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더 큰 역할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 철학과 국정 운영 방향을 시민과 교감하는 일종의 소통 창구다. 시민들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참여 인사, 활동 내용 그리고 그 결과를 보면서 앞으로 5년간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활동할지 그림을 그리고, 필요하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을 염두에 두고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
<프레시안>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공동으로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을 비판적으로 점검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세 번째 글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기후 변화·에너지 정책의 한계를 점검하고,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가 마련한 대안 기후 변화·에너지 정책을 제시한다. <편집자>
역대 정부의 에너지 정책 목표에서 우선순위는 경제 성장을 위한 에너지원의 안정적 확보와 에너지 수급 안정화에 있었다. 한 축으로는 석유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수입선 다변화 정책, 비축유 정책, 해외 자원 개발 정책 등을 추진하고, 다른 축으로는 화력 발전과 핵 발전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중앙 집중형 전력 수급 정책을 고수해 왔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권의 에너지 정책 기조를 이어받는 동시에 핵발전소와 해외 자원 개발을 더욱 공세적으로 확대 강화하면서 녹색 자본주의(green capitalism)의 전조라 할 수 있는 '저탄소 녹색 성장'을 추진했다. 또 박근혜 당선인의 에너지·기후 분야 공약만 놓고 보면, 이명박 정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낙제점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인수위원회 대안 보고서 연구의 일환으로 정당·학계·노동·NGO 전문가 30여 명을 대상으로 지난 1월 2주간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설문 문항은 에너지·기후 분야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공약 평가, 차기 정부 에너지·기후 정책의 기조와 과제 등으로 구분해서 진행했다. 응답 분석으로 매우찬성(2점), 찬성(1점), 보통(0점), 반대(-1점), 매우반대(-2점)와 같이 변환하여 정책에 대한 긍정/부정을 점수화 했다.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의 핵발전소 비중 확대(-1.8점)와 핵발전소 수출(-1.7점)을 가장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그 다음으로 발전 차액 지원 제도(FIT)를 폐지하고 의무 할당 제도(RPS)를 도입한 재생 에너지 정책(-1.4점)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해외 자원 개발을 통한 석유·가스·6대 광물 자주 개발률 향상(-1점), 민간 발전 사업자의 신규 진입 촉진 및 공정 경쟁 여건 조성(-0.8점),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한 탄소 시장 육성(-0.7점) 등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반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은 2016년까지 에너지 빈곤층 제로(0.9점), 에너지 가격 체계의 개편과 전기 요금 체계의 합리화(0.7점), 2030년까지 에너지원단위를 47퍼센트 향상시켜 에너지 효율 개선(0.4점) 등이었다.
박근혜 당선인의 에너지·기후 정책에 대해서는 수요 관리를 위한 에너지 요금 체계 전면 개편(1.2점), 신·재생 에너지 보급 촉진을 위한 인프라 구축(1.1점), 에너지 세제 개편(0.9점), 기초 생활용 전기 사용량 보장(0.9점), 개성공단 재생 에너지 단지 구축(0.9점) 등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반면, 전력·가스 등 시장 개방(-1.2점), 노후 핵발전소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한 연장 유무 결정(-1점), 신규 핵발전소는 다른 에너지원 확보 전제 하에 재검토(-0.9점), 동해안 오일 허브 구축과 석유 공급 안정화 도모(-0.6점), 화물 업체 유가 보조금 확대 지급(-0.4점) 등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한편으로는 수요 관리와 재생 가능 에너지 정책의 확대·강화를, 다른 편으로는 노후 핵발전소의 즉각 폐쇄와 석유·핵 중심의 에너지 체제를 전환하라는 요구로 해석할 수 있다.
국정 기조와 정책의 우선순위
ⓒ프레시안(손문상) |
전문가들은 새 정부의 에너지·기후 분야 정책 기조로 ①탈핵과 에너지 전환 ②지역 분산형 에너지 체계 ③에너지 복지 ④기후 변화 대응 ⑤에너지 민주주의 등의 순으로 선호도를 보였다.
이는 후쿠시마의 교훈과 석유 생산 정점에 따른 지속 가능한 대안으로 탈핵과 지역 에너지 체계를 중심 기조로 하는 동시에, 지구적 차원의 기후 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된다는 인식의 반영으로 풀이된다. 또 탈핵과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수반되는 고통을 취약 계층에 전가해서는 안 되며, 그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함을 분명히 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후·에너지 분야의 최우선 정책 과제로는 ①수명 만료 핵발전소 폐쇄 ②발전 차액 지원 제도 도입 ③경주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안전성 재조사 ④전기 요금 현실화 ⑤에너지 복지법 도입 ⑥정유사 폭리 근절과 석유 가격 투명성 확보 ⑦탄소세 도입 등의 순으로 응답했다.
노후 핵발전소의 재가동을 위한 수단으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핑계 삼은 전례에 비추어,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으로 내세운 유럽연합(EU) 방식의 스트레스 테스트 등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할 필요 없이 수명이 끝난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를 즉각 폐쇄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그 외 재생 가능 에너지 확산을 위한 발전 차액 지원 제도 재도입과 방사능 누출이 명백히 예상되는 경주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 중단, 에너지 다소비 구조를 고착화 시키는 경부하 요금 폐지, 공급 중심이 아닌 효율화와 수요 관리를 고려한 에너지 복지법 제정 등이 시급한 과제로 뽑았다.
새 정부 에너지·기후 분야 국정 과제
대안 인수위원회 보고서는 3대 정책 목표, 7대 원칙, 8대 과제, 20대 세부 정책으로 구성돼 있다. 대안 보고서의 슬로건은 "단계적 핵발전소 폐쇄와 정의롭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전환"이고, 핵심 정책 목표는 탈핵과 에너지 전환, 지역 분산형 에너지 체계, 그리고 녹색 경제·녹색 일자리 창출 등이다.
정책의 기본 원칙은 ①지속 가능한 에너지 시스템 전환 지향의 원칙 ②에너지 서비스의 사회적 형평성 제고의 원칙 ③전환 이익/비용 부담의 사회적 정의 원칙 ④에너지 정책의 민주성, 참여성과 통합성 확대 원칙 ⑤에너지 정책의 분권화와 지역 거버넌스 강화 원칙 ⑥국제 사회의 책임성과 연대 강화 원칙 ⑦지속 가능한 사회 경제적 발전의 기여 원칙 등이다.
새 정부 에너지·기후 분야 국정 과제는 핵 발전의 위험과 기후 변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에너지 효율화와 재생 에너지 이용의 확대를 통해 지역 분산형 에너지 체제로 전환하여 한국 사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하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과 책임의 공정한 배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보장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과제 1. 방사능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노후화된 핵발전소의 수명 연장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 계획을 중단하고 에너지 효율화와 감축 정책, 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을 통해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를 계획한다. 핵에너지와 화석 연료의 중앙 집중식 에너지 공급 체제에서 지역 분산 에너지 체제를 지향하는 탈핵 에너지 전환 정책을 수립·이행한다.
과제 2. 핵 없는 세상, 아이들의 미래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겠습니다.
먼저, 원자력안전위원회의 독립적인 체계를 마련하고 방사선 비상 계획을 확립하며 원자력손해배상법을 개정해 핵 발전의 안전성을 높이고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대비, 사고 처리 체제를 개선 보완하도록 한다. 둘째,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금지하고 고준위 폐기물 처분장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시작하도록 한다. 셋째,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장 설비의 안전성에 대한 철저한 검토, 폐기장 운영에 대한 안전 규제를 강화하도록 한다. 넷째, 생활 방사능 물질에 대한 종합적인 안전 대책을 수립하여 일상 방사능 노출로 인한 건강, 환경 피해를 줄이도록 한다.
과제 3. 온실 기체를 획기적으로 감축해 기후 변화에 대응하겠습니다.
온실 기체 배출 총량제를 도입하고, 이를 지원할 수 있는 기후변화대응기본법을 제정해 2030년까지 발전 부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30퍼센트까지 감축한다. (발전 부문 이산화탄소 배출의 17퍼센트 저감 포함.)
과제 4. 에너지 가격 체계 개편을 통해 에너지의 공공성을 강화하겠습니다.
에너지 관련 세제 중 환경세와 개별 소비세를 탄소세로 전환하고, 산업용을 위한 교차 보조와 경부하 요금제의 문제점을 해소하며, 에너지 기본권 보장을 위해 가구당 적정 필요 전력량 공급을 의무화한다. 특히, 기후 변화 대응 체제에 걸맞게 에너지 복지는 공급 중심이 아닌 효율화와 저감·전환 정책으로 접근하고, 환경·일자리 문제와 연계해 다룬다.
과제 5. 에너지 수요 관리와 지역 재생 가능 에너지 체계로 에너지 전환을 앞당기겠습니다.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이라는 정책 기조를 수정하여 에너지 수요 관리 위주로 전환하고, 전 부문에서 에너지 효율화 대책 및 실질 사용량 저감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지원한다. 특히, 재생에너지진흥기금의 설치, 발전 차액 지원 제도의 재도입, 지역 재생 가능 에너지 총량제, 지역 에너지 정책의 지방자치단체 권한 강화 등의 적극적인 재생 에너지 확대 정책을 수립·추진하여 2030년까지 재생 에너지 전력 비중을 20퍼센트까지 확대한다.
과제 6. 석유 가격 투명성 제고와 정유 공기업으로 탈석유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원가 산정 내역을 공개하고, 유가조정위원회를 구성하며, 정유 공기업을 신설해 고유가 폭리를 근본적으로 근절해 정유사의 사회적 공공성을 확보한다.
과제 7. 녹색 일자리 창출과 협동 경제 활성화로 지역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와 온실 기체 감축 노력으로 고용에 영향을 받게 될 에너지 다소비 산업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고 다른 녹색 산업으로 일자리 전환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특히, 지속 가능한 경제 성장과 환경적으로 건전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녹색 경제 체제를 확립하고, 중소기업의 환경 기술 개발을 지원하여 환경 산업을 육성한다. 또 저소득층의 일자리 정책을 에너지 분야와 연계하여 녹색 일자리 정책을 적극 추진하고, 사회적 경제 확대를 위한 지원 체계를 구축한다.
과제 8. 동북아 및 한반도 재생 가능 에너지 협력으로 평화를 정착시키겠습니다.
화석 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안보 경쟁을 재생 가능 에너지 중심의 에너지 안보 협력으로 정책 패러다임을 전환한다. 우선적으로 북한 에너지 위기를 해소하면서 한반도 비핵·평화·공존에 기여하는 한반도 재생 에너지 협력을 추진한다. 또 탈핵·핵안전 협의체를 설립하고 국제 협약을 맺어 동북아 지역의 단계적 탈핵과 핵 발전 안전 관리를 강화한다. 탈핵 에너지 전환 과정에 필요한 천연가스의 수급을 안정화하기 위해 한중일 간에 러시아 극동 지역의 천연가스에 대한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2017년에 남-북-러 PNG 프로젝트를 완료한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기후 변화와 에너지 위기에 대응하는 에너지 전환을 모색하는 싱크탱크입니다. 특히 에너지 전환이 사회적 약자를 참여시키고, 그 목소리를 반영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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