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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새마을 운동? 가보지 않은 길이 있다!

[장석준의 '적록 서재'] 가가와 도요히코의 <우애의 경제학>

협동조합 기본법이 통과되고 나서 협동조합이 뜨거운 화제다. 한편에서는 마치 새마을 운동을 연상시키는, 몇 년 뒤까지 협동조합 몇 천 개를 만들겠다는 계획들이 무성한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그거 보라며 협동조합은 역시 대안이 아니라는 때 이른 최종 진단이 작성된다.

대한민국은 확실히 가상 현대성(virtual modernity)으로 넘쳐나는 나라다. 다른 나라 현대사의 여러 기획들을 실제 이 땅에 뿌리내리지는 못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열 번도 더 세웠다 허물었다 반복하고 말만 무성하다. 제대로 돌아가는 협동조합을 겪어본 기억도 별로 없는데, 다들 협동조합 논의는 벌써 지루하고 피곤하다는 분위기다.

그새 협동조합에 대한 책들도 제법 나왔다. 볼만한 개론서 하나 변변치 않았던 상황은 이제옛말이 되었다. 그런 중에 나는 이미 나온 지 몇 년 된, 하지만 그에 값하는 주목을 받지는 못한 책 한 권을 손에 들었다. 협동조합으로 기독교 정신을 실천하고 사회주의를 실현하자는 책, 가가와 도요히코의 <우애의 경제학>(홍순명 옮김, 그물코 펴냄, 2009)이다.

▲ <우애의 경제학>(가가와 도요히코 지음, 홍순명 옮김, 그물코 펴냄). ⓒ그물코
가가와 도요히코 ― 잘 알려진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80년대에 사춘기를 보낸 독자라면 혹 어렴풋이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다. 이 무렵 책깨나 읽는다는 청소년들에게는 깨어 있는 청춘의 징표나 되는 양 꼭 읽어야 하는 소설이 몇 권 있었다. 외국 작품으로 그 대표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었다면, 우리 소설로는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을 꼽을 수 있었다. 바로 이 <사람의 아들>에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이름이 나온다.

주인공 민요섭이 기독교 신앙과 사회 불의 사이에 고민하다가 빠져들게 된 사상가로 가가와 도요히코가 언급된다. 그의 회고록 <사선을 넘어서>도 이야기된다. 나 역시 10대 때 이 소설을 열병 앓듯이 읽고 나서는, 이문열이라는 작가를 미련 없이 잊은 것처럼 이 이름 역시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 이름은 우리말로 번역된 저서를 통해 '협동조합 국가'라는 낯선 비전을 들고 내 앞에 다시 나타났다.

김교신과 이재유를 합쳐놓은 것 같은 인물, 가가와 도요히코

<우애의 경제학> 국역본에는 김재일 목사가 쓴 '가가와 도요히코에 대하여'라는 친절한 해설이 붙어 있다. 이 해설을 보면, 회고록 <사선을 넘어서>뿐만 아니라 가가와 도요히코의 생애와 사상을 소개하는 <시대를 초월한 사상가 :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책도 우리말로 나와 있다고 한다. 한데 왠지 서점에서는 이런 책들을 찾아볼 수 없다.

다만 2차 대전 이전 일본 좌파 정당 운동사를 다룬 조지 O. 타튼의 <일본의 사회민주주의 운동>(정광하 외 옮김, 한울 펴냄)에는 그가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등장한다. 가가와 도요히코라는 인물을 알려면, 일단은 <우애의 경제학>의 해설과 타튼의 이 책을 참고하는 수밖에 없겠다.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는 1888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에 입문해 대학도 메이지학원 신학예과에 들어갔다. 한국과 달리 기독교가 그렇게 열렬한 환영을 받지 못한 일본 사회에서 가가와는 이것만으로도 일단 뭔가 주류 다수와는 다른 길을 선택한 셈이었다.

하지만 이것으로 다가 아니었다. 평범한 목사가 될 수도 있었던 그는 20대 초반 한창 나이에 심각한 폐질환으로 투병 생활을 해야 했다. 이 체험을 통해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질병과 죽음의 위협으로 고통 받는 고베의 가난한 이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기독교 신앙이 이러한 민중의 고된 삶을 바꾸려는 노력과 동떨어져서 존립할 수 없다는 자각에 이르렀다.

미국 유학 중에 마주친 치열한 노동조합 투쟁은 민중의 삶의 개선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해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일본에 돌아오자마자 가가와는 전도 사업이 아니라 사회 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동자 자주관리 공장을 실험하고, 공제조합을 만들고, 노동조합의 파업 투쟁을 이끌었다. 감옥도 밥 먹듯 드나들었다. 일본 간사이 지역의 초기 노동 운동사는 그의 이름을 빼놓고는 정리할 수 없을 정도다.

마침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가 열리고 있었다. 러시아 10월 혁명 등의 영향으로 일본에도 민주주의, 사회주의, 아나키즘의 격랑이 일었다. 한데 이런 상황이 이미 1910년대 후반부터 노동 운동을 일궈오던 가가와 도요히코에게는 심각한 도전으로 다가왔다. 기독교 신앙에 뿌리내리고 전개되던 그의 실천은 무신론적 좌파 조류와 충돌을 빚었다. 그 때문에 그는 노동 운동 판을 떠나 농민 운동과 소비 협동조합 운동을 새로 개척하기 시작했다.

또 하나 그가 앞장선 것은 보통선거권 쟁취 운동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아직 노동자와 여성에게 참정권이 없었다. 가가와는 노동 운동, 농민 운동 세력이 보통선거권 쟁취에 앞장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합법 좌파 정당을 창당하고 육성하는 데도 적극 뛰어들었다.

이런 그의 활동은 일본을 넘어 미국,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비록 독일 등에 이미 기독교 사회주의 흐름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기독교 세계와 좌파 진영 사이의 골은 여전히 깊었다. 아직 세상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나 해방신학 등장 이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가가와 도요히코의 성취는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우애의 경제학>도 그가 1936년에 미국 로체스터신학교의 초청으로 방미해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대접은 달랐다. 고향에서 예언자는 탄압의 대상이었다. 특히 가가와가 전국반전동맹을 결성해 반전, 반군국주의 투쟁의 전면에 나서자 더욱 그러했다. 그의 이름은 매국노의 대명사로 입에 오르내렸고, 다시 구치소 신세를 져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패전 이후에도 가가와 도요히코의 왕성한 사회 운동은 1960년 사망할 때까지 결코 끝날 줄 몰랐다. 공산당 이외의 좌파 세력을 총결집하는 데 앞장서서 사회당 창당에 한 몫 하는가 하면, 일본에서 반핵 평화 운동이 시작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상이 가가와 도요히코의 생애에 대한 간략한 소개다. 한 마디로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두고 일본 현대사의 주류에 맞서 투쟁한 한 평생이라 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 우리의 위대한 인물들에 견주어 말한다면, 김교신과 이재유를 합쳐놓은 것과 같은 인물이었다고나 할까.

기독교 사회주의 그리고 협동조합 사회주의

<우애의 경제학>은 짧은 책이다. 문고본 크기에 200쪽이 안 된다. 하지만 대담한 책이다. 이 책에서 가가와 도요히코는 강연 당시인 1930년대 중반에 자본주의 대공황의 대안으로 주목하던 새로운 실험들, 즉 소련의 국가 사회주의, 이탈리아의 파시즘 그리고 미국의 뉴딜을 모두 비판한다. 그 대신 협동조합 국가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단순히 일국 차원이 아니라 전 세계 평화의 대안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 책 앞부분 절반은 읽어 내려가기 쉽지 않다. 좌파 성향이 강한 독자일수록 더 그럴 것이다. 전반부의 절 제목 몇 개만 소개해도 그 이유는 쉽게 짐작 가능하다. "십자가와 경제적 가치", "바울의 경제 가치 관념", "유물론적 경제관의 무력함", "종교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결합" 등등.

그렇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기독교' 사회주의자다. 그의 기독교 사회주의는 기독교 전통과 마르크스주의의 요소들을 얼기설기 조합하는 식이 아니다. 철저히 기독교의 가치에서 출발해 새로운 사회의 방향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우애의 경제학> 전반부는 예수와 바울의 메시지가 경제 활동에 시사하는 바를 읽어내려는 시도들 그리고 무신론적 좌파 조류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황당한 내용이라 생각하면서 첫 몇 장에서 읽기를 그만둘 이들이 분명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곱씹어볼 대목들이 없지 않다. 가령 "인간의 정신적인 각성"(55쪽)에 대한 강조를 보자. 가가와는 당대의 유물사관에 맞서 시종일관 인간의 의식적 측면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이제까지 사회 발전 과정에서도 그랬고 앞으로 새로운 사회가 등장하면서도 그럴 거라고 주장한다.

이 대목에서는 이 당시 좌파가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속류적인 유물론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이후 마르크스주의 전통 안에서도 죄르지 루카치나 안토니오 그람시,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상이 주목받게 되는 것이 다 이러한 오류에 대한 반성 때문 아닌가. 사실 가가와 도요히코의 문장들 중 어떤 것은 따로 뚝 떼서 체 게바라("새로운 인간의 탄생"을 역설한 그 사람)가 한 말이라 해도 통할 수 있다.

제목에도 나와 있는 "우애" 혹은 "형제애"의 일관된 주장도 그렇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마르크스주의가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데 맞서 새로운 사회의 중심 원리는 형제애여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형제애는 기독교 전통에서 가장 분명하고 풍요롭게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식으로 계급투쟁과 형제애를 대립시키고 후자를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게 어떤 이들에는 불편하게 다가올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이 시기의 마르크스주의가 막상 새로운 사회의 윤리적 기반이어야 할 연대 의식의 발전에 대해서는 지극히 둔감했다는 것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우애의 경제학>이 쓰인 시기는 계급투쟁의 복무가 스탈린주의에 대한 철저한 복종으로 이해되던 시절, 강제 집단화와 대숙청의 세월이었다.

이렇게 나름의 역사적이고 비판적인 독해를 통해 <우애의 경제학> 전반부를 헤치고 나아가다 보면, 우리는 이번에는 또 다른 종류의 당혹스러움과 맞닥뜨리게 된다. 가가와 도요히코의 대안사회 구상을 본격 전개하는 후반부는 국가 사회주의의 유토피아 혹은 디스토피아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너무도 낯선 종류의 유토피아를 제시한다. 대담한 어조로 이 책은 협동조합 사회주의의 유토피아를 꺼내놓는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이를 '협동조합 국가'라 표현한다. 그의 간명한 도식을 그대로 옮겨본다.

"생활의 모든 면에 형제애의 원리를 작용시키려면 협동조합 국가를 세워야 한다. 이것은 전국 연맹에 포섭되는 경제 관련 각종 협동조합을 토대로 구축하고 산업 의회와 사회 의회라 불리는 두 의회와 하나의 내각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140쪽)

"협동조합 연맹이 목표로 하는 것은 한 나라의 산업을 착취 체제로부터 해방시켜 계획적인 경제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그 조정기관은 다음과 같이 될 것이다. 첫째, 건강보험의 여러 조직. 둘째, 생산자 협동조합. 셋째, 판매 및 운송 협동조합. 넷째, 신용조합의 체계적 조직. 다섯째, 공제 협동조합에 속하는 여러 조직(교육, 직업, 사회복지). 여섯째, 공익 협동조합. 일곱째, 소비 협동조합. 이들 일곱 협동조합이 연맹으로 조정된다면, 산업의 여러 문제 그리고 한 나라의 국내 산업 문제 전부를 검토할 것이다." (141쪽)


여기에서 퍼뜩 떠오르는 것은 G. D. H. 콜 등의 길드 사회주의 구상과의 유사성이다. 길드 사회주의자들도 자본이나 국가가 아닌 자발적 결사체가 산업과 경제 전반을 결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길드 사회주의자들 역시 좁은 의미의 정치 문제를 다루는 기존 의회에 더해 길드 대표들로 구성되어 산업 영역을 운영하는 길드 의회(가가와 식으로 말하면, 산업 의회)가 따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만 길드 사회주의자들은 중세의 동업조합인 '길드'의 명칭을 그대로 이어받아 생산 협동조합을 '길드'라 부르며 강조한 점이 다르다. 가가와 도요히코 역시 협동조합의 뿌리가 중세 길드에 있다고 지적한다(94쪽). 그러나 그의 경우는 '협동조합'이라는 현대적 표현을 더 선호하며, 생산 협동조합, 소비 협동조합, 신용 협동조합을 가리지 않고 다 '협동조합'으로 통칭한다.

어쨌든 가가와 도요히코의 협동조합 사회주의는 동아시아판 길드 사회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애의 경제학>은 길드 사회주의의 결정적 저작인 G. D. H. 콜의 (1920)에 대한 동방의 화답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가가와 자신이, 일정한 비판적 시각을 전제하면서도, 이러한 영향 관계를 인정하고 있다.

"길드 국가의 이념은 완전히 잊혀졌다. 그러나 영국 소비 협동조합의 발전을 통하여 딜러, 홉슨, 콜이라는 사람들이 그것을 재발견하였다. 1913년 무렵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뒤 길드 사회주의 운동은 영국의 사회 운동으로부터 무시되었다. 그 이유는 영국의 길드 운동이 일반적인 길드 운동보다 생산자 길드를 지나치게 강조한 데 있다.

러스킨이 그랬듯이, 유감스러운 실패가 있었다. 만일 그들이 처음부터 보험, 신용, 의료, 기타 협동조합 분야에서 활동하였다면, 길드 국가 운동은 강력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화폐 유통의 사회화부터 시작하여, 생명보험으로 그리고 의료, 공익사업, 소비, 판매와 생산으로 확대되었을 것이다." (138쪽)


국가 사회주의 대 협동조합 사회주의?

가가와 도요히코의 협동조합 국가에서는 현실 사회주의에서 국가기구가 수행하는 게 당연시되던 기능들이 모조리 협동조합의 몫이 된다. 국영 기업이 아니라 생산자 협동조합이 주된 생산 단위가 되고, 통상 은행이 하는 일은 신용 협동조합이 처리한다. 복지기관의 역할은 보험 협동조합과 공제 협동조합이 맡는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영역은 여기에서는 공익 협동조합이 담당한다. 또한 모든 시민은 소비 협동조합을 통해 필요 물품을 확보한다.

소련식 경제 체제가 아닌 복지 자본주의에서도 이런 기능들 중 상당수는 국가가 맡는 게 상식이다. <우애의 경제학>이 출판될 무렵 스웨덴에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하던 복지 국가는 공공부문이 복지 서비스를 맡는 방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서구 노동 운동은 가가와가 바랐던 것과는 다른 발전 방향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가가와 도요히코의 입장은 달랐다. 실업보험을 예로 들어보자. 그는 대규모 국민고용보험제도보다는 벨기에의 겐트시스템 같은 방식이 더 낫다고 보았다. 겐트시스템은 노동조합이 실업보험을 관리하는 체제다. 노동조합이 보험 협동조합의 역할을 겸하는 것이다. 가가와는 이런 시스템이 국가 관료 기구에 의존하는 방식에 비해 노동자들의 연대 의식을 보다 강화하리라 기대했다.

1930년대만 해도 자본주의 세계에서 좌파 정당이 이룬 가장 드높은 성취는 (스웨덴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였다. 비엔나에서는 1차 대전 종전 이후부터 사회민주노동당이 시 정부를 오래 장악하면서 혁신적인 사회 정책을 펼쳤다. 그래서 '붉은 비엔나'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런데 <우애의 경제학>은 이 성과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시 정부를 중심으로 한 실험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 자체를 공익 협동조합으로 조직화하고, 시 청사 가운데 그런 부서를 설치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 형태건, 전국형이건 사회주의 악폐의 하나가, 산업조직의 관리가 관료주의화 되는 데 있는 것은 확실하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국유제도에 대한 관심을 잃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 악폐나 시의 부정 사건을 제거하기보다 더 큰 문제다. 도시가 하나의 길드조직으로 전환하면서 각종 산업 협동조합과 연대를 하면, 사람들이 영위하는 경제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게 될 것이다." (134쪽)


혁명 러시아 역시 가가와 도요히코에게는 협동조합 국가의 필요성을 웅변해주는 사례로 보였다. 그가 주목한 것은 만년의 V. I. 레닌이 "신 경제 정책 하에서 우리가 실제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은 러시아 주민을 충분히 대규모로 협동조합 결사체로 조직하는 것"(V. I. 레닌, '협동조합에 관하여', <농업협동화론 : 레닌과 부하린의 논의를 중심으로>(윤수종 옮김, 새길 펴냄) 183쪽)이라고 촉구했다는 사실이었다. 레닌은 "생산 수단이 사회적으로 소유되어 있고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 대해서 계급적 승리를 거둔 상태에서는 문명화된 협동조합원들의 체계가 곧 사회주의 체계"(같은 책, 187~188쪽)라고까지 단언했다.

레닌은 전에는 협동조합 운동에 대해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았다(김창진, <사회주의와 협동조합 운동 : 혁명 전후 러시아의 국가와 협동조합 1905~1930>(한울 펴냄)). 그랬던 그가 죽음을 앞두고 입장을 선회한 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가가와는 이것을 생산의 사회화에 대응하는 소비 협동조합의 필요성으로 이해했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파리 코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러시아 코뮨을 출발시킬 때 그것을 모델로 하였다. 그들은 노동당을 손 안에 넣었을 때 러시아 어디서나 실현 가능한 제도를 장악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도 실패해버렸다.

소비 시스템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생산 시스템이 있더라도 시장의 부족으로 실패할 것이 확실하다. 노동으로 생산한 상품을 소비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목적의식적인 견실한 조직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은 암초에 부딪혀 버린다." (108쪽)


"러시아의 정세는 생산 재건을 기본으로 하는 그런 혁명이 정치적으로 성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큰 실패로 끝날 우려가 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실제로 실행할 수 있는 체제는 생산을 위한 조직만이 아니라, 소비를 위한 조직도 있어야 한다." (135쪽)

그러나 레닌 사후 소련은 자발적인 방식이 아니라 강제로 시민들을, 특히 농민들을 협동조합에 가입시켰다. 레닌이 열망했던 "문화 혁명" 방식을 통한 협동조합 조직화는 '가보지 않은 길'로 남았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체제를 <우애의 경제학>은 "강제 협동조합 국가"(100쪽)라 비판한다.

만약 레닌이 말한 것처럼 러시아에서는 "정치 및 사회 혁명이 문화 혁명에 선행"(<농업협동화론> 192쪽)하는 데 반해 발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반대라면, 러시아 혁명의 경로 이탈은 '정치 및 사회 혁명에 선행하는 문화 혁명'의 중대한 과제들 중 하나가 무엇인지 중요한 힌트를 던져주는 셈이다. 그것은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협동조합을 통한 노동 대중의 조직화와 훈련이다.

가보지 않은 길

그렇다고 <우애의 경제학>을 새로운 정전(正典)인 양 추켜세우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는 이 책 역시 지나치게 유토피아적이다. 새로운 사회를 이룰 여러 요소들 중 하나를 외곬으로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고, 그래서 쉽게 자기도취적인 몽상에 빠져들곤 한다. 다른 20세기 사회주의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가가와 도요히코의 협동조합 사회주의도 그대로 우리 시대의 대안이 되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한 가지만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협동조합이 단지 제2의 새마을 운동의 부속품이거나 변혁 운동에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좋을 무엇은 아니라는 것이다. 협동조합 운동은 사회주의 역사의 맨 처음(예를 들면, 로버트 오언)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자본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결코 빠뜨려서는 안 될 출발점들 중 하나다.

이런 원칙을 확인하고 나면, 카를 마르크스가 바라본 대안의 방향도 달리 보이게 된다. 그는 '국제 노동자협회 발기문'(1864년)에서 "국민적 규모에서의 발전과 국민적 수단에 의한 추진"을 전제로 "협동조합 제도"를 근로 대중 해방의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3권(최인호 외 옮김, 박종철출판사 펴냄) 11쪽).

제1인터내셔널 내부의 오언주의자들을 다독이기 위한 양보에 불과했다는 해석도 있지만, 이것이 대안사회에 대해 남긴 마르크스의 얼마 안 되는 언급들 중 가장 확신에 찬 문장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엥겔스와는 달리 마르크스는 국영 기업에 대해 이런 확신을 내비친 적은 없다. 어쨌든 그에게 협동조합 기업은 자본주의적 생산 형태 내에서의 "그 낡은 형태에 대한 최초의 타파"(<자본 3-1>(강신준 옮김, 길 펴냄))였다.

이렇게 보면, 역설적이게도, 20세기에 등장한 자칭 '사회주의' 체제들보다는 오히려 반(反)마르크스주의자 가가와 도요히코의 협동조합 국가 구상 쪽이 마르크스의 본래 염원에 더 가까운 것처럼도 보인다. 비록 <우애의 경제학>이 제시하는 대안 사회상도 상당한 수정을 겪어야 하기는 하겠지만, 새로운 사회에서는 국가의 조직 원리보다는 협동조합의 그것이 지배해야 한다는 핵심 메시지만큼은 진지하게 재발굴해야만 한다.

돌이켜 보면, 가가와 도요히코가 비판했던 1930년대의 다른 대안들(뉴딜 자본주의, 소련 사회주의 그리고 파시즘)은 모두 기회를 부여잡았다. 그리고 모두 다 악몽 혹은 지탱될 수 없는 미망임을 입증했다.

<우애의 경제학>은 80여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지금 우리에게 지난 번 대위기 때 선택받지 못한 대안이 하나 남아 있다고 속삭인다. '가보지 않은' 그 길의 이름은 '협동조합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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