군다나 대대적으로 확산되면서 감염을 일으키는 악과 그 악의 아종들을 낱낱이 감지하고 기억하면서 그에 따른 사회정치적인 고통과 비극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견결하게 유지하는 가운데 이를 꿰뚫고 승화해 갈 수 있는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길을 끝없이 모색했다.
그런 까닭에 "가능한 인간"(174쪽)이라는 개념을 내세워 종교와 철학과 예술을 섭렵하면서 그 심층의 깊이에로 다가가 이 위대한 세 인간의 영역들이 교차되고 엇갈리는 지점들을 지적해 냄으로써 인간의 개별적인 특이성과 인간 공동적인 사회적 삶의 소통성을 통일시키고자 노력했다.
결국에는 자신의 고향인 서구 유럽의 정신사를 그 나름으로 꿰뚫은 나머지, 신과 인간의 근원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수직성에 따른 영성신학과 인간들 간의 정치윤리적인 상호성에 의거한 수평성을 순결한 사랑이라는 최종적인 원리로써 결합하고자 했다.
그런데 이러한 그의 철학 사상적 이력의 자화상을 꿰뚫고 있는 열쇳말이 바로 '비판과 확신'이다. 기본적으로 비판은 철학적인 작업의 기본이고, 확신은 종교적인 활동의 기초로 작동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면서도 "철학은 또한 확신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확신 그 자체에도 비판의 차원이 있습니다"(259쪽)라는 말을 통해 리쾨르는 자신의 철학 사상의 형성에 있어서 유대기독교적인 신학적·종교적 차원이 얼마나 필연적인 것인가를 암암리에 역설한다.
나는 한 개인의 삶의 환경과 그 이력이 어떠하냐에 따라 충분히 그런 방향으로 철학 사상을 일구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사람의 독자로서 또는 한 사람의 철학자로서 철학 사상의 형성에 있어서 그런 방식을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리쾨르는 이 책을 통해 그가 철학자로서 사회 현실에 대해 특히 민주주의 문제를 핵심 사안으로 여겨 어떤 입장을 취해 왔는가를 곳곳에서 피력한다. 그런데 "지배의 수직적 관계와 공동 체험의 수평적 관계를 조합시키는 작업에 도달하는 것은 아마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문제일 것입니다. 저의 근본적 실수는 수평적 관계에서 출발해서 수직적 관계를 재건하고자 했던 것입니다"(87쪽)라는 그의 말에서 드러나듯, 설사 그 세세한 논거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유효한 통찰들이 스며들어 있다고 할지라도, 전반적인 구도에서 보면 그는 자신의 유대기독교적·성서신학적인 해석학적 입장 때문에 민주주의에 결코 의미 있게 접근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견결하기 이를 데 없는 폴 리쾨르의 이러한 성서신학에 입각한 해석학적인 입장은 이 책을 통해 거론되는 수많은 다른 철학자들과의 근친/소원의 관계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그는 "성서 케리그마는 차례로 헬레니즘 시대, 신플라톤주의, 칸트주의, 셸링주의 등의 언어 속으로 전파되었습니다"(279쪽)라거나 "유대교와 기독교 사이에는 일종의 형제애가 있는 것입니다"(307쪽)라고 말하면서 한나 아렌트나 레비나스의 철학 사상에 대해 크게 찬동하면서 원용하기를 망설이지 않는다.
그런 반면, 레비나스와 평생을 같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블랑쇼는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라캉에 대해 말하는 대목은 아주 흥미롭다. "저는 라캉의 여러 차례의 세미나를 의무로, 강제 고역으로, 그리고 끔찍한 욕구 불만으로 체험했습니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라캉의 세미나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그의 아내에게 "세미나에서 오는 길이오.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했소!"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 나름 프로이트 연구에 관한 책을 두 권이나 쓰게 되는 리쾨르가 이 정도로 라캉의 세미나를 이해하지 못한 까닭이 무엇일까? 그런가 하면, 사드와 바타이유에 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사드나 바타이유의 시도에서 볼 수 있는 주요 과제가 자리할 것입니다. 예술 작품의 고유한 도상적 증가의 한 등가물을 악의 영역 속에 재구축하고자 하는 시도가 그것입니다 아마 결과적으로 바로 거기에 선과 미가 정말 비싼 대가를 치르고 만들어 내게 된 것의 혜택을 악이 누리도록 하고자 하는 타락의 막다른 골목이 자리하게 될 것입니다."(338쪽)
이런 폴 리쾨르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비판'에 입각한 철학적인 태도를 제대로 갖추려면 먼저 '확신'에 입각한 종교적인 태도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는 "저는 철학하는 가면을 쓴 신학자로, 또는 종교에 대해 사유하게 하거나 혹은 사유하도록 방임하는 철학자로 주기적으로 비난받을 것을 각오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이와 같은 상황의 모든 어려움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278쪽)라는 그의 고백에서 잘 나타나 있다.
<비판과 확신>은 진지하면서도 순결할 정도로 견결한 삶을 추구한 나머지 철학을 종교 쪽으로 편입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여긴 걸출한 한 인물의 생애와 사상을 잘 드러내고 있다. 독자의 입장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마지막으로 현실을 감안한 평가를 덧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한국 사회에서 왜곡된 기독교 사상이 불러일으키는 각종 사회적·정치적·윤리적 폐해들을 그나마 바로 잡는 데 폴 리쾨르의 철학 사상이 일정하게 치료제 역할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치료제가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기독교에 의한 폐해에 대해 일종의 알리바이 역할을 할 수도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판에 의한 확신이지 확신에 의한 비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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