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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지리산, 꽃으로 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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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과 지리산, 꽃으로 통했다

[꽃산행 꽃글] 백두산 가는 길 ④

이도백하로 가는 길은 꽤 멀었다. 예전엔 비포장도로라서 연길에서 그곳까지 가는 데에도 하루 종일이 걸렸다고 했다. 백두산 가는 길이 그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 나절이면 족하다. 이렇게 중간의 풍경을 생략하고 빠르게 가는 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꽃산행을 하기에 그 먼 길을 제법 격식을 차리면 간다고 할 수 있겠다.

마을 몇 개, 도시 몇 개를 지나 문득 인가가 사라지고 침엽수림이 좌우로 빽빽한 곳 차가 섰다. 어느 고개였다. 선봉령(仙峰嶺)이라는 간판이 멀리서 보였다. 안개가 자욱이 깔리고 전조등을 켠 차들이 띄엄띄엄 지나갔다. 이곳에 작은 습지가 있다고 했다. 그곳의 식물을 둘러보기로 한 것이다. 진귀한 꽃들이 만발했다. 나도 엎드리고 구부리면서 사진을 찍었다.

몇 발짝 앞서 간 곳에서 환호성이 일어났다.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의외의 식물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왜지치, 숲개별꽃, 새바람꽃, 네잎갈퀴가 발밑에서 눈을 맞추었다. 바람꽃은 여러 종류를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바이칼바람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곳이 나라 바깥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이곳은 북방식물계가 활개를 치는 곳이다. 바이칼이라는 이름에서 큰 호연지기를 느낀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 바이칼바람꽃. ⓒ이굴기

▲ 나도범의귀. ⓒ이굴기


▲ 산작약. ⓒ이굴기

나도옥잠화, 나도범의귀, 산작약, 큰괭이밥, 연령초, 참졸방제비꽃, 애기괭이밥은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다 한 번씩 본 식물들이다. 참으로 신기하게도 우리나라의 꽃들과 덩치만 차이가 났을 뿐 꼭 닮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참 보기 어려운 꽃, 그래서 태백산에서 겨우 볼 수 있었던 나도범의귀는 이곳에서는 흔하디흔한 식물이었다.

누가 나도제비란을 보았다고 했다. 귀가 번쩍 열렸다. 사연이 있다. 백두산으로 떠나기 직전 지리산으로 두 주 연속으로 산행을 했었다. 첫 번째는 성삼재에서 올라 노고단을 거쳐 뱀사골로 가는 꽃산행이었다. 그 능선에서 나도제비란을 보았던 것이다. 그날 산행을 이끌었던 분이 작년에 관찰하였던 나도제비란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쉽게 지리산에서 그 꽃을 만났던 것이었다. 지리산의 나도제비란은 등산로를 약간 벗어난 곳에 있었다. 그날 그 작은 난(蘭) 앞에서 많이 엎드리고 뒹굴었다. 그런데 바로 그 꽃을 백두산 가는 길에 또 만날 줄이야! 나는 지리산에서 아쉽게 헤어진 꽃을 다시 만난 기분으로 열심히 관찰했다.

▲ 지리산의 나도제비란. ⓒ이굴기

▲ 백두산 가는 길에 만난 나도제비란. ⓒ이굴기

▲ 죽대아재비. ⓒ이굴기

지리산과의 인연이 되는 식물을 하나가 더 만났다. 죽대아재비였다. 중산리에서 벽계사를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코스였다. 그 가파른 깔딱고개의 어디쯤에서 만난 것이 죽대였다. 줄기가 통통하며 둥글고, 줄기에 대나무처럼 마디가 하나 있었다. 그런 참에 죽대아재비란 말을 들으니 자연스레 지리산에서 본 죽대가 생각난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죽대하고 죽대아재비는 이름만 가까울 뿐 아주 가까운 친척은 아니다. 죽대하고는 같은 과(科)이되 속(屬)은 다르다. 죽대는 흔히 보는 둥굴레하고 비슷하였다.

그렇게 먼 나라에서 내 나라 내 고장, 그 중에서 지리산의 나무며 식물들을 생각하면서 습지탐사를 마쳤다. 그리고 버스에 몸을 싣고 백두산으로 접근했다. 용정을 비롯해 이곳은 연변조선족 자치구이다. 지날 때마다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한자와 한글이 병기되어 있었다. 한자 위에 첨자처럼 한글이 적혀 있었다. 붉은 벽돌집이 많았다.

▲ 선봉령 고개에서, 저 길의 끝에 이도백하가 있고 백두산이 있다. 벌목한 목재를 실음직한 트럭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굴기

여행을 하다보면 저녁이 찾아온다. 그럴 때 마을을 지나자면 밥 짓는 연기가 뭉글뭉글 오르기가 일쑤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어쩐지 연기를 보기가 어려웠다. 공중에 나부끼는 게 있어 유심히 보면 낡은 오성홍기였다. 지나치는 마을마다 지붕과 벽돌은 모두 규격화되었다. 담벼락은 그냥 있는 법이 없었다. 구호가 잔뜩 씌어 있었다. 어느 마을을 지나갈 때 눈길을 확 붙드는 한자가 있었다.

2012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모옌의 대표작인 <개구리>(유소영·심규호 옮김, 민음사 펴냄)는 중국 가족 계획 정책의 이면에 숨겨진 가슴 아픈 현실을 그려낸 작품이다. 민음사에서 펴낸 그 책의 옮긴이의 말에 다음과 같은 섬뜩한 대목이 나온다. 중국식 가족 계획 구호였다.

超生就扎(초과 출산하면 곧바로 정관을 묶어버린다) / 該扎不扎 房倒屋塌 該流不流 扒房牽牛(묶지 않으면 집을 부수고 유산시키지 않으면 방을 허물고 소를 끌어낼 것이다) / 寧可血流成下 不准超生一個(핏물이 강을 이룰지라도 초과 출산은 허락할 수 없다) / 一人超生 全村結扎(한 사람이 초과 출산하면 온 마을 남자들을 묶어버릴 것이다) / 能引的引出來 能流的流出來 堅決不能生下來(끌어낼 것은 끌어내고 유산시킬 수 있는 것은 유산시켜 단호하게 낳을 수 없도록 하자)

사언절구의 한 구절 같은 그 한자는 "生男生女 順其自然"이었다. 짧은 한문 실력이지만 무슨 뜻인 줄 대강 짐작이 갔다. 실제로 중국에서는 지금도 위와 같은 살벌한 구호가 난무한다고 하는데 거기에 비하면 조선족이 많이 사는 곳이라서 그나마 나은 것일까.

우리나라에도 가족 계획 표어가 있었다. "알맞게 낳아서 훌륭하게 키우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3명 자녀를 3년 터울로 35세 이전에 단산하자" "딸 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등이었다. 글쎄, 잘은 모르겠지만 두 나라를 통틀어 가장 나은 구호는 "生男生女 順其自然"가 아닐까.

이런저런 풍경과 그런저런 생각과 더불어 마침내 이도백하(二道白河)에 도착했다. 백두산으로 가려면 경유해야할 마지막 동네였다. 백두산으로 가는 머나먼 길의 막바지에 이른 듯 했다. 호텔방에 들어서 창문을 열자, 저 멀리 흰 산이 보였다. 백두산의 달문(闥門)이라 했다. 천지의 북쪽 한 곳이 터져서 물이 흘러나가는 곳이었다.

이제 드디어 백두산에 왔다는 느낌이 제법 일어났다. 만지지는 못해도 내 신체기관인 나의 육안으로 직접 본다는 실감이 온몸으로 번져왔다. 이제 내일이면 그곳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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