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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식 복지 국가, 내 돈 펑펑 쓰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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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식 복지 국가, 내 돈 펑펑 쓰는 거 아냐?!

[프레시안 books] 김태일의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

박근혜 당선인이 기초연금제도 도입에 필요한 추가 재원에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알려지면서 거센 반발이 있다. 대부분 중장년층인 이들 국민연금 납부자들의 불만은 "내 국민연금에 쓰라고 납부한 돈인데, 왜 우리 세대가 노인 세대의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가"라는 것이지만, 고령화로 인해 노인 인구가 늘어나고 그래서 젊은 세대의 재정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전 세계적인 자연스런 현상이고 이제 우리도 그 대열에 합류했을 뿐이다. "우리가 열심히 일한 덕에 후손들이 잘 살고 있는 것"이라는 노인 세대의 항변도 타당성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국민연금 기금을 일반 복지 재원으로 써도 정말 문제는 없는 걸까. 당신은 어떤 입장인지.

국민연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해답(연금보험 사기업의 배만 불리자는 얘기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말고 제대로 된 분석과 논리를 알고 싶을 때쯤, 재정의 A부터 Z까지를 분석한 좋은 대중서가 나왔다. 좋은예산센터 소장 김태일 교수의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웅진지식하우스 펴냄)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재정책이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다는 것이다. 재정과 조세를 다루는 책이라면 으레 숫자와 도표가 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개조식 어조를 써서 끝까지 읽어내기 위해서는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유쾌한 예시와 함께 이야기 방식으로 끝까지 흡입력을 유지한다.

예산의 흐름을 설명하면서 꼬리표가 붙지 않은 정부 일반 수입으로 국방·치안·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 사용하는 일반회계는 L교수의 월급에, 자체 수입원으로 특정 사업에만 사용하는 특별회계는 L교수가 해외여행에만 쓰기로 가족끼리 약속한 연말 보너스에 비유하는 식이다.

총 4부 15장으로 구성된 책의 1, 2부는 교과서적이다. 친절하게 재정의 정의, 정부와 국회의 절차, 재정의 규모 및 기본적인 수치의 의미와 분석의 틀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서 입문자에게도 적합하다.

그러면서도 기본적인 개념 설명에 그치지 않고 현안이 되고 있는 각종 관련 쟁점들을 깊이 있게 아우른다. 좋은예산센터의 소장이기도 한 저자의 현장경험에서 오는 문제의식이 빛나는 부분이다. 좋은예산센터는 유명한 '밑 빠진 독 상'(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함께하는 시민행동이 선심성 예산배정과 어처구니없는 예산 낭비 사례를 선정하여 주는 상이다. <편집자>)을 운영한 것을 비롯해 감시에서 참여로 이어지는 예산운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김태일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웅진지식하우스

<국가는 내 돈을 어떻게 쓰는가>는 민영화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감세 정책이 서민과 중산층에도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인지, 일자리가 늘어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지, 지방 재정의 격차는 무엇이 문제인지 등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예산과 조세 분야의 굵직한 의제들을 쉽고 체계적으로 설명한다.

최근 기획재정부 등 곳곳에서 담배세 인상을 논의하고 있어서 실제로 새 정부 들어 담뱃값이 크게 오를 가능성이 크다. 이 책의 4장은 세금은 누구에게 얼마나 걷어야 할까를 다루면서, 조세의 기능 중 장려와 억제효과와 관련하여 탄소세, 담배세, 토빈세와 같은 관련 쟁점의 찬반 논리를 명쾌하게 정리하고 있다. 담배세 인상에 대한 반대논리를 꼭 찾고 싶은 애연가라면 이 책 88쪽을 보면 된다.

이어서 책은 정부의 역할에 대해 "비효율이어도 괜찮아"를 말한다. 정부의 재정 운용이 시장의 수입지출 관리보다 비효율적인 것은 맞지만 이 비효율성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책의 두 번째 장점은 단순히 교과서적인 설명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재정을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3부와 4부에서 저자는 본격적인 문제의식을 던지고 주장을 편다. '정부의 역할을 늘리는 데 회의가 드는 이유'로 정부가 어디에 돈을 우선 지출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혼란스럽기 때문임을 지적하면서 공공에 대한 시장의 우위 시대가 저물어가고 시장의 폐해에 대한 인식이 광범위하게 확산된 지금, 문제의 본질은 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분배 원칙을 세우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즉 세금을 누구로부터 걷어 누구를 위해 쓸 것인가에 대한 국민적 합의이다. 이러한 합의를 위해서는 재정에 대해 정보를 얻고 참여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가 아닐까.

이러한 합의를 위해서는 세대와 계층 간 대화가 필요한데, 아직 대중적 논의의 장조차 제대로 열려 있지 않다. 우리 사회에서 세금만큼 온갖 맹목적인 두려움과 오해가 판치는 분야도 없을 것이다.

종합부동산세는 10억 가까운 고가부동산을 소유한 자만이 내는 '부유세'이기 때문에 강남3구의 주민이 대부분을 부담하는 세금인데도 저소득층까지 세금 폭탄론이라는 미신에 휘말려 정부를 비난했다. 부동산가격 폭등은 사회 인프라와 정부 정책에 기해 수혜를 입은 것이기 때문에 많은 세금을 부담시키더라도 비례원칙에 어긋난다고 보기 어려울 것임에도 우리 헌법재판소는 재산권 침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며, 국회는 허겁지겁 헌재의 결정보다 훨씬 많은 부분의 종합부동산세를 깎아내렸다. 지난 종합부동산세 감세 과정을 되돌아보면 흡사 망나니 춤에 홀린 기분이다.

재정도 덜하지 않다. 우리는 집 앞 도로 보도블록 교체 공사가 잦다 싶으면 '지금 괜히 쓸데없는 보도블록 뒤집는 거 아냐?'하며 공무원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지우지 못한다. 오세훈 전 서울 시장이 한강 세빛둥둥섬에 1300억 원 넘는 세금을 투입했다는 기사를 접하면 어쩌다 내가 성실히 낸 세금이 한강에 둥둥 떠다니게 되었는지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건설 부분 재정 지출이 줄어들면 경기가 침체된다는 주장을 듣고서는 또 건설 부분 재정이 줄어들까 불안해한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규정한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바로 나라는 것이다.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 규모를 키워야 가능한데 재정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세금을 내도 그것이 정당한 복지 혜택으로 돌아올 것을 믿지 못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내 돈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일,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건강한 시스템 하에 돈이 투명하게 운용되도록 만드는 일이 증세를 위한 첫 걸음이고 복지국가로 가기 위한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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