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시골에서 뛰놀 때 시냇물에 가서 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고기가 귀했던 시절이라 물고기는 시골 사람들에게 주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형들과 함께 족대(반도)를 가지고 물고기를 잡았다. 물이 얕은 곳에 가서 물을 일으키면 돌 밑에서 숨어 있던 피리, 중태, 꺽지, 사지, 망태, 띵미리, 떵가리, 모래무지, 망태 들이 놀라 뛰어나왔다. 고기를 한두 마리 잡을 때도 있었지만 어느 돌을 일으키면 물고기들이 한꺼번에 여러 마리가 잡히기도 했다. 이른바 물고기의 소굴이었다. 고기를 잡는 우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 소굴을 몇 군데만 덮치면 종다래끼는 금방 물고기들로 수북했다.
한편, 이런 경우도 있었다. 제법 물살이 센 곳에서 묵직한 돌을 일으켰다. 물고기는 한 마리도 없는데 뒤집힌 돌의 오목한 부분에 작고 방울진 것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은 투명한 점액질에 둘러싸이고 작은 포도송이처럼 엉켜 있었다. 아, 그것은 망태 혹은 떵가리가 곱게 슬어놓은 알이었다. 그중에서도 톡 쏘기를 잘하는 떵가리 알이 더 노랗고 고소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우리는 그것을 그저 귀한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아무런 망설임없이 우리는, 나는, 입은, 혀는 그것을 핥아먹기에 바빴다.
▲ 들쭉나무. ⓒ이굴기 |
2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갔다. 아무 것도 몰랐던 시절이었다. 그저 아내에게로 떠난 여행이라고 생각하고 며칠을 보내기로 한 것이었다. 그땐 산도 잘 몰랐다. 어디 등산도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이튿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라산을 한번 구경이나 하자고 아내를 꼬드겼다. 실제로 한라산 등반을 할 생각은 아니 했다. 그저 눈으로만 전망이나 구경할 요량이었다. 택시를 타고 가면 거의 꼭대기까지 가는 줄로 알았었다. 차림도 운동화에 간편한 외출복이었다. 도시락도 물론 준비하지 않았다. 나는 정말 잠깐 한라산을 슬쩍 구경만 하고 바닷가로 내려와 싱싱한 회를 씹으며 낮술을 할 기대에 부풀었다.
택시에 내리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한라산은 그냥 가는 뒷산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툰 신혼살림처럼 서툴게 등산객의 무리에 합류했다. 조금만 오르고 내려가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등산객 무리에서 빠져나와 중간에 돌아서지를 못했다. 여기서 포기하면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으리란 생각을 했던 것일까. 결국은 어찌어찌해서 꼭대기까지 다 올랐다. 김밥 한 줄 중간에 사서 먹고 끝까지 올랐다.
백록담에 내려가서 물을 만질 수는 없었다. 그곳은 출입 금지였다. 어렵게 올라온 길. 한라산을 몰랐기 때문에 한라산에 오를 수 있었던 셈이었다. 제법 대견한 기분을 만끽하면 정상에서 머무른 뒤 하산하는 길이었다. 시원찮게 먹은 터에 목이 몹시 말랐다. 고사목이 듬성듬성하고 너덜겅이 시작되는 곳에 작은 웅덩이가 하나 있었다. 앞서가던 사람들이 물을 떠먹기도 했다. 나도 한 모금 먹고 일어나 아내에게 차례를 주었다. 그 순간 급히 말렸다. 내 눈에 뭔가 찝찝한 것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고요한 웅덩이의 가장자리에 희미하게 흐느적거리는 게 있었다. 다시 보니 투명한 개구리 알이었다. 부부가 같이 먹었다간 혹 개구리처럼 아들과 딸을 주렁주렁 낳지나 않을까. 그때 그런 희한한 생각을 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에 또렷하다. 그때 멋모르고 올랐던 길을 최근에 확인해 보니 성판악 코스였다.
▲ 분홍노루발. ⓒ이굴기 |
3
이제 백두산 꽃산행이 마무리로 접어들었다. 천지를 구경하고 내려와 원지(園池)라고 하는 고산 습지를 관찰할 때였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북한의 유명한 차(茶)인 황산차나무와 백산차나무를 보았다. 북한이 자랑하는 그 열매로 술을 빚는 들쭉나무도 보았다. 그리고 분홍노루발, 월귤, 찔꽝나무, 함녕딸기, 비로용담, 물싸리 등을 관찰했다.
습지를 빠져나와 작은 오솔길을 걸을 때였다. 함께 간 일행 중에 야생화를 세밀화로 그리는 분이 있었다. 그분이 길가에 앉아 열심히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무슨 꽃인가 했더니 꽃이 아니었다. 축 처진 호랑버들 잎사귀와 가지 사이에 꼬물꼬물한 것들이 빽빽이 달려 있었다. 아, 그것은 아주 작은 거미들이었다. 아아, 고향 시냇물에서 보았던 떵가리 알을 퍼뜩 떠올리게 하는!
거미들은 호랑버들 잎사귀를 구부려 집을 만들고 빽빽하게 줄을 쳤다. 그리고 그 위에 소복하게 모이고 뒤엉키고 재재발거리며 놀고 있는 작은 거미들. 거미들은 이렇게 모여 있다가 바람이 휙, 불면 입에서 거미줄을 내뻗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바람 속을 날아가는 거미줄을 붙들고 멀리멀리 정처 없는 곳으로 떠난다고 한다.
혹시나? 내 날숨으로 이 거미들을 시집 장가 보내줄까? 장난삼아 후 불어보았지만 끄떡도 않았다. 거미들은 누군가가 큰 입김을 불어주기를 기다리며 놀기에 바빴다.
최근에 나는 목표가 생겼다. 내 입으로 최소한 식물 이름 100가지를 중얼중얼 외우는 것이다. 그 이름과 숲속의 그 식물을 제대로 연결시킨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오늘 백두산까지 와서 공부를 하는 것도 이를 위해서이다. 어릴 적 멋모르고 핥아먹었던 물고기알 같은 작은 거미들을 보는 데 많이 생각이 일어났다. 입속에서 거미줄을 뻗어 거미가 바람을 타고 그 어디로 가듯, 입에서 나오는 꽃 이름도 나를 그 어딘가로 데려가 주겠지!
▲ 거미집에 소복하게 모여 재재발거리는 작은 거미들. ⓒ이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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